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오, 코르도바의 Hosius de Cordubenis(256/257?~357/358?)
글자 크기
12권
스페인 코르도바의 주교. 신학자. [생 애] 호시오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그는 296년경부터 코르도바의 주교로 활동하였으며,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 통치기인 303~305 년에 일어난 박해를 견디어 낸 증거자이다. 오시우스 (Ossius)라고도 불린다. 4세기 초 스페인의 엘비라(Elvira)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 참석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312년 이후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틴 대제(306~337) 곁에서 교회에 대한 자문을 하였다(312~326) . 특히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 제국 내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아리우스(Arius, 256?~336)와 그 추종자들의 주장에 대한 논란과 분쟁을 해결하려고 하였을 때 중재 역할을 하였다. 이를 위해 324년 9월 아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알렉산데르(Alexander Alexandrinus, 250?~328?)에게 황제의 편지를 전달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황제와 호시오는 아리우스로 인해 벌어진 알렉산드리아의 교리 문제를 처음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알렉산데르 총대주교로부터 사태의 중요성을 전해 들은 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아리우스주의에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호시오는 325년 초 안티오키아에 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의장직을 맡았으며, 이 회의에서 아리우스의 주장을 단죄하였다. 또한 325년 콘스탄 틴 대제가 개최한 제1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황제의 교회 자문 역할을 맡은 그는 교황을 대리한 의장으로서 아리 우스주의에 대항하여 알렉산데르 총대주교와 그의 후계 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Athanasius Alexandrinus, 295?~373)와 함께 그리스도론의 정통 교리를 옹호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즉 성자가 성부와 똑같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을 교리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콘스탄틴 대제가 죽은 후에 개최된 343년의 사르디카 (Sardica) 교회 회의에서도 니체아 공의회의 결정이 동방 교회에서도 준수되도록 힘썼다. 대제의 사후 그의 아들들 가운데 두 명만이 세력 투쟁 에서 살아남아 제국의 서쪽 지역은 콘스탄스(337~350) 가, 동쪽 지역은 콘스탄티우스 2세(337~361)가 다스리게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경쟁심이 일어나 종교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함에 따라, 콘스탄스는 서방의 니체아 공의회 지지자를, 콘스탄티우스 2세는 온건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콘스 탄스가 350년에 암살되고 353년에 콘스탄티우스 2세가 로마 제국 동서 지역의 단독 통치자가 되자 그는 곧 아리우스주의자들의 편을 들어 곧바로 니체아 공의회파에 대 한 조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제국 이념의 관점 에서 일치된 신앙 고백으로 제국의 정치적 일치를 유지 하려 하였으며, 이러한 목적에 방해되거나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들을 국가 권력으로 굴복시켰다. 그리하여 아 를 교회 회의(353)와 밀라노 교회 회의(355)는 황제에게 비타협적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를 단죄하였으 며, 356년에는 호시오에게 그를 단죄하라고 강요하였다. 이를 단호히 거부하자 콘스탄시우스 2세는 결국 정통 교리의 수호자이며 니체아 공의회의 수장이었던 호시 오를 시르미움(Sirmium)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이 후 357년에 개최된 시르미움 교회 회의에서 거의 100세 가 되어 병약해진 호시오는 본의 아니게 강요와 모욕을 받아 니체아 공의회의 결정과는 다른 시르미움 교회 회 의의 신앙 고백문에 서명하게 되었다. 이 신앙 고백문은 성부와 성자의 '동일 본질' (同一本質, ὁμοούσιος)을 유 사' (类以, ὁμοούσιος, similituo)의 의미로 해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행동은 강요에 못 이겨 서명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아리우스주의를 다시 단죄하였다. 호시오는 스페인의 코르도바로 돌아와 358 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 서] 호시오의 작품으로는 두 통의 서한이 남아 있다. 즉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보낸 서한과 교황 율리오 1세(337~352)에게 보낸 서한이다. 교황에게 보낸 서한은 사르디카 교회 회의의 중요 결정 사항에 관한 보고였으 며, 356년에 아리우스주의를 편드는 콘스탄티우스 2세 에게 보낸 서한은 교회의 권리를 제국의 권력에서 분리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서한은 중 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콘스탄틴 대제가 이루어 놓은 황실과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우호적인 협력 관계의 역 사에서 교회의 대변자로서 호시오가 최초로 황제에게 교 회 내부의 문제에 관해서는, 즉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교 회 자체의 결정 사항에 관해서 간섭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아 보낸 것이다. 호시오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 21)를 근거로 두 권력의 분리를 강조하였다. 그런 이유에서 이 서한은 교회사 자료에서 아주 중요한 문건으로 꼽힌다. 이시도로(Isidorus Hispalensis, 560?~636)가 자신의 저서인 《유명 인사론》(De viris illustribus, 5. 6-7)에서 언급하는 호시오의 작품들인 《동정성의 칭찬》과 《사제들의 복장에 대한 해설》은 유실되어 전해오지 않는다. (→ 니체 아 공의회 ; 아리우스주의 ; 알렉산데르, 알렉산드리아의 ; 콘스탄틴 대제) ※ 참고문헌 B. Altaner . A. Stuiber, Patrologie, Leben, Schriften und Lehre der Kirchenvater, Herder 8th eds., 1993, p. 366/ O.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tkirchlichen Literatur III, 1912, pp. 393~395/ T. Böhm, Lexikon der antiken christlichen Literatur, hrsg. von S. Döpp · W. Geerlings, Herder 3rd eds., 2002, PP. 537~538/ H. Chadwick, Ossius of Cordoba and the Prsidency of the Council of Antioche, 《JThSt》 9, 1958, pp. 292~304/ V.C. de Clercq, Ossius of Cordoba. A Contribution to the History of the Constantinian Period, Washington, 1954/ H.R. Drobner, Lehrbuch der Patrologie(하성수 역, 《교부학》, 분도출판사, 2001)/ S. Keil, 《LThK³》 VII, p. 1169/ 《ODCC》, 1983, p. 668/ J. Quasten, Patrology IV, pp. 61 ~621 G.S. Walker, Ossius and the Nicene Faith, (SP) 9, 1966, pp. 316~320. [張仁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