헨리, 하롤드 Henry, W. Harold(1909~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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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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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대주교. 제5대 광 주대교구장. 초대 제주 지목구장. 세례명은 하롤드. 한국 명은 현해(玄海). 1909년 7월 11일 미국 미네소타주 노 스필드(Northfield)의 프로테스탄트 부모 밑에서 태어났 으며 1921년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 위치한 가톨 릭계 성 스테판(St. Stephen) 학교에 들어간 후 1922년 5 월경 세례를 받았다. 이후 골롬반회에서 발행하는 《머나 먼 동쪽》(The Far East)을 우연히 읽고 사제 성소를 키워 1922년 오마하(Omaha)의 골롬반 소신학교에 입학하였 다. 1926년 골롬반회의 본부가 있는 아일랜드의 성 세 난(St. Senan) 신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수학한 후 1931년 여름에 미국으로 돌아온 헨리는, 오마하의 골롬반 대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다음 이듬해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그는 9명의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중국으로 파견되어 가던 중 포교지가 한국으로 변경, 1933년 10월 29일 부산으로 입국하여 대구에 도착하였다. 입국 후 6개월 동안 한국어와 한국 풍속을 익힌 헨리 신부는 1934년 4월 계량(현 노안) 본당 보좌 신부로서 한국에서의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부터 나주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1941년 12월, 적성국(敵性國) 국민으로 분류되어 나주와 광주에 억류되었다가 이듬해 8월 본국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본국으로 돌아간 헨리 신부는 1943년 7월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유럽에서 군종 신부로 사목 활동을 하고(미국 동성훈장 수상), 1945년에 제대하여 8월부터 골 롬반 대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7년 10월 한국에 재입국한 헨리 신부는 광주 지목 구 경리부장을 역임하던 중, 1950년 광주교구장 브렌난 (P. Brennan, 安) 몬시놀이 북한 공산군에게 납치되자 7월에 광주교구장 대리 겸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광주지부 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헨리 신부는 1953년 5월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모란(T. Moran, 安) 신부와 함께 한국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치명자의 모후 ·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 움)를 창단하였으며, 1954년 10월에는 정식으로 제5대 광주교구장에 임명되었다. 헨리 교구장은 전남 각지에 많은 본당을 신설하였으며, 1956년 9월에는 제주 감목 대리구를 설정하였다. 또한 당시 한국에 진출해 있던 수도회나 외국 수도회에 광주교구로 진출해 줄 것을 직접 요청하여 각종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게 하였다. 그 결과 1955년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가 성 골롬반 병원을, 1960년에는 천주의 성 요한 의료 봉사 수도회가 천주의 성 요한 의원을, 1969년에는 가롤로 보로메오 수도회에서 가롤로 병원을 개원하였다. 또한 1956년 살레시오회 에서 살레시오 중학교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959년 에는 고등학교를, 1961년에는 성모중학원을 설립하였으며, 살레시오 수녀회에서는 살레시오 여자중학교(1958) , 여자고등학교(1961), 초등학교(1962) 등을 차례로 설립하였다. 한편 1957년 1월 21일 광주 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 되면서, 헨리 신부는 광주 대목구장이 됨과 동시에 코리 달라(Corydala)의 명의 주교로 5월 11일 미국 보스턴 (Boston)에서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로" (Ad Jesum per Mariam)를 사목 표어로 주교 서품을 받았다. 이후 헨 리 주교는 심각한 사제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1959년 1월 로마 교 황청으로부터 광주 대건신학교(현 광주 가톨릭대학교)의 설립 허가를 받았다. 신학교는 몇 년의 준비 과정을 거친 후 1962년 3월 문교 당국으로부터 철학과와 신학과 과정의 '대건신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4월 1일 개교하였 다. 같은 해 3월 한국 교회의 교계 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광주 대목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고, 헨리 주교 또한 대 주교로 승품되어 7월 광주 북동 본당에서 착좌식을 거행 하였다. 전례 쇄신 작업, 노동자 사목, 가정 윤리(낙태 · 유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한 헨리 대주교는 1971 년 6월 제주 지목구가 설정되자 초대 지목구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제주교구의 교세 신장을 위하여 본당을 신설하고 다양한 수도회들이 제주교구로 진출할 수 있도록 초청하여, 1972년 성 글라라 수도원이 이시돌 목장 내에 첫 거처를 마련하였다. 이 밖에도 광주교구장 시절부 터 힘써 온 교육 · 의료 · 사회 개발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사회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던 헨리 대주교는 1976 년 3월 1일 미사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하였고, 그 의 유해는 제주도 첫 순교자들이 묻힌 황사평에 안장되었다. (→ 광주 가톨릭대학교 ; 광주대교구 ; 레지오 마리애 ; 제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E. Fischer, Light in the Far East, New York : Seabury Press, 1976/ Jeremiah F. Kelly ed., The Splendid Cause 1933~1983, Seoul, Columban Fathers, 1984/ 《광주대교구 50년사》, 빛 고을출판사, 1990/ 《제주 천주교회 100년사》, 천주교 제주교구, 2001. 〔洪延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