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 본당

鴻山本堂

글자 크기
12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 3 구 101 소재. 1958년 4월 8일 금사리 본당에서 분리되어 준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62년 10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부여군 홍산면, 옥산면, 남면, 충화면 일부와 서천군 문산면 일부. 관할 공소는 은곡 공소 1개소. [교 세] 1964년 641명, 1971년 500명, 1976년 603명, 1980년 432명, 1985 년 647명, 1990년 719명, 1995년 686명, 2000년 574명, 2003년 487명. [역대 신부] 초대 제제구(R. Jézégou, 최세구) 로베르토(1962. 10~1963), 2대 김동억 (金東億) 바오로(1963~1964.6 3대 생제(P. Singer, 成載 德) 베드로(1964. 6~1969. 6), 4대 김영곤(金榮坤) 필립보 (1969. 6~12), 5대 구티에레즈(J. Guitierrez, 고대연) 야고 보(1969. 12~1972. 2), 6대 텔리에(○. Tellier, 태) 요한 (1972. 2~4), 7대 여충구(如忠九) 마르코(1972. 4~1973. 12), 8대 구자윤(具滋倫) 비오(1973. 12~1975. 9), 9대 이상룡(李相龍) 필립보(1975. 9~1977. 10), 10대 신상욱(申 相旭) 토마스(1977. 10~1981. 9), 11대 강석준(姜錫俊) 미카엘(1981. 9~1985. 3), 12대 구일모(具一謨) 베드로 ( 1985. 3~1991. 8), 13대 황선영(黃先影) 라우렌시오 (1991. 8~1996. 2), 14대 김홍식(金洪植) 이냐시오(1996. 2~2001. 1), 15대 김영근(金榮根) 야고보(2001. 1~현재). 홍산 본당의 현 관할 구역에서 신앙 공동체가 처음으로 확인되는 것은 1880년대 충청도 지방의 사목을 담당하던 두세(C.-E. Doucet, 丁加彌) 신부의 <교세 통계표>에 서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1885년 삽티 공소(현 홍산면 상천리)에 12명의 교우가 있었고, 1895년에는 가덕리 공소(현 부여군 옥산면)에 31명의 신자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01년 소양리에 '소양리 본당' (현 금사리 본당) 이 설립되자, 이 지역 공소들은 소양리 본당으로 편입되 었다. 이 지역에 공소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40년대 후반으 로, 1949년 기록에 의하면 홍산 공소와 가덕리 공소가 있었고, 1953년에는 홍산 공소가 홍산과 삽티 공소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공소들이 꾸준히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 전쟁 이후 본당을 통하여 구호 물자가 배급되면서 신자수가 5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본당까지의 거리가 멀고 교통편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새 로운 본당을 설정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금사리 본당의 제제구 신부는 1956년 봄 두 차례에 걸쳐 현 본 당 대지를 매입하였고, 1957년 말에 이곳에 44평 규모의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8년 4월 홍산준 본당이 설정되었고, 5월에는 성당이 완공되었다. 그리고 1960년 6월에는 성당의 봉헌식이 거행되었으며, 그해 말에는 사제관도 건축되었다. 그런 가운데 1962년 10월 홍산 준본당은 홍산 본당으 로 승격되고 초대 주임으로 제제구 신부가 부임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임되어, 금사리 본당의 김동억 신부가 홍산 본당의 주임을 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4 년 6월 3대 주임으로 생제 신부가 부임하여 다양한 활동 을 펼치며 홍산 본당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논산 본당의 신도내 공소에서 전교하던 한현석(엘리사벳) 은 생제 신부의 부탁을 받고 홍산 본당의 선교를 위해 예 비자 교리를 담당하며 '성모회' 와 '청년회' 를 결성하였다. 1965년에는 수녀원을 완공하였고 이듬해 9월에는 성가 소비녀회를 초청하였으며, 1967년에는 생제 신부 본인이 기증한 책 300여 권으로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또 1969년 3월에는 본당 사무실에 조합원 36명, 출자금 18,000원으로 홍산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는데, 이 신용 협동 조합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972년 10월 법인 조합으로 재발족하고 1976년 11월과 1978년 6월에는 독립된 사무실로 이전하였으며, 1981년에는 자체 회관을 구입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홍산 본당도 1983년 에는 본당의 재정 자립화를 이룩하여 더 이상 교구 보조비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고, 이후 재정 능력이 계속 향상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홍산 본당에서는 병인박해 (丙寅迫害) 순교자 손선지(베드로)와 정문호(바르톨로 메오)의 출생지인 충화면 지석리를 성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1984년 12월부터 매년 현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지만 생가터를 알지 못하여 성지 개발에 어려움을 겪다가, 1986년에 손선지 성인의 후손으로부터 밭을 기증받아 그곳에 비석을 세우고 주변 환경을 정비하여 성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198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본당의 사목 활동을 돕기 위하여 부여의 성 요셉 병원 수녀 2명이 주일마다 파견되었고, 1987년 4월에는 천주 섭리 수녀회에서 홍산 본당에 분원을 설립하였다. 이처럼 홍산 본당은 점차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갔지만 관할 구역이 농촌 지역이라 본래부터 인구가 적었고, 또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활발한 교세 확장으로 신자수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차례의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었는데, 1987년 7월과 1999년 9월에는 홍수로 성당이 침수되기도 하였다. 이에 목조 건물이던 성당의 재건축이 불가피하게 되자 2000년 8월에 새 성당을 완공하고 11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 대전교구) .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 년》, 대전교구 홍보국, 1988/ 김정송, <홍산 본당과 성 베드로 신부-1964. 6~1969. 12>, 《교회와 역사》 209호(1992. 10), 한국교회사 연구소/ 서울 성가 소비녀회 역사 자료실, 《서울 성가 소비녀회 창설자 성재덕 신부》, 서울 성가 소비녀회, 1993/ <가톨릭신문> 1987 년 8월 2일자· 1987년 8월 9일자 · 1987년 8월 16일자. [金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