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 토마스 Hobbes, Thomas(1588~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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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홉스.


영국의 철학자. 정치 이론가. [생애와 작품] 흡스는 1588년 4월 5일 영국 서남부 월트셔(Wiltshire)의 작은 마을 맘스베리(Malmesbury)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페인의 무적 함대가 침공 한다는 소문에 놀라 칠삭둥이로 태어난 그는, 훗날 자신의 출생에 대해 "나는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라고 말하였다. 4세 때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흡스는 고대 아테네의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 스(Euripides, 기원전 484?~406)의 《메디아》라는 작품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여 선생님에게 제출하였으며, 어학에 대한 그의 재능은 훗날 베이컨(F. Bacon, 1561~1626)의 개인 비서로(1621~1626) , 그의 에세이들을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드러났다. 그가 처음 출판한 책은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활동한 투키디데스(Thucydides, ?~?)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번역판이었으며 (1629), 마지막으로 출판한 책은 기원전 8세기경에 활약한 시인인 호메로스(Homeros, ?~?)의 《일리아드》(Illiad) 와 《오디세이》(Odyssey, 1675)였다는 사실도 그의 어학적 재능을 짐작하게 해 준다. 옥스퍼드 대학 졸업 직후, 후에 데번셔(Devonshire)의 공작이 되는 월리엄 캐번디시(William Cavendish)의 가정 교사로 취직하였다. 이 귀족 가문과의 인연은 몇 년간의 공백기를 제외하고는 평생 지속되었다. 당시의 귀족들은 교육의 대부분을 가정 교사에게 맡겼으며, 그 교육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선생과 학생이 함께 외국으로 수학 여행을 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1641년 프랑스로 망명한 것을 포함해서 모두 네 차례에 걸친 해외 여행을 통해 흡 스는, 당시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과 교류를 하였다. 1634년부터 3년간 파리에 머물면서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자연 철학자인 메르센(M. Mersenne, 1588~1648)이 주축 인 과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하였고, 그 모임에서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를 포함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을 만났다. 1634년 피렌체로 가서 이탈리아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갈릴레오(G. Galileo, 1564~1642)를 만난 것은 흡스의 철학적 방법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의 유물론자인 가생디(P. Gassendi, 1592~1655)와의 평생에 걸친 우정으로 그와 홉스는 근대 제일의 유물론자가 되었으며, 데카르트와의 논쟁은 데카르트의 저서인 《제1 철학에 대한 명상》(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에 대한 제3 비판서를 집필하게 만들었다. 흡스는 유물론의 입장에서 물체, 인간, 사회를 자신의 세 가지 철학적 주제로 삼았다. 시민 전쟁을 앞둔 영국 사회의 혼란으로 홉스는 사회 문제부터 먼저 다루었고, 그래서 《시민론》(De Cive, 1642)이 먼저 발표되었다. 망명지 파리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출판한 흡스의 대표작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 부제 : 교회 및 시민 공동체의 내용, 형태, 권력)은 새로운 실권자인 크롬웰(O. Cromwell, 1599~1658)의 환심을 사기 위한 책이라고 오해를 받았지만, 일반인들로부터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흡스는 계획한 3부작 중 나머지 주제인 《물체론》(De Corpore, 1655) , 《인간론》(De Homine, 1658)을 출판하였으며, 유고집 《비 히머스》(Behemoth, 1679)와 《학생과 철학자의 대화》(A Dialogue between a philosopher and a student of the common Laws of England)를 포함하여 《리바이어던》의 라틴어 판을 출판하였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번역하는 일로 말년을 보냈다. 1679년 12월 4일 흡스는 평생의 주인이었던 캐번디시 가문의 저택이 있는 하드윅 (Hardwick)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으며, 그 저택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교회에 안장되었다. [평 가] 새로운 방법론 : 대부분 새로운 철학을 시작하려는 철학자는 기존 철학의 방법론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철학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학문의 신기관론》(Novum Organum Scientiarum, 1620)과 《방법론 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을 통해 각각 새로운 철학의 방법론을 탐구하였듯이, 홉스 역시 새로 운 방법론을 새로운 철학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그의 방 법론은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학파와 갈릴레오가 사 용하였던 '분해와 결합의 방법'과 기하학의 '공리적 방법' 의 절충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해의 방법은 분석적 방법으로 이는 알려진 결과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 과정이며, 결합의 방법은 종합적 방법으로 알고 있는 원인으로부터 추론을 통해 새로운 결론으로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흡스는 논리적 추론의 명료성 모범을 유클 리드 기하학의 공리적 방법에서 발견하였다. 기하학을 '모든 자연 과학의 어머니' 라 부른 흡스는 기하학에서 명료함과 과학적 방법론의 전형을 발견하였으며, 그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였다. 유물론자 : 흡스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옷을 입은 아 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 며, 가생디와 더불어 에피쿠로스(Epicouros, 기원전 341~ 270)와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쾌락주의와 유물론의 전통을 17세기에 부활시켰다. 흡스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요 용어는 '운동' (motion)과 '물체' (bodies) 이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체뿐이며, 이 물체는 항상 자극과 반응을 통해 기계적인 운동을 한다고 여겼다. 홉스는 운동 개념을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 심리 현상과 도덕 철학에까지 확대 · 적용하였다. 그래서 욕망, 혐오감, 사랑과 미움 등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정념들을 심리 운동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현대 행동주의 심리학의 원형을 보여 주었다. 흡스는 인간을 운동하는 기계로 보았다. 그래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사실은 욕구 운동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은 회피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 따 라서 그는 쾌락은 선이며, 고통은 악이라 정의하였다. 그런 점에서 흡스는 쾌락주의자이며, 흄(D. Hume, 1711~ 1776)과 벤담(J. Bentham, 1748~1832) 그리고 밀(J.S. Mill, 1806~1873)로 이어지는 영국 쾌락주의 윤리학의 전통을 세웠다. 자연법론자 : 모든 사람은 자기 보존의 본능을 가진 심리학적 이기주의자라는 대전제에서 흡스는 자신의 윤리학과 정치 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자연 상태' 라는 개념을 독창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지속되는 전쟁 상태와 유사하다. 자연이 제공하는 무제한의 자유와 권리를 소유한 개인들이 자신의 이기적 본성을 통제하지 않는 한 결국에는 전쟁 상태로 돌입하기 쉽다. 이런 자연 상태는 이기적 본성을 가진 개인들이 국가와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직면하게 되는 불가피한 존재 상황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경쟁의 공포 속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그 공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가상의 적들을 모두 제거할 수도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평화 공존 없이는 자기 보존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 성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 또는 합리성 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 보존을 위해 평화를 추구하도록 명령한다. 이 이성의 명령은 자연법이며 자기 파멸을 금 지하는 이성적 계율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평화를 획득할 희망이 있는 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이성의 계율이며 일반적인 규칙이다. 이 규칙은 근본적이고,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는 제1 자연법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평화 애호주의는 흡스의 정치 철학에 붙일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이다. 사회 계약론자 :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법의 명령에 따라 사회 계약을 맺어 시민 사회를 구 성하고 합법적(de jure) 정부이자 실질적(de factor) 정부를 구성하는 길뿐이라고 흡스는 생각하였다. 사회 계약을 통해 세워진 절대 군주야말로 도덕적 정당성과 실질적 힘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흡스는 어느 특정한 군주를 지지하거나 당대 정치 이론가인 필머(Robert Filmer, 1588?~1653)처럼 왕권 신수설을 따르는 편에 서지도 않았다. 그는 비록 군주 정치를 지지하였으나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은 아니었으며, 단지 자기 보존과 평 화의 유지를 위한 최선의 전략적 차원에서 절대군주론을 지지한 것이다. 그는 혁명론자가 아니었으며, 로크(J. Locke, 1632~ 1704)처럼 의회 민주주의의 신봉자도 아니었다. 홉스는 정부 구성의 정당성을 사회 계약론에서 찾으려 하였던 진보적 생각과, 기존의 군주 정치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 수주의를 접목시키려고 하였다. 기존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려 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보수주의 자였으며, 동시에 배타적인 권위보다는 명실상부한 정통 성을 지닌 통치적 권위를 세우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계몽된 권위주의자였다. 교회에 대한 국가 우위론자 :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내용 절반 이상을 성서 해석과 교회의 문제에 할애할 정도로 종교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58세 때 영국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교회와 성직자들로부터 무신론자 또는 반그리스도인이라는 낙인과 오해를 받았다. 그 이유는 그가 당시의 제도권 교회와 성직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 명하였으며, 특히 가톨릭 교회의 교황 중심주의를 신랄 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흡스는 현실 정치에 깊게 관여하는 교회와 타락한 성직자들 그리고 스콜라 철학으로 물든 신학자들이 정치적 혼란과 시민 전쟁의 배후라고 지적하였다. 또 성서를 계약론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아브라함에서 사무엘에 이르는 동안 지속된 첫 번째 하느님의 왕국은 사울을 왕으로 세움으로써 끝났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후 두 번째 하느님의 왕국이 아직 오지 않은 현재 세계는 세속 군주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 질서와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소위 교회에 대한 국가 우위론' (Erstianism)을 지지하였다. [영 향] 홉스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사용되었던 '호비즘' (Hobbism)이라는 명칭은 위험하고 해롭다고 여겨지는 흡스의 철학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호비즘은 유물론, 성악설, 절대 군주론 그리고 무신론을 홉스 철학의 핵심 이라고 보는 견해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호비즘은 흡스의 사상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하는 운반선 역할을 하였다. 로크,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 라이프니츠(G.W. Leibniz, 1646~1716) , 그리고 흄과 벤담에 이 르기까지 17~18세기 유럽 철학에 끼친 흡스의 영향력 은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경쟁적인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오늘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bellum ominum contra omnes) ,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homo homini lupus) 그리고 "전쟁은 결코 승리함으로써 끝나지 않는다"라는 흡스의 말은 현실감 있게 들리고 있다. (→ 개인주의 ; 베이컨 ; 정치 철학) ※ 참고문헌  King Preston ed., Thomas Hobbes : Critical Assessments, vols. I~IV, Routledge, 1993/ A.P. Martinich, The Two Gods of Leviathan, Cambridge, 1992/ - Hobbes A Biography, Cambridge Univ. Press, 1999/ Sorell Tom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Hobbes, Cambridge, 1996/ 김용환, 《흡스의 사회 · 정치 철학》, 철학과 현실사, 1999/ 一, 《리바이어던 : 국가라는 괴물》, 살림 출판사, 2005. [金龍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