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Hellenismus · helle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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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동방의 문화 · 전통이 융합하여 이루어진 세 계주의적인 예술 · 사상 · 정신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 형태. 헤브라이즘(Hebraism)과 함께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용어와 의미〕 그리스 역사에서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혹은 배경이 되거나 비교되는 사조와 사상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헬레니즘에 대한 이해는 조금씩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헬레니즘은 알렉산더 대왕 (기원전 336~323)의 서거 시점(기원전 323)부터 이집트 왕조가 로마 제국에게 멸망당하여 합병되는 시점(기원전 30)까지 약 300년에 걸쳐 일어났었던 문화적 · 학문적 · 종교적 변화와 특징들을 말한다. 흔히 '헬레니즘 시대' (hellenistic age)로 불리는 이 시기는 기원전 5~4세기의 그리스 고전 시대(classical greek age)와 정치적 · 문화적 · 사상적으로 비교 대비된다. '헬레니즘' 이라는 용어의 가장 표준적이고 가장 좁은 의미는 이 시기의 사상과 철학을 뜻한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ales, 기원전 384/383~322/321) 로 대표되는 그리스 고전 시대의 사상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망 이후 통칭 '헬레니즘' 이라 불리는 스토아 학파(Stoicism), 에피쿠로스 학파(Epicureanismus), 회 의주의(Skepticismus)에게 그 지배력을 빼앗겼다. 그러나 헬레니즘이라는 용어가 표준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기원전 3~1세기만이 아니라 서기 1세기 이후의 시대상을 기술하는 문화사적 개념 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로 헬레니즘이라는 용 어를 확립하고, 이를 학문적인 개념으로 정착시킨 사람 은 역사가인 드로이젠(J.G. Droysen, 1808~1884)이다. 그는 사도 행전 6장 1절을 근거로,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수용하는 유대인들이 '헬레니스테 스 (Ελληνιστές)로,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유대 전통에 충실했던 보수적인 유대인들이 '헤브라이오스' (Εβραίους)로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헬레니스테스' 들은 그리스 전통과 오리엔트 전 통의 만남과 융합 속에서 이 융합을 문화적 자양분으로 섭취하면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이며, 헬레니즘은 동방 전통 과 그리스 전통의 문화 혼합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때의 그리스 전통은 일차적으로 기원전 3~1세기에 걸쳐 구축된 그리스 문화 및 사상을 지칭한다. '헬레니즘' 은 '그리스적인 것' 또는 '그리스주의' 를 뜻한다. '그리스적인 것' 의 문자적 의미와 외연에는 스 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회의주의뿐만 아니라 플라 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헬레니 즘을 구성할 때에는 헬레니즘 안에 그리스 고전 사상이 포함된다. 아놀드(M. Arnold)와 같은 몇몇 문예 비평가와 역사가들은 이런 식으로, 헬레니즘을 범(汎)그리스적 인 전통 및 사상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는 서기 4세 기 이후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이해 방식을 그대로 계승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교부들은 이미 지중해 세계 및 유럽을 완전 정복한 그리스도교 문화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통, 사도들의 전통, 유대적 전통만 있는 것 이 아니라고 보았다. 세속적 전통 및 기원도 적당한 정화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교 문화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될 수 있는데, 그리스적 전통 및 기원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적 전통에는 고전 시기 이후의 그리스 고전 사상 및 문화도 포함된다. 세 번째 의미의 헬레니즘 역시 표준적 의미의 헬레니 즘을 배경으로 성립한다. 서기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문화로 흘러 들어온 플라톤 전통과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은 대개 표준적 의미의 헬레니즘에 의해 윤색되거나 채 색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경제〕 헬레니즘 시대 이전 그리스인들의 정치적 · 사회적 · 문화적 삶의 단위는 폴리스(polis), 즉 도시 국가였다. 폴리스는 비슷한 혈통을 가진, 비교적 적은 인 구의 거주자들이 제한된 지역에서 동일한 문화적 · 종교적 · 역사적 체험을 유지하고 전승하는 사회 및 문명 공 동체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는 몇백 년 동안 이 폴리스를 중심으로 재화가 생산 분배되고 정치 질서가 유지되는 삶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폴리스 체제는 마케도니아 제 국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이것이 새로운 시대, 즉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삶의 단위는 지역적 · 혈연적 공동체로서의 폴리스가 아니라 광활한 영토 위에 세워진, 그리고 새로운 물적 · 인적 자원이 끊임없이 유입 · 유출되는 제국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사회에는 왕정, 참주정,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등 다양한 정치적 지배 형태가 병존하였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강력한 일인(一人) 왕정이라는 단 하나의 정치적 지배 형태가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서거 이후 제국은 이른바 후계자 전쟁을 거친 후 3개의 왕조로 분할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312~64)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했던 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프톨레메우스 왕조(기원전 305~30)는 이집트를, 안티고노스 왕조(기원전 306~168)는 마케도니 아를 각각 지배하였으며, 각각의 제국은 수많은 민족들 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거대 국가였다. 이 거대 국가를 경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였기에, 시민 경제와 별도로 국가 경제, 즉 국가에 의한 독점적 이익 창출의 기반과 형태가 조직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국왕은 가장 넓은 토지의 소유자였으며, 국왕이 소유하지 않은 토지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토지세가 부과되었다. 소금, 기름과 같은 몇몇 생필품은 왕가의 독점적 판매 품목이었고, 항만(港灣)과 상로(商路)는 국가의 관리 대상이자 과세 대상이었다. 제국 내외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자 인구 이동이 촉진되어, 특히 그리스 본토 및 에게 해로부터 많은 그리스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동방으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안티오키아(Antioquia) , 셀레우키아(Seleukeia), 로도스(Ródhos) 등 동방의 도시들이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로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며, 아테네(Athens)는 더 이상 세계의 중심지 혹은 유일한 중심지가 아니었다. 동방으로 이동한 그리스 이주자들은 토착민들을 밀어내고 제국의 행정 관리직 및 군사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신흥 상류층을 형성하였다. 〔사 상〕 폴리스가 사회적 삶의 기본 단위였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폴리스 안에서의 정치적 역할 참여 및 수행 능력은 시민의 핵심 역량인 동시에 자기 정체성의 기반이었다. 따라서 고전 시대에 이상적인 시민의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정치적 능력 여부였다. 플라 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모든 고전 사상에는 시민의 공적 생활의 토대를 광범하게 구축하는 작업이 기 본 과제로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 사상가들은 이를 통해 각 폴리스 시민의 정치적 역할 수행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폴리스의 주권이 상실되어 시민 생활이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되자, 시민적 역량의 핵심 및 시민의 자격은 더 이상 정치적 능력에 기반하지 않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정치적 능력이 뒷 받침되지 않아도 시민의 조건을 확보해 주는, 그리고 시 민 공동체의 일차적 성격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규정 짓지 않아도 그 공동체가 근거 지워지는 새로운 관점과 개념적 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공동체상을 설계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이 바로 헬레니즘 사상가들이 며, 특히 두드러진 이들이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였다. 에피쿠로스(Epicuros, 기원전 341~270)의 '정원' (庭園, κήπος)은 새로운 공동체의 이념을 담아 내고자 한 실험적 삶의 양태였다. 에피쿠로스적 공동체는 정치적 공동체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반(反)정치적 공동체였다. 정치 행위 및 공적 의무들은 시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보다는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되었다. 사회적 · 관례적 행위와 규범 일체를 모두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정치적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기꺼이 가담할 것을 권유하는 고전주의적 태도와 결별하라는 말이었다. 정치적 지배 능력 및 성향은 덕이 아니라 악덕이며, 정치적 지배 행위는 자기 자신 및 타인에게 있어서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시민 생활은 가능한 한 사적(私的)인 영역으로 축소 · 한정되어야 하며, 각자는 그 안에서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향유해 야 한다. 에피쿠로스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정치적 관 계가 아니라 사적인 우정으로 묶인 자들이었으며, 그 우 정은 전통적 폴리스처럼 지연이나 혈연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에피쿠로스적 삶의 이념, 즉 참다운 쾌락의 이해에 기초한 행복 실현의 공유에 기반하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가 볼 때 정치 행위의 능력은 더 이상 공동체의 귀속 조건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었으며, 여기에는 성 (性)과 신분의 제한 또한 없다. 이 점이 고전 시기 폴리 스 문화와의 확연한 차이이다. 에피쿠로스적 공동체에는 여자들과 노예들도 얼마든지 구성원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런 증거들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이 평등주의적 이념 그리고 휴머니즘적 이념에 의해 구성 ·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스토아 사상은 폴리스 정치 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 사상을 극복함과 동시에 에피쿠로스 철학에 남아 있는 하나의 긴장, 즉 사적 공동체와 공적 사회 사이에 놓여 있는 지속적인 긴장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였다. 고전 사상의 기능적 시민 개념, 그리고 그와 직접적으로 연 관된 전통적인 폴리스 모델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스토아 역시 에피쿠로스와 일치한다. 하지만 대안적인 공적 시민 개념과 폴리스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에피쿠로스 학파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였다. 대안적인 모델을 구성하는 중추적 개념은 코스모폴리스(cosmopolis, 세계 시민 사회)와 코스모폴리테스(cosmopolites, 세계 시민)이다. 스토아적 세계 시민의 자격 또한 정치적 능력 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므로, 세계 시민 사회는 정치적 공동체가 아니다. 스토아적 시민 사회에는 자연적 · 지역적 기초가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폴리스와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 새로운 사회상에 따르면 정치적 기능이 아니라 휴머니즘적 도덕성이 시민 개념의 중추를 이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국적, 혈통, 가문, 성, 나이, 신분, 교육 수준에 관계 없이 하나의 동일한 폴리스 시민이거나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동체는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며 그 어떤 곳에서도 실현된다. 스토아적 세계 시민주의(cosmopolitanismus)는 시대 정신의 반영 혹은 시대 정신의 선구였다. 종래의 그리스 민족 중심주의에 의하면 비(非)그리스계 이민족은 야만인으로 취급되었으나, 이제는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 받게 된 것이다. 동방 전제 군주적 의례의 채용, 그리스 인과 동방인과의 결혼 장려 등 두 문화의 융합을 시도한 알렉산더 대왕 및 그 후계자들의 정책과 세계 시민주의 사상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스토아의 세계 시민 주의 사상은 시민 개념을 기능 개념에서 신분 혹은 지위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이 사 상은 보편적 박애주의(博愛主義) 및 사해 동포주의(四海 同胞主義) 이념으로 발전함으로써 훗날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가 지녔던 사회 사상의 핵심은, 이념적 삶의 공동체는 정치적 단위로서의 현실적 국가로부터 '분리' 해서 설계 ·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었으며, 이 생각은 훗날 그리스도교 교회와 국가의 관계 설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도서관 · 문헌학 · 문학〕 아테네는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와서도 철학과 사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도시로 남았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지적 영역의 주도적인 역할은 동방의 도시들로 넘어갔다. 가장 두드러진 도시는 프톨레메우스 왕조의 알렉산드리아였다. 프톨레메우스 1세 (Ptolemaeus I Soter, 기원전 323~285)는 알렉산드리아에 학자와 작가들의 연구소인 학사원(學士院), 즉 무세이온 (Mouseion, 뮤즈 여신들의 성소)과 부속 도서관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국가가 주도한 학문 정책 및 제도의 첫 예였다. 알렉산드리아 학사원과 도서관에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리스 전역에서 수집한 50만 개 이상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소장되었고 이를 연구 · 보존 · 전승할 만한 전문 학자들이 대거 초빙되었다. 철저한 문헌 연구는 학 사원의 특징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문헌학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기원전 3세기 말에 활동한 에페소의 제노도토 스(Zenodotos of Ephesos, ?~?), 비잔티움의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of Byzantium, 기원전 257?~180), 사모트 라케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of Samothrace, 기원전 217?~145) 등은 호메로스(Homeros, ?~? 기원전 8세기경 활 동)의 본문 자체 및 본문의 언어를 미시적으로 분석 · 주 석 · 설명 · 재구성함으로써 문헌학의 전범(典範)을 보여 주었고, 이를 통해 서양 인문학의 근본적인 방법적 토대를 형성하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도서 목록 작성 책임자였던 칼리마코스(Calimachos, 기원전 305?~240?)는 단시(短詩) 인 에피그람(epigram)을 많이 창작하여 장편 서사시(敍 事詩, epos) 위주의 문학 전통을 쇄신하였다. 그리고 종래의 서사시 전통에서는 신들과 영웅들의 업적이 주제로 다루어졌으나, 칼리마코스의 단시에서는 보통 사람의 일 상적 삶이 주제화됨으로써 헬레니즘 문학의 특징이 형성 되었다. 문학은 위대하고 무거운 주제나 이상에 관한 이야기와 모방이기보다는 대중의 요구와 즐거움에 의해 정 위(定位)되는 것이라는 관념은 헬레니즘 문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메니포스(Menippos, ?~?, 기원 전 3세기에 활동) 등의 풍자시가 성행하였으며 멜레아그로스(Meleagros, ?~?, 기원전 1세기경에 활동) 등에 의해 에로티시즘도 시적 언어로 과감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소설 분야는 헬레니즘 문학의 성과물이었다. 《헤로와 네안드로스》, 《피라모스와 티스베》, 《사포와 파온》 같은 소설은 로맨틱한 주제를 다루어 대중들의 욕구에 부응하였다. 연극을 지배한 주된 형식 역시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며, 그 주제 역시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삶이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희극은 새로운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욕구에 과도하게 정위한 나머지 에로티시즘과 비정상적 감정의 표현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본래 대중 민속에 뿌리를 두고 있던 팬터마임 연극도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와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 학〕 수학을 자연 현상의 탐구 방법으로 활용한다는 플라톤적 원리와, 진리를 얻기 위해 세계를 경험적으 로 탐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원리는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와 하나로 결합되기 시작하여 더욱 발전되었다. 이 두 원리가 과학 활동의 여러 분야에 깊숙이 '응용' 되었다는 점, 그리고 과학이 철학자들의 개인적 전유물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 · '개별화' 되었다는 점이 헬레니즘 과학의 근본 특징이다. 그 결과 지리학, 천문학, 의학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이 이루어졌고, 오늘날 흔히 '공학' 이라 통칭되는 응용 과학이 이 시대에 탄생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광활해진 제국을 다스리게 된 왕실의 필요성에 따라, 지리학이 발전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디카이아르코스(Dikaiarchos. ?~?)는 세계 지도를 제작하였으며, 키레네의 에라토스테네스(Eatosthenes ofCyrene, 기원전 276?~194?)는 유클리드 수학을 응용하여 수리 지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가 측량한 지구의 둘레는 오늘날 알려진 것과 불과 80km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한편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of Samos, 기원전 310?~230)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중심설 을 반박하는 태양 중심설을 제기하였다. 몇몇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지름과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업적은 천문학자 프톨레메오스 (C. Ptolemaeos, 127 145에 활동)에게 전승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의학도 크게 발전하는데, 특히 해부 학과 생리학이 대표적이다. 사체의 해부가 보편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뇌와 신경, 동맥과 심장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외과 의술을 비롯한 수술의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지고 의약품에 대한 연구가 촉진됨으로써 약리학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전쟁과 건설 사업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헬레니즘 시대 의 제왕들은 군사 및 전쟁 기술 그리고 건설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보였고, 따라서 이 방면의 공학들이 발전하 였다. 응용 수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계 장치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기원전 290/280?~212/211)를 비롯하여 많은 공학자들이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전쟁 기술 및 건설 기술의 혁신을 도모하였다. 〔종 교〕 세계가 그리스 본토와 에게 해에서 동방으로 팽창함에 따라, 옛 그리스 세계와 동양 사이에는 종교 교 류의 길이 열렸다. 기원전 5세기 말부터 수세에 몰린 그 리스의 전통적 올림포스 종교는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와 완전히 그 지배력을 상실하였다. 이 시대 종교 상황의 특 징은 다원성에 있다. 폴리스 체제가 붕괴하자, 개인과 집단들은 정치 및 경제 공동체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에 대한 선택의 자유도 갖게 되었다. 모국을 떠난 이민자들의 집단 및 거주 지역을 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가 큰 역할을 하여, 특정 지역에서 만 숭배되던 신이 다른 지역에서도 숭배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이시스(이집트), 바알(시리아), 대모신(大母 神, 프리기아), 야훼(팔레스티나), 미트라(쿠르디스탄) 등이 이민족의 도시에서도 숭배되었다. 디아스포라 집단들의 경우에는 세대가 바뀌면서 원래의 모국 및 민족과 연결 되던 유대가 점차 희미해졌고, 이 과정을 통해 종교의 요인은 민족 구원과 번영에 대한 관심에서 개인 구원의 차원으로 점차 이동하였다. 이런 현상은, 종교는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부과되고 세습되는 것이라는 고전 시대의 관념을 약화시키고, 종교는 주체적으로 믿고 확신함으로써 선택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분위기와는 달리, 동방의 몇몇 지역들에서는 그리스 · 로마 문화를 위주로 한 이질적 문화와 종교가 대량 유입됨으로써 모국의 종교 전통이 흔들리자 이에 대항하는 복고주의적 현상이 때때로 벌어졌다. 헬레니즘화에 대한 이런 대항 현상으로 지역 내 전통적 종교 의식들이 부활하여 때때로 외국 침입 자들을 타도하려는 정치적 민족주의 운동 및 봉기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166~160년에 일어났던 유대의 '마카베오가(家) 독립 전쟁' 이 그 전형적 예이다. 〔미술과 건축] 다른 영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 미술도 이집트, 소아시아, 시리아, 페르시아 등에 전파되었고, 이들 문화와 융합하여 새로운 양식을 낳았다. 헬레 니즘 미술에는 일반적으로 이전 양식과 구분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리스 미술은 조화와 균형의 미를 핵심 가치로 삼았던 반면, 헬레니즘 미술은 장대함, 화려함, 기교적 섬세함을 중시하였다. 둘째, 이러한 장대함과 기술적 화려함은 종종 제왕의 지배 권력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기원전 336~330)의 전투를 주제로 한 모자이크화 <알렉산더 대왕>은 명암 효과, 원근법에 의한 거리의 표현, 격한 움직임의 포착 등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을 보여 주는 대표적 회화이다. 또한 <라오콘>과 페르가몬의 <제우스의 대제단>은 약동감과 격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헬레니즘 조각의 진수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건축물은 배경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배경 풍경 자체를 압도하는 장대함이 강조되는데, 페르가 몬의 건축 군(群),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이 그 대표적 예이다. (→ 그리스 철학 ;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 ; 스토아 학파 ; 아리스토텔레스 ; 에피쿠로스 ; 쾌락주의 ; 플라 톤 ; 회의주의) ※ 참고문헌  F.W. Walbank, The Hellenistic World. Fontana History of the Ancient World, London, 1981(김경현 역, 《헬레니즘 세 계》, 대우학술총서 530, 아카넷, 2002)/ A.A. Long, Hellenistic Philosophy : Stoics, Epicureans, Sceptics, London, 1974, 2nd ed., 1987(이경직 역, <헬레니즘 철학》, 서광사, 2000)/ A.D. Momigliano, Alien Wisdom : The Limits of Hellenization, Cambridge, 1975/ G.E.R. Lloyd, Greek Science after Aristotle, London, 1973/ A.C. Nock, Conversion. The Old and New in Religion from Alexander the Great to Augustine ofHippo, Oxford, 1933/ M.L. Colish, The Stoic Tradition from Antiquity to the Early Middle Ages, Leiden, 1985. [李昌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