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호 (1907~1988)
玄錫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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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현석호.
정치가. 평신도 신학자. 세례명은 요한. 호는 석계(石 溪). 1907년 5월 23일(음)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마전리에서 출생.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뒤늦게 신학문을 배워 1924년에 대구 농림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경 대구 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예과에 입학하였다가 법학과로 전과하여 1934년 3월에 졸업하였다. 대학 3학년 재학 중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 정과에 합격하여, 전라남도 고등관 수습을 마치고 1936 년 전라남도 화순 군수, 1938년 황해도 산업과장에 보임 되었다. 1939년에는 북경 주재 흥아원(興亞院) 사무관으로 전임되어, 천진 출장소 차석과 주중(駐中) 일본 대사관 2등 서기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44년 에는 충청남도 광공부장(鑲工部長)으로 재직하였고, 1947년에는 남조선과도 정부 중앙 경제위원회 경제 기획관, 1949년에는 남선(南鮮) 전기 주식회사 부사장, 1952년에는 경성 전기 주식회사 전무를 역임하였다. 현석호는 1954년 제3대 국회 의원 선거 당시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제2차 개헌 때 '사사오입 개헌' 으로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6년 새로 발족한 민주당에 입당하여 조직부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제5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어 민주당 정부의 국방부 장관(8~9월)과 내무부 장관(10~11월), 국방부 장관(1961년 1~5월)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61년 5 · 16 군사 쿠데타로 일시 수감되었고, 이어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재수감되었다가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1962년 3월 서울대교구 전교 총회장 조원환(曹元煥, 요한)의 전교로 가톨릭에 입문하여 12월에 세종로 성당 에서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1965년에는 복음 선교를 위해 가톨릭 교리 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으로 재임하다가, 1985년 8 월 교리 연구소가 한국 가톨릭 문화 연구원으로 확대되자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또한 1968년 11월에는 서울 대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초대 회장, 1977년에는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 (M.B.W.) 전국 추진회장 등을 맡아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2년에는 《한국가톨릭대사전》(1985년 판)의 간행 추진회 고문을 맡은 바 있다. 교리 연구와 평신도 사도직 활동에 많은 공헌을 한 현 석호는 1988년 12월 2일 선종하여 명동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치른 뒤 서울 태릉 영복산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평신도 교육과 평신도 운동으로 교회 발전에 기여 =한 공로로 1976년 교황청으로부터 성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대장 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 삶의 고백》(탐구 당, 1986)이 있고, 번역서로 《어떻게 살 것인가》(분도출판 사, 1977), 《그리스도의 눈길》(가톨릭출판사, 1979), 《제2 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 전집(전 6권)》(성 바오로 출 =판사, 1987~1993) 등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88년 12월 11일자/ 《경향잡지》 1138호(1963. 1) · 1475호(1991. 2)/ 현석호, 《한 삶의 고백》, 탐구당, 1986/ 《韓國 天主教 平協 三十年史》,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99. [崔起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