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계동 본당
虎溪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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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1동 953 소재. 1975년 11월 24일 안양(현 중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1979년 9월에 본당 명칭이 '군포' 에서 '호계동' 으로 바뀌었다. 주보는 성 최경환 프란치 스코. 관할 구역은 동안구 호계1동 전 지역과 호계2 · 3 동 일부 지역. [교 세] 1975년 1,345명, 1980년 1,522 명, 1985년 2,817명, 1990년 4,427명, 1995년 12,457명, 2000년 9,177명, 2005년 4,268명. [역대 신부] 초대 고건선(高建善) 바오로(1975. 11~1977. 4), 2 대 한봉주(韓鳳株) 클레토(1977. 4~1980. 4), 3대 김영배 (金永培) 요한(1980. 4~1984. 9), 4대 이규철(李圭喆) 요 셉(1984. 9~1987.3), 직무 대행 임언기(林彥基) 안드레아 (1987. 3~1988. 2), 5대 송병수(宋炳秀) 시몬(1988. 2~1995. 1), 6대 최경환(崔敬煥) 마티아(1995. 1~2001. 1), 7대 서강하(徐康夏) 마태오(2001. 1~2003. 9), 8대 안형 노(安衡老) 야고보(2003. 9~현재). 호계동 지역에는 1970년 초에 이미 공소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듬해 4월에는 금정리, 당리, 안금정리, 벌터 공소 신자들과 함께 금정리 206번지(213평)에 합동 강 당(50평)을 건립할 정도로 활발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안양 · 군포 지역에는 안양 본당만이 설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 모두를 관할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안양 본당의 양병묵(楊柄默, 루 가) 신부는 호계동 지역을 분할하기로 결정하고, 1974 년 8월에 수원교구의 지원을 받아 안양시 호계동 527번지(현 953번지)에 성당 부지(641평)를 매입하였다. 본당 설립 계획이 계속 추진되는 동안 호계동과 군포 지역에 공업 단지가 조성되어, 인구수가 증가하면서 신자수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교구에서는 1975년 11월에 군포 본당을 신설하고, 초대 주임으로 고건선 신부를 임명하였다. 설립 당시 관할 구역은 군포 지구, 의왕 · 고천 지구, 호계 지구, 청계 지구였고, 총 신자수는 1,345명이었다. 본당이 설립되자 앞서 매입해 두었던 부지에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977년 3월에는 성당(132 평) · 사제관(62평) · 기타 부속 시설을 완공하고, 4월 11 일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2대 주임 한봉주 신부 재임기인 1978년 6월에는 하우 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청계 공소 신자 26세대 168명을 하우현 본당으로 편입시켰고, 11월에는 관할 공소인 산본리 공소 신자 36세대 151명을 10월에 설립 된 안양6동(현 명학) 본당으로 이관시켰다. 그리고 이듬 해 9월에는 성당이 행정 구역상 안양시 호계동에 위치해 있음을 감안하여 본당 명칭을 '군포' 에서 '호계동' 으로 변경하였다. 3대 주임 김영배 신부 재임기인 1980년 8월에는 수녀원 신축 공사를 마무리하는 한편 사제관 증축 공사도 끝마쳤고, 9월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분원을 설치하였다. 이듬해 3월에는 본당 주보 성인을 복자(福者) 로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김남수 주교의 지적에 따라 '최경환 프란치스코' 에서 '예수 부활' 로 바꾸었고, 10월에는 군포 지역의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때마침 군포 지역의 구획 정리 작업이 시작되자 금정리 산 18번지의 대지(1,015평)를 매입한 뒤 1982년 4월에 군포 성당 신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어 10월에 는 본당의 소식을 담은 호계동 주보 창간호를 발행하였고, 다음해 2월에는 장내동 본당(안양 본당의 후신) 신부 가 맡고 있던 안양 교도소 사목을 인계받아 재소자들에 게 교리를 가르치고 미사를 봉헌하였다. 8월에는 군포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12월에는 성물 판매 이익금으로 조립식 강당 '만남의 집' 을 세웠다. 1984년 1월에는 호계 10구역 신자들을 명학 본당에 편입시켰고, 9월에 군포 본당이 설립되자 김영배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4대 주임 이규철 신부 재임기인 1984년 9월에는 고백 소와 주일학교 교실, 유아실 등 성당 부속 시설을 단장하 였고, 이듬해 9월에는 포일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하고 그 지역에 있는 상가 4층을 임대하여 10월부터 미사를 봉헌하였다. 1986년 10월에는 포일 성당의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이듬해 3월에는 포일 본당이 설립 되면서 이규철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이에 따라 임언기 보좌 신부가 주임 신부의 직무를 대행하였 는데, 1987년 10월에는 성당 내 · 외부를 개선하는 공사 를 시행하였고, 12월에는 성당의 제대를 교체하였다. 5대 주임 송병수 신부 재임기인 1988년 5월에는 주일 학교 교실을 겸한 다목적 가건물을 완공하였고, 1989년 5월에는 본당 사무실에 컴퓨터를 설치하여 본당 사무를 전산화하였다. 이어 9월에는 신자 재교육을 위해 신앙 대학을 개설하였고, 이듬해 1월에는 주보 성인을 '성 최 경환 프란치스코로 다시 변경하였다. 1993년에는 도시 개발로 신자수가 급증한 평촌동에 성당 신축을 추진하여 8월에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1995년 1월에 평촌 본당을 분리하였다. 6대 주임 최경환 신부 재임기인 1995년 10월에는 사 목 활동의 효율화를 위해 본당 구역을 분리 · 정비하였고, 이듬해에 신자수가 설립 당시보다 10배나 많아진 현 실을 감안하여 성당 신축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3월에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뒤 2년간의 공사 끝에 새 성당을 완공하고 1998년 5월에 최덕기 (崔悳基,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4월에는 성당 마당 동쪽에 성모상을 안치하였고, 2000년 4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과 2000년 대희년을 기념하여 오전동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2001년 1월에 오전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7대 주임 서강하 신부 재임기인 2001년 3월에는 소성당 고백소와 창고를 설치하였고, 4월에는 예수와 성모상을 본당 2층 계단에 안치하였으며, 7월에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상을 본당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2002 년 10월에는 수재민 돕기 바자회를 개최하여 수입금을 원주교구 성내동 본당에 전달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 고, 2003년 9월에는 오랫동안 본당 사목 활동에 헌신해 온 서강하 신부의 은퇴식을 거행하였다. 8대 주임 안형노 신부 재임기인 2003년 11월 9일에는 노인 복사단을 창단하고 이듬해 2월에는 노인 성서 공부 모임을 개강하는 등, 본당 활동에 노인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 수원교구) ※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p. 9221 <가톨릭 시보> 1975년 12월 7일자/ <가톨릭신문> 1998년 5월 17일자/ <교구 동정> 48호(2000. 5. 7), 천주교 수원교구/ 《천주교 장내동 교회사》, 천주교 장내동 교회, 1989/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