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재

現存在

[독]Da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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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da) 있음(존재, sein)' 이라는 의미로, 존재를 가지고 특정 시간과 공간인 거기에 존재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용어.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의 《존재 와 시간》(Sein und Zeit, 1927)에 나오는 핵심 개념이며, 존재를 이해하는 한에서의 인간 존재를 뜻한다. [존재와 현존재] 하이데거는 모든 것을 '존재[있음]' 의 관점과 지평에서 새롭게 볼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면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규정이 달라진다. '인간' 은 '이성적 동물' 이자 '하느님의 모상' 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 자명한 규정 두 가지가 모두 근거 없는 선입견에서 유래한다고 지적하였다. 하나는 생물학적 전제하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인 전제하에서 인간을 보고 정의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2,500년 서양 철학사에서 한 번도 문제로 제기된 적이 없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을 해체하여 새롭게 인간을 보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개념의 틀을 벗어던져야 한다. 즉 잘못 고정되었던 시각을 해체해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노 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현상학적 방법이 주장하는 원칙이다. 인간도 우선 '인간의 있는 그대로' 를, 인간의 '거기-있음[현존재] 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거기-있음[현존재]' 에는 어떤 독특함이 있는가를 있는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데거의 제안이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 철학은 '있음' 을 문제삼지 않았다. 오직 '본질' 만이 강조되었을 뿐이다. 철학자들은 존재하 는 것, 곧 있는 것' 을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즉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어 볼 수 있고, 또한 그것이 과연 '있는가 또는 없는가를 물어 볼 수 있다. 이 '무엇임' 이 흔히 본질이라 일컬어지는 것이고, 이 '있음' 이 바로 실재 또는 '거기-있음〔현 존재]' 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 서양 철학은 '있음' 을 다룰 수 없는 것, 또는 다룰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본질만을 문제삼았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본질이 바로 그 시간적인 '있음' 에 있는데도, 전통 철학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오직 인간의 '무엇임' 만을 강조하여 이성, 사유, 정신, 영혼, 주체로 인간을 설명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에게만 독특한 그러한 '있음' 을 표현 하기 위해서 '다자인' (Dasei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인간의 독특한 있음인 현존재가 존재하는 양식의 특징을 '엑시스텐츠' (Existenz), , 곧 '실존' 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 양식을 규정하기 위한 용어로 지금 까지 '실재' 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엑시스텐츠' 가 선택 되면서 인간의 고유한 있음을 특징짓기 위해 우리 말도 '실존' 이라는 번역어를 택하였다. 따라서 '엑시스텐츠' 와 '실존' 은 인간의 '있음[실재]' 만을 지칭하기 위한 칭호이다. 인간만이 '엑시스텐츠' , 곧 실존하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있음' 이란 '거기-있음' 이고, 여기서의 '거기' 는 '존재의 거기 '존재 이해의 거기' 로서 바 로 '세계' 라고 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거기-있음' 이란 곧 '세계-안에-있음' (In-der-Welt-sein, 세계-내-존재)이다. 인간과 세계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인간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세계가 있다. 인간과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열려 있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의 있음은 그냥 그대로 놓여 있음이며, 그것은 바로 그런 존재자로 확정되어 있 다. 예를 들어 여기 하나의 책상의 있음 자체는 여기 그대로 책상으로 놓여 있음이고 그것은 책상으로 확정되어 있음이다. 그래서 이 책상이 책상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리되든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있음' 은 단순히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음이 아니다. 인간의 있음은 '관계 맺으며 있음' 이다. 인 간은 끊임없이 무언가와 관계 맺으며 존재한다. 그뿐 아 니라 인간은 여기에 있지만 과거에 가 있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에 가 있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미 겪은 일, 또는 앞으로 닥칠 일과도 관계를 맺는다. 인간의 '있음' 이란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 음이다. 인간은 사물들과도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인간의 '있음' 이 사물의 '있음' 과 같을 수는 없으 며, 마찬가지로 동물의 '있음' 과도 다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인간의 '있음' 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고, 그 '있음' 을 '거기-있음(현존재]' 과 '실존' 이라 불렀다. 〔현존재의 방식] 하이데거는 인간의 '거기-있음〔현존 재]' 의 독특한 양식이 '실존' 이고, 이 '있음' 의 방식이 사물의 '있음' 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방식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인간 의 독특한 '거기-있음(현존재]' 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우선 '던져져 있음' 이다. 인간의 '있음' 은 그가 원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계 안에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유래, 그 '있음' 에 대한 선택의 여지 없이 세계 속으로 내 던져진' 존재이다. 이러한 내던져져 있음과 관련된 인간의 독특한 관계 맺음을 하이데거는 '떠말음' 이라고 부른 다. '인간은 내던져져 있음' 에 의해 자기의 존재를 떠맡 을 수 있는, 아니 떠맡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 내던져져 있음' , '떠맡음' 이 철학 용어로 '현사실성' (現事實性)이 다. 흔히 '사실' 이라 하면 일어나 버린 사건,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도록 확정된 것을 말하지만, '현사실' 이라고 할 때에는 이미 끝나 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그 것을 떠맡음으로써 바꾸어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거기-있음[현존재] 의 두 번째 방식은 '존재할 수 있 음[존재 가능]' 이다.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끊임 없이 자신의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가능 존재이다. 이 것을 하이데거는 '이해' (Verstehen)와 연결시키며, 이 이 해는 인간의 미래와 관련된다. 그 독특한 관계 맺음을 하 이데거는 '기획 투사' 라 부른다. 우리는 우리가 잘 이 해' 하고 있는 것을 잘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 에는 잘 할 수 있음' 이라는 가능성의 의미가 간직되어 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존재를 잘 이해하고 있다. 이는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바로 그 할 수 있 음' 을 이해하는 것이다. 잘 이해함에는 또한 그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음' 이 있다. 곧 나의 '있음' 에 서부터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내가 나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하이데거 는 그것이 바로 '기획 투사' 라고 한다. 기획이라는 것은 미래적 차원에 있으며, 투사는 앞으로 던지는 것이다. 따 라서 기획 투사라고 하는 것은 가능성을 만들어서 그것 을 앞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투사' 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이 무한하지 못하고 내던져져 있음에 의해 제한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제한된 가능성의 측면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는 데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은 많건 적건 앞 에 놓여 있는 가능성 중에서 단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거기-있음[현존재]' 의 세 번째 방식으로 하이데거는 '빠져 있음' 을 든다. '처해 있음' 이 과거와 관련되고 존재할 수 있음' 이 미래와 관련된다면, '빠져 있음' 은 현재와 관련된다. 하이데거는 물론 과거라는 표현을 피한다. 왜냐하면 '과거' (Vergangenhei)라는 낱말에는 이미 흘러가 버렸다는 의미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사실 독일어에 서 '과거' 를 의미하는 용어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을 의 미한다. 하이데거는 그러나 이미 흘러가 버렸다는 그 과 거가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였 다. 그 과거(유래) 없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다. 지금은 없는 그 과거가 지금의 나의 족쇄가 되고, 지금은 없는 미래가 지금의 나에게 삶의 활력을 준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와 관련을 맺고 있다. 과거 로부터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오고 미래에서 자기의 가능 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살아 있는 과거를 더 이상 과거라 하지 않고 '기재' (旣在, Gewesenheit)라고 하였다. 기재' 는 '존재해 옴' 또는 '있어 옴'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것은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옴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미래 또한 '도래' 또는 '다가옴' (Zukunft)이 라고 하였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던졌던 가능성이 나에게로 다가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시간은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뱅글뱅글 돌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라는 그 순간에 미래[다가 옴], 과거〔있어 옴], 현재[마주함]가 다 같이 있다. 하이데거는 바로 이 현재의 독특한 양태를 '빠져 있음' 이라 칭하였다. 이 '빠져 있음' 은 주변의 존재자들인 사물들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그들' 즉 '사람들[남들]' 이 하는 대로 살아감이 부각된다. 과거도 떠맡지 않고, 자기 자신의 본래적인 존재 가능을 미래로 던지지도 않으면서, '사람들' 이 살듯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의 미] 하이데거가 '실존' 이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한 것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 들' 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서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며 사는가 하는 존재 양태이다. 대개 인간은 '사람들' 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며 살고 있다. 스스로 결단내리지 않고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하이데거는 그것을 '비본래적' 존재라고 하였다. '본래적인가, 비본래적인가' 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에서 나오는 두 가지 존재함의 양태이다. 이 두 가지 존재 양태는 늘 맞물려 있다. 인간은 '사람들' 속에 있다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그러다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되돌아가는 긴장감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우선 대개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존재하는 것 속에 매몰되어 살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지적하였다. 그것이 일상의 차원에서 '존재의 거기에' 를 이행하고 있는 인간의 거기-있음(현존재)의 모습이다. (→ 하이데거) ※ 참고문헌  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역,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이기상,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 문예출판사, 1991/ -,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 문예출판사, 1992. 〔李基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