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련 (1794~1839)
玄敬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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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앵베르 주교로부터 기해일기를 건네받아 보관하였던 현경련.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 례명은 베네딕다. 동정녀. 여회장. 1801년 신유박해(辛 酉迫害) 때의 순교자 현계흠(玄啓欽, 바오로)의 딸이요, 1846년의 순교자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성인의 누나. 서울에서 약국을 하던 부친 현계흠이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므로, 어려서 가족들과 함께 입교한 뒤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 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1801년 부친이 순교 한 뒤로는 아주 궁핍한 생활을 하였으며, 박해를 피해 자주 이사를 해야 하였다. 16세 때 신유박해 순교자 최창현(崔昌顯, 요한)의 아 들과 혼인하였으나 3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삯바느질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그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가족들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규칙적인 독서와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지한 이들을 가르치고, 냉담자들을 권면하며, 병자들을 간호하고, 비신자 어린이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 교회 일을 열심히 도왔다. 또 1834년 유 파치피코(余恒德) 신부가 입국한 뒤로는 신부의 복사로 지내면서 여교우들의 일을 돌보았 으며, 이후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에 의해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동생 현석문도 샤스탕(J.H. Chastan, 鄭牙各伯) 신부의 복사로 교회 일을 열심히 돕고 있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현경련은 가족들을 데 리고 피신하는 와중에도 앵베르 주교의 지시에 따라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5월에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그녀를 체포한 뒤 포도청으로 압송하였다. 이때 포도대장은 동생 현석문이 선교사와 함께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려고 곤장과 주리형 등 갖 은 혹형을 가하였지만, 그녀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낼 수 가 없었다. 8월에 현경련은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형벌 을 받은 데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교회에 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신앙을 끗끗하게 지켜 나갔다. 또 옥중에서 동생에게 신 · 망 · 애 삼덕을 발하는 편지를 써 보내 읽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다가 마침 내 사형 판결을 받고 12월 29일(음력 11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6명의 동료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의 나이 45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 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한국 성인 ; 현 계흠 ; 현석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기해일기》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 회사연구소, 1980/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교구, 1997.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