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필주 (1774~1801)

洪弼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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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모 신부의 복사로 신앙 활동을 한 홍필주.

주문모 신부의 복사로 신앙 활동을 한 홍필주.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필립보. 아명은 문갑(文甲). . 1801년의 순교자 강완숙(姜完淑, 골롬바)의 의붓아들이며 홍익만(洪翼萬, 안토니오)의 사위. 충청도 덕산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790년경 이 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먼저 신앙을 받아들인 모친 강완숙의 덕행을 모범으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부친이 천주 교를 싫어한 탓에 온전하게 교리를 실천하기 어렵게 되 자 1791년의 신해박해(辛亥迫害)를 겪은 뒤 조모, 모친과 함께 상경하여 모친을 도와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하였다. 또 1795년 5월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자신의 집으로 피신해 오자 신부의 복사가 되어 미사와 지방 순회 등을 도왔다. 당시 그의 집은 조선 천주교회의 중심지요 신부의 주된 거처로, 성당은 물론 과부와 동정녀들의 공동체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그와 모친 강완숙 은 신부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이리저리 집을 옮겨야만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모친과 더불어 교회 안에서 크게 드러났고,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에는 일찍부터 체포 대상자의 명단에 올라 박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모친은 물론 집에 있던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이때 관아에서는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알아낼 목적으로 그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혹독한 형벌을 가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또 마음이 약해졌을 때는 함께 조사를 받던 모친의 권면으로 마음을 다잡아 굳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모친은 먼저 순교하고 그는 오랫 동안 옥에 갇혀 고통을 받다가 사형 판결을 받고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10월 4일(음력 8월 27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 강완숙 ; 신유박해 ; 주문모 ; 홍익만)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사학징의》/ 《추안급국안》/<181년 조선 신자들이 북경 주 교에게 보낸 편지>/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황사영, <백서>/ 한국천주 교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2003.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