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주 (1801~1840)
洪永周
글자 크기
12권

돈을 주고 배교를 권하였으나 신앙을 지킨 홍영주.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 일, 세례명은 바오로. 회장. 신유박해 순교자 홍낙민(洪 樂敏, 루가 혹은 바오로)의 손자이며 기해박해 때의 순교 성인 홍병주(洪秉周, 베드로)의 아우.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서울의 양반 가문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조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의 부친은 선대의 고향인 예산의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 종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홍영주도 어려서부터 이러한 집안의 신앙을 이어받아 형 과 함께 훌륭한 하느님의 종으로 성장하였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한 뒤 형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본분을 다하였다. 자신들의 수계 생활은 물론 교우들을 돌보면서 교리를 가르치는 데 노력하였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갖가지 자선 행위에도 열중하였 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선교사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형과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있다가 배교자 김여상(즉 金順性)의 밀고로 선교사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것이 탄로나면서 8월에 체포되어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이후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그들 형제는 조금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사형 판결을 받고 동료들과 함께 당고개(현 서울 용산구 신계동)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홍영주의 순교일은 1840년 2월 1일(음력 1839년 12월 28일)이었고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한국 성인 ; 홍낙민 ; 홍병주) ※ 참고문헌 《기해일기》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 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샤 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 회사연구소, 1980/ 《일성록》/ 《비변사등록》/ 아드리앵 로네, 안응렬 역, (한국七十九위순교복자전), 가톨릭출판사, 1945/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교구, 1997.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