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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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이나 부처를 위해 금품을 내놓도로 하는 무당(바리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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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이나 부처를 위해 금품을 내놓도로 하는 무당(바리데기).


한국 무속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의로서, 비구원(非救 援)의 상황인 불행을 제거하거나 궂은 일을 해소하여 행 복 내지 구원을 비는 종교 의례. 순수 한글 용어인 '굿' 의 의미는 한국어와 같은 계열인 알타이 어족의 언어들 에서 유추할 수 있다.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비교 언어학자가 된 람스테드(G.J. Ramstedt)는, 퉁구스어 의 쿠투(kutu), 몽골어의 쿠투크(qutuq), 터키어의 쿳(kut) 등이 모두 우리말의 굿과 마찬가지로 복이나 행운을 뜻 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이능화(李能和)는 1927년에 발 표한 논문 <조선 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굿' 이라는 용어는 궂은 비, 궂은 일, 궂은 날씨 같은 용례에서 보이 듯이 '궂다' 에서 유래하여 흉하고 험한 일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견해를 종합하면 굿 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즉, 굿이란 비구원의 상황인 불행을 제거하거나 궂은 일을 해소시킴으로써 행복 내지 구원을 비는 종교 의례라고 풀이된다. 무속의 다른 소규 모의 의례들인 비손(비나리), 부적, 치성 등과 비교하면, 굿은 '궂은 일' 을 완전히 제거하고, 중개적 사제인 무당 을 통해 신령과 기주(祈主 : 굿을 청한 사람 또는 공동체의 대표)의 관계를 조화시킨다. 남부 지방에서는 굿을 좀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징, 꽹과리, 북, 장구 등 풍물을 울리는 행위를 '굿친다' 고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굿을 구성하는 단위 제차(單位祭次)인 '거리' 또는 '석' (席) 을 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칠성거리, 제석거리 라고 하는 대신에 칠성굿, 제석굿으로 부르는 따위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무속의 본격적인 제의에 국한하여 굿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역 사〕 굿에 관한 문헌은 극히 적어서 그 역사를 정확 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고대 한국의 제례 풍속을 전 해 주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중국의 진(晋)나라 사람인 진수(陳壽)가 저술한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 (魏誌東夷傳)이다. 이 문헌에 의하면, 부여에는 북을 울 려서 신을 맞이한다는 뜻의 영고(迎鼓), 고구려에는 건 국 시조인 동명왕(東明王)에게 지내는 제례인 동맹(東 盟), 동예(東濊)에서는 춤으로써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무천(舞天)이 거행되었다. 진한(辰韓)에서는 성역(聖域) 인 소도(蘇塗)에서 밤낮으로 음주 가무(飮酒歌舞)를 하 였다. 이러한 의례들은 당시 정치와 종교의 실권을 한 손 에 쥐고 있던 무왕(巫王, shaman-king)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의식 절차가 오늘날의 굿과는 차이가 있 으리라고 유추된다.

국내 문헌으로서 굿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 사》에 전하는 신라 제2대 남해왕(4~24) 재위에 관한 기 사이다. 이 왕은 별명이 차차웅(次次雄)인데, 이는 당시 속어(俗語)로 무당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남해왕이 신 령들에게 제사를 정성스럽게 잘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 이 그를 존칭하여 무당이라는 뜻의 차차웅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고구려에서도 유리왕이 병 들었 을 때, 무당이 그 원인을 알아내고 치유했다는 기록이 있 다. 그러나 당시의 자세한 의례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고려사》에는 나라에서 무격(巫覡)을 동원하여 기우 제를 지낸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고려 시대 기록으로 굿 에 관한 양상을 알려 주는 문헌이 하나 남아 있다. 이규 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 相國集)에 들어 있는 고율시(古律詩) <노무편>(老巫篇) 이다. 이 시에 묘사된 무당의 도무(蹈舞)와 공수(供受) 에 관한 장면은 오늘날 경인 지역의 무의(巫儀)와 같은 양상을 지닌다. 이와 같은 사료를 통해서 보면, 늦어도 고려 말기에는 무속의 제의 체제가 정형화되었다고 판단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당이 점복을 하고 치병을 한 기록 이 남아 있는 삼국 시대에도 본격 의례로서 굿을 했을 터 이고,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 발굴에서 출토되는 제의용 방울 등이 현재 사용되는 무당 방울 등과 흡사한 점을 미 루어 보면, 굿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유 형〕 제의의 대상, 즉 누구를 위하여 진행하는가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신(神) 굿은 무당 자신을 위한 제의이다. 둘째, 집 굿은 기주(祈主) 가족을 위해서 한다. 셋째, 마을 굿은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 한 다. 이를 다시 목적에 따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신 굿 : 신내림을 경험한 강신무(降神巫)에게 해당하 는 굿으로서, 내림굿, 진적굿, 물림굿으로 세분할 수 있 다. 강력한 종교적 소명 체험인 신병(神病)을 앓는 이가 정규 무당이 되기 위한 내림굿은 두 단계로 구성된다. 허 튼 귀신을 몰아내는 허주굿(다른 말로는 허침굿 또는 마른 굿)과, 정신(正神)을 맞아들이는 강신굿이 그것이다. 이 와 같은 내림굿은 겉으로는 새로운 종교 기능자의 임명 을 위한 제의적 절차와 상징적 행위를 포함하며, 안으로 는 한 인격체의 실존적 변혁을 추구하면서 애기무〔新生 巫〕가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도 록 촉구한다. 한편, 진적굿은 무당의 수호신인 몸주를 위 한 정기 축신 의례(祝神儀禮)이다. 신령의 초인간적 힘 을 주기적으로 재생시켜서 강신무의 영험력을 강화, 갱 신하는 의례이다. 봄철의 꽃맞이굿, 가을의 단풍맞이굿 이 대표적이다. 일생에 세 번만 지내도록 되어 있는 대규 모의 만구대탁굿(황해도), 신질바르는굿(제주도) 등도 있 다. 한편, 물림굿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무업 현장에 나 설 수 없는 신부모(神父母)가 신자식(神子息)에게 자신 의 신통을 물려줌으로써 대를 잇는 굿이다. 무구(巫具), 무복(巫服) 등과 함께 자신이 돌보던 단골판〔신도 집단〕 을 대물림한다.

집 굿 : 일반 가정에서 일가 피붙이의 총체적인 조화 를 꾀하는 의례로서 재수굿, 병굿, 그리고 진오귀굿으로 나뉜다. 재수굿은 수명 장수, 부귀 다남, 혼인, 회갑 축 원, 노상 안전(路上安全) 등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재수' 를 기원하는 제의이다. 병굿은 치병이 목적인 제의이며, '우환굿' 이라고도 한다. 병굿에는 영장치기, 산거리, 중 천굿, 명두굿 등이 있다.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벌 이는 굿도 있다.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한 별상굿, 손풀 이, 마누라배송굿이 있고, 안질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맹인굿이 있고,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한 광인굿, 두 린굿이 있다. 병굿은 점차 의술로 치유가 불가능한 병을 주대상으로 하는 경향이다. 진오귀굿은 죽은 이를 위한 굿이다. 강력한 부정(不淨)을 동반하는 사건인 죽음을 정화하고 상가(喪家)를 깨끗이 하며 망인(亡人)을 극락 으로 가도록 천도(薦度)하는 제의이다. 진오귀굿을 함으 로써, 죽은 이는 부정하고 부자유스러운 상태를 벗어나 서 자유로운 존재인 신이 되고, 산 사람은 부정한 상태를 벗고 정상인으로 복귀한다. 진오귀굿이야말로 무속 제의 중에서 가장 분화되고 발달된 모습을 보이며 그 명칭도 다양하다. 상가를 정화하고 갓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보 내도록 하는 소규모의 제의로는 자리걷이, 집가심, 곽머 리씻김, 댓머리, 귀양풀이 등이 있다. 물에 빠져 죽은 이 의 넋을 위로하고 저승 천도를 하기 위한 굿으로는 물굿, 수망굿, 혼굿, 넋건지기(혼건지기)국 등이 있다. 사망한 후 상당 기간이 지난 뒤 본격적인 망인 천도와 신격화 (神格化, deification)를 위한 굿으로서 진오기굿, 진오기 새남, 천근새남, 오구굿, 망무기굿, 수왕굿, 해원굿, 씻 김굿, 시왕맞이, 다리굿 등이 있다. 사후에 제의를 맡아 줄 후손이 없는 경우에는 본인 스스로가 죽기 전에 미리 자신을 위하여 산〔生〕오구굿을 벌이는 예도 있다.

마을 굿 : 한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집단적으 로 평화와 부귀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고대 부족 국가 시대에 이미 '하늘'' 에 제사지내는 집단 제의가 있었다. 그 후 지배자들은 불교, 도교, 유교 등의 이른바 '고등 종교‘ 들을 수입하여 이데올로기화함으로 써 지배권을 강화하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 와 같은 종교 문화의 변용(acculturation)을 통하여 토속적 인 무속 신앙은 사회 통합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집단 제의는 소규모화되었고 국가적 규모의 제의는 소멸되었다. 최근까지 제한적이나마 지역 공동체의 통합 기능을 수행해 오던 마을 굿의 의미도 점차 사라져 가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 직접적인 이유로는 다음의 네 가지 를 들 수 있다. 첫째, 일제 식민 시대 당시의 식민 세력 의 억압이다. 이 억압은 종교를 통한 피지배 민중의 결속 과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왔다. 둘째, 서양인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적대적인 태도이다. 서구 문화로 채색된 그리스도교의 한 단면을, 전체 그리스도 교 메시지와 혼동한 데서 빚어진 편협한 호교론의 결과 였다. 셋째, 산업화에서 기인한 농경 문화적 유대감의 상 실이다.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는 본래 농경 문화적 배경에서 발달한 집단 제의의 본래적 기능 을 상실케 한 것이다. 넷째, 새마을 운동의 부정적 영향 이다. 특히 미신 타파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전통 문화에 대한 홀대는 마을 굿을 거의 소멸 상태에 이르게 하였다. 그 결과 집단 제의인 마을 굿은 오늘날 점차 민속 놀이화 하고 있다. 이렇게 박제화된 마을 굿은 민속 경연 대회의 출품작으로 둔갑하거나, 외국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끄는 관광 상품화의 길에 들어서 있다. 진짜 마을 굿은 절해 고도나 심산 유곡에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 편이다. 마을 굿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1982년 박 계홍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한에서만도 41개의 서로 다른 명칭이 발견된다. 그중에서 대표 명칭들로는 당 (堂)굿, 산신제(山神祭), 대동(大同)굿, 별신제(別神祭) 등을 들 수 있다. 진행 방식에 따라서 구분하는 방법도 학자에 따라 다르다. 무라야마(村山智順)는 음악을 기준 으로 하여, 경기도 지역의 도당굿, 경상도 지역의 별신 굿, 강릉 지방의 단오굿, 평안도의 당굿 등으로 구분하였 다. 최길성은 주재자를 기준으로 삼아, 제관이 주재하는 동제, 강신무가 주재하는 도당굿, 세습무가 주재하는 별 신굿으로 나누었다. 유동식은 마을 굿에서 차지하는 무 당의 비중에 따라, 무당을 배제하고 유교식으로만 진행 하는 동제, 농악패가 제관의 역할을 맡는 전라도 지방의 당산제, 유교식 제관과 세습무가 절충된 충청도 · 경상도 지역의 별신굿, 강신무가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이북 지 방의 도당굿으로 구분하였다.

〔구 성〕 굿은 지역, 종류 그리고 목적에 따라 다양하 다. 소규모 의례인 비손이 단순한 축원의 형식을 가지며, 치성이 3~4거리로 구성되는 반면, 굿에서는 10 내지 38거리까지 이어진다. 그 과정은 제장(祭場)인 굿판으 로 신을 모셔 들이는 청신(請神), 신을 놀려서(놀도록 만 들어서)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 (送神)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제차는 무 당의 종류에 따라서 두 가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스 스로 신격화되어 신의 모습을 체현하는 강신무의 굿은, 신과 무당이 하나가 되어 실행되는 형식을 갖춘다. 여기 서 무당은 각각 해당 거리마다 관련되는 신령들의 복장 〔巫服〕으로 갈아입음으로써 신들림〔接 神, incorporation〕을 표상하며, 마치 스 스로가 신인 양 행세한다. 그러나 강신 내지 접신 현상이 미미하게 나타나는 세습무 계열의 굿에서는 신의 말을 무당이 전해 주는 형식을 띤다.모든 굿은 부정치기 또는 부정풀이를 함으로써 시작된다. 이것은 깨끗하지 못한 온갖 영향력을 풀어서 굿판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신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제차인 '뒷전' 에 서는 최하급 신령들인 잡귀 잡신(雜鬼雜神)들을 접대한다. 이 첫째번과 마지막의 제차만 집 밖에서 행하고 나머지 거리들은 집안이나 전문적 의례 거행 장소인 굿당에서 행한다. 집안에서는 대개 대청 마루에서 거행한다. 알타이어 계통에서 '마 루' (malo)는 가장 높은 곳, 신령스러운 곳이란 의미를 갖 는다.
각 거리의 진행 절차는 비슷하다. 먼저, 제의가 진행 중인 장소에 신령이 내려오기를 청한다. 다음으로, 노래와 춤으로 신령들을 기쁘게 한다. 강신무의 경우, 무당은 춤을 추는 동안 신에게 빙의(憑依)되어 신령의 의사를 인간에게 전해 주고 인간의 요청을 신령들에게 전한다〔供受〕. 각 거리의 마지막에, 무당은 신령들의 축복을 기주에게 전해 준다. 노래 사이사이에 무당은 장구, 징, 바라, 꽹과리(때에 따라서는 피리, 호적, 대금) 등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춘다. 장구는 대체로 장고재비가 치고 그 밖의 타악기는 조무(助巫)가 두드린다. 장구가 주로 가락을 맞추고, 다른 악기들은 증폭 기능을 담당한다. 굿에는 3~4명의 무당과 기주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 이웃 사람, 집전 무당의 단골 등 '구경꾼' 들이 모여드는 것이 상례이다. 이들 참가자 모두에게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어,신령들과 인간들 사이에 무당을 중개자로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재확인하는 집단 치유의 과정을 보여 준다.

〔지역적 특징〕 무당은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대별될 수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한강을 경계로 한 지역 구분과 일치한다. 또한 서로 다른 무당의 성격 때문에 굿의 특성 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중 · 북부(강신무 지역) : 신과 무당의 종교적 합일 (mystic union)에 기반을 두는 강신무의 굿은 무당이 제의 진행 중에 황홀경(ecstasy)에 몰입함으로써 신격화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격렬한 도무(蹈舞)를 통하여 천신(天 神)이 강림하거나, 뺑뺑이를 도는 춤을 통하여 조상신이 건너온다. 무당은 신으로 전환하여 인간과 의사 소통을 시도한다. 신으로 전환한 무당은 공수를 주어서 신의 의 사를 인간에게 전달하거나 인간의 바람을 신에게 전한 다. 이때 무당의 말이나 몸짓은 신의 의사 표시가 된다. 중 · 북부 지역의 강신무가 신과 합일하여 의례를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무당 후보자가 성무(成 巫) 과정에서 강력한 종교 체험인 신병(神病)을 겪음으 로써 범인이 갖지 못한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새 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강신무가 제의 진행 중에 사용하 는 방울, 신칼, 부채 따위의 무구는 신성 강림의 도구가 되며, 무복은 바로 신령들의 복장이 되어, 그에 해당되는 신격들이 빙의되는 상징 작용을 한다. 같은 강신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편차를 보인다. 한강 이북의 경기도 지역은 궁중 의례의 영향으로 화려 한 무복과 비교적 정형화된 제의 형식을 보여 준다. 무가 와 무무(巫舞)에 사용되는 악기는 장구, 징, 바라, 해금, 피리, 젓대 등이다. 황해도와 평안도의 굿은 격렬한 칼춤 이 많으며, 무복도 다양하고 복색이 화려하다. 황해도 굿 에서는 서사무가(敘事巫歌)의 양이 비교적 적고 연극적 인 요소를 가미하는 반면, 평안도 굿은 밝고 명랑하면서 도 염불을 많이 외는 등 불교 습합의 성격을 보인다. 함 경도 굿은 강신무 굿의 일반 특색인 격렬한 몸동작이 적 은 대신, 풍부한 서사무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북 지역의 무악(巫樂)은 무당이 황홀경에 신속히 몰입하도 록 도와주는 타악기 중심의 빠른 장단이 주조를 이룬다. 신과의 동일시를 나타내기 위해 무복이 중시되며, 위엄 있는 신령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칼, 창, 작두 등의 도 검류를 빈번히 사용한다.

남부(세습무 지역) : 접신 현상이 비교적 미미한 세습 무의 굿에서는, 신과 인간이 마주 대하고서 의사 소통을 시도한다. 무당 스스로가 신격화되지 않은 상태의 순수 한 인간적 입장에서 신을 대면하기 때문에, 굿의 진행은 무당이 신의 뜻을 기주에게 전해 주는 간접 화법의 형식 을 취한다. 따라서 이러한 세습무의 굿에서는 명백한 형 태의 공수는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지역에 따라 "(신령 께서) 이러저러하게 전하랍니다" 라고 하는 '공사' (간접 공수) 형식을 취한다. 신이 제의를 수용하는가의 여부는 무당의 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조 무당인 '점바치' 나 기주가 잡은 대〔神杆〕의 흔들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 될 뿐이다. 왜냐하면 이 지역의 무당은 소명 체험〔神病〕 이 아닌, 인위적인 가통(家統) 세습이기 때문이다. 세습 무의 굿에서 간혹 발견되는 강신적인 요소들은, 강신무 에서 세습무로의 변형 과정에서 남게 된 강신 요소의 잔 재이거나, 아니면 최근에 그 기세가 강해지고 있는 세습 무 지역에 대한 강신무 세력의 확대 현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영남 지역의 사령제(死靈祭)인 오구굿에서, 무당이 망인 넋을 싣는 '신태집' 을 세차게 흔들면서 춤 을 추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몸짓은 망자의 넋이 실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호남 지역의 '당골' 이 주재하는 굿에서 보이는 도무(蹈舞) 현상 역시, 강신 현상의 전조라기보다는 강신무 제의가 세습무 제의 형태 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잔재라고 보는 편이 타당 하다. 세습무의 굿은 이처럼 강신 현상이 약하기 때문에 다 양한 종류의 무복은 필요하지 않다. 무복이란 무당에게 빙의된 신령(들)을 드러내는 일차적 상징물이기 때문이 다. 호남 지역 당골의 제의용 복장으로는 깨끗한 흰색 치 마 저고리를 주로 착용한다. 대규모 굿이 진행될 경우 비 로소 흰 두루마기를 덧입고, 머리에 흰 종이로 접은 고깔 을 쓰는 정도이다. 영남 지역에서는 '쾌자' 를 치마 저고 리 위에 걸쳐 입으며, 영동 지역에서는 쾌자와 '활옷' 을 접신 기능과는 상관없이 중요한 거리에서 장식으로 착용 한다. 제주도에서는 통상 '섭수' 를 입는데, 큰 굿에서는 '관띠' 〔冠帶〕를 사용한다. 굿에서 사용하는 악기로는 강신무 지역에서 사용하는 악기 이외에 몇 가지가 추가된다. 호남 지역에서는 피리, 젓대, 해금, 가야금, 아쟁을 사용하며, 무악의 장단과 가 락은 느리고 완만하다. 영남 지역에서는 피리, 젓대, 호 적 등을 사용하며, 중 · 북부의 강신무 굿과 비교하면 역 시 그 가락이 느리고 완만하다. 청신의 과정에서 강신무 가 사용하는 신칼, 방울, 명두 등의 무구는 세습무에게서 같은 기능으로 사용되지는 않으나, 그 흔적은 남아 있다.예를 들면 영남 지역의 세습무 일부는 작은 방울 꾸러미 를 굿에서 사용하거나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유물로 보 관하며, 신칼을 갖고 수부치기를 한다. 호남 지역에서는 사령제인 씻김굿에서 넋을 불러일으키는 데 신칼을 사용 한다. 제주도에서는 신칼, 산판, 방울 등을 '삼멩두' (삼 명두)라 하여 무조(巫祖)로 모시면서, 이들 무구를 던져 신의 의사를 알아보는 제차가 굿의 과정 속에 들어 있다. 남부 세습무 지역의 제의에서는 강신 현상이 .이처럼 미미한 상태로 그 흔적만이 겨우 남아 있다. 이러한 현상 은 강신무 제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형, 도태된 것으로 유추된다. 강신 현상의 잠적으로 인해 무복은 거의 착용되지 않으며, 황홀경에 따른 접신 현상이 거의 없으므로 음악과 춤이 느리고, 무 점(巫占) 기능이 사제에게 없기 때문에 무구도 많이 사 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차이는 무당의 성격과 기능이 서로 다른 데서 오는 제의 절차상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는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해 있지만, 그 굿에서는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세습무의 신도 관리 방식인 지 역 단위의 단골판을 유지하면서도, 제의 중에는 강신 현 상이 있으며, 무당이 굿 중에 점을 쳐서 신의(神意)를 묻 는다. 이와 같이 굿 중에 신의 강림과 내재를 과시한다는 점에서, 제주도의 굿은 중 · 북부 강신무의 굿과 남부 세 습무의 굿을 혼합한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무악의 장단도 타악기를 주로 사용하여 비교적 빠른 편이며, 특 히 서사무가가 풍부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굿의 주재자 가 대부분 여자 무당인데 반해 제주도에서는 남자 무당 인 심방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 넋 ; 무속 신앙 ; 신들 림) ※ 참고문헌  金秀男 외, 《한국의 굿》 1~20권, 열화당, 1985~1991/ 金仁會 외, 《韓國巫俗의 綜合的 考察》,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2/ 金 泰坤, 《韓國巫俗研究》, 集文堂, 1981/ 文化部 文化財管理局 편, 〈韓 國民俗綜合調查報告書》 1~14권, 1969~1981/ 朴 日 榮, <무속의 대동 잔치>, 《宗教神學研究》 3집, 西江大學校 宗教神學研究所, 1990, pp. 115~144, 297~304/ 柳東植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5/ 李能和, 〈朝鮮巫俗考〉, 《啓明》 19, 啓明俱樂部, 1927/ 조흥윤, 《한국의 巫》, 정음사, 1981/ 주강현, 《굿의 사회사》, 웅진출판 사, 1992/ 최길성, 《巫俗의 世界》, 정음사, 1984/ 玄容駿 《濟州道巫俗 研究》, 集文堂, 1986/ -, 《濟州道巫俗資料事典》, 新 丘文化社, 1980/ 赤松智城 · 秋葉隆, 朝鮮 巫俗 の研究》 上 · 下, 大阪 屋號書 店, 1937~1938/ 村山智順 《部落祭》, 朝鮮總督府, 1937/ G.J. Ramstedt, Studies in Korean Etymology, Helsinki, 1949/ Park Il-young, Minjung, Schamanismus und Inkulturation ; Schamanistische Religiosität und christliche Orthopraxis in Korea, Dissertation, Universität Freiburg, 1988. 〔朴日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