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츠만, 하인리히 율리우스 Holtzman, Heinrich Julius(183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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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신학자. 1832년 6월 17일 독일 남서부 바덴부르템베르크 (Baden Wiirtemberg) 주의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후에 영국 성공회의 최고 감독 법원 고문이 된 카를 율리우 스(Karl Julius Holtzmann)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베를린 (Berlin)에서 공부를 한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1858~ 1874)와 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1874~1904)에서 신약성서 교수로 봉직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는, 그 시대에 영향력 있는 학자였으며 다재 다능한 교수였다. 특히 신약성서 비평과 주석가로 잘 알려져 있다. 홀츠만은 동시대의 많은 신학자들처럼 성서가 제시하는 증거들을 계속 찾아가면 역사적 예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공관 복음서 문제에 있어서 홀츠만은 저서 《공관 복음서》 (Die synoptischen Evangelien. ihr Ursprung und geschichtlicher Charakter, 1863)를 통해 1838년 빌케(C.G. Wilke, 1788~1854)와 바이세(C.H. Weisse, 1801~1866)가 처음으로 제창한 '두 사료설' (二出典說, Zweiquellentheorie) 을 지지함으로써 공관 복음 비평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그는 공관 복음의 전승 과정을 규명하는 한 방안으로 80~90년경 마태오와 루가가 제각기 두 가지 구별되는 사료를 구하여 자신의 복음서에 사용했을 것으로 가정하였다. 이 두 가지 사료는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는데, 전해지지 않는 사료 하나는 50~60년경 어느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말씀 70여 편을 모아 놓은 《예수 어록》(Logienquelle) 이고, 다른 하나는 70년경에 마르코라는 유대인이 예수의 말씀뿐 아니라 행적까지 기록해 놓은 복음서라고 하 였다. 홀츠만의 이러한 두 사료설' 은 마태오 복음서가 가장 오래된 복음서이고 이를 루가 복음사가가 이용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마르코 복음사가가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을 더욱 발전된 형태로 수정하였다고 주장한 1783년 그 리스바흐(J.J Gries bach, 1745~1812)의 가설을 뒤집은 것 이었다. 1863년 이후 그리스바흐의 가설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오늘날에는 홀츠만이 주장한 '두 사료설' 이 정설이 되었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 가운데 마르코 복음서가 역사적으로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홀츠만의 또 다른 주장은 많은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홀츠만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평범한 어린 시절이나 보통 사람들과 같은 성인(成人) 예 수의 삶과 예수의 신성(神性)을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후기 저술들에서 예수의 신성과 관련하여 예수의 삶에는 특별히 주목되는 성숙의 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다음과 같이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즉 첫 번째 단계는 예수의 성장 시대로,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데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다음은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이후의 시대로, 이 시기는 고통 받는 메시아로 묘사되는 예수의 죽음으로 끝난다. 홀츠만이 남긴 주요 저서들로는 《정경과 전승》(Kanon und Tradition, Ludwigsburg, 1859) , 《사목 서간》(Die Pastoralbriefe, Leipzig, 1880), 《신약성서의 역사적 · 교회적 입문서》(Lehrbuch der historisch-kitischen Einleitung in das NT, Freiburg, 1885), 《신약성서 신학 교과서》(Lehrbuch der neutest. Theologie, Freiburg · Tubingen, 1896~1897) 등이 있다. 또한 편집자로 활약한 그가 기획하여 슈미텔(P.W. Schmiedel) · 폰 소덴(H. von Soden)과 함께 편집한 신약성서 소주석서 전집 중 《공관 복음서》(Die synopt. Evangelien, Freiburg, 1889), 《사도사》(使徒史, Die Apostelgeschichte, Freiburg, 1891), 《요한계 문헌》(Die johanneischen Schriften, Freiburg, 1891)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또한 《신학 연보》(Theol. Jahresbericht, 1892~ 1899) 제12~19권의 편집자로도 활동하였다. (→ 공관 복음서 ; 《예수 어록》) ※ 참고문헌  W. Bauer, Heinrich Julius Holtzman, Geissen, 1932/ A. Faux, 《IDBS》4, 1976, pp. 112~1 16/ H.C. Kee, 서중석 역, 《신약성서 이해》, 한국신학 연구소, 1990/ W.G. Kummel, Das Neue Testament : Geschichte der Erforschung seiner Probleme, Freiburg, 1958/ W.G. Kiimmel, 박익수 역, 《신약성서 성경서론》, 대한기독교 출판사, 1988/ J. Schmid, 7, 2003, p. 16. 〔姜善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