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婚姻 〔히〕בָּעַל〔그〕γάμος(라)matrimonium [영〕marriage, matri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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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인 잔치.
남녀가 만나 부부 관계를 맺는 것.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善益)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 I. 성서에서의 혼인 〔구약성서와 유대교〕 의미 : 히브리어에는 혼인 자체를 가리키는 낱말이 없고, 단지 혼인을 하는 남편과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남편' 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알" (בַּעַל : 출애 21, 3. 22 ; 신명 24, 4)은 원래 '소유하다' 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즉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며, 남편은 부인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사고 방식의 시작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로 모든 여인에게 주어진 벌의 내용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창세 3, 16). 구약성서의 저자들이 남편과 부인의 관계를 표현할 때 흔히 '지배하다' (מָשַׁ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 보아 도 구약성서 시대의 부부 관계는 철저히 가부장적인 질서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부인은 "남편의 소유"(בָּעַלת בַּעַל)라는 이름을 얻고 있었는데 (창세 20, 3 ; 신명 22, 22) , 이 역시 가부장적인 발상이다.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 : 구약성서에서는 혼인을 통 하여 이루어지는 가정이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보았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 기를 보면, 하느님은 남자의 갈빗대를 꺼내 여자를 만들 었고, 남자는 여자와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마땅하 다고 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 24). 따라서 혼인은 하느님이 맺어 준 관계이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무효로 만들 수 없다. 교회에서는 이를 혼인의 불가 해소성(不可解悄性)이라 부른다. 이처럼 구약성서에서 는 본래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monogamia)를 지향하 였으나 카인의 6대 후손인 라멕 시대부터 일부다처제(夫多妻制, polygamia)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창세 4, 19), 이는 여러 부인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유한 지도층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다처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아브라함을 꼽을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자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아 주었다(창세 21장). 여기서 일부다 처제는 고정된 혼인 질서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이루어 질 수 있는 제도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 사고 방식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는 이른바 '수혼법' (嫂婚 法, leviratus)이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죽은 그 사람의 아내는 다른 집안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남편의 형제가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시숙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낳은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신명 25, 5-6). 이런 규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우선 죽은 형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함이요, 또한 형수에 대 한 배려이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남성이 경제 수단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혼자된 여인은 자선에 기대거나 돌에 맞아죽기 십상인 창녀로 전락하거나 다른 남자의 후처로 들어가는 등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후사가 없이 죽은 형의 아내를 아우가 부인으로 맞이하는 것은, 형수에게 최소한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는 일종의 도리였다. 그런 정황을 고려 할 때 수혼법은 약자 보호법의 성격을 띠며, 정당하게 일 부다처가 인정될 수 있는 경우이다. 이런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시동생이 있는 경우, "그러나 그 남자가 자기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으면, 그 형제의 아내는 성문으로 원로들에게 올라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제 시숙이 이스라엘에서 자기 형제의 이름을 이어 주기를 거부합니다. 저에게 시숙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읍의 원로들이 그를 불러서 그에게 타일러야 한다. 그래도 그가 고집을 부리며 '나 는 이 여자를 맞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 형제의 아내가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다가가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은 다음,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 하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에서 그의 이름은 '신 벗겨진 자의 집안' 이라고 불릴 것이다"(신명 25, 7-10). 이처럼 '신 벗겨진 집안' 이라는 오명을 얻게 될 정도로 수혼법은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런 전통은 서기 200 년경 완성된 이스라엘 최초의 성문법인 <미쉬나> (Mishna)에 그대로 이어졌다(제3부 제1편). 유대인들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지키고 있으나 어쩔 수 없는 경 우에는 일부다처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 이다. 오늘날에도 이슬람 문화권에 사는 유대인들은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이는 문화적 · 지역적인 특수성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혼인 절차 : 부인을 남편의 소유물로 여기는 사고 방식은 혼인 절차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구약성서에서 혼인은, 어느 집안의 미혼인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다가 혼인과 더불어 남편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출애 20, 17)라는 구절에서도 '아내' 를 남편의 소유로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혼인 적령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남자의 경우 16, 14, 13살 등이 있지만, 성인이 되는 나이가 13살이므로 그 이후부터는 언제나 혼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제한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2세까지는 소녀, 12.5 세까지는 처녀, 그리고 12.5세 이후로는 성인 여성으로 여겼다. 그래서 12.5세까지는 철저히 아버지의 권한 아 래 놓여, 남자 쪽에서 청혼이 들어오면 아버지나 아버지의 위임을 받은 자가 혼인 여부를 결정하였다. 보통 남자의 부모가 아들의 아내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남편이 될 사람은 부인이 될 여인의 가족에게 일정액을 지불해야 하였다. 이렇게 지불되는 '돈' 은 혼인 '기탁금' (J. Jeremias), '보상금' (R. De Vaux), '예물' (정태현)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남편될 사람이 여인의 아 버지에게 그 돈을 지불하였다는 점에서 소유권의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두 집안 사이에 구두, 혹은 문서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남녀는 정혼으로 합법적인 부부가 되지만 동거 · 동침은 하지 않는다. 처녀일 경우는 1년, 과부일 경우는 한 달인 정혼 기간이 지나야 혼례를 하였는데, 신랑신부가 혼인 예복을 입고 혼례를 치르는 날 신랑과 그 친구들이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 이때 종종 지참금을 두고 흥정이 벌어지는데, 그 일이 늦어지면 밤이 되어서야 신랑이 신부 집에 도착한다. 그때 신부 측에서 사람들이 나서서 횃 불을 밝혀 든다(마태 25, 7). 그리고 친지와 손님들에게 음식이 제공된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마태 22, 11-12). 부모와 친지들의 축복을 받은 신랑과 신부는 신방에 들어가고, 신부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속옷이 공개된다. 혼례 잔치는 보통 한 주 동안 계속되었다. 〔신약성서에서의 혼인] 신약성서 시대라고 해서 유대인의 혼인 풍습이 바뀌 것은 아니다. 예수는 혼인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 2)라는 질문을 하자, 이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 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르 10, 6-9). 즉 예수는 창조론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혼인이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한편, 혼인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세상사라는 사실도 밝혔다.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수혼법을 빌미로 질문을 던졌다. 아들 일곱 이 차례대로 죽었고 맏형의 부인이 차례대로 남동생들의 부인이 되었다면,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부인이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예수의 대답은,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 24-25). 부활 후에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질서 속에서 살게 될 것이므로, 세상에서 가졌던 혼인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혼인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입장은 고린토 전서 7장에 잘 나타나 있다. 바오로는 미혼인 남녀에게 혼인하지 말 라고 권고하면서도(7, 8) 다른 한편으로는 혼인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다(7, 28. 38).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혼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내비치는데, 이는 혼인 자체를 나쁜 것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임박한 종말을 앞두고 오로지 믿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충고를 하려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바오로의 입장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를 유지하라는 것이다(7, 17). 〔교회의 혼인〕 혼인은 모든 시대에 가족을 형성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제도이다. 혼인을 통해 최소한의 가족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핵가족이든 대가족이든, 어떤 가족 형태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다. 그러나 혼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남녀 간의 성행위가 허락된다는 것만으로는 그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히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의미 부여가 동반되어야 한다. 혼인은 비단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양쪽 가정, 그 두 사람이 속하여 살게 되는 사회, 나아가 그들 사이에서 출생하는 자녀들까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는 혼인을 성사로 여겼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특히 예수의 가르침인 불가해소성을 혼인의 정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혼인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인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혼인에 대한 생각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년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는 이혼 부부 들,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남녀들의 모습에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라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현대인들은 혼인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꼽는다. 사랑없이 맺어진 혼인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남녀의 자유로운 연애가 거의 불가능하고 아들의 배필을 아버지가 정하던 구약성서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조건이다. 유대 인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에는 혼인을 한 부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다음과 같은 금언이 있다. "부부가 진정 사랑하고 있으면 칼날 만한 침대에 누워도 잠을 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면 16미터나 되는 넓은 침대라도 비좁기만 하다" , "아내를 까닭없이 괴롭히지 말아라. 그녀의 눈물 방울을 하느님이 세고 계시니까" , "이 세상에서 딴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젊었을 때 혼인하여 해로한 부부이다." (⇦ 결혼 ; → 모권제 ; 성 〔性〕 ; 수혼법) ※ 참고문헌 정태현, 《성서 입문》 상, 일과 놀이, 2001/ R. 드 보, 이양구 역, 《구약 시대의 생활 풍속》, 대한기독교서회, 1993/J. 예레 미아스, 번역실 역,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1988/ 정 양모, <유대교와 기독교>, 《종교신학연구》 7집, 서강대 종 교신학연구소, 1994, pp. 143~178/ C.H. Ratschow · Z.W. Falk . B. Reicke, Ehe Eherecht : Ehescheidung, 9, pp. 308~325. [朴泰植] Ⅱ. 윤리신학에서의 혼인 〔성서적 기초〕 혼인과 가정에 관한 성서의 주제 안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다음의 세 가지, 즉 일치, 사랑, 계약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단순히 종속 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치' 의 관계이다. 말하자면 상호 행위 안에서 형성된 일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의 상호 행위란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주도된 행위, 즉 계약을 통해서 실천되 는 상호 행위를 의미한다(창세 9, 8-17 : 참조 : 15, 1-3. 17-19). 이렇게 표현되는 일치는 계속해서 일차적이고도 결정적인 내용으로서의 사랑을 지니며,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게 제공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 측의 응답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가르치는 혼인 및 가정 관계에 있어서의 핵심이다. 예언자들로부터 제시된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의 사랑의 관계는 혼인을 통해서 결합된 남녀의 사랑의 관계로 비유된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 고 계약을 맺었다는 '관계의 참된 의미' 를 가르치는데, 그러한 관계가 혼인 안에서 남녀의 결합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자와 여 자의 동등한 존엄성을 기초로 하는 고유하고도 독점적인 사랑의 관계이며(<가정 공동체> 19항 참조), 가나안의 종교 전통에서처럼 성(性)이 신적 축복을 효과적으로 현존하게 하고 보증하는 일종의 자연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자유 로운 선택에 의한 상호적인 관계이며 따라서 사랑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는 관계이다. 즉 성이 사랑에 봉사하는 것이지, 사랑이 성에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혼인과 가정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요소가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요소는 '신랑' 에 관한 본문을 소개하고 있는(마르 2, 19 이하 : 참조 : 요한 3, 29) 혼인 잔치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과 사실상 메시아적 잔치(마태 22, 1-4 : 25, 112)라고 할 수 있는 혼인 잔치의 비유이다. 계약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러한 비유에 의하면, 구원의 관계는 남녀의 혼인 관계와도 같다. 이 혼인 관계가 지니는 본질적인 가치는 상호 간의 주저없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1981. 11. 22)에서 이러한 관계를 하느님의 지혜와 인류와의 계약(8, 10항), 지혜가 우리 인간을 만나러 오고 우리는 신부처럼 그 지혜를 만나러 나가는 것(지혜 8, 9-16)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였다. 둘째 요소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에페 5, 27 참조). 하느님이 창조 때부터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부여해 놓은 계획이 혼인을 통하여 완전히 드러났고, 세례받은 사람들의 혼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참된 상징이 된다. 여기서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인과 그들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자리잡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혼인이란 계약의 신비 안에서 정확하게 실현되고 표현된 지성 및 창조적 의지이며, 따라서 이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회학적 부수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화적 유산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두 번째는 성서적 전승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은 일부일처제 안에서 볼 수 있는 확고하고도 독점적인 관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혼인의 인간학적 범위이다. 즉 계약의 전체 과정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긴 역 사의 변천 과정-으로부터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 안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인간학적 범위이다. 이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교회는 가정이 자신에 대한 심오한 진리의 심장부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해서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 교회 는 이 길을 그리스도의 학교와 성령의 조명하에 해석된 역사의 학교에서 배웠다. 교회가 이것을 덮어 씌우지는 않을 것이지만, 기쁜 소식이 십자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움 없이 큰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그 길을 모든 사람에게 제안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정은 자기 존재 의 충만과 사랑의 완성을 달성할 수 있다"(<가정 공동체> 86항). 사실 인내 없이, 그리고 죽음 없이는 사랑 자체가 지니고 있는 충만하고도 충실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점이 혼인과 가정의 교회론 및 그리스도론적 지평이 며, 또한 인간학적 지평에서도 조명되는 특징이다. 세 번 째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교회의 구성원들이 갖는 관계에서의 '가정' 개념이다. 이 개념 역시 인간학적 · 신 학적 실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 둘은 서로를 설명해 주며 동시에 상호 이해를 위해 협조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교회라는 가치를 지니며, 따라서 가정의 고유한 범위 안에서 '교회' , '가정 교회' 혹은 '소규모의 교회' 로서의 임무를 지닌다(<가정 공동체> 49항 참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공동체>를 통해 가 정을 교회의 확실한 한 형태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사실상 성서나 전통적인 교회의 사상과 전혀 동떨어진 개념은 아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상에서 예수가 성부와 교회에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사랑의 선물을 통해 교회가 설립되었다면, 즉 사랑의 일치를 통해서 세워졌다면, 그리고 가정도 남자와 여자, 자녀들의 상호 증여를 통해 서 실현되는 하나의 신비체라면 결과적으로 이는 분명 말씀의 강한 의미 안에서 '성서적' 및 '교회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혼인의 성사성 역시 같은 맥락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또한 이 성사성은 그러한 교회론적 특성 위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렇듯 교회의 가치가 가정에서부터 드러나고 시작되는 것과 같이 가정의 가치 역시 교회의 현존을 드러내고 결정한다. '하느님의 가정' 인 교회에 대해서 제2차 바티 칸 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Lumen Gentium) 6 항에는 성서의 풍요로운 의미를 담은 매우 훌륭하고도 간단명료한 문장이 나온다. " '하늘의 예루살렘' 인 교회 는 또한 '우리 어머니' 라고 불리며(갈라 4, 26 ; 묵시 12, 17), 순결한 어린 양의 순결한 신부로 묘사된다(묵시 19, 7 : 21, 2. 9 ; 22, 17).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다' (에페 5, 26). 풀릴 수 없는 계약으로 교회를 당신과 결합 시키시어 끊임없이 '기르고 보살펴 주시며' (에페 5, 29), 교회가 깨끗한 몸으로 당신과 결합되어 사랑과 신의로 당신께 순종하기를 바라셨다(에페 5, 24). 그리고 영원한 천상 은혜로 교회를 채우시어, 우리에 대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랑,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그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다(에페 3, 19). 교회는 이 세상에서 주님과 떨어 져 있는 동안(2고린 5, 6) 마치 귀양살이를 하듯 살아가며 천상의 것을 추구하고 맛본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또 교회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교회가 자기 신 랑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는 그 생명이 보이지 않는다(골로 3, 1-4)." 이러한 교회론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 은 사랑의 새 계명으로 모든 인간을 환영하고 존경하며 봉사해야 하며, 또한 "교회는 가정의 사랑 덕분에 좀 더 가정적 차원을 지니고 더욱더 인간적이고 형제적인 관계 양식을 발전시킬 수 있고 또 발전시켜야만 한다" (<가정 공동체> 64항). 곧 교회는 그러한 점들을 이 세상에 선포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그 구성원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예수의 형제들이(마르 3, 31-35) 될 수 있도록, 좀 더 친근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의무까지도 지닌 것이다. 〔혼인의 의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공동체>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회는 세례받은 자의 결혼은 신약의 칠성사 중의 하나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가르쳐 왔고 계속 가르치고 있다." 이 혼인의 효과는 하나의 '새로운 의미' 를 부여하고 있다. 즉 신자들의 육체적 및 인간적 일치라는 의미를 통해서 혼인에 관한 모든 진리가 "밝혀진다"라는 것이다(13항). 세례성사를 받는 순간부터 "남자와 여자는 진정 새롭고 영원한 계약, 그리스도와 교회의 부부다운 계약 안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한다"(13항).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면서(요한 13, 35) 사람들 앞에서 사랑의 증인이 되도록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이러한 부르심은 세례받은 모든 이들에게 공통 적으로 해당되는 소명이다. 이러한 소명은 그들의 사랑 을 위한 모든 관계에서 나타나야만 하며 자녀의 사랑, 형 제적 사랑, 부성애 혹은 모성애, 부부 사랑 혹은 우정으 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들의 사랑은 항상,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예수가 보여 준 사랑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부부의 경우, 혼인성사에 의해서 자신들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모든 결과들을 온전하게 떠맡게 되며, 또한 이로 인해 "창조주로부터 의도된 부부 사랑과 생명의 친 밀한 공동체"(13항)를 이루어야 할 소명도 지니게 된다. 이는 곧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과 함께 하나의 살아 있는 표지가 되며, 이에 대해서 부부는 서로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희생한, 자비와 사랑의 '기억' 이며 '기념' 으로 변화되어 야만 한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 그를 따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활력이 되고 생동한다는 것을 증명 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을 완성하는 것이며, 이 땅 위에서 신랑인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우리에게 선사할 충만한 사랑과 미리 비추는 광채, 혹은 예언자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면들이 모든 그리스도 인 부부들의 전체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만 한다. 이러한 증명은 매일, 매순간 조용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즉 그리스도가 골고타 산 위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당신 사랑의 위대한 행위를 드러내 보인 것처럼,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각각의 빵 조각과 포도주가 이 세상의 모든 제단 위에서 나누어지는 것처럼 부부들에게서 실현 되어야 한다. 인간을 위해서 온전하게 자신을 죽음에 부쳤던, 당신 성령의 친밀함을 우리에게 선사한 예수 그리 스도의 자비는 우선적으로 부부에게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대화를 통한 상호 간의 끊임없는 노력이며, 일상적인 것들을 극복하면서 항상 서로에게 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열려 있는 일치를 지향하는 방법 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 안에서 부부의 행위는 상 대방에게 온전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전적인 자기 증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할 것이며, 당신의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내어 준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을 끊임없이 묵상하는 부부로서의 거룩한 순간을 항상 체험 하게 할 것이다. 부부들은 부부 생활과 가정 생활을 위한 임무와 의무, 그리고 환경들 속에서 이기주의적인 삶을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성장할 것이다. 상호 간의 신뢰와 풍요로운 생명을 위한 희생은 결코 단순한 명령이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 사랑 안에 머물고 또 승리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남녀의 혼인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계약의 빛으로 이끌어 준다는 혼인성사의 새로운 의미는, 또한 자비와 신 뢰, 그리고 생명을 위한 봉사라는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이런 개념들을 순수하게 머리로만 이해하 는 것은 충분하지 않고, 우선 자신들의 참된 사랑으로 그리스도와의 강한 끈을 맺어야만 한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 변화되어야만 한다. 혼인성사를 위한 어떠한 준비라도 이런 점을 위한 교육이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못하다면 부부 들은 분명 하나의 공허한 약속만 하게 될 것이고 그들에게서 찾아야 할 부부 사랑의 생명력 있는 의미는 결국 그들에게서 떠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혼인의 목적〕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 (Gaudium et Spes)은 하느님이 제정하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한 부부 공동체인 가정을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정의하였다. 곧 공의회는 하느님이 제정한 견고한 제도로서의 혼인이 가족 개인의 인격 향상과 영원한 운명, 온 인류 사회의 존엄성과 안정성, 평화와 번영에 매우 중요 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의미의 기 초로서 사랑과 생명을 그리스도인 혼인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결합을 모범으로 하는 그리스도 신자 부부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랑과 생명 의 공동체로서의 가정을 하느님의 뜻 안에 더욱 견고하 게 일치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부부 사랑 : 부부 사랑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고 있는 혼인과 가정에 관한 사목적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가정에서부 터 인간 관계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하며,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 인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더 근원적으 로 말하자면 각각의 인간은 가정 안에서 생명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영역 안에 들어서게 된다. 가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인간은 새로운 생명을 확장시켜 나가며, 또한 사랑의 새로운 소명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보는 것처럼 남자는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온 몸과 느낌을 통해서 찬미를 표현하였다. "이야말 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 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 23). 이렇 게 하여 남자와 여자는 만나게 되었고, 혼인이라는 제도 안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생명과 출산의 주역이 되었다. 인간들의 공동체는 이렇게 시작되며, 이 공동체에서 사 랑은 가장 중요한 내적 요소이자 신비스럽고 생명력 있는 영적 요소이다. 남녀 간의 혼인 계약은 가정이라는 인간 사회 조직을 기초하는 제도적인 외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랑의 내면적인 힘을 불어넣어 주고 가정 생활을 활력 있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다. 따라서 혼인에서 남녀의 사랑, 곧 부부 사랑은 혼인 생활을 더욱 풍요 롭게 만들어 주는 혼인의 목적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혼 인의 근원적 본질이다. 부부의 사랑 때문에 혼인은 성립 되고 지속되며 신성하고, 부부 간의 신의가 지켜질 수 있는 기초가 되며, 혼인이 결코 깨어질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① 특성 : 부부 사랑의 원형은 배우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은약적이고, 그 실체는 상호 위탁이며, 그 본보기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일치이다. 배우자들을 위한 하느님 사랑과 서로를 위한 배우자 상호 간의 사랑은 혼인성사의 기초이며, 혼인성 사는 하느님이 사랑의 역사(役事)를 이루는 출발점이 된다. 오래 전에 하느님이 사랑과 충성의 계약을 통해서 당 신 백성들에게 왔던 것처럼, 부부 간의 사랑은 서로를 온 전히 내어 주는 사랑이다. 곧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 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그렇게 부부도 서로 자신을 내어 주며 영원한 신의로 서로 사 랑" (사목 48항)할 의무를 부여하는 사랑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관계가 배우자들을 위한 본보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부 부 상호 간의 관계 안에 그리스도가 함께함으로써 그들에게 그리스도-교회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이 부부 사랑의 원형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찰되며, 따라서 부부는 마땅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장해야 한다. 공의회가 밝히고 있듯이 이 사랑은 두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도록 서로 도와 주는 것이다. "이 성 사의 힘으로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온 삶을 믿 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채워 주는 그리스도 정신에 젖어 들어, 날로 더욱 자기 완성과 상호 성화를 위하여, 또 그 럼으로써 다 같이 영광을 위하여 나아간다" (사목 48항). 그러므로 부부 사랑의 특성은 부부가 가지고 있는 현 세적 사랑을 기반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성장할 것을 요구한다. 부부 사랑은 두 배우자의 온전한 인격을 포함하고, 또한 온전한 인격의 미덕을 추구한다. <사목 헌장>이 말하는 것처럼 부부 사랑은 부부 상호 간의 자유롭고도 의지가 표현되는 행위로 상대방에게 서로를 내어 주는 사랑이기 때문에(사목 49항 참조) 애정의 육체적인 표현들 역시 부부 사랑의 충만하고도 값진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부부 사랑은 본능에 의한 자기 만족적이고 일시적인 애욕과는 거리가 있다. 이 사랑은 배우자의 인격적 성숙을 도모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을 이루어 나감으로써 자라나게 되는, 즉 전진적이고 지향성이 있는 사랑이다. ② 부부 사랑과 부부 행위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부부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사랑은 혼인의 고유한 행위로 독특하게 표현되고 완성된다. 따라서 부부가 친밀하고 정결하게 서로 결합하는 행위는 아름답고 품위 있는 행위이다. 참으로 인간다운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행위는 상호 증여를 뜻하고 북돋우며,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서로 풍요하게 한다" (사목 49항). 이처럼 <사목 헌장>은 부부만의 고유한 행위를 부부 사랑에서부터 이끌어 내고 있다. 사랑이 요구하는 일치는 인격적 일치이지만 그 사랑의 특징적 표현은 부부 행위이며, 이는 부부 사랑 최고의 표현 방식이다. 그렇지만 부부 행위 때문에 부부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부부 사랑을 바탕으로 부부 행위가 행해지고, 또 이런 행위 를 통하여 부부 사랑은 점차 성숙되고 완성될 수 있다. 따라서 임신이 기대되지 않는 경우에도 부부 행위는 본질상 정당하고, 또 윤리적으로 선(善)인 것이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며 또한 성적(性的) 존재이기 때 문에, 성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단순히 성적 존재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영적 존재이기도 하다. 부부라는 관계 안에서의 남편이 나 부인은 단순히 운동에서 만나는 파트너와는 다르다. 부부 관계 안에서의 상대방은 자신의 몸과 마음, 모든 것을 가장 깊이 의탁할 수 있는, 마음으로부터 선택한 사람 이다. 이러한 부부의 생활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부 행위 는 새로운 인간 관계를 낳는다. 그 사랑의 행위에 내포되 어 있는 자기 증여와 일치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 고 있다. 상호 자기 증여를 통해 남녀 모두 보다 깊이 자 신을 이웃과 하느님께 개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남자 와 여자는 서로에게 우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현존의 표지로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남자와 여자의 상호 자기 증여와 부부 행위에 의한 새로운 인간 관계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 관계라 는 표상으로 인식될 만큼 매우 깊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 과 같이 말하였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 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에페 5, 25. 31-32).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부부의 성 생활을 부정하거나 죄악시하거나 또는 평가 절하하지 않는, 인격적 결합에 근거하는 영원한 계약 관계로서의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으므로, 부부 행위는 부부의 삶 속에서 부부 사랑이 가장 충 만하고 인간답게 실현될 수 있는 아름답고 의미깊은 실체이다. 성은 사랑과 우정, 나눔과 친교의 표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삶 전체와 관련이 있다. 부부 행위는 부부 상호의 일치를 이루는 최정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일상적으로 함께하는 삶을 필요로 하기 때 문에 가정이라는 환경을 요구하게 된다. 부부 행위를 통해서 부부는 서로의 마음과 몸을 나누게 된다. 몸은 마음의 친교를 겉으로 드러내는 자리이다. 한쪽 편에서 베푼 몸은 그가 사랑하는 다른 한쪽의 가장 소중한 몸이 된다. 이러한 관계는 신적 계약을 필요로 하며, 어떤 방법으로 든 상대방의 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뿐만 아니라 나약하고 지쳐 있을 때도 사랑해야 한다. 육체를 나누는 사랑은 상대방과의 만남을 즐길 뿐만 아니라 그가 어려울 때 받쳐 주고 이끌어 주고 도와 주기를 요구한다. 그 사랑은 일상 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봉사와 애정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매우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 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성은 결코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된다. 성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몫을 할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이다. 온 몸으로 자신을 내어 준다는 것은, 만일 그것이 현세적 차원을 포함해서 전 인격이 걸 려 있는 완전한 자기 증여의 징표와 결실이 되지 못한다면, 또 어떤 것을 보류하거나 미래에 달리 결정할 가능성을 유보하고 있다면 한낱 거짓에 불과할 것이다"(<가정 공동체> 11항). 신적 계약을 통해 실현되는 성은 인간 생활에 봉사한다. 즉 부부 행위를 통해 가정이 이루어지고, 이 가정에서 자녀가 커나간다. 바로 여기에서 성은 그 완전한 의미를 지니게 되며, 남자와 여자가 "새로운 인간에게 생 명을 전달하는 하느님의 협력자"(<가정 공동체> 14항)가 되게 한다. 즉 부부는 부부 행위를 통해 자신들에게 생명 을 전달할 능력, 연약한 어린 존재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부모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자신들만이 아닌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자신들을 개방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러한 개방을 통해 자신들만 의 관심거리나 쾌락 등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부부 사랑을 일컬어 근본적으로 풍요롭고 창조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따라 서 그 성격상 자녀의 출산을 지향하며, 그로써 부부 사랑 은 절정에 달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사목 헌장> 50항 참 조). 결국 부부 사랑과 자녀 출산은 같은 문제이며 동일 한 질서상에 위치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 한 점 때문에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 1968. 7. 31)에서, 부부 사랑은 결실 이 풍부하다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부부의 교류로 만 족하지 않고 더 계속되어 새 생명을 불러 일으킨다고 강 조하며(9항), 더 나아가서 책임 있는 부모의 사명까지도 요구한다는 점을 일깨웠다(10항). 또한 부부 사랑은 죽 기까지 충실하고 독점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신랑 신부는 자유로운 몸으로 의식적으로 혼인의 인연을 맺는 날, 이미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어려움이 따 르기도 하겠지만 부부의 이런 신의는 언제나 가능하고, 또 언제나 고상하고, 서로를 위해서 풍성한 공로가 된다 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신의는 혼인의 본질에서부터 요구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깊고 지속적인 행복이 흘러 나온다(9항 참조) . 생명의 전달 : 가정이 생명에 봉사한다는 기본적인 소 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남자와 여자는 참된 발전을 할 수 없다. 하느님의 모습과의 유사성에 따라 창조되었고 "인간 생명의 선물을 전달하는 데에 자유롭고 책임 있게 협력함으로써 창조주요 아버지인 당신의 사랑과 능력에 특별히 참여하도록"(〈가정 공동체> 28항) 불린 남자와 여자는 창조주로부터 인간적이며 동시에 신적인 존재로 결 정지어졌다는 소명을 받았다. 즉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에 봉사하는 것, 창조주의 첫 축복을 역사 안에서 실현하는 것, 즉 출산을 통해서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 서 사람에게로 전달" (<가정 공동체> 28항)할 수 있는 능력 을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의 협력자들 이며, 동시에 하느님처럼 자유롭고 책임감을 지닌 존재 들이다. 이러한 자유와 책임감의 실천 분야는 광대하고 의무적이며, 또한 인간의 전체적인 전망하에서, 그리고 인간의 자연 및 초자연적 소명의 총체적인 전망하에서 성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합당한 교육을 전제로 한다. 생물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교육학적인 측 면에서의 다양한 면들은 책임감 있는 부성(父性)이라는 아주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때 이해를 위한 많은 도움을 준다. 인간의 성에 대한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인간과 성의 본질적인 관련성을 부정" (<가정 공동체> 32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왜냐 하면 인간은 자신의 성과 그 행위의 조정에 따라 객관적 인 기준들을 위한 기초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 간 생명> 7항에서 언급되는 교회의 가르침은, 바로 인간 과 인간 소명의 전체적인 인간관이라는 시각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인간 생명> 12항에 의하면 "교회의 교도권이 가끔 설명해 온 이런 교리는 일치의 의의와 출산의 의의를 결부시키는 불가분의 연관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두 가지 의의는 모두 부부 행위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므로 인간이 고의로 이 것을 파괴할 수 없다." 이러한 두 가지 의의와 관련해서 모든 인공적 방법의 산아 제한은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 라는 존재 안에 새겨 준 부부 생활의 참된 의미에 반대되며, 또한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최고의 폭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성은 어떤 경우에는 조작되거나 혹은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에 의해서 조작된다 는 것은 생명에로의 개방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며, 이는 부부 간의 전적인 상호 증여를 요구하는 부부 행위의 내적 진리를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결 국 성의 본질적인 목적이 의도적으로 억압되는 것이다. 또한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은 부부 중의 한 사람이 자주 단순한 육체적 쾌락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 공동체>는 "그와는 달리, 부부가 불임 주기법을 사용해서 성 행위가 가지는 일치와 출산의 의미 사이에 불가분적 연루를 존중한다면, 그들은 하느님 계획의 집 행자 역할을 수행하고, 조작이나 변조 없이 완전한 자기 봉헌의 본래적 역동성에 따라 성에서 혜택을 받을 것" (32항)이라고 말하였다. 사실상 임신의 자연적 조절은 부부 행위를 생명에로 개방시켜 놓고 있으며, 부부로 하 여금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그리고 부부 행위의 두 가지 의의에 대한 충실한 존중 안에서 그들 자신만의 풍성 한 부부 사랑을 통하여 상호 책임감과 자유를 강하게 체험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임신의 올바르고도 필요한 조건에는 "육체와 육체의 출산 주기에 대한 지식도 포함된 다"(가정 공동체> 33항). 이러한 조건을 위한 학문적 연구 는 최근 3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교회의 가르침 을 존중하면서 부부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많은 부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세계 각 지역의 많은 학자들 은 단순하고 무해한, 그리고 안전하고도 전혀 비용이 들 지 않는 산아 제한의 자연 주기법, 서로 간의 양심을 충분히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위험을 피할 수 있도 록 도와 주는 방법을 내놓았던 것이다. 자연 주기법은 여 성의 생리 주기, 배란 주기 및 시기 등의 이론에 기초하 면서 발전된 방법이다. 이 방법의 연구와 함께 결국에는 배란의 시기나 생리의 주기에 관계없이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어, 임신이 가능한 기간을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즉 생리 주기 안에서 임신할 수 있 는 최대한의 일수, 배란 전후의 불임 기간 등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여자의 점액 관찰을 통해서 만 가능한 방법으로서, 여성의 점액은 단순한 하나의 표징으로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임신에 있어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며 원동력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부부가 임신할 수 있는 날들을 알아낼 가능성이 발견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자연적인 방법은 산아 제한을 원하던 많은 부부들에게 임신할 수 있는 기간까지도 알려 준 것이다. 임신의 가능성은 여성의 주기 중에서 불과 며칠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며, 남자와 여자는 부부 생활 중에서 임신과 불임의 과정들을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또 한 부부 상호 간과 자녀들의 선을 위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부부 관계를 잘 조화시킬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연적 방법이 단순하게 사용의 규칙들을 알고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한 하나의 기술 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방법의 가치는 삶의 형태를 미리 준비하는 동시에 향상시킨다는 데에 있으 며, 또한 서로의 관계 형성을 위한 하나의 특별한 방식으 로서 사랑과 자유, 그리고 공동의 책임감 발전을 위한 하나의 교육이 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출산 조정을 더욱 용이하게 하는 목표도 가질 수 있는 자연적 방법들에 대한 가르침은 하느님이 여자의 몸을 통해 부여한 출산력의 생물학적 리듬과 더불 어 그 리듬 안에서 생명력이 진행되는 경이스러운 과정 들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인식을 더욱 발 전시켰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사랑하고 보호하고 방어함으로써 지켜야 될 가치와 능력으로서의 출산력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들이 완수해야 할 과제와 소명으로서의 고유한 성의 모습을 살아감으로써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기쁨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만 한다. 성적 경험을 조숙하고 용이하게 갖게 되 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육체에 대한 존중심을 가졌다면 생 물학적인 능력으로서, 그리고 각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의 본질적인 내용으로서의 성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 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자연적 방법의 선택은 하느님으로부터 세워진 윤리적 질서를 존중하면서 자기 고유의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인간, 즉 여자의 주기를 받아들이고 따라서 대화, 상호 존중, 책임의 나눔과 자제를 받아들이는 것" (<가정 공동체> 32항)으로서의 책임성 있는 부성의 충만하고도 자유로운 수용을 더욱 용이하게 할 것이다. 인공 피임과 <가정 공동체>에서 언급하는 자연 주기법 사이의 윤리적 · 인간학적 차이를 인간의 육체적 범위에 만 한정시킨다면, 충만하면서도 완전하게 존중되지 않고 있는, 인간과 인간의 성에 대한 상이한 개념이 나타난다. 인간의 주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남자를 위해서는 자신의 부인(婦人)을 알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며, 부인의 출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하며, 또한 자신의 전 존 재 이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고유한 출산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이해하 고 사랑하고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상호 동의하에서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때 에만 가능한 일이다. "부부 일치의 영신적 · 육체적 성 격"(<가정 공동체> 32항)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부부는 대 화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적 방법의 사용은 부부 상호 간의 사랑과 이해를 위해 조금씩 도와 주는 대화의 교육 학으로 이끌어 준다. 즉 삶의 한 형태로서 부부 상호 간의 전적인 자기 증여의 한 행위인 성 행위를 가능하게 하 고, 사랑의 전체성과 인간적 증여의 전체성 안에서 영혼 과 육체를 완전히 증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부부들은 고유한 생물학적 리듬에 대한 의식, 내적으로 친밀한 대화, 육체적 · 영성적 요구들에 대해 존중 어린 이해를 갖 춤으로써 주기적인 절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기적인 절제는 부부 사랑의 일치를 위해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 상호 간의 헌신을 북 돋아 주고 보다 헌신적인 상호 증여를 증명해 주는 시간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또한 상호 신뢰의 요구 안에서 인간적인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데 봉사하게 될 것이다. 주기적인 절제는 이 외에도 육체적인 해를 끼 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의 전체성 안에서 개성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기적인 절제는 욕정의 노예로부터 자유를 줄 것이며, 이로 인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심을 더욱 크게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본능에 대한 의지의 지배는 의심할 것 없이 하 나의 수덕적(修德的) 방법이며, 이는 <인간 생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부부 사랑에 있어서 가장 높은 인간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부부의 이러한 노력은 계속적으로 요구되며, 이는 그들의 영성적 가치를 더욱 증가시키고 인격을 더욱 완전하게 발전시키면서 그들에게 엄청난 축복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러한 축복의 열매들은 단지 부부들에게만이 아니라 전체 가정 생활을 통해서도 드러나게 된다. <인간 생명> 21항에서의 언급처럼 부부의 순수함은 "가정 생활에 안정과 평화의 풍부한 결과를 가져오며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규율은 또한 배우자끼리의 배려와 존경을 북돋아 주고 참된 사랑의 원수인 이기주의를 몰아내며 서로의 책임감을 깊게 한다." 올바른 질서에 대한 존중, 의무의 의미, 내적 순수함, 생명에로의 개방,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대한 자유로운 협조는 부부 상호 간의 전적인 증여를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생명의 수용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자녀들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상 새로운 것이며, 심리적으로도 그에게 내면적인 풍요로움을 제공할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의 원천이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원리이기도 하며 따라서 모든 구체적 교육 활동을 고무하고 지도하며, 사랑의 가장 소중한 열매인 친절, 항구함, 선함, 봉사, 공평, 자기 희생으로써 교육 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규범이다"(<가정 공동체> 36항). 따라서 부부 고유의 출산력에 대한 소유와 이해에 대한 관심은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긍적적인 의미에서 목표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이 목표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서 모든 인간 생명의 영성적인 풍요로움을 재발견하 는 것이다. (⇦ 결혼 ; ↔ 이혼 ; → 가정 ; <가정 공동체> ; 가정 사목 ; 가족 계획 ; 낙태 ; 단종 ; 무효혼 ; 바오로 특전 ; 사생아 ; 성〔性〕 ; 유효화, 혼인의 ; <인간 생명> ; 혼인성사 ; 혼인 합의) ※ 참고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라틴어 대역, 한국천 주교중앙협의회, 2002/ 교황 바오로 6세, 김남수 역, <인간 생명>,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 오경환 역, <가정 공동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李東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