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조

刑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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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중앙 관서인 육조(六曹)의 하나. 추관(秋 官) 또는 추조(秋曹)라고도 한다. 고려의 형조를 계승하 여 태조 때 설치되었으며, 법률 · 상언(詳讖 : 죄를 살펴 의논함) · 사송(詞訟 : 민사 사건) · 노예에 관한 일을 관장 하였다. 1405년(태종 5) 관제 개혁 때 정2품 아문(衙門) 으로 승격되면서 권한이 강화되었고, 예하에 상복사(詳 覆司), 고율사(考律司), 장금사(掌禁司), 장례사(掌隷 司) 등 4사(司)가 있어 상복사에서는 중죄의 복심(覆審) 을, 고율사는 법령(法令)의 조사 · 심의를, 장금사는 형옥(刑獄)과 금령(禁令)의 일을, 장례사는 노예의 부적 (簿籍)과 포로 등의 일을 각각 관장하였다. 이외에 속사 (屬司)로, 전문적인 실무와 교육을 담당하던 율학청(律 學廳)과 죄수를 관장하던 전옥서(典獄署) 및 좌 · 우포도 청(左右捕盜廳) 등이 있었다. 형조의 관원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거한 이래로 판서(判書) · 참판(參判) · 참의(參義) · 정랑(正郞) · 좌랑(佐郞) · 율학교수(律學教授) · 별제(別提) · 명률(明 律) · 심률(審律) · 율학훈도(律學訓導) · 검률(檢律) 등이 있었고, 《대전회통》(大典會通)을 통해 종6품의 겸교수(兼敎授)직이 증원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속 (吏屬)으로는 서리(書吏), 고직(考職), 대청직(大廳直) , 사령(司令), 방직(房直) 등이 배정되었다. 형조는 조선 시대 내내 존속되다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법무아문(法務衙門)으로 이어졌다. 사법 행정의 최고 감독 기관인 동시에 일반 사송 사건의 (上訴審)으로서의 재심 기관이던 형조는 유죄 (流罪) 이하의 옥송(獄訟 : 형사 사건)은 직접 결정하였으나 사형에 처해야 할 범죄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야 하였다. 범죄 수사는 포도청과는 별개로 하였으며, 재판은 포도청에서 이송된 범죄와 자체에서 수사한 범죄를 함께 다루었다. 박해 때 체포된 천주교인들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고, 일부 지도급 천주교인과 선교사들은 이곳을 거쳐 의금부(義禁府)에서 신문과 재판을 받았다. 1785 년 김범우(金範禹, 토마스) 등이 체포된 을사 추조 적발 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일명 명례방 사건(明禮坊事件)은 형조의 금리(禁吏)에 의해 적발된 사건이었고, 신유박해 (辛酉迫害)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사학징의》(邪學懲義)에 당시 신자들이 형조에서 받은 신문과 처결 내용이 수록 되어 있다. ※ 참고문헌  《經國大典》 《增補文獻備考》 大典會通》 《邪學 懲義》. [方相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