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
現象學
[라]Phaenomenologia · [영]phenomenology
글자 크기
12권
대체로 후설(E. Husserl, 1859~1938)의 철학을 가리키거나, 적어도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학자들의 철학. 그러나 후설의 현상학은 선명하게 일의적(一義的)이지 못하며 그 후의 현상학자들도 하나의 체계나 틀 속에 넣고 볼 수 없는 매우 다양한 견해를 지니는 일련의 철학적 사색 운동. 현상학자들은 매우 넓은 시야를 가지고 매우 많은 분야의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와서 현상학 적으로 탐구되지 않은 철학의 분야나 학문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현상학적 방법은 철학 안에서는 생철학, 실존 철학, 구조주의, 해석학 등과 불가 분의 관계에 있고, 분야별로는 종교 철학, 철학적 인간학, 윤리학, 사회 철학, 마르크스주의, 역사 철학, 인식론, 언어 철학,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 논리학, 과학 철 학, 미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철학 밖에서도 현상학적 방법론은 현상학적 문예학(미술론, 음악론, 문학 비 평론), 현상학적 교육학, 현상학적 심리학, 현상학적 사 회학, 현상학적 정치학, 현상학적 경제학(경제 윤리), 현상학적 법학(법철학), 현상학적 언어학, 현상학적 종교학, 현상학적 신학 등 인문 사회 과학의 거의 모든 영역, 그리고 심지어는 수학(수리 철학), 자연 과학의 방법론 내지 과학론과 의학(정신과 의학[정신 분석학], 병리학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현상학은 단순히 철학의 한 분과학(分科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기초인 본래적인 철학의 모습, 즉 '모든 학문의 학' 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으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 미] 현상학은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함께 출발한 사상이다. 후설은 《논리적 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1900)에서 19세기 철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 구를 열어 보려고 하였다. 결국 현상학은 처음부터 '무엇에 기초를 두고 어디로 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을 열어 놓은 채로 시작되었다. 이처럼 사태 자체에 대한 물음과 탐구를 추구하면서 고정된 체계와 진행 순서에 따르지 않았던 것이,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현상학이 생동하고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는 《철학 강의》에서 "현상학 발견의 위대함은 실제로 어떤 결과를 획득했다거나 평가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결과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이 철학에서 탐구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메를로 풍티(M. Merleau-Ponty, 1908~1961)도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 1945)이라는 저서의 서문에서 현상학을 운동으로 특징짓고, 이를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리괴르(P. Ricoeur, 1913~2005) 는 "현상학은 상당한 부분이 후설의 이단자의 역사로 이루어졌다. 창시자의 저술이 보여 주는 건조 방식 자체가 어떤 정통도 있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말 하였다. 이러한 언급들은 모든 살아 있는 사상이 그러하 듯이 현상학 또한 일직선상의 운동으로 서술될 수 없으 며, 기준이 되는 하나의 해석 방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학이라는 말을 후설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고대 철학에서도 사용되었고, 근세 철학에 들어와서도 학문적인 술어로 사용된 바 있다. 그러나 후설이 비로소 이 말을 그 자체로 현상학이라고 선언하는 철학의 중심 적인 규정으로 사용하였다. 후설 이전에 사용된 '현상' 이라는 말은 철학적 지식의 단순한 전단계(前段階) 또는 과학 탐구의 하나의 방법적인 유희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후설은 1900년에 발간된 《논리적 탐구》의 제2 권 서문에서 기술 심리학(記述心理學)의 오해를 지적하면서 현상학이라는 말을 언급하였고, 《이념 I》(Ideen I, 1913)의 제2판에서 다시 이 말을 교정하여 사용하였다. 스피겔버그(H. Spiegelberg, 1907~1990)는 현상학을 소 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토로하면서, '현상 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하나의 체계적이고 통일된 정확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현상학의 의미에 대해 언급한 몇몇 현상학자 들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현상학이 무엇이며 무 엇을 이룩하려 하는가를 대체로 알 수 있다. '현상학은 하나의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모색되고 있는 하나의 운동' 이다. 현상학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철학의 위대한 전통을 충분히 이용하고 또 그렇게 함으 로써만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공통된 확신 을 갖고 있다. 후설이 《현상학 잡지》를 발간하면서 했던 주장을 근거로 스피겔버그는 '현상학적 운동' 이라는 개 념이 적용될 기준을 설정한 바 있다. 즉, 모든 지식의 원 천이며 최후의 검토로서의 직접적 직관, 순수 가능성으 로서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통찰 즉 본질 직관이다. 이러 한 기준 위에서 현상학의 대강을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방 법] 현상학의 방법은 간단 명료하게 제시될 수 없 다. 현상학자들 간에도 방법론적으로 다양한 차이가 있 을 뿐더러 단지 그때그때의 방법론적인 소견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후설은 철학적 탐구 과정에서 그 방법 을 점차 발전시켰지만, 현상학적 방법을 총괄적으로 명 시해 주지는 않았다. 대상들은 의식에서 현시되기 때문에, 현상학은 '의식 내에서 현시되는 현상들에 관한 학' 이라고도 불린다. 후설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에 확실한 정초를 하기 위해 현상학적 방 법을 사용하였다. 현상학적 방법은 이중의 환원(Reduktion)- '괄호를 침' (Einklammerung) 또는 '판단 중지' (Epoche)로 표현되기도 한다-으로 제기된다. 그 하나는 '형상적 환원' (eidetische Reduktion)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우선 자아와 파악하고 있는 작용(Akt, 활동)들과 대상들의 모든 실재 로부터 벗어나 단지 그들의 본질(Wesen) 특히 본질의 전체적 구체성에서 고찰된다. 두 번째 환원은 '현상학적 환원' (Phaenomenologische Reduktion) 또는 '선험적 환 원' 이라고 불리는데, 이 환원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의 의 식의 독립성조차 배제되며 현상과 외부 세계 사이의 모든 관계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환원의 길을 통 해서 우리는 비로소 선험적 의식에 도달한다. 현상학은 대상들을 의식의 상관 관계로서만 고찰한다. 순수하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은 의식이 잔존하며, 그것 은 '의식을 하고 있는 것' (Noessis)과 '의식된 것' (Noema)으로 나뉘어진다. '의식된 것' 즉 '노에마' 는 '노에 시스 속에 실재하고 있는 부분으로, 내포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서 '노에시스'에 의해 구성된다. 그러므로 '노에마' 는 직접적인 본질 직관(Wesensschau), '본질 발 견 (Ideation)에서 파악될 수 있고 기술(記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철학은 내재적 의식 형성의 순수한 기술적 '본질론' (Wesenslehre)으로 정의될 수 있다. 모든 경험 대상들이 그 기저에 놓여 있는 본질성에 의해 규범화되기 때문에 형상적 본질학(Wesenswissenschaft)이다. 국부적 존재론(Regionale Ontologie)은 모든 경험 과학과 상응한다. 그러나 모든 국부(局部), 즉 대상 영역은 순수 한 의식 속에서 정초된다. 이 순수 의식은 진실한 존재이며 절대적 존재이다. 이 순수 의식에 부가된 제일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중요 개념] 현상학적 환원 : 현상학적 환원은 대상 자 체를 알기 위하여 모든 선입견과 함께 수반되어 있는 이론으로부터 벗어나 시각을 자유롭게 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셀러(M. Scheler, 1874~1928)는 "현상학은 '소여' (所輿)를 어디에서나 가능한 한 간단하게 선판단(先判 斷) 없이, 그리고 순수하게 가능한 한 직관에 아주 가깝 게 가져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소여를 현상 학적 환원을 통하여 그 본질로 고양시키는 데 있다" 라고 하였다. 하이데거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제시함과 같이, 자신을 제시하는 그것을 그 자신으로부터 보게 하는 것이 현상학의 일반적 본질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사물이 사물 자체로부터 스스로를 제시하고 있는 본래 그대로의 사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물을 언제나 이미 함께 수반되어 있는 태도와 이론의 테두리 안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그 사물 자체로 순수하게 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힘 든 순화(醇化)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바라봄 (Schauen)으로부터 유래하는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 셀러는 소여된 것을 '가능한 한 직관 가까이에까지' 밀착 시키고자 하였고, 하이데거는 그러한 것을 '자기 자신으 로부터 보게 하려고 하였으며' 후설은 이것을 '본질 직관' (Wesensanschaung)이이이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시각적인 바라봄의 개념들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고, 따라서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대상의 정신적인 파악에 적용되었다. 바로 여기에 현상학의 특징이 있다. 셀러는 현상학의 특징을 "새로운 철학적 태도로서, 사고의 특정한 방식이라 기보다는 '바라보는 의식' 의 새로운 기술(技術, Techne) 로 파악하고 이러한 의식 태도의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직관을 우리 자신의 연관성에서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때 현상학자들의 '환원' 은 단순히 어떤 것을 도외시하거나 이론적인 차원에서 무효화 하는 것이 아니고, 환원이라는 말의 엄밀한 의미 그대로 환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 인간을 그의 근원적인 직관의 힘으로 환원시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그 자체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유도하여야 하 는 인간의 직관에로의 환원인 것이다. 이것이 본래적인 의도가 파악되어야 하는 협의의 철학적 영역에서 본 현상학의 과제이다. 본질 직관 : 현상학적 방법은 한 마디로 '사태(事態) 자체에로' (Zu den Sachen selbst)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후설은 "말의 공허한 분석을 그만두고 우리는 사태 자체를 묻지 않으면 안 되며···직관으로 돌아가자" 라고 말했으 며, "우리는 이제 사태 자체에로 돌아가 보자"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여기서 '사태' 란 '직관' (Anschaung) 또는 '본질 직관' 을 의미한다. '직관' 이란 추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사고의 단계 내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단번에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본질 직관' 도 본질을 단번에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본질이란, 어떤 사물의 특수성이나 우연성이 배제된 것 으로서 그 사물이 바로 그것이 되게끔 하는 것(Washeit, eidos)를 가리킨다. 그러면 본질은 어떻게 파악되는가? '본질 직관' 은 우선 순수하게 사물의 본질을 직관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배제해야 한다. 예컨대 첫째로 역사적인 요소들, 즉 종교적 · 사회적인 전통에서 얻은 일체의 선입관들을 배제하여야 한다. 이를 역사적인 배제 또는 판단 중지라고도 부른다. 둘째로, 실재적인 것도 배 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실재하고 있는 것의 배제(existenziale Einklammerung)로 불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본질 직관은 감각에 의거한 개별적 · 특수적인 사실을 파악 하는 감성적 직관과는 대립하며, 또 추리적인 사고도 아니다. 그러므로 본질 직관은 감각 소여나 이성적 추리가 아닌 직관을 통해서 사실이 아닌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상을 아무런 선입관 없이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관찰하는 방법, 즉 사태 자체를 직관적으로 바 라보는 것이 현상학적 방법이며 현상학의 과제이다. 후설에 의하면 이 본질 직관은 어떤 신비스러운 인식 작용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정신 활동이다. 그는 본질 직관을 일생 동안 일관되게 견지하였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현상학의 방법이며 또한 근본 태도이기에 많은 현상학자들이 이를 활용하였으며, 누구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본질 직관을 활용한 철학자가 셀러이다. 그는 윤리학, 철학적 인간학, 종교 철학, 사회 철학(지식 사회학)에 본질 직관의 현상학적 방법을 적용시켰다. 그는 후에 후설의 엄밀한 이성주의를, 나아가 근세 의 합리주의적 인식론의 주관주의를 극복하고, 인식의 기능에 있어서의 이분법과 가치의 상대주의를 부숴 버리 고 종래의 유럽 철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 였다. 그의 본질 직관은 '마음의 논리' (logique du coeur) 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감각이나 이성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아니며 자의적인 감정에 의해 놀아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신의 아프리오리(a priori, 先驗的) 법칙을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직관이다. 이 정서적 직관은 그 자신의 법칙에 따라 작용(활동)하면서 실재 그 자체 속에서 본질을, 즉 본질적 가치를 발견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가치가 주어져 있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는다. 셀러는 자신의 본질 직관의 타당성에 대하여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단 지 기술(記述)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였다. 마치 공자(孔 子, 기원전 551~479)의 '술이부작' (述而不作)을 방불케 하는 태도이다. 셀러에게는 종래의 철학들처럼 인식 주체의 선험적인 오성 개념들이나 경험적인 의식 내용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과 그 풍성한 형상과 이에 쏠리는 직관이 문제된다. 현상학은 인간의 '생활 세계' 의 본질에 대한 체험(Erlebnis)을 통하여 하나의 보편적인 철학 을 세우려고 하였다. 이 체험은 자의적이 아니라 명증적 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또 어 떻게 우리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후설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취하고 있는 자연적 태도에 대하여 판단 중지를 하게 되면 우리는 의식 내재적인 세계의 체험을 할 수 있게 되며, 이 의식 안에서의 체험은 충전적(充全的, adaguat)이 며 또한 필증적(必證的, apodiktisch)인 명증성을 가진다. 본질 직관이 참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곳도 바로 이러한 영역이다. 셀러에게 있어서도 모든 철학적인 연구의 기 반은 본질적인 것을 직관하는 본질 직관이었다. 그에 의하면 현상학이란, 지향성(志向性)으로 구성된 새로운 사 실 영역을 현실의 하나의 계층으로 발견하는 것이며, 귀 납법이나 연역법과 같은 하나의 논리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실들을 파악하는 직관 방식 이다. 여기서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실들' 이란 자연적인 세계관에 의한 사실들도 아니고 자연 과학적인 사실들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정신적인 직관은 참다운 인식을 방해하는 모든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혹은 일상적 인 편견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정신 을 흐리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잠잠하게 하고(ruhen lassen), 순수한 정신적인 인식으로서의 본질 직관을 완 전히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적인 본 질 직관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직관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지양함으로써 정신이 이념적인 본질 상태로 주 입되게 하는 것이다. 셀러에 의하면 순수한 정신적인 본 질 직관의 가장 높은 단계는 전인적(全人的)인 활동으로 서의 사랑이다. 셀러는 "사랑은 모든 것을 통달한다"라 는 신약성서의 말씀을 현상학으로 확인해 주었다. 인식의 존재론적인 의미는 사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생활 세계 : 모든 과학은 존재의 근거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무비판적인 개념들을 전제하여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개념들 또한 근원적이라기보다는 단지 2차적인 형성체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에서 과학이 기반으로 하는 일차적이고 근원적인 전과학적(前科學的)인 것, 후설은 이것을 '생활 세계' 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모든 이론과 논리에 앞서서 우리에게 최초로 그리고 직접 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생활 세계를 다룬다는 것은 이론과 논리의 세계에 앞서는 선논리적(先論 理的)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생활 세계의 명증이 궁극적 명증을 찾아가 는 최후의 기반 내지 종착점인가? 하는 물음이 생기는데,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험적 현상학과 생활 세계적 현상학이 나누어진다. 선험적 관념론의 형태를 취하는 고전적 현상학, 즉 선험적 현상학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생활 세계는 다시 우리들의 경험, 즉 나 자신의 주관성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주관성은 자기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의식의 지향성에 의해서 생활 세계를 이루며 존재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주관성은 상호 주관성이 된다. 후설이 말하는 생활 세계 는 현실의 세계이며, 매개 없이 실재적으로 행하는 직관의 세계이며, 명증성의 실재적 원천이며, 우리의 몸으로 체험되는 세계이다. 그 어떤 과학도 이 생활 세계의 본질적 의미를 변경시킬 수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이 생 활 세계의 본질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생활 세계적 현상학은 후설의 사후, 소위 현상학의 르 네상스기인 1950년 이후에 유고(遺稿)가 발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1920년대에 셀러 등에 의 해서 철학의 여러 인접 학문, 예컨대 윤리학, 미학, 사회 과학, 문예학 등에서 활발히 논의된 바 있었다. 이 생활 세계는 후에 문화 세계에 적용되면서 후설의 선험적 현 상학과 다르게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일어났고, 이 점에 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다. [영 향] 현상학은 철학 내에서는 물론 철학 밖에서도 개별 과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현상학적 방법은 특히 윤리학과 종교 철학, 철학적 인간학의 방법론의 토대가 되었고, 현상학은 나중에는 해석학적으로 변전되기도 하였다. 현상학적 방법은 가톨릭 철학에서는 셀러, 슈타인 (Edith Stein, 1891~1942), 보이티야(Karol Wojtyla, 1920~ 200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 등이, 철학적 인간 학과 윤리학에서는 셀러를 필두로 힐데브란트(Dietrich von Hildebrand, 1889~1977),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헹스텐베르크(H. Hengstenberg, 1904~ ) 란트만(Micheael Landmann, 1913~ ), 플레스너(Helmuth Plessner, 1892~1985) 등이, 미학에서는 우티즈(E. Utiz, 1883~1956), 콘라드(W. Conrad, 1878~1915) 등이, 문예학에서는 잉가르덴(R. Ingarden, 1893~1970)과 뒤프렝(M. Dufrénne, 1910~ ) ,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 1964) 등이, 음악학에서는 앙제르메(Emest Ansermet, 1883~1969), 심리학에서는 팬더(A. Pfander, 1870~1941), 베크(M. Beck, 1886~1950) , 베이텐디예크(F.J.J Buytendijk, 1887~1974) 등이, 법학에서는 라이나하(A. Reinach, 1883~1917), 논리학에서는 팬더 및 라이나하 등이, 의학 분야에서는, 특히 정신 의학, 심신 의학, 의학적 인간학 등에서는 바이츠제커(Vikor von Weizsacker, 1886~1957), 빈스방거(Ludwig Binswanger, 1881~1966), 민코프스키(E. Minkowski, 1885~1972), 슈트라우스(E. Straus, 1891~ 1975) 등이, 사회과학에서는 슈츠(A. Schiitz, 1889~1959) , 카우프만(Felix Kaufmann, 1895~1949) 등이, 교육학에서 는 랑게펠트(M.J. Langeveld, 1905~1989), 볼노프(Otto Fridrich Bollnow, 1903~1995) 등이, 종교학 및 신학에서는 헤링(Jean Hering, 1890~1966), 슈타벤하겐(K. Stavenhagen, 1885~1951), 오토(Rudolf Otto, 1869~1937), 틸리히 (Paul Tillich, 1886~1965), 리쾨르, 벨테(B. Welte, 1906~ 1983), 라너(Karl Rahner, 1904~1984) 등이, 수학 및 자연 과학에서도 베커(Oskar Becker, 1889~1964), 칠라시(W. Szillasi, 1919~1966), 카바예(J. Cavaillés, 1903~1944), 라 우트만(A. Lautmann, 1908~1944) 등에 의하여 적용되어 20세기의 학문 발전에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동양 전통적인 사상과의 접목에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현상학은 오늘날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풍미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과 실재 간의 긴장과, 존재와 가치 간의 긴장을 조정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며, 특히 개인적인 삶의 체험에 크게 의존함으로써 귀납적인 방법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는 독단론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무튼 현상학은 학문의 기초로서 서양 근세 이전의 본래적인 철학, 즉 모든 학문의 학의 모습을 되찾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 셀러 ; 인간학, 철학에서의 ; 철학 ; 하이데거 ; 후설) ※ 참고문헌 M. Scheler, Schriften aus dem Nachlass, Bd. Ⅱ, Bern, 1979/ H.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Den Haag, 1982/ B. Welte, Heilsverstaendnis, 1966/ B. Waldenfels, Einfuehumg in die Phaenomenologie, Miinchen, 1998/ 진교훈, <현대문명의 위기와 현상학>, 《현대사회윤리연구》, 돌력, 2003, Pp. 63~96/ 한전숙, 《현상학》, 민음사, 1996/ 현상학회 편,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심설, 1983. 〔秦敎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