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교가
護教家
[라]Apologetae · [영]ap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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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2세기 말에 교회 안팎에서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무리들에 대항하여 저술 활동을 펼친 그리스도교 저술가들. 호교 교부(護敎敎父, Patres Apologetae), 호교론자(護 敎論者)라고도 한다. [배 경] 활발한 선교 활동으로, 2세기 중반 무렵에 이 르자 교회 공동체는 상당히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새로운 문화권 · 이질적인 세상과 접하게 되고, 로마 제국의 박해도 갈수록 심화되었다. 다신교 국가인 로마 제국에서 하느님만이 유일신이며 다른 신들은 우상에 불과하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많은 미움을 받았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황제의 신격화를 거부하자 반정부 집단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또한 급격한 교세의 확장에 놀란 로마 제국은 체제에 대한 불안과 위협을 느꼈고 마 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 황제 같은 권력자나 지 식층은 그리스도교를 반박하고 지속적으로 박해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외에도 교회 구성원 대부분이 하층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어 저질 신흥 종교라는 비웃음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박해를 피해 비밀리에 모여 성찬 전 례를 거행하는 것을 두고 근친상간(近親相姦) 혹은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식인종(食人種)이라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더구나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로부터도 비난과 공격을 받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었다. 이러한 반교회적 · 반유일신론적 상황에 맞서 그리스 도교 지도자들은 교회를 옹호하고 변론할 필요가 있었다. 교회 초기의 사도 교부들이 신자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 시기의 교회는 자기 방어 및 옹호, 자기 변론의 호교적 요소가 특징적이다. 따라서 이때의 교회 지도자들 및 저술가들을 '호교가' 라고 부르는 것이다. 로마 제국과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이들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광신과 미신으로 매도당하는 입장에서 호교가들은 신앙과 지혜로 슬기롭게 대처하며, 용기 있게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신학적 특징] 호교가들은 공권력의 관용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의 결백을 제시하는 한편, 지지자들을 모으 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종교적인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고 하였다. 이러한 호교가들의 신학적인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설명적' (說明的)이다. 이는 교회를 국가 사회의 위험 요소로 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에 위험 요소가 아니라 참되고 온전하며 깨끗하고 경건한 종교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신앙은 올바른 기존 질서를 수호하는 원동력이며 세상을 위한 유익한 힘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교회가 황제나 제국에 유익 할 뿐 아니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합법적인 근거없이 충실한 시민들을 박해하지 말라고 주장하였다. 둘째, '호교적' (護敎的)이다. 이교 사상과 그들의 우상, 미신, 신화(神話)에 대한 모순과 부 (不道德性)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올바른 신관(神觀), 즉 유일신 사상이 지닌 우월성을 설파하였다. 또한 그리스도교만이 우주 만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며, 하느님의 초월성과 그리스도의 육화를 통한 내재성(內在性), 그리고 육신의 부활 등에 대한 교리를 강조하였다. 셋째, '이론적' (理論的)이다. 철학의 이론적 방법 즉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절대 진리 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일깨우면서 인간의 한계성을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철학과 사상, 지성을 뛰어 넘는 신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그 보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진리 자체, 곧 '말씀' 이며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인간의 모든 것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원천이므로 그리스도교는 참다운 학문(신적 철학)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호교가들은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소개하는 데 그친 사도 교부들과는 달리, 비록 투박하지만 이론적으로 신앙을 설명하면서 신학의 기틀을 마련한 최초의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활동과 영향력] 호교가들은 사도들의 열정을 이어받 아 모든 신앙인들은 영웅적인 행동을 보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의식과 함께, 당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삶을 증거해야 하는 증인들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한편, 문학 적인 관점에서 보면 호교가들의 작품들은 사도 교부들의 작품보다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사도 교부들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호교가들 대부분은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후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철학적인 지식을 적용한 것이다. 그로 인해 호교가들은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가 아니라 '철학의 그리스도교화' 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호교가의 대표적인 인물은 유스티노(Justinus, 100/ 110?~165)로서, 대부분의 호교가들이 그러하듯이 그 또 한 강인한 성품 안에 다양한 특징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호교가들은 '그리스도교와의 만남' 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 철학의 지혜와 이성을 빌려왔다. 타시아노(Tatianus, 120/125?~?)는 자신의 작품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Oratio ad Graecos)에서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인용하지 않고 오히려 말씀 (Verbum)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호교가들은 서두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교도들을 교회로 인도하려 고 노력하였다. 호교가들의 '신학적인 언어' 는 당시까지도 고정되지 않은 채 불완전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 교의 들은 정통 신앙에 일치하는 것이므로 몇몇 호교가들의 서식들을 지나치게 공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호교가들에게 가장 문제되었던 것은 '말씀에 대한 교리' 였다. 즉 말씀은 '하느님' 이고, 말씀은 모든 창조물들 이전에 이미 있었고 낳음을 받았으며, 말씀은 성부와 나누어지지 않음' 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구별된다' 는 것이다(Justinus, Dialog., 56-62 Theophilus Antiochiae, Ad Autol., II, 22 ; Tatianus, Disc., 5 ; Athenagoras, Suppl., 10). 그러나 이들의 교의를 잘 이해하려면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들은 '말씀' 을 창조와 계시의 '기관' (器官)으로 간주하기를 좋아하였다. 호교가들에 의하면, 이 세상은 성부의 자유 의지와 권능의 작품처럼 나타났고(Justinus, Dialog., ch. 61, 127, 128), 말씀은 본래 낮은 단계일 뿐만 아니라 '신적 구원 경륜' 이 그렇게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성자는 기원에서뿐만 아니라 창조와 계시 안에서의 역할로 성부께 종속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때로 호교가들의 교의는 그들의 관점과는 달리 잘못 이해되기도 하였다. 유스티노와 타시아노는 '선한 이들 은 상(賞)을 받고 악한 이들은 벌(罰)' 을 받도록 하기 위해 '영혼의 불사불멸' 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그들이 본질적인 불멸성을 하느님에게만 속하는 영원 성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다. 호교가들은 주로 그리스 문화권에서 개종한 사람들로서 그리스도교를 소개하는 데 있어 변증법, 대화론, 수사학 등 그리스 철학 방식을 도입 · 응용하였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그리스화시킴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교가들은 이교도들에 대항해서 그들의 말과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교를 설명한 것일 뿐, 교리 자체를 변질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시 로마 제국의 대중 언어와 그 표현 양 식을 사용함으로써 모든 계층에 전파될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열정적이었던 호교가들의 신앙과 해박했던 그들의 학문적 업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토착화 과정을 거쳐 그리스 · 로마 문화에 정착하는 초석을 세웠다. 또한 그들은 이단과 분열에 맞서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다음 세기에 본격적으로 신학을 펼치는 교부들의 황금기를 여는 단초를 제공 한 것이다. 호교가들로는 과드라토(Quadratus, 2세기), 아리스티데스(Aristides, 2세기), 아리스톤(Ariston), 아테나고라스 (Athenagoras, 2세기), 유스티노, 타시아노,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Theophilus Antiochenus, 120?~180/191?), 사르디스의 멜리토(Melito of Sardis), 리용의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140?~202?), 헤르미아스(Hermias) 등이 있으며 작품에는 《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Epistola ad Diognetum)가 있다. (→ 교부 ; 《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 지》 ; 락탄시오 ; 사도 교부 ; 아르노비오 ; 아리스티데 스 ; 아테나고라스 ; 유스티노 ; 이레네오, 리용의 : 타시아노 ; 테오필로, 안티오키아의) ※ 참고문헌 J. Daniélou, Message évangelique et culture hellénistique, Paris, 1961/ J. Quasten, Initiation aux Pères de I'Eglise, tome Ⅲ, Paris, Cerf, 1962/ R. Grant, 《VChr》 9, 1955, pp. 23~25/ Dictionnaire Encyclopédique du Christianisme Ancien, I, Belgique, Cerf., 1990, pp. 190~191/F. Cayré, Précis de patrologie et d'histoire de la théologie, I, Paris, Desclée et Cie, 1931, pp. 103~106. 〔裵承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