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바인, 한스 Holbein, Hars(1460/1465~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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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화가. 동생 지그문트(Sigmund Holbein), 두 아들 암브로시우 스(Ambrosius Holbein, 1494?~1519/1520?)와 한스(Hans Holbein, 1497/1498?~1543)와 함께 화가 가문을 이루었다. 유명한 화가이면서 같은 이름을 지녔기에 아버지인 한스의 이름에는 '대' (the Elder)라는 표기를 하고, 둘째 아들 에게는 '소' (the Younger)라는 표기를 하여 구분한다. 한스 홀바인은 1460년 혹은 1465년에 아우크스부르 크(Augsburg)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이나 받은 교육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1493년 경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결혼을 하고 화가로 활동하기 시 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 작품은 아우크스부르크 주 교좌 성당에 있는 <바인가르텐 제단화>(1493), <장크트 아프라 제단화〉(1495), <성모 마리아의 바실리카>(149) 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도나우에싱겐(Donaueschingen)에 있는 12점의 연작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깊고 풍부한 색채, 좁은 공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균형 잡힌 인물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1490년경에 그려져 현재 부다페스트(Budapest)에 있는 <성모의 죽음>에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대부분이 초상화 드로잉인 베를린에 소장된 스케치북에는 두 아들의 이중 초상화 (double portrait)도 있다. 이러한 작품은 홀바인이 웨이덴 (Rogier van der Weyden, 1399/1400~1464)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음을 보여주며, 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홀바인은 1501년에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 am Mein)으로 가서 동생 지그문트와 조수 베크(Leonhard Beck)와 함께 도미니코회 수도원의 주제단화를 그렸는데, 여기에는 새로운 양식이 나타난다. 또한 제단화의 오른쪽 부분에 그려진 <성모의 죽음>은 현재 바젤의 박물 관(Kunstmuseum Basel)에 있는데, 열두 사도에 둘러싸여 임종하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이 작품을 통해 뛰어난 초상화 화가로서의 그의 자질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후에 제작되어 현재 뮌헨에 있는 <카이스하임 제단화> (1502)와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바오로 바실리카> (1503~1504)는 이전 작품에 비해 더욱 깊이를 지니며, 종종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매우 개성적인 인물들의 자유 스러운 배치가 한층 생동감을 준다. 이 새로운 방식은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낼 때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72~1528)의 초기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작품의 특징은 1510년 이후에 제 작된 아우크스부르크의 <성 가타리나 제단화>(1512), 뭔 헨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제단화>(1516)와 1519년 제작된 <생명의 샘>과 같은 작품에서 나타난다. 홀바인은 이 시기부터 이탈리아식 장식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브뤼해(Brugge)에서 활동한 네덜란드의 화가 다비트 (Gerard David, 1460?~1523)와 유사하게 후기 고딕과 르네상스가 접점을 이루는 절충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양식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킨 이탈리아적 특징에 기울어진 화가들에 의해 홀바인은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다. 1517년부터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아우크스부르크를 떠나 알자스 지방의 이 젠하임(Isenheim)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1524년 에 세상을 떠났다. 초상화가로서 적나라하고도 통찰력이 있었던 홀바인은 다수의 실버포인트(siverpoint) 드로잉을 제작하였다. 초상화가로 아버지보다 더 명성이 높은 그의 아들 한스의 기량은 홀바인의 덕택임이 분명하다. 또한 그는 아이 히슈테트(Eichstatt) 주교좌 성당의 창문(1502), 아우크스 부르크의 장크트 울리히 성당, 슈트라우빙(Straubing)의 장크트 야코프 성당에 유리화를 고안하였다. 모름지기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화가 가문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 참고문헌  Stephanie Buck, Hans Holbein : Masters of German Art, Konemann, 1999.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