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形而上學 [라]metaphysica 〔영〕meta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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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관한 학문. 유(有)를 '유' 로서, '유' 의 근거로서 존재 자체를 고찰하며 '유' 의 특성, 원리 등을 고찰하는 철학의 한 분야. I. 어의 · 내용 · 분류 [어 의] '형이상학' 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An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의 저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철학자인 안드로니코스(Andronicos of Rhodes, ?~?, 기원전 1세기에 활동)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정리하면서 논리학, 물리학(자연학) 외에 그가 '예지' 혹은 '제1 철학' 이라고 부른 '존재' 에 관한 저서 14권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 저서는 그 내용으로 보아 자연학 다음에 와야 할 성질의 것이었기에, '자연학 다음에 오는 것' (μεταΦνσικα)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 말은 중세에 자연학을 '넘는' (supra, trans) 것이란 의미로, '형이상학' 혹은 '초자연학' (transphysica)이라는 부르는 근거가 되었다. 이후 17세기에 이르러, 형이상학은 존재 일반론과 존재의 근원으로 생각되던 신의 문제를 분리시켜 전자만을 대상으로 하게 되면서 '존재론' (存在論)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내 용〕 형이상학은 존재에 관한 학문이다. 사실 서구 철학의 첫 문제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나타났다. 즉 모든 사물(유 혹은 존재자)의 기원, 어떤 원인들이 사물들을 있게 하는가의 문제였다. 따라서 그리스 철학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이상학은 모든 '유' (존재자)의 궁극적 존재 근거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분 류〕 형이상학은 일반 형이상학과 특수 형이상학으 로 나뉘어진다. 일반 형이상학은 '유' 일반에 대하여 논하고, 특수 형이상학은 '특수 유' 에 대하여 논한다. 특수 형이상학은 다시 유한유(有限有)에 대한 논의와 무한유 (無限有) 혹은 제1 원인에 대하여 논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유한유에 대해 논하는 특수 형이상학은 자연 철학, 이성(理性) 심리학(혹은 형이상학적 심리학)이다. 무한유를 논하는 특수 형이상학은 무한유, 즉 신의 문제에 대한 것 이므로 변신론 또는 자연 신학이라고도 불린다. Ⅱ. 형이상학의 역사 〔고 대〕 그리스 철학에서 먼저 나타난 문제는 이오니아 학파의 자연 철학적 문제였다. 이 시기의 철학은 변화 무상하고 다수성을 지니는 사물들의 본성과 그 공통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 뒤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감탄하고 사물의 본질은 '수' (數)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우주를 '코스모스' (κóσμος)라고 불렀다. 엘레아 학파에 이르러서는 본연 의 형이상학적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유를 고찰하였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40~470)의 주장에 따르면, 유는 유일하고 불가분하며 항존(恒存)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며 동질(同質)하고 완전하며 둥근 것이다. 감각에 속고 있는 인간이 외견상 나타나는 유를 고찰하 여 그것이 다수이며 가변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실재는 감각이 도달하지 못하고 이성만이 도달할 수 있는 유일유(唯一有)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헤라클레이토스 학파는 경험을 중시하였기에, 헤라 클레이토스(Heracleitos, 기원전 541/535?~475)는 유의 유일성과 불가변성을 거부하고 실재를 생성(生成) 안에서 인정하였다. 소피스트(Sophist)들은 인간이 진리를 추구 하고 실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 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85?~410?)는 '존재 하고 있는 것과 존재하고 있지 않는 모든 것(만물)의 척 도는 인간이다' 는 상대주의를 주장하였으며, 고르기아스 (Gorgias, 기원전 483?~376)는 '세계 전체는 환상이다' 는 반(反)우주론적 현상론을 주장하였다. 소크라데스(Socrates, 기원전 470/469~399)는 문제의 논리적 관점을 중시하여, 소피스트들의 궤변을 거슬러 개념의 참 본성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사물의 개체성과 개념의 보편성 사이에 있는 이율배반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예컨대 의로움의 개념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은 더 나아가 철학의 문제를 존재론적 측면에서 해결하려 하였다. 존재와 다른 것, 즉 상대적 비유(非有)를 통해 관념들의 분유(分有) 혹은 참여(參與)의 논의를 논증하 면, 유의 다수화와 변화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고 생 각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구체적이고 개체적이며 변화 하는 대상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본질의 영 역, 즉 볼 수 없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감각으로 지각되는 것은 다만 그림자의 현존재이며 외견상의 나타남, 즉 현상적 현실일 뿐이다. 이에 반해 '이데아' (ἰδέα)만이 참된 존재이다. 인간 정신은 이런 '이데아' 를 위해 있는 것이므로 초감각적 실재를 향해 감각적 존재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이데아' 의 지식은 이 세계에 대한 우리 지식의 규준이 되므로 철학은 초감각적 실 재에 대한 학문, 즉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이데아' 와 가시적(可視的) 세계의 원인들, 그리고 그 원형들에 대한 학문이다. 플라톤은 관념적 유의 분유설(分有說) 혹은 참여설(參與說)을 제시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학설을 종 합 · 완성하여 논리적인 면과 존재론적인 면에서 문제를 현실적 ·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논리적 면에서는 유(有)의 유비성(類比性, analogia)을 주장하였다. 모든 유는 유라는 이유 자체로서는 일치하지만, 내포된 실제 적 내용으로 볼 때 일치하지 않는 면도 있기 때문에 유비성을 지닌다. 존재론적 면에서 볼 때, 모든 유의 구조는 단순하지도 동질이지도 않으며, 두 원리 즉 현실태(現實 態)와 가능태(可能態)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유의 내적 구조에서 유의 다수와 변화가 가능하게 된다. 〔중 세〕 중세에도 논점의 중심은 논리적 문제와 존재론적 문제였지만, 그 양태는 더욱 다양하게 나타났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직접 형 이상학을 논하지는 않았지만, 플로티노스(Plotinos, 205?~ 270)의 '일자' (一者)에 대한 주장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 았다. 11~12세기에는 스콜라학파(Scholaticism) 내에 유의 빈사(賓辭, 명제의 주어에 대해 진술하는 명사) 문제를 내포한 보편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유명론(唯名論) 혹은 개념론, 과장 실재론 사이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유명론은 불가지론에 이르렀고 과장 실재론은 범신론적 실재론을 주장하는 와중에, 아벨라르(P. Abélard, 1079~ 1142)에 의해 온건 실재론이 대두되어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4/1225~1274)에게 계승되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자기 학설을 성립시켰다. '유' 의 논리적인 문제 는 유비 개념으로, 존재론적 문제는 '유' 를 '유' 로써 고찰하여 해결하였으며, '유' 의 존재 근거로서의 존재 자 체를 논하여 그 특유의 형이상학을 성립시켰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의 내적 구조, 즉 유의 현실태와 가능태 이론을 중시하였으며, 이슬람 철학자인 아비천나 (Avicenna, 980~1037)의 영향을 받아 유한유에 있어서 실 재적으로 구별되는 본질과 존재설을 발전시켰다. 이런 본질론과 존재론은 이후 서구 철학의 두 흐름 즉, 본질 철학과 존재 철학을 형성하였다. 또 '유' (존재자)의 원인 론도 깊이 탐구하여 제1 원인, 근원적 존재론을 성립시켰다. 이런 이원적인 존재는 본질과 존재의 구별이 없는 존재 자체이다. 토마스의 형이상학적 논조의 중심에는 최고의 현실태이자 완전한 존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모든 유(有)는 이런 존재 즉 '자존유' (Ipsum Esse Subsistens, 자존하는 존재 자체)로부터, 다시 말해 하느님으로 부터 존재를 받는다. 토마스는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 모든 유한유(有限有)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의 창조설, 즉 분유설 내지 참여설이 성립 되는데 여기에서는 플라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토마스는 모든 피조물은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본질과 존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하느님은 그런 구별이 없는 존재 자체, 제1 원인, 궁극적 목적 등으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토마스의 유개념은 일의적(一義的) 혹은 다의적 (多義的)인 것이 아닌 유비적(類比的)인 것이다. 스코투스(J.D. Scotus, 1265/1266~1308)는 토마스가 너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에 치중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 지성의 고귀한 대상이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면 인간 지성은 이런 경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유(有)를 유(有)로서 인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유 (有)로서의 유(有) 인간 지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스코투스에게 있어 형이상학이 인식하는 유의 개념은 일의성(一義性, univocitas)인 것이다. 〔근 대〕 근세 초기에 형이상학은, 유명론자인 오컴(W. Ockham, 1285~1349)이 경험적 개체의 우위를 인정하고 경험을 넘는 세계, 초경험적 세계, 신의 세계에 대해서는 개연성만을 인정하는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상처를 입 었으나, 독일 신비 사상의 원류인 에크하르트(J. Eckhart, 1260~1328)에 이르러 다시 큰 빛을 발하였다. 그의 형이 상학은 신플라톤주의의 흐름을 따르지만 토마스의 형이 상학 또한 받아들인 것이었다. 쿠사의 니콜라오(Nicolaus Cusanus, 1401~1464)도 신플라톤주의와 토마스의 철학과 스콜라학을 풍부히 받아들여 《대립물들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와 《유식한(박학한) 무지》(De docta ignorantia, 1440)란 저서를 통해 자기의 사상을 집약한 독창적 세계와 정신의 형이상학을 형성하였다. 오컴을 분수령으로 스콜라 철학에서 근세 철학에로의 길이 열렸다. 근세 철학은 대륙계의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와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 등 합리주의자들과 영국계의 로크(J. Locke, 1632~1704), 버클리(G. Berkeley, 1685~1753) , 흄(D. Hume, 1711~1776) 등 경험론자들로 크게 두 흐름을 이룬다. 이들은 자신들 의 학설을 주관주의와 불가지론으로 이끌어 갔다. 데카 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의 명제를 명증적인 것으로 보고 여기서 논 리를 전개시켰다. 이것이 근대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다. 데카르트는 내 존재의 내면적 확실성에서 출발하여 전통 적 형이상학이 논거해 온 주제들을 계승하였다. 즉 내가 있다' 는 형이상학적 제1 원리의 확증에서 하느님에까지 도달하고, 여기서 물체적 세계의 기초가 성립되는 방향을 취해 전통적 형이상학의 주제들을 인정하였다. 스피노자는 철학의 확실성을 기하학적 방법에 의존하였다. 그는 유일 실체론을 전개하고 다른 모든 존재 사물을 유 일 실체의 속성으로 설명하여 '신 즉 우주' 로 표현되는 범신론적 형이상학을 전개하였다. 다시 말해 우주는 영원에서 고찰된 신인 것이다. 따라서 신은 생산 가능한 자연이고, 우주는 생산의 결과물로서의 자연이다. 반면 라이프니츠(G.W. Leibniz, 1646~1716)는 당시까지의 학설로 는 운동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단자론(單子論, Monade)을 제시, 사물의 구조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을 성립시켰다. 만물은 자체적으로 폐쇄된 단자로 구성되어 있다. 단자들 사이에서의 운동은 힘 즉 에네르기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신에 의해 미리 설정된 조화로 이루어진다. 이런 미리 설정된 조화의 힘으로 인해 사물들 간의 운동이 발생한다. 반면 흄은 모든 것을 경험에서 설명하려 하였다. 그는 인과율을 심리적 소산으로 보고, 확실성 을 감각 경험의 한계 내에 국한하려고 함으로써 형이상학을 전적으로 거부하였다. 칸트(I. Kant, 1724~1804)는 이러한 두 가지 흐름 즉 합리주의와 경험론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그의 선험적(先驗的) 종합 판단론이다. 학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면, 즉 확장적인 지식뿐 아니라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지식 또한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경험적인 종합 판단은 새롭고 확장적 지식은 줄 수 있어도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을 줄 수는 없다. 따 라서 보편적이고 필연적 지식의 획득 경험적, 즉 후험적 (後驗的, a posteriori)인 종합 판단이 아닌 선험적(先驗 的, a priori) 종합 판단에 의해 가능하다. 지식은 그것을 지식이게 하는 선행 조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는 대상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확실히 초월적 전회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런 전회는 논의의 초점이 조건지어진 것에서 조건에로, 경험 대상에 서 이 대상을 결정하는 순수 이성에로의 이행을 의미하 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칸트에게 있어 형이상학은 초월적 철학(超越的哲學, transzendental philosophie)으로 전환한다. 그것은 또한 순개념에 의한 순수 지식이다. 이성은 스스로 대상을 결정하는 한편 감각 경험의 소여에 의존 하므로 순수 이성의 개념과 원리들은 감각 경험의 영역 안에서만 유효하다. 이 영역 안에서도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an sich) 규정할 수는 없고, 다만 우리에게 나타나는 대로 규정할 뿐이다. 이런 형이상학은 아무런 객관성도 갖지 못한 순전히 주관적 기능이며, 사고는 주관적 형이 상학 내에 폐쇄된다. 이런 형이상학에서는 객관적 존재가 상실된다. 칸트는 이러한 문제를 실천 이성(實踐理 性)을 도입하여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실천 이성은 순수 이성(純粹理性)이 도달할 수 없었던 기본적 세 실재, 즉 세계와 영혼과 신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요청을 하는 것이다. 피히테(J.G. Fichte, 1762~1814)는 초기에는 순수한 주관적 관념론자였으나, 사고가 존재를 전제한다고 생각하게 된 뒤로는 관념론을 넘어섰다.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에게 있어서 자아(Ego)는 그 자체를 초월하여 객관과 주관, 이상과 현실의 이중성보다 앞서는 절대를 의식하게 된다. 이 절대는 주관적 관념론을 객관적 관념론으로 지양시켰다. 그가 주장한 동일성(同一性) 의 철학은 전통적 의미의 형이상학과 유사하다. 헤겔 (G.W.F. Hegel, 1770~1831)에게서도 전통적 형이상학의 자취를 볼 수 있다. 그는 절대적 출발점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지성적 직관이 아닌 의식적 경험의 선험적 연구를 통해 찾으려고 하였다. 형식적인 것은 내용에 근거한다. 사고의 내용에 선행하는 형식적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용에 의해 사고의 형식을 결정하는 내용적 논리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헤겔의 논리는 존재론이며 신론이다. 이렇게 그는 다른 형태로 존재의 문제를 추구하였다. 〔현 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형이상학적 긍정과 거부의 양태가 나타났다. 콩 트(A. Comte, 1798~1857) 밀(J.S. Milll, 1806~1873), 마흐 (E. Mach, 1838~1916), 아베나리우스(R. Avenarius, 1843~1896) 등에 의해 대표되는 실증주의의 흐름은 형이 상학을 몰아내고, 대신 인식론을 중시하는 칸트학파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처럼 반형이상학적 경향이 강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르트만(K.R.E. von Hartmann, 1842~1906) 등의 귀납적 형이상학이 성립되고 발전하였다. 또한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 프랑스의 베르그송(H. Bergson, 1859~ 1941), 블롱델(M. Blondel, 1861~1949), 마르셀(G. Marcel, 1889~1973), 독일의 하르트만(N. Hartmann, 1882~1950)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 영국의 브래들리(F.H. Bradley, 1846~1924)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화이트해드(A.N. Whitehead, 1861~1947) 그리고 이탈리아의 크로체(B. Croce, 1866~ 1952), 젠틸레(G. Gentile, 1875~1944) 등 다양한 형이상 학적 경향을 나타내는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새로운 물 리학 성과를 형이상학화한 화이트헤드, 순수 논리적 · 연역적 방법으로 절대자를 긍정한 브래들리, 물체적 자연에 해소되지 않는 독자 영역의 '순수 지속' 또는 행로의 발견 등을 설명한 베르그송과 블롱델, 영역적 존재론의 하르트만, 역사성의 근본 범주화를 주장한 크로체 등 다양한 형이상학이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반형이상학적 · 무신론적 학 설들이 대두되었다. 포이어바흐(L.A. Feuerbach, 1804~ 1872)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 존재였던 신을 심리적 소산, 소외된 인간의 산물로 여겨 전통 형이상학을 거부하 였으며, 신학을 인간학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포이어바흐의 심리학을 과학 이론으로 대체시켜 경제적 소외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기초로 무신론을 성립시켜 전통 형이상학을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는 무(無)를 산출하는 의식론과 자유일 수밖에 없는 자아론을 전개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장하여 전통 형이상학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키에르케고르와 마르셀은 불안, 절망, 사랑, 희망, 거룩함 등 느낌의 실존에서 존재, 즉 절대적 존재로의 길을 열었다. 하르트만은 신칸트주의의 논리적 관념론을 극복하고 실재적 사고에 대해 주장하였으나 그의 존재론은 존재 양태와 존재 단계의 경험적 · 현상적 서술에 불과하다. 이런 존재론은 형이상학적 전제를 의식하지 못한 범주론적 분석' 이며, 본래의 형이상학적 문제에는 도달 하지 못하였다. 야스퍼스는 포괄자와 모든 대상 영역이 그 자체를 넘는 초월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가능적 존재자를 주장 하며 초월자를 지시하는 사물의 암호설, 부호설을 주장하는 형이상학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그는 칸트적 전제를 근거로 하는 '암호의 형이상학' 에 머물렀을 뿐이다. 반면 하이데거는 서구 형이상학이 유, 존재 사물, 존재자(das Seiende)는 고찰하였으나 존재자의 존재(das Sein des Seienden)에 대해서는 고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은 존재적으로 생각하였으나 존재론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본질을 존재로서 이해하지도, 존재에 바탕을 두지도 않은 본질적 형이상학이었으며, '존재의 망각' 을 초래한 형이상학이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개시(開示)를 인간 의 본질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인간은 그 본질에 있어서 '존재 진리의 처소이다.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 론은 '현존재에 대한 분석' 이다. 현존재 안에서 존재 일반이 개시되며, 이런 존재 일반은 우리에게 존재자와의 경험적 · 존재론적 만남과 존재자에 대한 '우리'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본질적으로 초월적 · 기초적 존재론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후설(E.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는 존재를 인간적 현존재 의 근거에서 현상적 직접성 안의 자기-현시(顯示)로 이 끌어 가며 직접적 '봄' 으로 접근시키며, 이성의 작동이 전의 느낌과 정태감(情態感) 안에서 더 근원적으로 파악 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이데거는 인간적인 존재와 인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존재만을 만났다. 즉 유한하고 시간적인 존재만을 만난 것이다. 뒤이어 출현한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들은 현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반형이상학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반형이상학이 간혹 형이상학을 새롭게 불 러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실증주의는 실존주의적 형이상학을 불러왔으며, 형이상학을 퇴출시키기 위해 철 학에 도입한 기호 논리학적 방법은 그 발전 과정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을 산출하는 모태가 되었다. 가능 세계 의 미론이 그런 유형이다. 또한 개별 과학에 있어 인지 과학 (認知科學)이나 우주론의 발전 특히 배아 체세포 조작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형이상학의 출현을 예감하게 한다. 인간은 모든 기술과 실용적 가치를 넘어 정신의 차원과 근본적 가치, 존재론적 가치를 지향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망과 지향점〕 근대와 현대에 반형이상학적 흐름이 있었지만, 전통 형이상학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결같이 지속되었다. 중세에 굳건히 자리잡은 전통 형이 상학의 양대 산맥은 스코투스 학파와 토마스 학파이다. 스페인 예수회의 수아레스(F. Suárez, 1548~1617)가 이 두 흐름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그의 형이상학은 내용은 스코투스적이나 표현 용어는 토마스적이어서 토마스주의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정통 형이상학은 데카르트 이후 여러 철학 사상, 예컨대 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 등 여러 사상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해석과 형태를 지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거나 교도권 또는 순수 전통 형이 상학 특히 전통 토마스 형이상학주의자들이 거부하기 일쑤였다. 19세기 후반,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신 학교 개혁 이후 토마스의 사상 특히 그의 형이상학은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철학 전반의 중추 사상으로 자리잡아 20세기에 만개하였으며, 삼천 년대에 들어서서도 가톨릭 철학의 핵을 이루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형이상학은 그 수월성(秀越性)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것이기에 삼천 년대의 인류 사상 즉 그리스도교 사상과 동양 사상이 상호 교류 · 융합하여 새로운 인류의 공통 사상을 형성해 가는 데 기초가 될 것이다. 존재론적 기초가 없는 사상은 결국 혼란이나 사상누각의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인류 사상사는 여실히 보여 준다. 그렇기에 동서의 형이상학 즉 서구의 형이상학과 초자 연학, 다시 말해 물리적 형태를 넘는 형이상학과 동양의 사상 특히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학습의 두 단계인 하학(下學)과 상달(上達) 사상은 상통하고 상보할 수 있는 면을 내포한다. 공자의 사상은 형태 위의 정신적 인 자를 '도' (道)라 하고 형태의 아래를 차지하는 것을 '기' (器)라고 하기 때문이다. '하학' 은 인사(사람과 사물) 를 주제로 한 구체적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고 '상달' 은 도〔聞道〕, 즉 천도(天道)를 주체로 한 보편 규정을 파악 하는 학습이다. 공자는 스스로 '보편적 지식을 학습하고 거기서 아주 높은 도리를 원해야 한다' (《논어》)고 생각하 였다. 이런 관점은 서구의 전통 형이상학이 경험 세계의 지식에 대해 경험을 넘은 차원의 지식을 형이상학적 지식으로 생각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 정통 형이상학 특히 토마스의 형이상학은, 동양의 형이 상자(形而上者)를 '도' 라 하고 형이하자(形而下者)를 '기' 라고 하는 사상(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學者謂之器, 《周易》)을 깊이 연구하여 상호 합류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Ⅲ. 내 용 체계적 혹은 전통적 형이상학은 인간 정신의 인식 밖 에 있는 객관적 존재에 대한 도달 능력을 인정하며, 객관적 존재론을 성립시켰다. 〔유, 존재의 파악〕 '유' (有, ens, being)는 있는 것, 존 재자 , '존재 사물' , '존재'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현실 존재로서의 유 : '유' 를 의미하는 라틴어 '엔스' (ens)는 '에세' (esse, 있다)라는 동사의 분사형으로, 현실적으로 '있음의 현실' , '존재' 를 나타낸다. 이때 '엔스' 는 '존재자' 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가능성 혹은 주체로서의 유 즉 본질로서의 유 : '있음의 현실' 이 아니고 그렇게 있을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주체인 '유' 가 있다. 이런 경우 토마스 철학에서 '엔스' 는 '본질' 을 의미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본질과 존재 사이의 실재적 구별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구별은 토마스 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모든 피조물에는 이런 구별이 실재적인 것이고, 하느님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어 존재와 본질이 같다는 것이다. 이런 존재론적 차이에서 창조설과 범신론, 다신론 등이 서로 논박된다. 이런 본질을 표시하는 경우 아직 존재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자' 라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그러므로 토마스의 경우 '엔스' 는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이 두 요인, 즉 존재와 본질을 다 내포하는 것이기에 한자로 옮기는 경우 단적으로 '존재자' 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전통 사상 에서 오랫동안 써 온 '유' 가 더 좋을 것이다. 물론 이 두 용어가 다 같이 통용될 수도 있다. 〔유의 초월성과 수렴성〕 초월적 개념이란, 모든 하위 개념 안에서 발견되고 그 하위 개념에 일치하는 개념이 다. 즉 '유' 개념은 무(無)가 아닌 모든 것에 해당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초월적 개념이 되는 것이다. '유' 개념 은 본래적 의미와의 차이로 하위 개념에 수렴(收斂)되지 않는다. 본래적 의미와의 차이란, 한 개념이 다른 개념에 첨가되어 그 다른 개념을 수렴하지만 그 개념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유를 구별할 기준 또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와 다를 수 없으며 그것도 유인 것이다. 그러므 로 유는 하위 개념에 본래적 의미로 수렴되지는 않으나 더 명백한 개념의 양태로 하위 개념에 수렴된다. 예를 들 면 사람이라는 개념은 유 개념 안에 포함되어 있으나 모 호하고 불명료하게 포함되어 있다. 유라는 개념이 사람 이라는 개념, 더 나아가 김군으로 수렴될 때는 더 명백하 고 더 분명한 개념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유무(有無)의 문제 : 유의 개념은 단순하며 비규정적이다. 있는 것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있건 가능적으로 있건 다 유 개념으로 표현된다. 무는 유 개념에 대한 인간 인식 작용의 부정으로서, 인식 안에서만 성립될 뿐 실재 적 가치를 전혀 갖지 못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헤겔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유와 무 사이의 일치성을 주장하여 순 수유(純粹有)를 순수무(純粹無)와 동일시할 수 없다. 유 개념이 매우 단순하고 비규정적이긴 하지만 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즉 유의 모든 내포를 배제하여 온전 히 공허하고 비규정적인 것으로서의 무는 아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유는 있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다 내포 하는 규정적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의 하위 개념 들은 서로 관계를 가질수 있으며 그런 하위 개념들 사이에는 변증법적 인식 진행이 가능하게 된다. 즉 한 사물의 인식으로 다른 사물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진행은 유 개념이 그 안에 부정을 내포하기 때문이 아니라 긍정을 내포하기 때문에 성립된다. 유비 개념 : 유비(類比, analogia)는 본래 그리스어로 '비례' (比例)를 뜻하며, 라틴어로는 '콤파라시오' (comparatio), , '프로포르시오' (proportio)이다. '비례' 란 말은 본래 수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협의적으로는 두 관계의 동등성(aequalitas)을 의미한다. 광의적 혹은 일반적으로 는 한 양(量, quantitas)과 다른 양과의 관계, 어떤 규정된 초과의 관계를 뜻한다. 예컨대 두 배, 세 배 등을 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양 관계를 넘어 한 사물과 다른 사물의 관계를 뜻한다. 예컨대 부분과 전체의 비례, 잘 조화된 집 등이다. 또 이런 양의 비례 개념은 수학적 · 연장적 영역을 넘어 형이상학에도 적용된다. 즉 형이상학 에서는 존재론적으로 한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의 관계 를 그 어떤 것이든 다 비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현실태와 가능태, 원인과 결과, 의식자와 의식의 대상, 신의 존재와 피조물의 존재 등은 어떤 비례를 이루고 있어 그런 것들 사이에 유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유비적 명사 (terminus analogus)는 서로 다른 사물들이지만 어떤 면에 서 같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관계되는 사물들에 다 같이 통용되는 개념이다. 예컨대 건강이란 개념은 신 체, 음식, 공기, 색깔 등에 다 같이 통용된다. '일의적(一 義的) 명사' (terminus univocus)와 '다의적(多義的) 명사' (terminus aequivocus)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일의 적 명사 는 똑같은 이유로 하나의 개념이 여러 사물에 적용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동물이란 개념은 사람에게도 짐승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의적 명사' 는 같은 명사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 전혀 다른 사물들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예컨대 '배' 라는 낱말의 경우가 그렇다. '배' 라는 낱말은 물 위에 떠 있는 배(船)일 수도 있고 먹는 배[梨]일 수도 있다. 이때 '배' 라는 낱말은 전혀 다른 두 사물에 적용되는 다의적인 개념이다. 유의 제원리 : 유와 비유(非有) 혹은 존재와 비존재 (非存在)의 본질을 고찰하면 유 혹은 존재의 근본 원리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동일성의 원리, 배중 원리(排中原 理), 모순 원리, 충족 이유 원리(充足理由原理) 등이다. 이 여러 원리들 중 형이상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모순 원리이다. 모순 원리(principium contradictionis)는 엄밀한 의미에서 비모순 원리(principium no-contadictionis)라 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원리가 존재에 있어서의 모순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원리를 '같은 것이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동시' (simul, at the same time)는 시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 원리의 진실성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 사실 유와 이런 원리는 일차적 개념이고 원리이며 다른 결론들의 출발점이기에, 다른 개념 들이나 원리들에 논리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즉 모순 원리는 엄밀한 의미의 증명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원리를 자명 원리(自明原理)라고 한다. 동일성의 원리(principium identitatis) 또는 동일률은 유의 본질에서 직접 도출된다. 예를 들면 '유는 유이다. 모든 유는 그 자체이고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유는 그 특유의 규정을 갖고 있다' 등의 경우이다. 배중 원리(principium exclusi medii) 혹은 배중률은 유와 비유 사이에 중 간물을 인정하지 않는 원리이다. 만일 이런 중간물이 있 다면 그것은 무(無)이며 동시에 유(有)일 것이다. 이것 은 확실한 모순이다. 충족 이유 원리(pricipium rationis sufficientis)는 그리스 철학이나 중세 철학에서 직접 언급 되지 않았으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원리를 인과율 안에 포함시켰다. 그는 어떤 사물에 본질상 속해 있지 않은 것은 어떤 다른 원인에 의해 그 사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원리를 최초로 정초한 사람은 라이프니츠였다. 〔유의 특성〕 유의 특성 혹은 고유성은 일반적으로 유가 유인 한 따라오는 것(secuntur ens inquatum ens)을 뜻한 다. 그러므로 유의 특성은 모든 유에 대해 서술되며 모든 유 안에서 발견된다. 유의 이러한 특성을 초월적이라 하 며, 이런 유의 초월적 특성 혹은 초월적 범주(ranscendentale praedicamentum entis)는 일(一, unum), 진(眞, verum) , 선(善, bonum) 세 가지이다. 유의 일성(一性) : ① 유의 존재론적 특성 : 유의 일성 은 유의 첫째 특성인 유의 초월적 특성 즉 존재론적 특성에 대한 것이지 양(量)에 속하는 범주적 일(一)이나 범 주적 수(數)처럼 같은 종(種) 안에서 다수를 이루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범주적 일은 물질적 실체 의 우유성(偶有性)이다. 이와는 달리 초월적 일성은 유의 자체 불가분성에서 성립된다. 모든 유는 자체 불가분 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모든 유는 단순 유이거나 복합 유이다. 단순 유라면 불분할적(不分割的)인 것이어서 그 자체일 것이고, 복합 유인 경우에도 그 사물로서는 불분할적인 하나로 나타난다. 따라서 모든 유는 그 존재를 보존하는 것과 같이 일성을 보유한다. ② 일성의 유비성 : 유한한 유의 일성은 그 유비성 때 문에 무한한 일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유한 유(有限有)와 무한유(無限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의 일성도 유비적이다. 유의 진성(眞性) : 인간에게 있어서 진리는 인간 지성 의 개념과 사물의 일치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식론적 진리이다. ① 존재론적 진리 :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존재 론적 진리이다. 이 진리는 사물과 지성의 합치로 성립되며 사물 자체에서 고찰되는 진리이다. 사물과 지성의 합 치는 직접적으로는 사물과 본질의 합치로 나타나고, 궁 극적으로는 본질의 원천인 절대자의 지성과의 합치로 소급된다. 따라서 존재론적 진리는 사물이 근본적으로 가지(可知)적이며 우리 지성에도 가지적일 때 성립된다. 그것은 우리 지성도 절대 정신의 반영이며 객관적인 사물과 마찬가지로 절대 정신의 반영이며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② 진리의 유비성 : 진리는 유비적이다. 유가 유비적이기 때문에 그 속성인 유의 진성도 유비적이다. 단적인 예로 신 존재의 진성과 피조물의 진성은 일의적이거나 다의적이 아니고 유비적이다. 유의 선성(善性) : ① 의지의 지향으로서의 선(善) : 지성이 지향하는 것을 진(眞)이라 하고, 의지가 지향하 는 것을 좋은 것, 선(善)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은 모든 것이 욕구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은 모든 사람이 다 욕구하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누가 욕구하든 좋은 것이기 때문에 욕구하면 그것은 선이다. ② 선의 분류 : 선성은 크게 참된 선〔眞善), 쾌락선, 유익선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참된 선은 사물의 본성을 완성하는 선이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의 모든 본질적 선을 의미한다. 쾌락선은 순전히 즐거움 때문에 추구되는 선이며, 유익선은 다른 좋은 것 즉 다른 선을 얻기 위해 필요한 선이다. 따라서 쾌락선과 유익선은 참 된 선에 근거하여 추구되어야 하는 선이다. 존재론적 선은 모모든 유(존재)는 선이다' 로 표현된다. 그 이유는 모든 유 즉 존재는 특정한 현실태, 곧 완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완전성은 추구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바로 선성인 것이다. ③ 선의 유비성 : 세계 내 모든 유한유(有限有)의 선은 세계 내 존재가 제1 존재 즉 신의 존재에서 유래되는 것과 같이 제1 존재의 속성인 무한선 즉 최고선에서 유래된다. 따라서 선성은 유비적이다. ④ 가치론 : 전통 철학은 존재 안에 있는 욕구할 만한 선을 지성이 인식하고, 그 선에 자유 의지가 작용하면서 가치가 성립된다고 본다. 지성이 선을 조명하고 판단하여 자유 의지로써 부여하는 것이 가치이다. 따라서 가치 의 형이상학적 최종 근거는 인격의 품위 즉 인간 정신의 본성에 있는 것이다. ⑤ 악(惡) : 악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 는 것은 어떤 것이든 다 완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한 것이다. 따라서 전통 형이상학은, 있어야 할 완전성 즉 있어야 할 선이 결여된 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악이란 도덕적 악만이 아니라 물리적 · 정신적 모든 결함과 불행, 고통 등을 내포한다. 예를 든다면 탈장, 결장 등으로 겪는 고통은 장이 본래 있어야 할 질서 즉 정상 상태에 있지 않고 질서의 결여 상태에 있게 되어 일어나는 고통 즉 악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학설은 페르 시아 철학 등에서 인정하는 바와 같은 근원적 선에 대등 하는 근원적 악, 즉 모든 악의 원천으로서의 근원적 악을 인정하지 않는다. ⑥ 미(美) : 선론(善論)에서 미론(美論)이 풀이된다. 미는 온전함, 균형, 빛남의 세 가지 요소로 성립된다. 미는 시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에 포함되며, 따라서 미의 느낌에는 감각적이며 주관적인 면이 강하다. ⑦ 예술 : 미는 객관성과 주관성에 의해 성립되며 예술의 세계를 이룬다. 미는 그 구성 요소로서 주관적 요인과 객관적 요인을 요구한다. 이런 객관적 요인과 주관적 요인의 상호 작용으로 미감이 성립된다. 따라서 미를 지 각하는 주체의 소지에 따라 미감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게 된다. 존재의 완전성의 한 측면인 미의 세계를 예술이라 한다. 따라서 예술도 존재의 완전성의 표현이어야 한다. 예술은 다양스럽게 전개되며 자연과 인간을 풍요 롭게 하며 완성해 가야 한다. 이런 완성에 역행하게 될 때 예술도 다른 학문들과 같이 그 한계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자연 과학 등 모든 학문이 윤리학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과 같이 예술도 윤리학과 깊이 관련된다. 〔유의 내적 구성] 구성 원리 : ① 유의 현실태(現實態) 와 가능태(可能態) : 유 혹은 존재자는 내적으로 현실태 와 가능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현실태와 가능태설은 형이상학의 핵심 부분이며, 이것은 경험 세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 세계에서 경험적으로 만나는 모든 유는 변화한다. 물체는 움직이며, 식물은 성장하고, 동물은 나고 죽으며 인간은 지식을 쌓아간다. 이와 같이 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변화는 사물들의 내적 구조로 현실태와 가능태를 인정할 때 그 설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변화는 가능 상태에 있던 것이 현실 상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현실태와 가능태의 유와 순수 현실유 : 유의 현실 태와 가능태설은 유를 구분한다. 이런 두 요소로 구성된 유는 구별을 갖지 않는 존재 즉 순수 현실유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넘어갈 때 어떤 외부적 원인을 요청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 또다시 현실태와 가능태로 구성된 것인 경우 그런 원인 계열이 무한히 소급 해 갈 수 없고 제1 원인자 즉 더 이상 현실태와 가능태로 되어 있지 않는 순수 현실유(존재)인 제1 원인이 필연적 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③ 가능태의 현실태의 제한성 : 유의 현실태는 유의 가능태에 의해 제한된다. 변화하는 유는 그 가능성에 따라 현실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유의 현실태는 그 가능성에 의해 제한된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가능태는 각기 다른 현실태를 이루며 현실유의 다수를 이룬다. 유의 가능태는 현실태를 지향한다. 유의 현실태는 가능태보다 우위에 있다. 유의 현실태는 가능태의 완성이다. 따라서 유 의 현실태와 가능태는 실재적으로 구별된다. 본질과 존재 : ① 본질과 존재의 개념 : 유의 본질과 존재설은 서구 철학의 핵심이 되어 본질 철학과 존재 철학의 흐름을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런 흐름의 원천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존재와 본질 개념을 서구 철학에 도입하여 발전시킨 데에서 기인한다. 유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설은 유의 가능태와 현실태설에서 성립되었다. 즉 존 재는 유의 현실태에 해당되는 개념이고, 본질은 유의 가 능태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본질은 사물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예컨대 '불사조가 무엇이냐' 는 물음에 대한 답의 경우인데, 이때는 본질의 문제이다. 반면 '그것이 존재하느냐' 의 물음에 대한 답이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② 본질과 존재의 실재적 구별성 및 제1 원인 즉 신 : 이 두 물음과 답은 전혀 별개의 것이어서 이 두 요인은 실제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유한 유(有限有)들은 실제로 구별되는 존재와 본질로 구성된다는 주장을 하였다. 존재와 본질의 구별이 없는 존재뿐인 존재는 제1 원인인 신뿐이다. 〔유의 범주론〕 범주란 유한한 유를 분류하는 구별이다. 범주는 형이상학적 범주와 논리적 범주로 구별된다. 형이상학적 범주는 유의 최고 존재 양식이다. 즉 유를 가장 근본적인 최고유(最高類)에 의해 구별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범주를 실체와 우유(偶有)에 속한 양(量), 질(質), 관계, 능동(작용), 수동, 시간, 공간, 상태(배치), 소속 의 열 가지로 생각하 였다. 실체와 우유 : ① 실체 개념 : 실체는 우리의 내부적 · 외부적 경험에 명백하게 나타나는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얻어진 개념이다. 사물의 변화는 실재하지만 그런 변화가 사물의 본질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하겠지만 그 사람 자 체는 항상 A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물의 변화 중에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주체가 있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와 같이 변화 밑에 있는 것을 실체라고 한다. 실체는 그 자체 안에 있는 것,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있는 것이고 다른 것 안에 속해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② 우유 개념 : 실체 개념과 마찬가지로 우유도 변화 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개념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많은 것들, 변하는 것들은 다른 것에 의존한다. 예를 들 면 운동은 운동하는 주체에 속하며, 사고는 사고하는 주 체(자아)에 속한다. 다시 말해 운동이나 사고 등은 그런 것들의 주체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유의 본질은 다른 것 안에 속해 있는 것이며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다. 인격 : 실체 개념에서 인격 개념이 도출된다. 인격 개념에 대해서는 보에시우스(A.M.T.S. Boetius, 470/475?~ 524)가 내린 정의, 즉 '인격은 이성적 본성을 가진 개별 적 실체이다' 가 유명하다. 이 정의는 인격의 존재론적 규정이다. 서구의 인격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교의와 깊 이 관련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육화론과 삼위 일체 론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삼위 일체의 위격(位格, persona)은 신격(神格, persona divina)이고 인간의 위격은 인격(人格, persona humana)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습으로서의 인간은 위격 즉 인격을 갖는다. 인격은 근본적으 로 이성적이고 개별적인 실체이며, 한 인간의 전체이다. 따라서 이 특성은 개별적 실체성 혹은 자립성(독립성) 완전성, 양도할 수 없는 것, 일회적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인격은 신적인 것이며 거룩함을 지닌다. 물론 위에서 말 한 이성은 자유와 사랑을 수반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인간학 등 다른 분야에서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인격의 개방성과 초월성, 공동체성, 도덕성, 역사성 등도 각 분 야에서 깊이 있게 논해질 것이다 〔원인론 〕 원인의 필요 : 이 세계의 사물들은 현실태와 가능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물이 현실태에서 가 능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외적 원인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하나의 꽃씨(가능태)가 꽃(현실태)으로 피어나기 위 해서는 적당한 토양과 온도와 수분 등, 꽃씨 밖에 있는 요인들의 작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의 가능태와 현실 태설에서 원인론이 성립된다 원인의 분류 : 원인은 일반적으로 결과와 관련되어 네 가지로 구분된다. 즉 질료인(質料因), 형상인(形相因), , 능동인(能動因) 혹은 산출인(産出因) 그리고 목적인(目 的因)이다. 석상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질료인은 내적 구성 요인이므로 석상의 질료, 즉 돌이다. 형상인은 그 상에 새겨진 상(像), 즉 예를 들면 세종대왕의 상이다. 능동인 혹은 산출인은 그것을 만든 자를 뜻한 다. 즉 조각가이다. 목적인은 왜 그 상을 만들었는가 하는 의도, 즉 목적을 말한다. 예술성을 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목적인이 된다. 이 원인들 중 능동인(산출인)은 대표적인 원인이며, 그 작용으로 다른 것을 있게 하는 외적 원인이다. 능동인 혹은 산출인은 제1 원인과 제2 원인으로 분류된다. 제1 원인은 다른 어떤 원인에도 속하지 않고 다른 모든 원인이 그것에 속하는 원인이다. 제2 원인은 제1 원인에 속하며 다른 것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제1 원인 이외의 모든 원인은 제2 원인이다. 한편 주원인은 다른 원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그 자체의 능력으로 작용하는 원인이다. 예를 들면 조각가는 상을 만들 때 자기 능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조각에 대해 주원인이다. 하지만 도구 원인은 그 자체로는 다른 것에 영향을 주지 못하나 주원인에 사용됨으로써 다른 것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다. 반면 물리적 원인은 그 실제적 작용을 통해 결과를 내는 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다. 그리고 윤리적 원인은 충고와 명령 등으로 다른 지성적 능동자의 의지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다. 인과율 : 능동인의 필연성을 규정하는 원리를 능동인 의 원리 혹은 능동률이라고 한다. 그 형식은 다음과 같다. '모든 우연유(偶然有)는 능동인 즉 산출인을 갖는다.' 다시 말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모든 우연유는 다른 것에서 그 존재를 받는다. '모든 우연유는 필연적으로 원인을 갖는다.' 이러한 인과율은 자명하다. 유가 유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충족 이유를 가져야 한다. 유 자체 내에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면 밖에서라도 그 이유를 가져와야 한다. 이렇게 '원인을 갖는다' 는 표현은 우연유의 본질 분석에서 설명어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연유는 충족 이유 (원인)를 갖는다' 는 원리는 자명적, 즉 분석적이다. 또한 인과율은 보편적이다. 이 원리는 모든 우연유에 해당된다. '우연유가 원인을 갖는다' 는 원리는 설명어가 주어 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원리는 보편적이다. 하지만 인과율은 객관적이다. 우리는 내 · 외적 경험을 통해 능력이 있거나 객관적임을 명백히 알게 된다. 내적 경험을 통해 우리의 행위가 우리 자신의 것이며 자유로운 의지 작용(원인 작용)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고,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원인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영국의 경험론자인 흄이 이런 사실을 단순히 인간의 심리적 현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또 독일의 선험적 인식론자인 칸트가 인과율을 선험 인식 적으로 설명한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경험적 객관성에 근거한 인과율 인식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변화하는 우연유가 객관적이기 때문에 그 존재 이유인 원인도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과율은 객관적이다. 〔신 존재 증명의 다섯 가지 길〕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 길로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하였다. 먼저 인과율에 의한 논증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철학 특히 형이상학에서 극치를 이룬다. 이것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 제1권 제1부 제2 문제 제3절에서 명료하게 제시하였다. '둘째 길은 능동인(能動因)의 이유에서이다. 이런 존재를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라 부른다' 고 하 고, 같은 절에서 이 능동인설을 밑바탕에 깔고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더 폭 넓게 전개하였다. 첫째 길로는 운동 계열에서 제1 동자(第一動者)를 도출해 냈다. 모든 움직이는 것이 다른 것으로 인해 움직여지지만 제1 동자는 다른 것에 의해서는 움직여지지 않고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움직임 즉 변화설을 가능태와 현실태설을 개입시켜 설명하며, 이런 제1 동자를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또한 셋째 길을 증명하면서 가능유(근 · 현대 토마스주의에서는 '우연유' )에서 필연유를 도출하였다. 그는 '이런 존재 (필연유)를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라 부른다' 고 하였다. '넷째 길은 사물계에서 발견된다. 사물계에서는 선성 (善性)과 진성(眞性)과 고상성(高尙性)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사물들이 존재한다-서로 다른 사물들의 차이는 선성과 진성, 고상성이 최고도인 것을 기준으로 말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경우에는 그 존재와 선성과 모든 완전성의 원인인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이런 존재 를 우리는 하느님이라 부른다.' 또한 토마스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다섯째 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다섯째 길은 사물들의 통치에서 알 수 있다. 인식력이 없는 사물들, 즉 자연적 물체들이 어떤 목적 때문에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자연물들이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항상 혹은 자주 같은 모양으로 작용하는 데서 나타난다. 그리고 결코 우연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목적에 도달하려고 함이 명백하다. 그런데 인식력이 없는 사물들은 인식하며 깨닫는 어떤 존재에 의해 지휘되지 않으면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화살이 궁수에 의해 지휘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을 목적을 향해 지향시켜 주는 어떤 지성적 존재가 있다. 이런 존재를 우리는 하느님이라 부른다.' 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의 존재에 이어 하느님의 속성들, 예를 들면 그의 단순성, 완전성, 선성 (善性), 무한성, 사물들 안에서의 편재성(遍在性), 불변 성, 영원성, 일체성(단일성) 등을 계속 논하였다. 〔분유와 참여, 내재와 초월] 분유와 참여 : 토마스 아퀴나스의 위와 같은 신론에 근거하여 전통 형이상학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분유와 참여설을 성립시켰다. 모든 피조물은 근원적인 존재인 하느님이 창조한 것이며, 그 존재와 속성들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는 유비 개념이 성립된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무에서 있게 된 것이며, 그 존재 또한 하느님의 능력에 의존하여 지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존재와 속성을 받았으며,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런 경우 '분유'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며, 나누어 주는 편에서는 '분여' (分與)이고 나누어 받는 편에서는 '분수' (分受)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권인 한국이나 일본에 서는 이런 관계를 '분유' 라고 하였고 중국에서는 '분수' 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그 존재와 속성이 근원적 존재와 속성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특히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인간의 경우, 그 영혼과 생명에 있어 하느님의 존재와 생명에 참여하는 높은 차원을 지닌다. 그러나 문맥상 또는 표현상 어색함이 없는 경우 이 두 낱말, 즉 분유와 참여는 혼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재(內在)와 초월(超越) :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런 존재론적 관점에서 피조물은 세계 내적 존재이고 창조주는 초월적 존재이지만, 피조물은 창조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고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경우 세계 내 존재이면서도 그 영혼으로 그것을 넘어 근원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를 지향한다. 창조주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 내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피조 물과 하느님 사이의 내재와 초월, 초월과 내재는 순환적인 관계에 있다. 특히 인간의 존재와 삶에 있어 이 점은 더욱 명백하며 두드러진다. (⇦ 존재론 ; → 경험론 ; 그리스 철학 ; 니콜라오, 쿠사의 ; 로체 ; 마르셀 ; 보편 논 쟁 ; 소크라테스 ; 스코투스 ; 스콜라학 ; 실증주의 ; 아 리스토텔레스 ; 아벨라르 ; 아우구스티노, 히포의 ; 야스 퍼스 ; 에크하르트 ; 엘레아 학파 ; 오컴 ; 자연 신학 ; 자연 철학 ; 철학 ; 칸트 ; 키에르케고르 ; 토마스 아퀴나스 ; 플라톤 ; 피히테 ; 하르트만, 니콜라이 ; 하이데거 ; 합리주의 ; 헤라클레이토스 ; 현존재) ※ 참고문헌  Aristoteles, Metaphysica, Physical E. Coreth, Metaphysik, 2e., Insbruck, 1964/ P. Dezza, Metaphysica generalis, Roma, 1965/ C. Fabro, La Nozionce Metaphysica di partecipazione secondo S. Tommaso d'Aquino, Milano, 1939/ L. Raeymaeker, Philosophy de I'être, Louvain, 1947/ G.W.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I · II, Frankfurt, 1969/ M. Heidegger, Sein und Zeit, 5e., Frankfurt, 1949/ ──, Was ist Metaphysik, 5e., Frankfurt. 1949/ J.B. Lotz, Die Identität von Geist und Sein, Roma, 1972/ A.M. Moschetti, Metapisica, Enciclopedia Filosopica, vol. 5, Roma, 1979/ G.F. McLean, 9, 2003, pp. 547~553/ Battista Mondin, Storia della Metafisica, vols. 1~3, Università Urbaniana, Roma, 1998/ 稻垣良典 · 福谷 茂, 新 力 卜 リ ツ ク 大事典》, 東 京, 研究社, 1998/ Thomas Tyn, Metafisica della sostanza, partizipazione e analogia entis, Bologna, 1991/ J. De Finance, Conoscenza dell' Essere, Roma, 1993/ A cura di Alessandro Ghisalberti, Giovanni Duns Scoto ; Filosofia e teologia, Milano, 1995/ P. Gilbert, La semplicita del principio : Introduzione alla metafinica, Roma 1992/ 정의채, 《젊은이들을 위한 철학》, 이문출판사, 1988/ ──, 《형이상학》, 10판, 열린, 1997/ -, 《존재의 근거 문제》, 4판, 열 린, 2000/ 토마스 아퀴나스, 정의채 역, 《신학 대전》 라틴-한글대역 1권, 5판, 바오로딸, 2002/ 토마스 아퀴나스, 정의채 역 《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 라틴-한글대역판, 바오로딸, 2004. [鄭義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