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Helena(250?~330)

글자 크기
12
1 / 3

성녀.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 대제(Magnus Constantinus, 306~337)의 어머니. 축일은 8월 18일. 250년경 소아시아에 있는 비티니아(Bithynia) 지방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으며, 암브로시오(Ambrosius, 339~397)의 기록에 의하면 여관 주인의 딸이었다 고 한다(De obitu Theodosii oratio, 43). 270년경 후에 황제가 된 콘스탄티우스 1세(Constantius I, 305~306)와 결혼을 하였고, 280년경 나이수스(Naissus)에서 외아들인 콘스탄 티누스를 낳았다. 하지만 289년에 콘스탄티우스 1세는 정치적인 이유로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Maximianus, 286~305)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여, 292년에는 부제(副帝, Caesar)가 되었 다. 306년 콘스탄티우스 1세가 브리타니아 에보라쿰 (Eboracum, 현 영국의 York)에서 죽자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헬레나를 독일의 트리어(Trier)에 있는 황궁으로 불러들이고 그녀를 '아우구스타' (Augusta) , 즉 '황후' 라고 부르도록 하였으며 그녀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을 주조하게 하였다. 312년 10월 '밀비오(Milvio) 다리 전투' 에서 막센티 우스(Maxentius, 306~312)를 물리친 뒤, 콘스탄틴 대제는 60세가 넘은 어머니 헬레나를 설득하여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이는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가 기록한 《콘스탄틴의 생애》(De Vita Constantini)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헬레나)는 아들의 영향으로 매우 경건한 하느님의 종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구세주의 제자였을 것이라고 착각을 할 정도로 경건하였다" (Ⅲ, xivii. 이러한 사실은 동 시대 역사가들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헬레나는 개종한 그때부터 진지한 신자의 삶을 살았고,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헬레나는 317년 부제로서 갈리아의 명목상 통치자로 임명된 맏손자 크리스푸스(F.J. Crispus, ?~326)를 가장 총애하였다. 그런데 326년 대제의 두 번째 부인 파우스타 (Fausta)는 크리스푸스가 자신을 유혹하려고 했다며 고소하였고, 이에 콘스탄틴 대제는 아들을 처형하였다. 비탄에 잠긴 헬레나가 파우스타를 비난하자, 파우스타 역시 처형당하였다. 이런 비극을 겪은 후 헬레나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티나로 순례를 떠났다. 에우세비오에 따르면, 헬레나는 이때 팔레스티나에서 '왕 중의 왕' 인 하느님께 충성과 신앙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낌없이 후원금을 내놓았으며, 많은 선행을 베 풀었다. 그리고 '황제에 대한 염려와 기원을 갖고' 여러 곳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구세주의 발자취에 대한 경배 를 표하기 위해서' 콘스탄틴 대제의 도움으로 여러 성당들을 세웠다. 그 중 하나가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 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알려진 동굴 위에 지었으며 많은 돈을 들여 치장했다" (loc. cit., xlii)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올리브 산에 있는 성당으로, 현재는 '주님의 기도(Pater Noster) 성당' 이라고 불리지만, 예전에 는 '올리브 나무 숲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엘라이온' (ἐλαιών)이 와전되 어 '엘레오나(Eleona) 성당' 으로 불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예수가 처형된 장소인 골고타와 예수 의 무덤 위에 세워진 신전을 허물고 지은 '성묘(Sacrum Sepulchrum) 성당' 이 있다. 루피노(T. Rufinus, 345~410) 가 전해 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의 하면, 이 성당을 지을 때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예 루살렘에서 예수와 관련된 물건을 찾아 로마로 옮기던 헬레나는 골고타에서 예수의 십자가 위에 달렸던 죄명판 을 발견하자 그곳을 파 보게 하였다. 무수히 많은 십자가들이 발굴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기 위해 한 젊은이의 시체를 모든 십자가 위에 올려 놓게 하던 중, 한 십자가에 올려진 젊은이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예수의 십자가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헬레나는 이 십자가를 셋으로 나눠 하나는 콘스탄 티노플에 있는 대제에게 보내고, 하나는 예루살렘의 주 교인 마카리오(Macarius, 314~333)에게 주고, 남은 부분 은 로마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세소리아 궁전(Palatium Sessorianum)을 개조해 자신의 전용 성당으로 만들고 십자가와 다른 유품들을 보관했다고 한 다. 이후 이 성당은 '헬레나 대성전' (Basilica di Helena) 또는 '세소리아 대성전' (Basilica Sessoriana)이라 불렸는데, 공식적인 명칭은 '예루살렘' (Hierusalem)이었다. 현재는 '예루살렘의 거룩한 십자가 대성전' (Basilica di Santa Croce in Gerusalemme)이라 불리고 있다. 비록 후대에 알려지고 전해진 이야기들이지만, 에우세비오 역시 헬레나가 팔레스티나의 성스러운 장소들에 성당을 세웠다고 기록하였으므로 이 이야기들을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 콘스탄틴 대제는 327년에 헬레나의 고향인 드레파눔을 재건하고 헬레노폴리스(Helenopolis)로 개명한다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헬레나는 330년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동전이 마지막으로 주조된 것이 이 무렵이기 때문이다. 유해는 라비카나 가도(Via Labicana)의 화려한 무덤에 모셔졌다 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사도 교회의 황실 납골당에 안치되었으며, 알트만(Altmann) 수사의 《이장기》(移葬 記, Translatio)에 의하면 849년에 프랑스 랭스(Reims) 대 교구의 오빌리에(Hautvillers) 수도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9세기 초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 이콘에서 그녀는 왕관을 가운데 두고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15세기 이후 그려진 초상화에서는 왕관, 교회의 모형, 십자가, 못과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의 상징 은 십자가이며,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 그녀는 트리어, 밤베르크(Bamberg) , 바젤(Basel)의 수호 성인이며 서방 교회에서의 축일은 8 월 18일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콘스탄틴 대제와 함께 5 월 21일에 기념한다. (→ 골고타 ; 성묘 ; 예루살렘 ; 콘스탄틴 대제) ※ 참고문헌  J.H. Geiger, 《NCE》 6, 2003, pp. 720~721/ P.-T. Camelot, 《Cath》 5, p. 5741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2251 F. Gioia ed., Pilgrims in Rome, Geoffrey Chapman, 1999/ A. 프란츤, 최석우 역, 《세계 교회사》, 분도출판사, 2001/ 정양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 늘》, 생활성서사,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