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동 본당
湖南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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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동구 호남동 67번지 소 재. 1968년 1월 18일 남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 관할 구역은 호남동, 불로동, 황금동과 충장로 1~4가, 사동, 서동, 구동, 장동, 궁동, 수기동, 대의동. [교 세] 1968년 400여 명, 1971년 604명, 1976년 958명, 1980년 861명, 1985년 2,289 명, 1990년 3,490명, 1995년 3,523명, 2000년 2,958명, 2005년 2,801명. [역대 신부] 초대 휴스(G. Hughes, 柳) 그레고리오(1968. 1~1969. 1), 2대 마이클스(J. Michaels, 權) 야고보(1969. 1~10), 3대 모란(T. Moran, 安) 토마스(1969. 10~1972. 5), 4대 곰리(M. Gormley, 고) 미카엘(1972. 5~1973. 4), 5대 김정용(金正容) 안토니오 (1973. 4~1975. 9), 6대 이천수(李淺水) 라자로(1975. 9~1977.3), 7대 장옥석(張玉石) 루치오(1977. 3~1983. 1 ) 8대 이재흥(李載興) 힐라리오(1983. 1~1986. 6), 9대 강 길웅(姜吉雄) 요한(1986. 6~1990. 1), 10대 윤용남(尹勇 男) 가리노(1990. 1~1992. 1), 11대 최형락(崔炯洛) 바오 로(1992. 1~1997. 2), 12대 이정남(李正男) 루가(1997. 2~2002. 2), 13대 김정현(金廷炫) 사도 요한(2002. 2~2004. 8), 14대 이재술(李在述) 마르코(2004. 8~현재). 호남동 지역은 광주 시내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광주 지역 신자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반부터 본당 설정이 논의되었다. 광주대교구 헨리(H. Henry, 玄 海) 대주교는 1963년 호남동에 본당을 설립할 것을 결정하고, 이 지역에 거주하던 이정신(李貞信, 요셉)에게 본당 부지를 매입하도록 하여 11월 현 본당 부지를 계약하였다. 그러나 자금을 구하지 못하여 곤란을 겪던 중, 헨리 대주교와 친분이 있던 미국인 오라이언(O'Ryan)의 도움으로 부지를 구입하고 성당 및 사제관 · 교리실 · 전 교 회장 사택의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1967년 12월 25일 성당이 완공되었고, 이듬해 1월 18일 마침내 호남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 신부로는 호남동 성당의 신축을 담당하였던 골롬반 외방선교 회의 휴스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첫 미사는 1월 21일 헨리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휴스 신부는 1월 28 일 '성교회의 모친' 쁘레시디움을 창립하고 2월에는 운영 위원회를 발족하여, 본당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또한 4월에는 여성 사도직 활동 단체인 안나회를 발족하였으며 5월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이듬해 1월에는 운영 위원회를 평신도 사목 협의회로 개편하였다. 2대 주임 마이클스 신부는 1969년 3월 구역 반 모임 활성화를 위하여 구역 반장을 임명함과 동시에 성가대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3대 주임 모란 신부는 1970년 7월 성모회를 설립하였고, 1971년부터는 토요 특전 미사를 거행하였다. 이후 4대 곰리 신부를 마지막으로 7년간 호남동 본당의 사목을 담당하기로 했던 성 골롬반회와의 약정이 끝나게 되어, 1973년 4월 호남동 본당 관할권은 광주대 교구로 인계되었다. 호남동 본당의 첫 한국인 사제이자 5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정용 신부는 1973년 11월에 성 안드레아 김대건상을 건립하였고, 1974년 3월에는 신자와 비신자 간의 거리감을 없앨 목적으로 테니스 코트를 개장하였으며, 11 월에는 광주대교구에서 주최하는 인권 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1975년 3월에는 한문 서예 학원 을 개원하여 비신자들을 성당으로 이끌었고, 11월에는 옛 전교회장 사택에 까리따스 수녀회의 분원을 설립하였 다. 6대 주임 이천수 신부는 성당이 상업 중심지에 위치 하여 신자들의 전 · 출입이 많고 그로 인하여 신자들에 대한 파악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여, 지속적인 구역 · 반 방문을 통해 교우들과 직접적인 친교를 맺어 나갔다. 그리고 본당 사목 협의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각 단체들을 활성화시켜 나갔으며, 1977년 초부터는 서서히 본당의 재정 자립화도 이루어졌다. 7대 주임 장옥석 신부는 1978년 5월 본당 설립 10주 년을 맞아 월보를 발행하기 시작하여, 1981년부터는 <겨자씨>라는 제호의 2면 분량의 주보로 확대 발행하였 다. 또 1980년 3월부터 1987년 5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무의촌 진료 봉사를 시행하였고, 1980년 6월에는 본 당 수위실에 호남 신용 협동 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982년 1월에는 교리실을 증축하고 호남 신용 협동 조합 건물을 신축하였다. 8대 주임 이재흥 신부는 1983년 6월 빛고을의 성모 꾸리아를 창립하였고, 1985년에는 본당 주변 부지를 구입하여 10월에 수녀원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수녀원 건물이 1986년 1월에 완공된 후 그해 3월에는 성체 조배실을 개설하여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하였으며, 5월에는 여성 단체들의 간부로 구성된 여성 협의회를 창설하였다. 9대 주임 강길웅 신부는 1987년 6월 누수가 심한 교리실 옥상의 방수 공사를 하 였고, 이듬해 2월에는 성당 바닥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988년 1월에는 본당 신축 5개년 계획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여 본당 신축 기금을 비축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89년 6월에는 성당 감실 앞에 유아방을 설치하여 부 모들이 부담 없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8 월에는 사제관 응접실에 독서실을 설립하였다. 10대 주임 윤용남 신부는 5월 지붕 공사를 시작으로 6월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공사를 하였고, 10월에는 이전한 신용 협동 조합 자리에 만남의 방을 설치하였다. 또한 1991년 7월에는 성당 의자를 교체하였고, 10월에는 4박 5일 일정으로 흑산도 본당 어린이 50여 명을 초청하였다. 이어 11대 주임 최형락 신부는 1989년 교구 주보에 통합되었던 <겨자씨>를 4면으로 증면하여 1992년 3월 복간하였고, 1993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으로 한마당 잔치 행사를 거행하였다. 또한 1994년 5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장애자 돕기 바자회를, 9월에는 제단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1월에는 《호남동 본당 25년사》를 발간하였다. 12대 주임 이정남 신부와 13대 주임 김정현 신부는 노후한 본당 건물들의 보수 공사를 여러 차례에 걸쳐 시행하였다. 1997년 10월 사무실과 교리실의 외벽 보수 공사를 시작으로 이듬해 2월 성당 건물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였고, 10월에는 정문을 개조하였으며, 2002년 6월에는 사제관 · 교리실 · 성당을 보수하였다. 이어 2003년에는 만남의 방 바닥 공사를 하였고, 10월에는 성당 담장 보수 공사를 하였으며, 2004년 5월에는 성당 담장을 적벽돌로 새로 조성하였다. 더불어 김 신부는 2002년 부임과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 미사를 개설하였고, 2004 년 6월에는 예수 성심상을 봉헌하였다. 그리고 14대 주임 이재술 신부는 2005년 1월 집무실 및 사무실 내부 공사를 하였고, 5월에는 순교자 현양 대회를 가졌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빛 고을 출판사, 1990/ 25년사 편찬위원회 편, 《호남동 본당 25년사》, 천주교 호남동 교회, 1994. [金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