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개통헌도설》

渾蓋通憲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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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이지조(李之藻, 1565~1630)가 1607년에 편찬한 책으로, 권수(卷首)와 상 · 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학초함》(天學初函)과 《사고전서》(四庫全書), 《수산각총서)(守山閣叢書)에 수록되어 있다.

이지조는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사람으로, 자 (字)는 진지(振之) · 아존(我存)이다. 1594년에 거인(擧人), 1598년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이후 남경공부영선사원외랑(南京工部營繕司員外郞), 공부분사(工部分司), 개주지부(開州知府), 남경태복시소경(南京太僕寺少卿), 칙리하도공부낭중(敕理河道工部部中) 등을 역임하였다. 1601년 북경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와 교유하게 되면서 그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식견하였으며 서양 과학의 이론을 듣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곤여만국전도> 를 판각하면서 그 서문에서 지구설을 비롯한 서양 과학 이론을 소개하였는데, 이 지도는 당시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에게서 수학과 천문학 등의 지식을 배웠고, 나아가 그들과 합작으로 많은 서양 과학서를 번역 · 출판하였다.

1605년 이지조는 마테오 리치와 합작으로 《건곤체의》 (乾坤體義)를 번역하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607년 《혼개통헌도설》을 편찬하였다. 이 책의 원본은 마테오 리치의 스승인 클라비우스(Christoph Clavius)의 《아스트롤라비움》(Astrolabium)으로, 서양 고대의 측량 의기인 평면 구형 아스트롤라베(Astrolabe, 星盤)의 원리를 소개한 저작이었다. 이지조는 아스트롤라베가 "모양은 개천(蓋天)이지만 그 도수는 혼천(渾天)을 따르고 있다"(貌則蓋天, 而其度仍從渾出)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그는 개천설의 칠형육간도(七衡六間圖)와 아스트롤라베 상의 투영 각도법이 뒤섞여 있으며,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론인 혼천설(渾天說)과 개천설(蓋天說)을 하나로 통합하여 나타낸 의기가 바로 아스트롤라베라고 보고, '혼개통헌' (渾蓋通憲)이라 명명하였다.

요컨대 혼개통헌은 중국의 전통적인 구체 혼천의를 대신하여 이를 평면에 투영시킨 서구식 천문 의기로서, 서양의 평면 구형 아스트롤라베(planispheric astrolabe)의 중국판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남극에서 바라본 동지선 이북의 천구를 적도면에 평사 투영한 의기였는데, 특정 위도에서만 활용 가능한데다 취득 정보가 많은 만큼 활용법이 복잡하였다. 《혼개통헌도설》은 이와 같은 혼개통헌의 제작법과 사용법을 소개한 책자였다.

먼저 권수(卷首)에서는 혼상도설 · 적도규계설 · 황도 규계설 · 주장주단남극북극사규설 · 자오규설 · 지평규설이라는 항목을 통해 혼상(渾象)의 제작 원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다음으로 상 · 하 두 권에 모두 19편의 도설(圖說)이 수록되어 있다. 상권에서는 아스트롤라베 위에 각종 좌표계를 그려 넣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적도 좌표, 황도 좌표, 지평 좌표의 세 가지 좌표계를 평면 상에 투영하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하권에서는 아스 트롤라베 위에 항성을 표시하는 방법과 그 사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목차는 아래와 같다.

혼개통한도설자서(軍蓋通憲圖說自序)

권수(卷首) : 혼상도설(渾象圖說)/ 적도규계설(赤道規界說)/ 황도규계설(黃道規界說)/ 주장주단남극북극사규설(畫長畫短南極北極四規說)/ 자오규설(子午規說)/ 지평규설(地平規說)

권상(卷上) : 총도설 제일(總圖說 第一)/ 주천분도도설 제이(周天分度圖說 第二)/ 안도분시도설 제삼(按度分時圖說 第三)/ 지반장단평규도설 제사(地盤長短平規圖說 第四)/ 정천정도설 제오(定天頂圖說 第五)/ 정지평도설 제육(定地平圖說 第六)/ 점승도도설 제칠(漸升度圖說 第七)/ 정방위도설 제팔(定方位圖說 第八)/ 주야전루도설 제구(晝夜箭漏圖說 第九)/ 분십이궁도설 제십(分十二宮圖說 第十)/ 몽롱영도설 제십일(朦朧影圖說 第十一)/ 천반황도도설 제십이(天盤黃道圖說 第十二)

권하(卷下) : 경성위치도설 제십삼(經星位置圖說 第十三)/ 세주대도도설 제십사(歲周對度圖說 第十四)/ 육시구영도설 제십오(六 時晷影圖說 第十五)/ 구고현도도설 제십육(句股弦度圖說 第十六)/ 정시척분도도설 제십칠(定時尺分度圖說 第十七)/ 용례도설 제십팔(用例圖說 第十八)/ 구고측망도설 제십구(句股測望圖說 第十九)/ 부록(附錄)

《혼개통헌도설》은 중국에서 전통적인 우주론의 양대 산맥으로 많은 논쟁을 벌여온 혼천설과 개천설을 통합한 저술로 인정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이지조는 개천의 형태는 혼천의 일부를 분할한 것이며, 따라서 분할된 개천을 온전한 원으로 복귀시키면 두 학설의 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개천설을 당시 전래된 서양의 지구설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였다. 요컨대 개천설과 혼천설의 통합은 지구설을 통해서 가능하며, 그것을 평면상에 구현한 천문 의기가 바로 혼개통헌이라는 주장이었다.

《혼개통헌도설》은 17세기 중반 이후 서학서의 유입과 함께 조선 지식인 사회에 유행하게 되었다.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그의 저서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명의 만력년간에 서양의 지구설이 나타나서 혼천 · 개천설이 비로소 하나로 통일되었으니 역시 한 쾌사(快事)이다" 라고 하였는데, 지구설에 입각하여 혼천설과 개천설의 회통을 설명한 것이 바로 《혼개통헌도설》이었다. 이 는 김만중이 《혼개통헌도설》을 비롯한 서양의 천문 역법 서를 통해 서양 천문학 지식을 이해하고 수용하였음을 짐작케 하는 자료이다.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문집인 《사고》(私稿)에는 그가 저술한 문헌들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그의 유저 목록 중에는 《혼개통헌도설》의 해설서로 추정되는 《혼개통현도설집전》(渾蓋通憲圖說集箋) 4책이 포함되어 있다. 서호수는 1790년(정조 14)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청나라의 대학자 옹방강(翁方綱, 1733~1818)에게 이 책의 서문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관상감 제조를 역임하였고, 천문역산학과 수학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 서호수였기에 《혼개통헌도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러한 저술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정조 때에는 《혼개통헌도설》의 원리에 입각하여 해시계를 만들기도 하였다. 현재 궁중 유물 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841호인 혼개일구(渾蓋日晷)가 그것이다. 길이 129cm, 너비 52.2cm, 두께 12.3cm의 애석(艾石, 쑥돌)에 위쪽에는 간평일구(簡平日晷), 아래쪽에는 혼개일구가 새겨져 있다. 혼개일구는 혼개통헌과 같이 천구상의 천정점인 한양의 북극 고도에서 바라본 황도를 지평면에 평사 투영하여 절기선과 시각선을 그린 것이다. 이 해시계의 명문에는 "한양의 북극 출지 고도는 37° 39' 15"이고, 시헌력에서 황도와 적도의 거리는 23˚ 29' 이다. 건륭 50년 을사년(1785, 정조 9) 중추에 만들었다" (美漢陽北極出地三十七度三十九九分十五秒, 時憲黃赤大距二十三度二十九分, 乾隆五十年乙巳仲秋立)라고 한양의 북극 고도와 제작 일시가 기록되어 있어, 관상감에서 정식으로 만든 궁궐용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참고문헌 《渾蓋通憲圖說》《文淵閣 四庫全書》 789책, 臺灣商務印書館, 1983)/ 韓國學文獻研究所 編, 《天學初函》, 亞細亞文化社, 1967/ 金萬重, 《西浦漫筆》(《書浦集 · 西 浦漫筆》, 通文館, 1971)/ 徐浩修, 《私稿》/ 一, 《燕行紀》/ 徐宗澤 編, 《明清間耶穌會士譯著提要》, 中華書局, 1949/ 陳美東, 《中國科學技術史》(天文學卷), 北京, 科學出版社, 2003/ 문중양, <18세기 말 천문역산 전문가의 과학활동과 담론의 역사적 성격 - 徐浩修와 李家煥을 중심으로>, 《東方學志》 121, 2003. [具萬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