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본당
惠化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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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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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의 혜화동 성당과 현재의 성당.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58-2 소재. 1927년 4월 29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네딕도 ·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 관할 구역은 혜화동, 명륜동 1~4가, 동숭동, 동소문동 1~2가, 연건 동, 이화동, 삼선동 1~2가, 성북동 1가 일부. [교 세] 1927년 약 800명, 1937년 2,844명, 1955년 3,640명, 1960년 3,885명, 1965년 4,630명, 1970년 6,120명, 1975년 6,173명, 1980년 5,206명, 1985년 6,395명, 1990년 7,245명, 1995년 5,932명, 2000년 6,428명, 2005년 5,681명. [역대 신부] 초대 시잘레(P. Chizallet, 池士元) 베드로(1927.4~1929. 5), 2대 서기창(徐起昌) 프 란치스코(1929. 5~1936. 5) 3대 오기선(吳基先) 요셉 (1936. 5~1939. 7), 4대 생제(P. Singer, 成載德) 베드로 (1939. 7~1948. 6), 5대 크레이그(H. Craig, 奇厚根) 후고 (1948. 6~8), 6대 더피(P. Duffy) 파트리치오(1948. 8~1950. 6), 7대 정원진(鄭元鎮) 루가(1950. 11~1959. 5) , 8대 장금구(莊金龜) 그리소스토모(1959. 5~1962. 9), 9대 류수철(柳秀徹) 도미니코(1962. 9~1968. 6), 10대 이계중 (李啓重) 세례자 요한(1968. 6~1973. 5), 11대 박귀훈(朴 貴勳 요한(1973. 5~1975. 5), 12대 박희봉(朴喜奉) 이시 도로(1975. 5~1980. 5), 13대 이기명(李起明)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0. 5~1985. 8), 14대 이상훈(李相勳) 리노 (1985. 8~1991. 8), 15대 박순재(朴舜宰) 라파엘(1991. 8~1995. 9), 16대 염수의(廉洙義) 요셉(1995. 9~1998. 9) 17대 나원균(羅元均) 바오로(1998. 9~2003. 9), 18대 김 철호(金哲鎬) 바오로(2003. 9~현재). 혜화동 본당이 설립되기 전 동소문(東小門) 지역의 신자들은 1909년 백동(柏洞, 현 혜화동)에 정착한 성 베네덕도회 수도원의 성당 주일 미사에 참례하거나, 1918년 경에 설정된 동소문 밖 공소의 공소 예절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27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함경남도 덕원(德源)으로 이전하게 되자 서울 대목구장 뮈텔 (G.-C-M. Mutel, 閔德孝) 주교는 코친차이나(월남 지역) 교구의 르 쿠브르(Le Couvre) 신부가 희사한 돈으로 백 동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건물을 매입하여 본당 설립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27년 4월 29일 시잘레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서울 대목구의 세 번째 본당인 백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베네딕도회가 아직 완전하게 철수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잘레 신부는 서울 대목구 주교관에 머물다가 10월 18일에야 본당에 부임할 수 있었다. 그는 성당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옛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성당을 사용하였으며, 사제관은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가 사용하던 거실을 활용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1929년 초에는 남자 신자 20 여 명이 모여 '혜화동 청년 친우회' 를 창설하고 자선 사업과 전교 사업을 전개하였다. 2대 주임 서기창 신부 재임기인 1929년에는 옛 수도원 성당을 백동으로 이전한 소신학교에 양보하고, 대신 수도원 부속 건물이던 목공소를 성당으로 개조하여 9월 에 라리보(A.J. Larribeau, 元亨根)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고 주보를 '성 베네딕도' 로 정하였다. 1932 년 9월에는 신자들이 모금한 성금으로 종을 마련하였으 며, 1929~1933년에는 안나회와 여자 성가대, 혜화동 소년회 등이 조직되었다. 3대 주임 오기선 신부 재임기 인 1937년경에는 종현(현 명동) 본당과의 경계 조정으로 관할 구역이 종로 3가 지역까지 확장되었고, '어린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우게 하여 민족의 얼을 심겠다' 는 취지로 1937년 4월에 '혜화유치원' 을 설립 · 개원하 였다. 유치원이 개원하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 들이 파견되어 원아 교육과 본당의 전교 활동 등에 참여 하였고, 1938년 3월에는 '가톨릭 여자 청년회' , 12월에는 '성 프란치스코 재속 형제회' 가 발족되어 본당 활동을 활성화하였다. 이와 같이 혜화동 본당의 기반이 확고해지면서 4대 주임 생제 신부 재임기인 1942년 5월에는 첫 번째 자본당 (子本堂)인 제기동 본당이 설립 · 분할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유아 영세를 받은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철저히 주입시키기 위해 주일학교 상급 학년을 대상으로 영세 허원 재신식(再新式)을 실시하였고, 1943년 12월에는 '성가 소비녀회' 를 설립하였다. 이어 1945년 5월에는 두 번째 자본당인 미아리(현 길음동) 본당을 분할하였고, 1946년 6월에는 제1회 성체 거동 행사를 거행하였으며, 12월에는 청년회를 지도하던 조창희(趙昌熙, 베네딕도) 보좌 신부가 본당 청년들의 사목을 위해 《청년 미사》를 편찬하였다. 1947년경에는 본당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 영하기 위해 자문 기구인 '본당 유지 위원회' 를 조직하 였고, 같은 해에 신자 의사들의 친목 단체인 '가톨릭 의 사회' 를 발족하여 전교뿐만 아니라 생명이 위독한 환자 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의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 6월 생제 신부가 전임되면서 파리 외방전교회 를 대신하여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본당 사목권을 인수받아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5대 주임 크레이그 신부는 부임 직후 교통 사고를 당해 치료차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1948년 8월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더피 신 부도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1950년 9월 서울이 수복된 후 11월에 7대 주임으로 정원진 신부가 부임하면서 한국인 신부들이 본당 사목을 맡기 시작하였다. 1952년 4월에는 전쟁으로 폐쇄되었던 혜화유치원을 다시 개원하였고, 본당 설립 25주년 은경 축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성당 건물이 낡고 협소하여 많은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1954년 3월에는 '신축 성당 건립 기성회' 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성당 신축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후 1955년 4월에 종로 본당이 설립되어 종로 3가 지역을 이관하였고, 10월에는 세 번째 자본당인 돈암동 본당을 분할하였으며, 1956년 6월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도봉리 산 66의 1번지 임야를 매입하여 본당 묘원으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1958년 6월 에 성당 신축 정초식을 거행하면서 본당 주보 성인을 기존의 '성 베네딕도' 와 더불어 '성녀 소화 데레사' 로 정 하였고, 1959년 2월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방학리 산 65의 1번지를 매입한 뒤 묘원 사용 인가를 받았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혜화동 본당은 본당 시설을 신축하는 등 발전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 과 8대 주임 장금구 신부 재임기인 1960년 5월에는 성 당과 사제관(1층)을 완공하여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또 1961년 3월 에는 본당의 주요한 소식을 담은 <혜화동 성당 주보> 창간호를 발간하였으며, 10월에는 유치원의 학급이 증설 됨에 따라 유치원 후관 원사(141평)를 신축하였다. 이어 9대 주임 류수철 신부 재임기인 1963년 5월에는 회장단 을 구성하였다가 이듬해 3월 운영 위원회로 개칭하였고, 1965년 8월에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동교리 산 14-1 야산에 묘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에는 유치원 본관(3층)을 신축하였고, 11월에는 수녀원 (2층)을 완공하였으며, 사제관도 2층으로 증축하였다. 10대 주임 이계중 신부 재임기인 1970년에는 강당(2 층)을 증축하였고, 1972년에는 성모상 건립 및 조경 공사를 완료하는 등 성당 주변 환경을 단장하였다. 그리고 11대 주임 박귀훈 신부 재임기인 1973년 8월에는 기존 의 운영 위원회를 '사목 위원회' 로 개편하였고, 1975년 5월에는 네 번째 자본당인 성북동 본당을 설립 · 분할하였다. 12대 주임 박희봉 신부 재임기인 1975년 12월에는 새 사제관(2층)의 축복식을 거행한 뒤 '순교 복자 79 위 시복 50주년 기념 사제관' 으로 명명하였고, 1976년 11월에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자축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1977년 1월에는 본당의 역사를 담은 《백동 반세기》를 간행하였고, 7월에는 '103위 순교 복자 성화를 제작하였다. 또한 1979년 7월에는 성당 제대 후면 벽을 도자(陶磁)로 장식하였으며, 1980년 3월에는 성당 오른쪽 유리창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하였다. 13대 주임 이기명 신부 재임기인 1980년 7월 13일에 는 본당 주보 <혜화> 1000호를 발간하고, 1001호부터 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에서 발행하는 <서울 주보>로 통합 발행하였다. 이어 7월에는 성모상, 예수 성심상, 성 요셉 상을 기증받아 성당에 안치하였으며, 8월에는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하여 총회장이 기존의 사목 위원회와 신설 사도직 단체 협의회를 통괄 운영하게 하였다. 그리고 1981년 3월에는 수녀원(3층)을 준공하였고, 9월에는 성모회에서 복자 김대건 신부상을 기증하였으며, 1982년 5월에는 성모 동산을 새로 조성하였다. 한편 1982년 서울시의 지하철 4호선 공사 계획에 따라 본당의 대지 일부가 수용되어 부득이 성서 · 성물 보급소, 숙직실 등이 철거되자, 본당에서는 교육관을 신축 하기로 결정하고 동성중고등학교에서 필요한 대지 일부 를 확보하였다. 교육관 공사는 9월의 기공식을 거쳐, 1983년 5월에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준공 감사 미사를 봉헌하였다. 14대 주임 이상훈 신부 재임기인 1985년 10월에는 동성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 대회와 백일장을 겸한 '백동제' (柏洞祭)를 개최하여 주일학교 학생들 간의 친교와 일치를 도모하였고, 청년 연합회 주최로 제1회 백 동 문화제' (柏洞文化祭)를 개최하여 청년들의 공동체 형성과 의식 계발 및 청년 문화 개발에도 노력하였다. 1987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60주년을 기념하여 6월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축성식과 기념 미사 등을 거행하였고, 《백동 60년사》 발간 및 60주년 기념 자축 음악제 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989년 11월에는 소규모의 전례 행사, 교리 강좌 등을 위해서 지하 성당(현 소화 성당)을 완공하였고, 1991년에는 성당 왼쪽 유리창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하였다. 15대 주임 박순재 신부 재임기인 1991년 10월에는 성모 동산의 성모상을 성당 계단 왼쪽으로 옮기고, 요셉 상을 계단 오른쪽에 안치하였다. 아울러 도로변 담장 안쪽에 십자가의 길을, 오른쪽 성당벽에 로사리오의 길을 조성하였으며, 1992년에는 소공동체 운동 활성화를 위해 본당 구역을 4개 지구 8개 구역으로 개편하였다. 1993년 3월에는 청동으로 대형 십자가를 제작하여 종탑에 설치하였고, 5월에는 지하 성당을 보수한 후 정식으로 '소화 성당' 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어 9월에는 제1회 '본당 공동체의 날' 을 개최하여 기념 미사, 백동 사진전 등을 열었고, 1994년 10월에는 강당을 2층에서 4층으 로 증축하고 '백동관' 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지속적으로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도록 새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였고, 1995년 5월에는 만남의 장소인 '샘터' 를 조성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16대 주임 염수의 신부 재임기인 1996년 4월에는 소화 성당 성체 안치소에 '게싸마니의 기도' 라는 설치 미술 작품을 완성하였고, 11월에는 성당 앞 계단에 새로 한국인 성모상과 요셉상을 제작하여 안치하였으며, 12 월에는 본당 소장의 성미술을 도록으로 엮은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를 제작하였다. 1997년 3월에는 정문 오른쪽에 성물 보급소(2층)를 완공하여 '분도의 집' 으로 명명하였고, 9월에는 《백동 70년사》를 간행하였으며, 10 월에는 본당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 미사, 체육 대회, 연주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였다. 17대 주임 나원균 신부 재임기인 1999년 6월에는 혜화유치원 6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 미사, 전시회, 바자회를 개최하였고, 8월에는 수녀원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2000년 9~12월까지 대희년 사목 계획으로 남성 구역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구역별로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10월에는 성당 대보수 공사를 시행하였다. 18대 주임 김철호 신부 재임기인 2004년 10월에는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실시하였으며, 12월에는 혜화동 본당 소식지인 《백동》을 창간하였다. 2005년 현재 혜화동 본당은 매월 첫째 주 금요일에 남성 소공동체 모임을 갖는 등 소공동체 모임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백동 본당 ; → 서울대 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2004년 11월 14일자/ 《柏洞 半世 紀 - 惠化洞本堂 50年史》,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교회, 19771 《백동 60년사》, 천주교 혜화동교회, 1987/ 《백동 70년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교회, 1997/ 《柏洞》 창간호(2004. 12),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교회.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