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영 (1780~1840)
洪梓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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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프로타시 오. 본은 풍산(豊山). 1801년의 순교자 홍낙민(洪樂敏, 루가 혹은 바오로)의 아들이고 1866년의 순교자 홍봉주 (洪鳳周, 토마스)의 부친이며, 1840년에 순교한 홍병주 (洪秉周, 토마스) · 영주(榮周, 바오로) 형제 성인의 숙부이고, 심조이(沈召史, 바르바라)의 시아버지이다. 충청도 예산의 유명한 양반 집안 출신으로,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서 교리를 배웠으며 장성한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 활동에 참여하거나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교리를 연구하였다. 그러나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체포된 후 부친과 같이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배교한 뒤 전라도 광주로 유 배되었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한동안 냉담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은총의 힘으로 다시 신앙을 찾았고, 이후로는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면서 기도와 묵상 생활은 물론 대재를 지키는 데 열중하였다. 1832년 유배자들에게 대대적인 사면령이 내려진 후 에도 그대로 광주에 눌러 살다가 1839년 기해박해를 당하여 피신해 다니는 교우들을 보살펴 주고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순교 원의를 다졌다. 그러다가 전주 포졸 들에게 체포되어 광주에서 먼저 문초를 받았고, 다시 전주로 이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배교를 거부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켰다. 마침내 사형 판결을 받고 전주 형장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40년 1월 4일(음력 1839년 11월 30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였다. (→ 기해박해 ; 홍낙민 ; 홍봉주)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사학징의》/ 《일성록》/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한국천주교주교 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2003.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