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

賢明

[라]prudentia · [영]pru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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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질고 사리에 밝음. [개 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 322/321)에 의하면 현명은 "해야 할 그것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이다. 따라서 만약 '해야 할 그것' 이 특별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현명 역시 특별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군대에게는 승리가, 정부에게는 국민의 복지가 '그것' 이다. 그러나 만약 행동의 목적이 인간 삶의 최종 목표라면, 이 경우 현명은 각각의 상황에서 정직하게 행동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그것' 을 판단하고 명령하는 지적이고 윤리적인 덕이다. 신화와 예술에서 현명은, 마차 위에 똑바로 서서 길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다른 덕들이 형상화된 말들을 격려하는 마부로 상징되었다.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은 지덕(知德)을, 안내하고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은 윤리덕(倫理德, virtus moralis)을 가리킨다. 예로부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서는, 현명의 덕을 근본적인 덕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성서는 현명한 사람을 칭송하고, 현명을 지혜와 동일시 한다(잠언 3, 13-14 ; 4, 5-9 ; 지혜 6, 9 ; 집회 6, 18-37).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이 하는 '그것' 은, 최종 목적에 따라 자신의 모든 삶을 배열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특성과 같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특히 초자연덕에 주의를 기울여, 생의 최종 목적으로 이 세상의 것들을 따라가는 육적인 현명과 참된 현명을 대조시켰다(로마 8, 6-8). 지성적인 덕으로서의 현명은 실천 이성에 속하며, 윤리 규범에 따라 우리의 행위들을 규제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신중함이나 이용 가치, 좋은 점 또는 진실에 이르려는 계산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때로 적절하지 않은 의미의 현명도 있다(마태 10, 16 ; 루가 16, 8 참고). 현명은 인간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이끌지만, 다른 지성적인 덕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매우 높은 목표이자 신적이며 절대적인 근거를 지닌 지혜와도, 그 주제가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지식과도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현명은 개별적이고 상대적이다. 지혜와 지식을 넘어서 다른 지성적인 덕처럼, 진리와 선(善)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는 예술과 구분된다. 왜냐하면 예술은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지만, 특히 인간을 육체 안에서 외적인 행위들로 이끌고 있으며, 윤리적으로 인간을 선하게 하지 않는 곳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실천 이성의 덕으로서의 현명은, 윤리적인 보편 진리에 대한 지식을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현명에 의해 인도된 양심은 실천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지만, 윤리적인 양심과는 구분된다. 양심은 하나의 행위이거나 하나의 기능이지만, 덕은 아니다. 반면 현명은 모든 윤리적 삶의 원칙과 지배의 덕이며, 행위에 방향을 정해 주고 그것을 다스린다. 왜냐하면 현명은 현실적인 질서의 최고 원칙들을 알고 있으며 실제적인 삶에 그것들을 적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경우에 있어서, 현명과 함께 행위를 하고 그 윤리성을 판단하는 것이 양심이다. 이러한 행위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실천 이성은 현명의 덕의 습성에 의하여 완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양심 또한 현명의 덕으로 인한 행위이다. 현명은 윤리덕이다. 왜냐하면 윤리적인 성향들을 요구하거나 또는 그 대상, 즉 하나의 공동체 또는 구체적인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명은 중재자로서 자신의 대상에게 이끌어야 할 필수 불가결한 윤리덕들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현명 없이는 다른 덕들도 완전할 수 없다. 이렇게 다른 덕들은 굳셈, 순결과 같 은 행위로 현명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여기 (hic et nunc), 말하자면 시간과 장소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당연한 목적에 따라 놓여지는 것으로서 현명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 안에서 현명에 의해 취해지는 면은 그의 실천 진리이며, 공정함 또는 최종 목적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명의 덕은 단순히 행해야 할 덕의 극단 상황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어떤 방법과 척도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다. 즉 윤 리덕을 구성하는 정당한 수단, 초과와 부족함 사이의 올바른 균형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다른 덕들의 규정과 척도가 언급되며, 당연히 첫 번째 중추적인 덕으로 여겨진다. 현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힘 · 정의 · 극기 등의 다른 덕들 역시 소유하고 있는 것이고, 현명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덕들 또한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명 없이는 최종 목적에 다 다르기 위해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대전》, 2권 1부, 65문제, 1절). 심리적으로 현명은 구체적인 최종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검토하면서, 그 방법들 가운데 행하고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목적 달성을 위한 실행을 명령한다. 그러므로 숙고하고 판단 하고 특히 명령하는 것이 그의 행위들이다(《신학 대전》, 2 권 2부, 47문제, 8절). [종류와 유래] 종류 : 경험과 선을 향한 마음의 노력으로 얻어진 자연적인 현명을 넘어서, 하느님의 은총 안에 서 초자연적으로 주입된 현명이 있다. 이러한 현명은 초 자연적 행위까지 확장되며 대신덕(對神德)들을 향하고 있다. 완전하게 되기 위하여 지성적인 덕으로서의 현명은 경험, 윤리적인 감각, 유순함, 기민함 그리고 이성의 선용(善用)을 요구하며, 윤리적인 덕으로서의 현명은 선견, 신중함 그리고 경계를 요구한다. 현명은 자기 자신을 잘 지배하도록 이끄는 개인적인 (또는 수도적인) 현명과, 사회적인 행위들을 공동선으로 향하게 하는 사회적인 현명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공동 체들과 지배 형태에 따라서 군사상의 현명, 경제적인 현 명, 또는 가족적인 현명, 입법적인 현명, 정치적인 현명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이들 가운데 개인적인 현명이 충 만한 의미의 현명이며, 입법적인 현명은 가장 완전한 것이다(《신학 대전》, 2권 2부, 50문제, 2절). 또한 잠재적이고 보충적인 부분들로는 건전한 윤리적 감각, 윤리적 능력 그리고 통찰력 등이 있다(《신학 대전》, 2권 2부, 51문제, 12절). 유래 : 현명은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경향과 환경의 도움을 받지만, 현명한 행위들을 반복함으로써 습득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는 현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음욕, 탐욕, 교만 등은 지성과 의지를 혼돈시키고 간접적으로는 망각 때문에, 꾸준한 실천 없이 현명을 지니기는 불가능하다. 주입된 현명은 성화 은총을 통해 받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 반대되는 덕들 : 현명에 반대되는 악덕은 무수히 많다. 경솔과 무분별, 건전한 윤리적 감각과 윤리적인 통찰 력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으며, 불순종, 부주의, 기억· 경계 · 신중함의 부족, 그리고 현명의 부분적인 결핍 등이 있다. 크게는 육적인 현명의 악덕들로(로마 8, 6), 말과 표지 또는 행동에 의한 교활함과 사기가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에 의하면, 현명에 반대되는 악덕들로는 지나친 결핍의 원천인 음욕이 있으며, 현명이 지나친 탐욕이 있다(《신학 대전》, 2권 2부, 55문제, 8절). 그러므로 현명에 이르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는 모든 빛의 근원인 하느님께 향한 열렬한 기도, 무질서한 정욕 특히 음욕과 탐욕의 조절, 영원한 것들에 대한 숙고 등이 있으며, 어려운 상황들에서 현명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은총인 의견의 은총 (성령의 선물 가운데 하나)이 필요하다. 다른 은총과 마찬가지로, 의견의 은총은 성화되는 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분별 안에서 성령의 움직임으로 우리를 양순하고 민첩하게 해준다. 이 은총이 습득된 것이든 주어진 것이든, 현명은 숙고와 반성, 추리와 판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성령의 빛은 우리가 지닌 애덕의 크기에 따라 우리에게 감도하나, 주어진 현명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 덕 ; 사추덕 ; 윤리 규범 ; 윤리덕) ※ 참고문헌  Giovanni Pistoni, 《KEC》 10, pp. 230~232/ H.-D. Noble, 《DTC》 13, pp. 1023~1076/ Raymond Saint-Jean, XII-2, pp. 2476~2484/ Adolphe Tanquerey, Précis de Théologie Ascétique et Mystique, Paris, 1923(정대식 역, 《수덕 신비 신학 4. 빛의 길》, 가톨릭 크리스찬, 2000). 〔鄭仁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