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주의
混合主義
[라]syncretismus · [영]syncre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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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혼합주의는 상이한 종교 제도, 의례, 신앙과 구원의 방식들이 원시적 종교성을 바탕으로 서로 혼합된 것이다.
언어, 문화, 종교들 간의 특수한 연관성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종교들 간의 교리(敎理)나 의례(儀禮)의 혼합 현상.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혼합주의' 로 표기하며, '영합주의' (迎合主義) . '융합주의' . '혼합 절충주의' 로 표기하기도 한다. [외국에서의 논의와 이해] 용어와 의미 발전 : '혼합주 의' 로 번역되는 '신크레티즘' (syncretism)이란 용어는 본래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의 작가인 플루타르 코스(Plutarchos, 46?~119?)는 《도덕론》(Moralia, 2. 490b) 에서 '공동체의 통합' (a union of communities)이란 의미 로 '쉬그크레티스모스' (ανακατώνομαι)라는 단어를 사용 하였으며, 이것은 '뒤섞다' 라는 의미의 '쉬그크레토스' (ανακατώνομαι)에서 파생된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크레 타인들 사이에는 늘 견해의 차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였을 때 그 차이를 해소하고 내부 적으로 결속하는 행위를 가리키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 하였다. 이러한 용법은 이후의 논의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함축해 준다. 첫째, '신크레티즘' 이라는 용어는 정치적 맥락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라는 것이다. 둘째, 이 용어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이 용어에 대한 태도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과 배경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 Erasmus, 1466/1469~1536)도 이 용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그리스 고전 문화를 흡수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강화하고 풍부하게 한 긍정적인 성취를 달성하였다고 보았다. 하지만 16~17세기부터 이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루터교 신학자인 칼릭스투스 (G. Calixtus, 1586~1656)를 중심으로 일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서로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파들 사이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그들의 기본 취지는 교파마다 차이가 있는 교리와 성찬례, 세례에 대한 견해들을 서로 이해하자는 것이었으나, 이런 입장에 반대하였던 학자들은 그것 이 종교의 무원칙적인 '뒤범벅' 이라고 비난하였다. 이후 '신크레티즘' 은 종교들 사이의 혼합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19세기 후반 종교를 학문 적으로 이해하고 서술하려는 학문인 종교학에서도 지속 되었다. 1853년 익명의 필자가 《마을과 국가를 위한 프레이저 잡지》(Frazer's Magazine for Town and Country)에 <미누치우스 펠릭스의 옥타비우스>(Octavius of Minucius Felix)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로마와 헬 레니즘의 종교 생활을 분석하면서 '신크레티즘' 이란 용어를 '무질서' , '혼란' , '가장 최소한의 공통 분모로의 환원' 이라는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 후 이 용어는 종교학과 역사 신학에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빈번히 사용되었다. 우제너(Hermam Usener, 1834~1905) 는 《신의 이름》(Göttemamen, 1896)에서 '신크레티즘' 을 '종교들의 뒤범벽' (Religionsmischerei)을 뜻하는 부정적 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는 종교사의 전환기에 일어난 신크레티즘 현상은 불가피하였지만, 원칙 없이 교부들의 신앙을 폐기한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최근의 경향 : 20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신크레티즘' 의 부정적인 의미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1940~1950년대에 선교 신학에 영향을 주었 던 크레머(Hendrik Kreamer)이다. 그는 《비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The Christian Message in a Non-Christian World, 1939)와 《종교와 그리스도교 신앙》 (Religion and the Christian Faith, 1956)에서 '신크레티즘' 의 근원과 그것이 그리스도교에 미칠 위험에 대해 설명 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크레티즘' 의 발상지는 동양이다. 동양의 종교에는 사려 깊지 않은 자발적이고 원시적인 신크레티즘의 형태가 있으며, 이것은 서로 다른 종교의 여러 요소들, 즉 상이한 종교 제도, 의례, 신 앙과 구원의 방식들이 원시적 종교성을 바탕으로 서로 혼합된 것이다. 또한 동양인의 종교적 심성은 대체로 누 멘적인 것(the numinous)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심성이 집단이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 다양한 종 교 요소들을 수용하거나 혹은 그것에 동화되는 태도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필요에 따라 신도의 신사, 불교의 사찰, 그리스도교의 교회에 참여하는 일본인의 종교적 태도를 그 사례로 제시하였다. 나아가 크레머는, 신크레티즘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동양의 종교가 '자연적 일원론' 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 였다. 즉, 우주나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자연적 종교에서 신크레티즘은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크레머는 신크레티즘을 자연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열등한 동양의 종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상으로 이해함으로써, 신크레티즘 자체뿐만 아니라 동 양의 종교에 대해서도 잘못된 이해를 보여 주고 있다.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도 '신크레티즘' 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지속되었고, 이러한 태도는 그리스도교 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 세계 교회 협의회는 타종교와의 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넘지 말아야 할 선" 으로 '신크레티즘' 과 그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세계 교회 협의회의 총무였던 비서트 후프트(W.A. Visser't Hooft)의 저서 《다른 이 름은 없다 :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교 보편주의 사이의 선 택》(No Other Name : The Choice between Syncretism and Christian Universalism, 1963)에 나타난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신크레티즘과의 투쟁의 역사로 서 술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통합을 교회 구성의 원리로 제시하였다. 또한 그는 종교 상호 간의 협력에 신크레티즘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신크레티즘은 세계의 주요 종교들의 특징을 혼합해서 하나의 공통 종교를 만들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와 그에 대한 신앙을 절충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관심을 갖고 신학적 논의를 심도 깊게 추구하였던 1970년대에도 유지되었다. 예를 들어, 1975년 세계 교회 협의회 나 이로비 총회에 참석하였던 인도의 사마르타(Stanley J. Samartha)는 교회 일치와 종교 간의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신크레티즘에 대한 논란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전해 주었다. 그는 총회에서 논의된 내용 중 신크레티즘처럼 공포와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고 교회의 긴박한 문제를 회피시키는 데 성공한 용어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세계 교회 협의회는 <대화 지침서>(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Living Faiths and Ideologies, 1979)를 통해 종교 간의 대화에서 신크레티즘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태도에 대해 경고하였다. 이러한 경고는 기본적 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서 신크레티즘을 이해한 결과이다. 우선 이 지침서는 신크레티즘이 다른 종교 전통들의 요소들을 취합하여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려는 의 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인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경우를 지적하면서, 이때 종교 간의 대화 당사자들조차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서 지침서는 또 다른 두 가지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신크레티즘이란 용어가 사용된다고 지적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어떤 문화적 정황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번역하려고 시도하거 나 종교 간의 대화에서 다른 신앙들과 이데올로기들에 접근하려 할 때,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삶의 고유성을 넘 어서서 타협하려는 태도를 나타내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 해 신크레티즘이란 용어가 사용된다. 둘째, 어떤 종교를 또 다른 종교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입장에서 해석할 경우에 나타나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신크레티즘이란 용어가 사용된다. 이는 그리스도교를 신을 향한 여러 접 근들 가운데 단지 하나의 변수로 간주하면서 그리스도교 의 신크레티즘을 야기할 수 있고, 또한 그리스도교인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다른 종교는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고 간주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학문과 대화 모두의 원칙에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크레티즘에 대한 이해가 자신의 종교 를 변증하려는 신학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신크 레티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종교학의 서술 범주로서 부적 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종교학자 베어드 (Robert D. Baird)는 《범주 구성과 종교의 역사》(Category Formation and the History of Religions, 1971)에서 신크레티 즘의 두 가지 측면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종교 문화를 서술하는 데 부적절한 범주라고 주장하였다. 우선 '역사 현상으로서의 신크레티즘 이 있다. 이는 종교사 전체를 살펴볼 때 모든 종교가 혼합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역사 과정에서 혼합적일 수밖에 없는 종교에 대해 혼합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 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신학 현상으로서의 신크레티즘이다. 이는 신앙의 차원에서 다양한 이념들을 혼합한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체계적인 종합이라는 의미보다는 정합성(整合性)이 결여된 이념들이 공존하는 현상이라 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베어드는 이러한 의미에서 특정 종교나 종교 문화가 혼합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특정 종교(문화)의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만이 고려된 결과라고 하였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든 신크 레티즘은 종교 문화나 종교 현상을 설명하는 분석의 틀로서는 부적절하다. 모든 종교가 혼합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녔다면 굳이 그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없으며, 반면에 정합성이 결여된 이념들의 공존 현상으로 어떤 종교 문화나 종교 현상을 신크레티즘으로 제시할 경우에도 그러한 판단은 철저히 외부자의 입장만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신크레티즘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그것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학문적인 논의도 있다. 대표적인 학자는 반 데르 레위(G. Van der Leeuw, 1890~1950) 이다. 그는 종교학의 서술 범주로서 신크레티즘의 긍정 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저서 《종교 현상학》(Phanomenology der Religion, 1933)에서 신크레티즘이라는 용어를 종교 관념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였다.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인간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 좀 더 넓고 복잡한 문화와 접촉하면서 그 내용과 외연을 확대시키듯, 종교의 영역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들이 상 호 작용을 통해 자신의 형식과 내용을 보완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크레티즘은 '종교의 동학(動學)' (the dynamic ofreligions)이라는 것이다. 신학에서의 논의 :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도 신크레티즘 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인 준더마이어(Theo Sundermeier)는 신크레 티즘을 두 가지로 이해하였다. 첫째는 종교 요소들의 혼합 상태보다는 종교 현상들 혹은 종교들 간의 상호 작용 과정에 초점을 둔 '공생적 신크레티즘 (Synbiotischer Synkretismus)이다. 이러한 신크레티즘은 종교 체제들이 강 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회에 외부로부터 종교와 문화가 유입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부족 사회의 경우, 기존의 종교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종교에 의해 단순히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통합되 는 양상을 보인다. 준더마이어는 이러한 통합이 언어, 종교 의례, 윤리 등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고 보았으며, 특히 종교 의례의 통합이 결정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종교는 강력한 저항력을 보여 주고, 반면 유입되는 종교는 강한 적응 력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유입되는 종교는 계 절의 변화나 생의 주기와 결합된 제의와 축제를 받아들 이고 재해석하여 자신의 고유한 체계 안에서 새롭게 의 미를 부여함으로써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준더마이어는 이러한 종교 의례의 공생적 신크레티즘에서 민중의 종교 성을 발견하였다. 외부에서 유입된 종교의 토착화 혹은 문화화의 성공과 실패는 민중의 종교적 삶에 얼마만큼 뿌리내렸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두 번째 신크레티즘은 '종합적 신크레티즘' (Synthetischer Synkretismus)이다. 공생적 신크레티즘이 기존의 종교 경험과 새롭게 유입되는 종교 경험 사이의 수직적 인 만남이라면, 종합적 신크레티즘은 종교들 간의 수평적 만남이다. 준더마이어는 신비주의적 성향의 종교가 종합적 신크레티즘의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신비 주의적 종교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종교적 형식 뒤에 놓 인 종교의 일치성에서 출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의 종교 현상인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 을 예로 들었다. 뉴에이지 운동은 여러 종교들로부터 어 떤 요소를 받아들이고 어떤 요소를 거부하거나 제거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다. 또한 종합주의적 신크레티즘은 신종교들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다만 뉴에이지 운동과는 달리 신종교는 자신의 정체성 형성과 유지가 다른 종교 요소들에 대한 수용과 거부의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캄프하우젠(Etard Kamphausen)은 그리스도교계의 교회 일치 운동이나 신학에 대한 비판 논리에 신크레티즘의 개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교회 일치 운동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교회 일치 운동이 그 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요소들과의 혼합을 조성함 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상대화하고 순수성을 훼손 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캄프하우젠은 준더마이어가 제시한 '공생 적 신크레티즘 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종교사의 측면에서 그리스도교를 종합적 신크레티즘이 아닌 공생적 신크 레티즘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삶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고대 세계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으며, 또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깊이 각 지역 문화 속에 들어갔는지를 생각하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계에서의 논의] 한국 학계에서의 신크레티즘 에 대한 이해와 용법은 서구 학계와 유사하다. 예컨대 종 교학자 강돈구(姜敦求)는 《종교학연구》에 기고한 <신종교 연구 서설>(1987)에서 신크레티즘이라는 용어를 사용 하는 종교 서술의 방식에 내포된 부정적인 의도와 그 위 험성을 지적하였다. 서구학계에서 이미 신크레티즘이 '잡종' , '혼성물' 이라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용어로 특정 종교를 서술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신크 레티즘이라는 용어는 기술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종교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한국 학계가 종교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종교학적 태도보다는,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자신의 신앙을 변호하고 나아가 그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논의에 치우쳐 있다는 인식에서 제기된 것이다. 특히 복 음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입장에서 신크레티즘은 어느 종교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든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 입 장에서 그리스도교에 토착 종교 문화의 요소가 나타난다 면 이는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종교 문화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나타난다면 열등한 종교 문화에 미친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학계에서는 신크레티즘이란 용어의 이해와 사용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나타나고 있다. 방원일(房 元一)은 <한국 개신교 의례의 정착과 혼합 현상에 관한 연구 : 전래 초기(1884~1945)의 실천 양상을 중심으로> (2001)에서 반 데르 레위의 입장을 따라 신크레티즘을 문화 접변의 현상을 서술하는 범주로 이해하고 그 긍정 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는 특히 혼합주의라는 용어가 종교 문화의 혼합 현상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편협 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고, 신크레티즘의 번역어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혼합주의' 대신에 '혼합 현상 을 채택하였다. 그는 혼합 현상이 종교 요소 들 간의 '창조적 결합' 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종교사 에서 하나의 전통은 끊임없이 문화적 환경에 의해 변하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종교 일반인의 열망이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예로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의례에 나타난 상징을 제시하였다.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장례식 에서 신자들은 전통의 상징들과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상징을 결합하여 실천하고 있으며, 결혼식에서도 서구의 상징물인 신부의 베일과 폐백에서 사용되는 대추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민간 신앙에서 귀신 에게 바쳤던 봉헌물인 부엌 항아리의 쌀이 하느님에 대 한 봉헌의 상징물인 성미(誠米)의 형식으로 전유되었다 고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교 신학계에서도 신크레티즘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과 이해를 살펴볼 수 있다. 최기복(崔基福, 마티 아) 신부는 '전례의 토착화' 라는 측면에서 조상 제사를 설명하였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성과 친족 공동체와의 유대를 깊게 하는 조상 제사의 의미가 더욱 절실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상 제사를 복음화하여 생명의 뿌리와 단절되어 시들어 가는 현 세대에 활력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교지의 문화에 이식되기 위해서는 선교지의 종교 문화 가운데 중요한 요소를 그리스도교 복음의 틀에서 재해석하고 전례의 한 양식으로 변용해야 한다는 신학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의 상황화라는 입장에서 유교적 조상 제사에 담긴 효의 사회적 가치를 재해석하고 전례의 한 양식으로 변용하려는 태도는 교황청 의 조상 제사 허용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3~1965)의 신학적 인식의 전환과 연결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 추구하는 조상 제사의 복음화는 종교 요소 간의 단순한 혼합이라기보다는 유교적 조상 제사를 문화의 한 양식으로 이해한 신학적 해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정대위(鄭大爲)는 종교 현상에 대한 분석적 접근으로 신크레티즘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접촉 과정에서 그 변화의 정도와 속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종교 혼합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종교 혼합의 가능성 혹은 필연성은 문화 변동의 필수적인 기제라고 주장하였다. 그 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적인 그리스도교 이해' 를 제시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한국적 이해의 틀 속에서 정착되 고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 전래된 그리스도교 는 고유한 하느님 신앙을 토대로 하여 유교적인 천(天) 과 상제(上帝) 신앙에 기초한 한국적인 신관과 영합하였 으며, 한국의 종교 문화가 이미 지니고 있던 인과응보와 내세관, 도교적 신비와 무당의 몰아(沒我) 경험 등이 그 리스도교가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토대였다는 것이다. 반면 김경재(金敬宰)는 한국 신학계에서 신크레티즘을 '혼합주의' 로 번역하고 그 부정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혼합' 이라는 개념에는 주체성이 없는 자기 상실의 부정적 이미지와 흑백 논리 같은 비현실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혼합이라는 말 대신에 '융합'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면서, 자기 주체성을 지닌 창조적인 확대로서의 융합주의를주장하였다. - 인간의 삶은 융합적인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 학자 유동식(柳東植)은 한국인의 영성을 논하면 서 신크레티즘을 종교 문화의 한 현상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영성은 보편적인 것이지만, 모든 민족은 자신들의 문화적 환경과 전통에 따른 고유한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러한 영성이 고정된 형태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외래의 고등 종교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되어 민족적 영성으로 정착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한국인의 영성은 역사 적으로 전개된 무교를 통해서 표출되었다. 그는 무교의 전개 유형을 단순 전승, 종교 습합적 전승, 승화적 전승 등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단순 전승은 외래 종교를 무제 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무교의 전개 양태를 의미 한다. 외래 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무 교는 풍부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 째로 종교 습합적 전승은 무교의 생명력을 보여 주는 전개 양태이다. 월등한 종교와 만날 때 무교는 그 종교를 내세우면서 그 속에 들어가 자신을 보존하고, 때로는 적 극적으로 작용하여 그 종교를 변혁하거나 창조적으로 승 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려 시대의 팔관회(八關 會)나 연등회(燃燈會), 조선 시대의 동제(洞祭)는 각각 불교와 유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무교적인 것이다. 셋째로 승화적 전승은 외래 종교를 바탕으로 무교가 승화된 새로운 형태의 종교 문화나 종교 사상을 창조해 가는 전개 양태를 의미한다. 그 예로 6세 기의 화랑도(花郞徒)와 19세기의 동학(東學)을 들 수 있다. 즉 유동식은 신크레티즘을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인 도식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문화의 필수적 인 현상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전 망] 신크레티즘에 대한 종교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입장은 서구학계와 한국학계 모두에서 부정적인 태도와 긍정적인 태도라는 양극단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 즉 특정 종교의 진리를 중심으로 하여 신크레티즘이 논의되 는 경우에 그것은 부정적이고 위험한 현상으로 간주되어 온 반면 신크레티즘이 종교 문화의 한 현상으로 이해되는 경우에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서구의 경우와 달리 종교 현상으로서 신크레티즘에 대 한 이해와 논의는 한국 학계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 된다. 한국의 종교 문화는 유입되는 종교 문화들과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 속에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크레티즘은 종교 문화의 특수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대화, 종교의 문화화 내지 토착화 등의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으로서, 더욱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복음화와 교회 일치 운동을 하는 데 있어 혼합주의가 지닌 위험성을 언급하였다. <선교 교령>(Ad Gentes)은 "종교적인 상황이 허용하는 대로, 교회 일치 활동을 증진하여, 한편으로 종교 무차별주의와 혼합주의를 배척하고 다른 편으로는 불건전한 경쟁을 지양"(15 항)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사회 · 문화적 영역에서 신 학적 고찰을 하라고 하면서, 이를 통해 어떤 방법과 방식 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해당 민족의 사상과 풍습과 인생관과 사회 질서에 합치될 수 있는지 찾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온갖 종류의 혼합주의와 그릇된 배타주의를 몰아내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각 문화의 기질과 특성에 적응"(2항)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혼합주의는 선교와 복음화 및 토착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충분한 신학적 고찰없이 진행되는 토착화는 부정적인 의미의 혼합주의를 가져올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 신크레티즘 ; 종교 혼합주의 ; → 복음화 ; 선교 ; 토착화) ※ 참고문헌 강돈구, <신종교연구서설>, 《종교학연구》 6집, 1987/ 김경재, < "복음과 문화" 논쟁의 평가〉, 《기독교 사상》 396호, 1991/ 방원일, <한국 개신교 의례의 정착과 혼합 현상에 관한 연구 : 전래 초기(1884~1945)의 실천 양상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1/ 유동식,《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연세대 학교 출판부, 1997/ 유철옥, <문화토착화와 혼합주의의 문제>, 《신 학연구》 36집, 1995/ 정대위,《그리스도교와 동양인의 세계》, 한국 신학연구소, 1986/ 최기복, <천주교신앙과 제사의 의미>, 박근원 편, 《기독교와 관혼상제》, 전망사, 1984/ C. Cople, (ER) 14, Pp. 218~2271 C. Stewart · R. Shaw ed., Syncretism/ Anti-Syncretism : The politics ofreligious synthesis, New York, Routledge, 1994/ H. Kreamer, 최정만 편, 《기독교 선교와 타종교》,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J. Moffatt, syncretism, James Hastings ed.,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vol. 12, Edinburgh, T. & T. Clark, 1981/ R.D. Baird, Category Formation and the History of Religions, Hague, Mouton & Co. N.V., 1971/ W.A. Visser't Hooft, 임흥빈 편, 《다른 이름은 없다 : 혼합주의 와 그리스도교 보편주의 사이의 선택》, 성광문화사, 1993/ 에르하 르트 캄프하우젠, <그리 스도교와 문화들 : 혼합주의의 문제 - 유럽적 전망>, 《신학연구》 40집, 1999/ 테오 준더마이어, <토착화와 혼합주의 : 관계규정의 문제>, 《신학사상》 82집, 1993. [朴相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