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 - 書

[히]הוֹשֵׁעַ · [그]Ὡσηέ · [라]Prophetia Osee · [영]Book of Ho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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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 단편 1.

호세아서 단편 1.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에 속한 총 14장의 예언서. [책 이름과 저자] 유대교 전통과 초기 교회는 호세아 서를 비롯하여 요엘, 아모스, 오바디아, 요나, 미가, 나 훔, 하바꾸,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등의 12 권을 소예언서로 묶어 한 권으로 취급하였다. 이것은 이 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 대예언서와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열두 소예언서의 주요 핵심은 '메시아 사상과 주님의 날' 을 선포하는 데 있으나, 대예언서의 주요 주제인 '선민의 범죄와 고난' , '남은 자의 회복' , '이 방 국가의 종말, '하느님의 정의와 최후의 심판' 등도 명백히 드러난다. 이 예언서의 명칭인 '호세아' (הוֹשֵׁעַ)는 저자의 이름이며, '구하다 · 돕다 · 해방하다' 는 의미를 지닌 '야샤' (וֹשֵׁעַ)의 히필 완료 3인칭 남성 단수에서 유래하였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민수 13, 8. 16)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2열왕 15, 30)뿐만 아니라 신약의 예수 역시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호세아는 고대의 법률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속박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구체적 행동' , '노예 석방' 등을 의미한다. 전쟁과 관련해서는 '승리' 의 의미가 있고, 종교적으로는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모든 악에서 구원한다' 는 뜻을 담고 있다(신명 20, 4 ; 여호 22, 22 : 판관 3, 9 : 6, 36-37 참고) 이 예언서는 호세아의 글이라고 인정되지만, 몇몇 구절들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1, 7 : 5, 10. 12-14 : 6, 4. 11 : 8, 14 : 10, 11 : 11, 12 ; 12, 2 등). 호세아서의 배경 역시 충분히 증명되지는 않지만, 이 예언서의 저자는 북이스라엘 태생이며 북쪽 지리-특히 길르앗(길앗 : 6, 8 : 12, 12), 타보르(5, 1), 세겜(스켐 : 6, 9), 길갈(4, 15 : 9, 15 : 12, 12)과 베델(벳 아웬 : 4, 15 : 5, 8 : 10, 5)-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역사적 · 종교적 시대 배경]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가 다스리던 시절에 활동 (1, 1 : 후기 편집의 흔적)하였으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예고한 비운의 예언자이다. 남부 유다의 왕인 우찌야(기원전 781~740), 요담(기원전 740~735), 아하즈(기원전 735~716?), 히즈키야(기원전 716~687) 통치 시대와 이사 야 예언자와 동시대 사람이다(이사 1, 1 ; 참조 : 2열왕 1417장). 당시는 여로보암 2세의 집권 말기였으며, 뒤이어 왕위 찬탈의 시대였다(2열왕 15장). 호세아 예언자가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북이스라엘이 번영하였으나, 후기에는 아모스서에도 나타나듯이 정치와 종교의 부패가 극 심하였다. 호세아는 기원전 841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선 예후 왕조의 멸망을 예고하였다(1, 4). 여로보암 2세의 집권 이후 그의 아들인 즈가리야가 즉위하였고(기원전 747, 6개월 통치 후 피살), 뒤이어 살룸(기원 전 747~746, 쿠데타 성공 후 집권), 므나헴(기원전 746~736, 쿠데 타로 집권), 프카흐야(기원전 736~735, 아버지 왕위 계승), 페카(기원전 735~732, 쿠데타로 집권) 그리고 호세아(기원전 732~724, 쿠데타로 집권)가 집권하였다. 이 시대는 노골적인 음모의 시대였다(7, 3-7. 16 : 참조 : 8, 4). 북이스라엘 왕국은 피와 배신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였고(7, 7 ; 8, 4), 그로 인한 정치적 무정부 상태로 말미암아 사회적 혼란과 사회 윤리의 타락을 초래하였으며(4, 2 : 6, 8 ; 7, 1), 통치자들 간의 전쟁으로 나라가 분열되었다. 아시리아가 내전으로 무기력해진 시기인 여로보암 2 세 시대에는 번영기를 맞았으나, 아시리아의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기원전 747~727)가 내전을 진압하고 서진하여 이스라엘을 압박하자 므나헴은 공물을 바쳐(기원 전 738)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2열왕 15, 19-20) 아들 프 카흐야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페카 왕은 반아시리아 정책을 펼치며 아람의 왕 르친과 연합 하여 남부 유다 왕국의 요담 왕을 압박하였다. 뒤이어 남부 유다의 왕이 된 아하즈는 반(反)북이스라엘 정책으로 아시리아와 연합하고(2열왕 15, 37 : 16, 5-9 : 이사 7, 1) 이집트와 협력하였다(2열왕 16장 ; 참조 : 호세 7, 11). 기 원전 734~732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아시리아가 시리 아와 에브라임 동맹을 공격하였다(5, 8-6, 6). 기원전 733년에는 이스라엘 전역을 차지한 아시리아인들이 이 스라엘 백성들을 추방하고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가 사망하는 기원전 727년 까지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종속되어 있었다. 기원전 732년 페카를 죽이고 등극한 북이스라엘의 왕 호세아(2열왕 15, 30)는 아시리아의 왕인 살만네세르 5세 (기원전 726~722)에게 공물을 바쳤다(2열왕 17, 3). 호세아 왕은 아시리아의 종속에서 벗어나려고 이집트에 원조 를 요청하였으나(9, 3 ; 11, 5 ; 2열왕 17, 3-4), 당시 아시리아인들이 북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었기 호세아는 체포되었고 사마리아는 포위되었다(기원전 722). 이어 쿠 데타로 왕권을 쥔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기원전 722~ 705)의 공격으로 사마리아는 함락되었다. 호세아서가 사 마리아 멸망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호세아 예언 자의 활동 시기는 대략 기원전 745~72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14, 1의 사마리아 언급은 기원전 724년 호세아 왕의 체포를 의미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활동한 호세아 예언자는 부패한 기회주의적 정치 행위들을 비판하고, 북이스라엘 안에서 자행되는 '가나안의 신 바알 숭배' 와 '바알화된 야훼 경배' 를 꾸짖었다. 백성은 야훼와 바알을 혼동하고 야훼의 선물인 땅의 소출과 다산을 바알의 것으로 믿고 있었기에(호세 2, 5-15), 양자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1열왕 18 장 ; 2열왕 9-10장). 중앙이나 지방 성소에서의 '모세 신 앙' 과 '바알 예배' 의 혼합주의(syncretism 1열왕 12, 2633 ; 호세 8, 5 : 10, 5)에 직면하여, 호세아는 이스라엘 (에브라임)이 정치적(7, 11)으로나 종교적(4, 11)으로 건 전한 감각을 상실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에브라임은 정치 와 종교를 혼동하고 있으며(7, 8) 사제들은 백성을 가르 치지 않고 부패하였고(4, 4-9 ; 5, 1 : 6, 9), 왕들은 예언 자에게 자문을 구하지도 않는다(8, 4). 흥청망청 먹고 마 시며(7, 3-7), 군인들은 상관들과 왕들을 살해하고(2열왕 16, 9 이하), 아시리아와 계약을 맺으며(12, 2), 주님을 이방인처럼 대하고(8, 12) 주님과의 계약을 파기하였다 (6, 7 : 8, 1).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주님을 찾지 않으며 (7, 7) 정치가들은 이집트에 도움을 청하고(7, 11) 무능 한 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치유는 주님만이 할 수 있으며(5, 13 : 6, 1), 전적으로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세아는 역설하였다. [구조와 내용] 양식과 내용 : 호세아서는 내용상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 1 : 표제 1, 2-3, 5 : 호세아의 결혼 1, 2-2, 3 : 호세아의 결혼과 자녀들의 탄생 (2, 1-3 = 희망의 말들) 2, 4-25 : 주님의 합법적 반론-불충실한 아내 이스라엘에 대하여 (2, 18-25 = 희망의 말들) 3, 1-5 : 하느님의 명령. 즉 호세아는 아내를 맞고, 그녀를 가르칠 것 (3, 5 = 희망의 말들) 4, 1-14, 2-9 : 이스라엘의 범죄와 징벌에 관련된 신탁들 4, 1-10 : 이스라엘의 죄와 사제들의 책임 4, 11-19 : 이스라엘의 방종과 우상 숭배-가 나안의 다산 예배에 참여 5, 1-7 : 이스라엘의 부패-사제들, 왕과 백성 5, 8-6, 6 :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협박진정한 회개의 요청 6, 7-11ㄱ : 이스라엘과 주님과의 관계 파괴피흘림과 우상 숭배 6, 11ㄴ-7, 7 : 이스라엘의 사악함 7, 8-16 : 이스라엘의 전락-하느님으로부터 뭇 민족과 바알에게로 8, 1-14 : 거짓 예배와 거짓 왕들 9, 1-9 : 이스라엘의 비윤리성과 우상 예배 9, 10-14 : 바알 프오르에서 이스라엘의 배신 9, 15-17 : 이스라엘의 사악함이 길갈에서 시작되다 10, 1-8 : 부의 성장과 죄의 성장-송아지와 왕 10, 9-15 : 이스라엘의 사악함이 기브아에서 시작되다 11, 1-11 : 주님의 부성애와 죄많은 아들 12, 1-15 :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입장-야곱과 함께 시작되다 13, 1-11 : 이스라엘의 죽음, 주님으로부터 떠남-과거와 현재 13, 12-14, 1 : 다가오는 처벌에 대한 마지막 경고 14, 2-9 : 회개로 주님께 돌아오라는 호소-하느님 은총의 약속 14, 10 : 결어 '참된 지혜' 본문 내용상의 구별 : 1-3장의 주제는 4-14장과 명확히 구별된다. 1-3장에서 2장은 1장과 3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1장의 자녀들에 대한 언급이 2장과 연결되는데, 2장에서는 아내의 불충실과 자녀들의 탄생을 말하 고 있다. 1장 2ㄴ절은 자녀들 이름의 배경을 설명하고, 이스라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심판의 원인은 아내 이스라엘의 불충실 때문이다. 반면 2장은 3장과 밀접하 게 연관되기에, 결국 1-3장은 한 단위를 이룬다. 또한 이 대목은 주제가 순환적으로 구성되어 있다(1, 1-9 : 2, 4-10 : 3, 1-3[백성의 죄] : 2, 11-15[처벌의 선언] ; 2, 1-3 : 2, 16-25 : 3, 4 이하[자비와 그 결과 : 너의 누이, 사랑스런 여인, 나는 사랑하리라, 그들은 주님을 찾으리라 : 2, 3. 25] ; 3, 5). 1-3장에 소개된 호세아의 결혼과 그 상징은, 주해에 있어서 상당한 논쟁 대상이 되지만, 호세아 자신의 실질적 결혼 체험을 바탕으로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훌륭한 작품이다. 아내 고메르(Gomer) 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유하여, 이스라엘의 불성실에 대비되는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 을 드러내는 구약성서의 걸작품 중 하나이다. 특히 세 자녀의 이름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이스라엘 백성을 겨냥하고 있음을 쉽게 확 인할 수 있다. 즉 "이즈르엘"(피의 역사, 2열왕 9-10장), "로루하마" (가없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자, 출애 34, 6 : 신 명 13, 18), "로 암미" (계약 파기, 출애 6, 7)라는 자녀들의 이름이 지닌 의미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첫째, 역사적 재구성이 1-3장의 문학적 구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결혼' 문제를 '주님 예배' 와 관련하여 유비적으로 묘사하고, 또 너무 일방적으로 주님 예배 문제 해석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2장의 예언을 무조건 1장과 3장 해석의 열쇠로만 여기는 경향은 문제가 있다. 셋째, 1-3장은 결코 호세아의 심리 묘사나 예언자 소개를 하는 것이 아 니라, 오직 주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는 도구 기능만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반면 4-14장은 호세아 시대의 다른 신탁들을 다양하게 싣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들을 구분하기는 매우 힘들 다. 이스라엘의 죄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예언자의 깊은 슬픔이 그의 언어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자신의 어휘로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전한다. 4-14장에서는 주제 연관성(4, 1-11과 4, 12-19)에 따라, 또 주요 어휘(8, 7의 '거두다' , '집어삼키다' 가 1-7절과 8-10절을 연결)에 따라 단위별로 구별된다. 예언은 초 시대적인 이른바 '운동' 이므로 연대기적 배열을 하기에 는 어려움이 있다. 더욱이 9장 10절-14장 9절이 이스 라엘의 과거사를 기록하고, 4장 1절 -9장 9절에서 '약 속' 에 더 큰 비중을 둠으로써 운동의 성격을 간직하였다. 4-14장도 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순환적 구조로 전개 되었다(4-8장 : 12장[백성의 죄] : 9-10장 : 13장[처벌의 위협] : 11장 : 14장[자비의 승리 : 특히 11, 8의 '내 마음이 미어 지다' , 14, 5의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이런 구도는 판관 기 2장 11-19절의 구도(범죄-처벌-구원 요청-하느님의 개 입-회복)와도 유사한데, 이는 호세아가 증언하는 핵심이다.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과 당신의 마지막 행위는 처벌 이 아니라 자비요 '사랑' (אהב)이다. 이 '사랑' 은 호세아서의 핵심 단어에 속한다. [메시지] 호세아서가 지닌 메시지의 배경에는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내밀한 관계' 가 전제된다. 주님은 이스 라엘과 계약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다(6, 7 : 8, 1). 이 관계는 '남편과 아내' , '아버지와 아들' (11, 1-4), '의사와 환자' (7, 1 : 11, 3)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반영된다. 호세아는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따뜻한 보살핌과 동정심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하느님의 이 끄심' 에 근거해서, 이집트 탈출(11, 1 : 12, 10 ; 13, 4), 시나이 계약, 광야 생활(9, 10 : 13, 5), 약속의 땅 도착과 당신의 선물(2, 10) 등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하느님은 지존의 주님이며, 거룩한 분 (11, 9)이고,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호세아서의 전체 메시지를 관통하는 선명한 주제이다. 주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과 자비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하고 있다(11, 1-9). 이스라엘의 죄는 하느님과 의 이전 관계 때문에 더욱 심각하고, 그들의 죄는 하느님의 사랑에 반란으로 응답하는 것이었다. 죄는 사회악으 로서 간음이나 매춘(1, 2 : 2, 4. 6 : 4, 10-12 ; 5, 3 ; 6, 10 : 9, 1)으로 묘사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스라엘의 바알과의 간음이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이라는 것이다 (4, 14). 그렇기에 호세아는 무엇보다도 일반화된 우상 숭배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8, 4-6 : 10, 1-8). "모두... 사제들과 예언자들···내 백성은 나에게 죄를 지었다"(4, 7 이하 ; 참조 : 5, 1 ; 6, 9). 이집트 탈출 때처럼 예언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6, 5 이하) 않고, 백성은 여인들 에 이끌려 조상 야곱처럼 경박해져 있다(12, 13 이하). 백 성은 '충실성' (אמת,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4, 1). 전적 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할 동반자가 말과 행동에 성실성 이 없고(2, 21), 더구나 '친밀감' (707, 신의 · 확고부동한 사랑 · 뜨거운 사랑의 헌신)도 없으므로 인간 관계의 필수적 인 충족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런 문제는 하느님과 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4, 1 ; 10, 12 : 12, 7). 하느님의 사랑은 뜨겁고 헌신적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그런 사랑이 없으며,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심판을 자초한다. 그로 인해 호세아는 아모스 예언자 이상으로 심판을 격렬하게 강조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심판이다. 그런 까닭에 심판은 끝이 아니다. 호세아의 예언 목적(14장)은 '회개' 로 초대하기 위한 것이다. 즉 불성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께 다시돌아 오게 하는 것이다. 호세아는 분명히 심판을 넘어 원상 복귀, 구원, 새로운 관계의 회복을 전망하고 있다(2, 1625). 이와 같이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사랑' 이 마지막 말임을 선포하고 있다. [호세아와 옛 전승] 호세아는 모세의 전승들(탈출 전승과 계약 전승)을 이용하고 있다. 동시에 후대 신명기계 전 승의 입장에서 본다면, 호세아의 것은 옛 전승이 되는 것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왕권 개념을 전승의 개념보다 새로운 측면으로 제시하였으며,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않 아 불법적인(8, 4 : 9, 9. 15) 당대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 정을 일관되게 비판하였다. 그는 판관 시대를 계승하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카리스마적 관점' (charismatic view) 이든, 남부 유다의 다윗 가문과 관련된 '왕가적 관점' (dynastic view)이든, '하느님이 선택' 한 왕들과 그렇지 못한 왕들을 확실하게 구별짓는다. 호세아서는 유다의 다윗 왕권을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권으로 간주하였다 (2, 2 : 3, 5). 〔본문과 편집] 호세아서의 히브리어 본문은 위치 배열 에 문제가 있다. 특히 4-14장이 그러하며, 다양한 번역서가 존재하는 만큼 해석의 어려움도 크다. 칠십인역은 몇몇 본문을 다소 수정하였지만, 마소라 본문 전체보다 결코 월등하지는 않다. 필사자의 실수, 사마리아 함락 후 예언 언어 전수의 어려움(예를 들어 아람어 영향을 받은 히 브리어 사투리) 등의 문제점들이 있다. 아마도 예언자 자 신이 먼저 예언을 하고 글로 남겼거나(3, 1-3의 1인칭 화법), 여러 제자들이 오랫동안 시대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 서 구전으로 전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호세아 의 예언은 구두 선포 직후 문자로 기록되었고, 그것이 사 마리아 함락(기원전 722) 후 남부 유다로 전수된 것으로 여겨진다. 호세아서 1장 1절은 분명 편집된 구절이다. 이 편집 작업은 '이스라엘의 본성' 과 '구약성서에 깊이 뿌리를 둔 왕권' 을 신학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호세아서는 역사적인 북이스라엘 왕국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향해 선포하고 있다. 또한 호 세아의 예언은 보존되고 새롭게 선포되며 다른 유배 전 예언서들도 이와 같은 편집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명기계 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여호수아서로부터 열왕기 하권에 이르는 역사서들을 수집 · 편찬하게 하였 다. 그리고 신명기 법전을 근거로 하느님의 심판이 이스 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현재의 심판을 넘어 미래의 희망이 어떻게 제시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문 서 예언자들과 이스라엘 역사가 주는 메시지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기원전 722년의 사건과 기원전 587년의 사 건 배경을 설명함과 동시에 구원의 희망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신명기계 저자들은 호세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함축된 의미를 실제로 드러나게 하였을 뿐이다. 신명기 계 저자들의 가장 큰 임무는 호세아 스스로의 말들로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심판의 위협으로 충분히 선언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백성에 대한 손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선포' 한다. [정경적 문맥] 호세아서의 최종 형태는 정경으로 분류 된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기 사명을 수행하 였으나, 호세아서의 현재 형태는 분명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하고 있고, 선택된 다윗 가문이 지니는 전 이스라엘' 에 대한 합법적 왕권을 행사하고 있다(2, 1 : 3, 5). 신약성서에서 호세아서의 범위는 더욱 확산되며, 매우 중요한 몇 구절들에서 인용되거나 언급되었다. 그리고 초기 교회에 호세아서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죄 많은 백성의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대표적 주제이며 동시 에 속량, 쇄신 혹은 부활의 전주곡이었다(C.H. Dodd) . 예수는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하여 바리사이파를 비판하였다(마태 9, 13 : 12, 7). 그 문맥은 그리스도론적 이며, 윤리적 원칙이 아닌 예수 자신의 활동과 가르침에 연관된 것이었다. 마태오 복음 2장 15절에서 복음사가 는 호세아서 11장 1절을 인용하였다. 이집트로부터 예 수 귀향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 이 구절은, (혹은 예전에 이집트에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해방시킨 것처럼) 악으로부터의 보호로 여겨진다(R.H. Gundry) . 하지만 호세아서 11장 1절은 예수 구원의 죽음과 부활 을 예시한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의 지상 생 애의 마지막 사건들을 그의 탄생 때부터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Dodd, Lindars, D. Hiil). 그래서 호세아서를 그리 스도교 정경 전체 안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 즉 메시아인 예수는 하느님의 백성을 구체화하고 대변하는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베드로(1베드 2, 10)와 바오로(로마 9, 25 이하)는 호세 아서 2장 1절과 25절의 "로 암미"(내 백성이 아니다) 예언 들을 보존하고 있다. 이는 이방인 선교에 적용되었다 (J.H. Elliott, F.F. Bruce). 사실 호세아는 예수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우리를 예수에게로 인도하였 다.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의 심판을 제거하지 않고 전체를 총괄하며 희망 가득한 미래로 관통한다. 그리스도 교 성서로서의 호세아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제시하며, "하느님은 그토록 사랑하신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신 학] 친밀감 : '해세드' (חֶסֶד, 호세 6, 1)라는 개념 만큼 호세아서의 메시지를 단적으로 구체화시키는 단어는 없다. 이 단어는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며, '친밀감' 이라는 뜻 외에도 '열정' , '경건' , '자비' , '사랑스러운 친절' 등의 뜻이 담겨 있다. '특별한 관계 안에서 참된 사랑을 구체화하는 것' 으로서 '특별한 감정적 · 영적 내 용' 이 내포되어 있다. 호세아서가 구약성서 신학에 탁월 하게 공헌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상호성이 하느 님과 백성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 것이다. 아모스가 이스라엘이 죄 때문에 정의를 위한 하느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실패하였음을 강조한다면, 호세아는 백성의 현실적인 불의는 (본성상 양자가 맺은) 계약이나 합의를 파기한 데서 시작된 것임을 선포 하였다. 호세아에게 있어서 이 계약의 본질은 '해세드' 이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시나이 계약에서 맺은 관계의 성격 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11, 1 ; 참조 : 출애 4, 22). 호세아의 첫째 임무는 함부로 행동하고 무관심한 이스라엘이 시나이에서 맺은 자기 의무 규정을 지키도록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계약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알고 있었지만, 선민의 영적인 관계를 자유로우면서도 동반자적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잘 선포하였다.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신부(2, 7 ; 16, 19)임을 강조하고, 부부 결합의 특성과 효과를 부각시키면서 결혼의 은유를 사용한 것이다. 회개 : 회개(6, 1-4)의 표현은 백성의 진실한 감정(스 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면서도 백성 의 얄팍한 선언(특별한 상호 관련성과 계약 준수 없이, '계약 체결 그 자체로 하느님이 자신들의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 주리 라는 느낌)을 뜻한다. 이에 호세아 예언자는, 진정한 회개 란 정신과 매우 정교한 경험 그리고 의지와 감정(14, 2 참조)을 포괄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호세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 역사 안에 존재하는 백 성의 무지이다. 백성은 진정으로 하느님이 제시하는 윤 리적 · 도덕적 본질들을 이성적으로 알지 못하였고, 또한 시나이 계약으로 마련된 본질적 태도들이 선민의 삶의 길임을 몰랐다. 오히려 백성은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종교 전통으로 오염된 사회 풍조에 크게 현혹되었다. 그 풍 조는 본성상 시나이 계약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진화된 윤리적 특성들과는 거리가 멀며, 하느님이 제시하신 종교적 규정들과 부패한 사회 생활 방식이 부조화됨을 몰 랐다. 시나이 상호 계약의 영성이 세대가 가면서 무시되 었던 것이다. 이에 호세아는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 심판은 옛 계약 관계를 파괴시킨 결 과라고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 하느님은 당신 은총으로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려고 계약 갱신의 길을 열어 주고, 당신의 축복을 쏟아 주려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영성적 접근] 하느님에 대해 알기 : 하느님에 대해 무 지한 것은 원초적인 잘못에서 기인한다. '이스라엘은 주 님을 잊는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바알 을 따르는 자들(2, 15 이하)은 주님을 망각하였다. 이스라 엘은 강한 성읍에 의지하지만 그 성읍을 만든 주님을 망각하였다(8, 14).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 준 능력 있는 유일한 분을 거부하고, 그분에게 거만하였다 (13, 6).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주님이 가르쳐 준 모든 것을 "망각"하였다(4, 6). 심지어 이스라엘을 위한 창조적 이고 구원적인 하느님의 활동과 거기에 따르는 의무 규정들까지도 잊어버렸다(신명 4, 6. 8 ; 시편 78 등 참조) '주님의 가르침을 망각하는 것' 은 곧 '주님 알기를 거부하는 것' 과 같으며(4, 6), '주님을 아는 것' 은 사제가 가르쳐 주는 주님의 말씀, 즉 '주님의 가르침과 지침' 을 받 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행동' 하였다. 과거에 는 아기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걸음 마를 가르치며 팔에 보듬어 안아 주고 목욕시켜 주었으 며, 사랑의 관계를 맺고 먹을 것을 주던 분이었다(11, 14). 그분은 광야에서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지켜 주고(13, 5), 예언자들의 말씀으로 길러 주었다(6, 5). 이 모든 '행동' 이 현재에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바로 오늘 하느님 의 활동이 현재화(2, 10 : 3, 1)되어 이스라엘을 형성시켜 준다(8, 14). '이스라엘이 자신을 위해 하느님이 한 일들 을 잊는다는 것' (2, 15), '에브라임이 하느님의 돌보심을 모른다는 것' (11, 3), '이 백성이 하느님을 모르는 이 나 라에 산다는 것' (4, 1) 자체가, 하느님이 증명해 보인 충 실성과 친밀함을 '전혀 실천할 수 없다' 는 말이다. 그만 큼 하느님의 계명과 법을 모르고 거부하였다(6, 6 : 8, 1. 12). 이런 '무지' 는 많은 장점 가운데 있을 수 있는 어떤 부족이 아니라(4, 1), 모든 결점이 흘러나오는 매우 근원 적인 결핍이다(2, 21 이하 참조). 매춘 : 호세아는 하느님의 활동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 한 표현들을 빌려 왔다. 즉 목자(11, 4), 농부(10, 11), 아 버지(11, 1. 4), 어머니(11, 3), 재판관과 주인(2장), 동맹 자(6, 7 : 8, 1), 특히 남편(2, 18) 등이다. '남편' 개념은 풍요의 신 바알에 대한 신화적 표현에서 나온 이미지이 며(4, 13), 땅을 경작하게 하는 폭풍의 주인 이미지이기 도 하다. 이것을 호세아는 하느님에게 적용하는데, 아내 는 더 이상 땅이 아니라 백성 공동체(2, 4-7 : 예레 3, 1 ; 시편 139, 15 : 욥기 1, 21 등)이다. 상징적으로 하느님의 행위를 드러내는 이 표현들(가슴에 말하다, 유혹하다, 사랑 하다, 결혼하다, 주다 : 2, 10. 16)은 차라리 신랑인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의 태도를 비유하는 것이다. '바람 기' (4, 19 : 8, 7 : 12, 2 : 13, 15)라는 단어는 호세아서에서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뜻이 '매춘' 과 관련이 있다면, 다산의 신과 연합하는 이스라엘의 예식 행위들 때문이며 동시에 호세아 자신의 결혼 생활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 호세아는 자신의 쓰라린 결혼 생활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선포하였다. 호세아 자신이 불 충실-간음-매춘의 드라마 속에 살았다. 그것은 하느님에 관한 이스라엘의 태도와 다르지 않았고, 이미 결혼 생활 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기에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예언서의 본문에서는 두 가지 편집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장의 '그' 화법(주님 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다)과 3장의 '나' 화법(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다)이 2장에서 접목되는데, 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스라엘과 고메르의 불충이 상징화되어 잘 나타나고 있다. 호세아는 바알과 아스다롯 신전 예식의 매춘에 참여하던 여인과 결혼을 하였다(1, 2). '아스다롯 신전에 봉헌 된 소녀와 결혼하지 않는다' 는 당시의 상식을 넘어 호세아는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녀는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 았다. "창녀의 자식들"(1, 2)이다. 호세아는 옛 법(신명 22, 20 이하)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처벌하기보다 사랑하 였다(3, 1). 끈질긴 사랑의 노력으로 결국은 추구하던 목 표에 도달하여, 여인은 삶을 바꾸고 남편과 상호 충실성을 지키게 된다. 예언적 의미로 볼 때, 이는 불충실한 이스라엘을 하느님이 용서와 사랑으로 대하여 마침내 회개 하게 된다는 구도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예언자적인 의미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3, 1-5). 이 사랑은 매춘 여 인에게 새로운 삶의 전망을 제공한다. 미래를 향한 전망 : 호세아 예언자에게 현실은 처벌의 시기이다. 팔레스티나는 사막으로 변하고(2, 5. 8. 1113. 16), 백성은 바람기를 따라 처신한 결과, 그 폐해를 스스로 자초한다(4, 19). 그에 대한 처벌은 마치 사자의 난입 같고(13, 7), 덮치는 그물 같으며(7, 12. 16), 전쟁 의 잿더미 같고(10, 13-15 ; 11, 5 ; 14, 1) 몰아치는 폭 풍, 아시리아로의 유배나 비극적인 이집트 탈출의 재연 과 같다(8, 7. 13 ; 9, 3-6 : 10, 6). 그러나 이 벌은 잠시 뿐이다. 백성의 파멸은 하느님의 본래의 목적이 아니다. 벌은 다분히 교육적인 목적, 즉 회개를 촉구하고 백성이 자기 하느님에게 되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돌아오다' (שׁוּב)라는 동사는 이 예언서에서 20회 사용되었는데 , 그중 '하느님께 돌아오다' 는 의미로는 14회 사용되었 다. '주님을 알지 못함' 은 이스라엘을 정신적인 매춘으 로 이끌어 하느님에게 되돌아가기 어렵게 한다(11, 5). 최종 목적인 '하느님께 돌아감' 은 이스라엘 역사와 고생 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방황의 끝에 도달하게 한다 (5, 13-6, 6). 하느님은 오직 이스라엘을 되찾고자 행동 하고, 불충실로 파기된 사랑의 관계를 이 공동체와 함께 회복하려고 한다. '사랑의 계시' 가 호세아의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계시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다. 호세아는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였다. 백성의 하느님에 대한 상호성과 사랑의 응답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사랑의 계시' 는 예레미야서와 신명기에서 계속되지만(예레 2, 2 : 신명 6, 5), 더 이상 이 연인들의 언어는 이스라엘 신앙 설명에 사용되지 않았다. 예수 시대에 가서야 호세아의 이 영감이 되살아났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제자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사랑하심"(3 1)과 "하느님은 사 랑이심"(1요한 4, 8)을 배우게 된다. (→ 구약성서 ; 예언 ; 예언서) ※ 참고문헌  김건태, 《구약성서 입문 - 강의록》, 수원가톨릭대 학교, 2000/ 최종진, 《구약성서개론》, 소망사, 2000/ 이기락, 《열두 소예 언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0/ Louis Monlouboum, 《DSp》 XI, pp. 1026~1031/ E. Ball, 《ISBE》 II, pp. 761~7671 R.K. Harison, The Zondervan Pictoral Encyclopedia ofthe Bible, vol. 3, Gen. ed. by M.C. Tenney, Grand Rapids, pp. 206~213/ A. Gelin, 《DBS》 6, pp. 926~940/ Douglas Stuart, Hosea-Jonah, 《WBC》 31, 1987. 第一 [沈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