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인 (1805~1839)

權得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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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던 권득인 베드로(탁희성 작).

성물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던 권득인 베드로(탁희성 작).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성도. 1841년 8월 교수형을 받아 순교한 권성여(프란치스코) 의 아우. 천주교 신자를 부모로 하여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을 하였으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16세 때 모 친마저 여의게 되었으므로 가난하여 천한 일로 생활을 꾸려 나갔다. 혼인한 뒤에는 얼마 동안 약장사를 하는 형 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聖物) 등을 만들어 팔았다. 특히 30세 무렵부터는 더욱 열심히 교리 를 실천하면서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 을 위해서도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샤스탕 (Chastant, 鄭牙各伯)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뒤에는 그를 자신의 집에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 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마자 1월 16일(음 1838년 12 월 2일)에 아내, 처남, 어린 자녀, 김노사(金老沙, 로사) 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받 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신앙으로 극복하고, 오히려 배교 하고 풀려난 가족들에게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약 5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던 그는 5월 24일(음 4월 12일)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남명혁(南明 赫, 다미아노) 등 8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아 35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 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 해 ; 김노사)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기해일기》/ 《承政院日記》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