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코, 웁살라의 Henricus de Uppsala(?~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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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수호 성인. 주교. 순교자. 축일은 1월 19일. 생몰 연대와 생애 모두 분명치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본래 영국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어떤 경로를 거쳐 스웨덴으로 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1 세기 초 무렵 스웨덴은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어 전국적으로 한창 교구와 수도원들이 설립되고 있었다. 헨리코 는 교계 제도의 정비를 위해 스칸디나비아에 파견된 교황 대사로, 후에 교황 하드리아노 4세(1154~1159)가 되 는 브릭스피어(Nicholas Breakspear, 1100?~1159) 추기경이 1152년 스웨덴의 린최핑(Linköping)에서 개최한 교회 회의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다. 혹은 교황 대사인 브릭 스피어와 함께 스웨덴에 왔다가 읍살라의 주교가 되어 남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1155년, 스웨덴 왕인 에리크 9세(Erik Ⅸ, 1150~1160) 는 가톨릭 교리의 전파를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여 핀란 드로 진격하여 투르쿠(Turku)에 선교 거점을 만들었다. 이때 왕을 수행한 헨리코는 에리크 9세가 돌아간 후에도 핀란드에 남아 노우자이넨(Nousiainen)에 성당을 건축하여 선교 활동의 중심지로 삼고 많은 이교인들을 개종시키는 등 가톨릭 신앙의 토대를 만들었으나, 1156년 1월 20일에 핀란드인 개종자이자 거부였던 랄리(Lalli)에 의해 살해되었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랄리는 스웨덴의 군인으로, 이단자이고 범죄자인 탓에 헨리코로부터 파문을 받고 이에 앙심을 품어 살해한 것이라고 한다. 살해 후 랄리는 헨리코의 모관(毛冠, biretum)을 집어들었지만 쉽게 벗겨지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모관에서 헨리코의 살이 묻어났다고 한다. 헨리코의 무덤에서는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1158년에 교황 하드리아노 4세에 의해 시성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은 빠르게 스웨덴과 핀란드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유럽으로도 전해졌다. 노우자이넨에 안치되었던 유해는 1300년 6월 18일 성인에게 봉헌된 아보(Abo)의 주교좌 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720년 러시아인들에게 도난당하였다. 현재 노우자이넨에는 묘비와 15세기의 묘지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성인의 무덤이 중요한 순례지였음을 보여 준다. 헨리코는 중세 시기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모든 전례서에 수록된 열두 성인 중 한 사람이었다. (→ 핀란드) ※ 참고문헌  T. Schmid, 6, 2003, pp. 756~7571/ C. Schmitt, 《Cath》 5, pp. 620~621/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22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