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빈천시오 가베에 (1580?~1626)

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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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명 嘉兵衛(또는 賀兵衛). 일본 예수회원으로 활동 하다가 순교한 한국인. 일본 교회 205복자 중의 한 사 람. 본래 3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던 장군의 아들로 서울 에서 태어난 권 빈천시오는 13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 면서 임금과 아버지를 따라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때 멀 리서 일본군을 보게 된 그는 그들의 진영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일행과 헤어져 곧장 일본군 진 영으로 갔다. 그곳은 다름아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 長)의 진영이었다. 고니시는 자신의 사위이며 쓰시마(對 馬)의 도주(島主)인 소 요시토모(宗義智)에게 이 아이를 맡아 보호하게 하였다. 소 요시토모는 매력 있는 이 아이 가 마음에 들어 또 다른 어린 포로와 함께 쓰시마에 있는 아내 고니시 마리아에게 보냈다. 한편 마리아는 그 아이 들이 착하고 귀여운 나머지 교회에 바치기로 하고, 먼저 권 빈천시오를 일본 예수회에 보내 교육받도록 하였다. 권 가베에는 1603년 규슈(九州)의 시키(志岐) 섬에서 예수회의 모레혼(P. Morejon) 신부로부터 빈천시오란 세 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일본 말을 쉽게 배우고 또 덕행에도 빠른 진전을 보였다. 그 결과 곧 전도사로 임명 되어 이후 23년 간 일본인과 조선인들에게 전교를 하면 서 큰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이 무렵 예수회에서는 그를 통해 조선에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웠으나 1614년 선교 사들이 추방되고 박해가 더욱 심해짐에 따라 그를 북경 (北京)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는 이곳에 4년 간 머무르 며 조선 입국을 시도해 보았지만 허사로 끝나자 이에 그 는 1620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예수회의 졸라(J.B.Zola) 신부와 함께 전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625년 말 졸라 신부와 같이 시마바라(島原)에서 체포 되어 나가사키로 이송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배교를 강요하는 재판관에게 다음과 같 이 배교를 일축하였다. "고국을 떠나 일본에 온 지가 30 년이 됩니다. 그 동안 물론 저의 육신은 일본 양식을 먹 고 살았으므로 장군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 나 제 영혼의 주인은 천상의 임금입니다. 그러므로 지상 임금에게 복종하기 위해 천상 임금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순교하기까지 14일 간 감옥에 갇혀 있 으면서 나체로 손가락이 잘리고, 물고문으로 반죽음이 되고, 혹심한 추위 속에서 2시간 동안 나무에 매달려 있 어야 하는 등 잔혹한 고문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는 찬미를 받을지어다' 라는 아름다 운 글로 신앙 고백을 할 정도로 믿음을 굳게 지켰다. 마 침내 1626년 6월 20일, 그는 졸라 신부 등 7명의 예수 회원과 함께 나가사키에서 화형에 처해져 순교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예수회원이 되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 루지 못하고 있던 중 감옥에서 관구장 파체코(Pachecco) 신부 앞에서 서원을 함으로써 최초의 한국인 예수회원이 되었다. 1867년 일본 순교자 안에 포함되어 시복되었 다. (→ 일본의 한국인 순교자) ※ 참고문헌  Histoire de ce qui s'est passé es années 1625, 1626, 1627, pp. 203~205/ Pagés 1. pp. 612 n. 2, 623 n. 2, 626/ 宗門史, 下, pp. 15, 22~23, 31, 35, 54~55/ Profillet 1. pp. 80~81, 390~393/ Anesaki, n. 187/ 崔 奭祐, 〈日本敎會의 한국인 순교자들>, 《敎會史研究》 6, 한국교회사 연구소, 1988, pp. 24~26. 〔崔奭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