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근 (1915~1949?)
洪道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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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 1915년 4월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에서 홍 건일(洪鍵一, 마르코) 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30년 4월 서울 남대문상업 학교 을조(乙組)에 입 학하였으며, 졸업과 동시에 1935년 4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 학하였다. 1937년 4월 덕원 신학교로 전학하여 대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1940 년 11월 8일 평양 관후리 본당에서 오세아(W. O'Shea, 吳)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신리(이후 대신리로 개칭) 본당 보좌 신부를 시작으로 1942년 2월 비현 본당 7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943 년 4월에는 기림리 본당 3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1940년에 설립된 기림리 본당은 설립 직후부터 일제의 종교 탄압으로 본당의 시설이나 교세 확보 면에서 다른 본당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홍 신부는 교회의 안전과 신자들의 자립심 고양을 사목 목표로 삼고 청년회 · 부인회 등 각종 신심 단체들을 조직하여 활동을 보조하였다. 이후 홍 신부는 1944년 4월부터 11월까지 강계 본당 2대 주임으로, 1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는 교구 당가 겸 다시 기림리 본당 주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5년 10월 영유 본당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홍 신 부는 공산주의자들의 압박 속에서 신자들의 신앙이 빗나 가지 않도록 영성 지도에 주력하였고, 양로원 운영과 평양 주교좌 성당의 건립에도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그러나 1949년 5월 이후 교회에 대한 공산당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고 정치보위부원들의 성당 출현도 빈번해지더니, 결국 1949년 12월 11일 밤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된 이후 행방 불명이 되었다. ※ 참고문헌 평양교구사편찬위원회, 《천주교 평양교구사》, 분 도출판사, 1981/ 평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북녘 땅의 순교자들》, 가톨릭출판사, 1999. 〔洪延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