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교만(1738~1801)
洪敎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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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척사윤음이 내려져 주문모 신부의 성물을 집에 숨기는 홍교만.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사 베리오(혹 아우구스티노). 자는 도경(道卿). 본은 남양(南 陽). 통덕랑 회(晦)의 아들이요 판서 홍주만(洪周萬)의 아우.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오)의 사촌 서형(庶兄). 신유박해 순교자 홍인(洪鐘, 레오)의 부친이요 정철상(丁 哲祥, 가롤로)의 장인. 서울의 양반 출신으로 포천으로 이주해 살던 중 177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양근에 사는 고종 사촌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집을 왕래하면서 천주교를 접하였으나 즉시 신앙을 받아들이지는 않다가, 먼저 입교한 아들 홍인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1794년 말 입국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미사에 참석하였으며, 비신자 친구들과의 교제를 끊고 더 깊이 교리를 연구하는 데 진력하였다. 또 교우들과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거나 냉 담자를 회두시키는 데 열중하여, 포천 지역에 널리 복음을 전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홍교만은 일찍부터 박해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숨겨 주었던 사돈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책상자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아들과 함께 다 른 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순교를 각오하고 집으로 돌아와 3월 27일 체포되었다. 의금부로 압송된 홍교만은 문초와 형벌을 받는 중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으며, '천주교 교리가 진리' 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런 다음 사형 판 결을 받고 정약종, 홍낙민(洪樂敏, 루가 혹은 바오로) 등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이고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 신유박해 ; 홍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추안급국안》/ 黃嗣永, <백서>/ 《사학징의》/ 《순조실록》/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한국천주 교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2003.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