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 (1758~ 1802)

洪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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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홍교만과 함께 체포되어 끌려 가는 홍인.

부친 홍교만과 함께 체포되어 끌려 가는 홍인.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레오. 본은 남 양(南陽). 1801년 순교한 홍교만(洪敎萬, 프란치스코 사 베리오)의 아들. 서울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을 따라 경기도 포천으로 이주해 살았다. 1791년 경 양근에 살던 고종 사촌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 베리오)으로부터 부친이 교리를 배운 뒤에 이를 좇아서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부친보다 먼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세속의 꿈을 모두 버리고 신앙 생활에만 열중하였으며, 마침내는 부친을 천주교에 입교시켰다. 1794년 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자 부친과 함께 주 신부를 찾아가 성사를 받고 미사에 참석하였고, 이후로는 서(庶)5촌 당숙인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오),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등과 교류하면서 포천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노력하였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부친과 의논하여 정 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책 상자를 받아 집안에 숨겨 두었는데, 임대인(任大仁, 토마스)이 이 상자를 서 울로 옮기다가 체포되면서 그들 부자의 이름이 알려져 3 월 27일 체포되었다. 부친은 먼저 서울로 압송되고, 그는 포천 관아로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경기 감영 을 거쳐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포도청과 형조에서 다 시 문초와 형벌을 받다가 형조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고향 포천으로 이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2년 1월 30일(음력 1801년 12월 27일)이었고 당시 홍인의 나이는 44세였다. (→ 신유박해 ; 홍교만)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의》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 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 시성특별위원회,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 위》, 2003.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