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紅海
[히〕ים סוף · [그]Ερυθρά θάλασσα · [라]Mare Rubrum, Sinus Arabicus · [영]Red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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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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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가리키는 성서의 몇몇 구절은 수에즈 만과 관련되어 있다.
인도양의 북서쪽으로 뻗어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부와 아라비아 반도를 가르는 좁고 긴 해역. [지리 · 자연적 상황] 이 해역의 폭은 160~360km, 이집트의 수에즈(Suez, as-Suways)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Bab el-Mandeb St.)에 이르는 길이는 대략 2,100km이며, 면적은 약 456,000k㎡이다. 평균 깊이는 500m이고, 가장 깊은 곳은 2,360m이다. 북단에서 두 개의 만으로 갈라지는데, 북서쪽의 수에즈 만은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를 가르며 폭은 넓고(32~48km) 수심이 얕다. 북쪽이 수에즈 운하(Suez Canal, Qunatas-Suways)로 열리면서 지중해와 연결되었다. 북동쪽의 아카바 만(Gulf of Aqaba)은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를 가르는데, 폭은 좁지만(16~32km) 수심이 깊다(1,670km) 홍해는 바다 가운데 온도와 염도가 가장 높은데 여름의 수면 온도는 30~33도, 겨울에는 23~27도이며 수면 밑의 염도는 40~41%이다. 오늘날 홍해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 양과 지중해를 잇는 주요 교역로로, 또 광물 및 관광 자 원으로 유명하지만, 항구 적격지가 드물어 요바, 수에즈, 포트 수단(Port Sudan), 호데이다(Hodeida, Al-Hudaydah) 외에는 규모가 매우 작다. [구약성서의 언급] 성서에서는 홍해라는 명칭 대신 20회가 넘게 '갈대 바다' (ים סוף)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기적이 벌어진 장소로, 또 고대의 주요 교역로로서 중요하였다. 크게 보면 홍해는 아카바 만, 수에즈 만, 출애급 사건 때 건넌 바다 등 세 가지 지리적 위치와 관련된다. 갈대 바다와 관련된 기사 중 6번은 아카바 만과 연관 된다. 이스라엘 땅의 남쪽 경계(출애 23, 31), 광야 유랑 때 지나간 길 옆의 바다(민수 14, 25 : 21, 4 : 신명 1, 40 : 2, 1 ; 판관 11, 16), 에돔 땅과 결부된 바다(예레 49, 21), 솔로몬 왕 때 남단의 국경으로 나오는 바다(1열왕 9, 26) 등이다. 반면 몇몇 구절은 수에즈 만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집트에 몰려든 메뚜기 떼를 처넣은 바다(출애 10, 19),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이 다다른 바다(출애 13, 18 ; 민수 33, 10-11)를 그곳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논란은 출애급과 연관된 갈대 바다 기 사이다(출애 15, 4. 22 : 신명 11, 4 : 여호 2, 10 : 4, 23 ; 24, 6-7 : 시편 106, 7-12. 22 ; 136, 13-15 : 느헤 9, 911). 출애굽기 14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야훼 하느님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바다를 건넘으로써 이집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성서 문헌 가설에 따르면, 이 두 장은 야훼계 문헌과 사제계 문 헌이 합쳐진 것이다. 이 중 야훼계 문헌에는 야훼 하느님이 이집트를 꺾은 승리만이 입증될 뿐, 바다를 건너는 내 용은 없다. 반면에 사제계 문헌에는 모세의 역할이 두드 러지게 소개되며 이스라엘 백성이 동풍으로 갈라진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너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 배경이 되는 곳은 단지 '바다' (תְּהוֹם 출애 14, 2. 9. 16. 21-23. 26-29)로만 나와 있어, 이곳이 갈대 바다와 같은 곳인지(출애 15, 4 참조), 아니면 '갈대' 라는 명칭이 후대에 추가되었는지 분명치 않다. 만일 갈대 바다라고 할 경우, 이곳이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홍해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이집트의 피라미드 텍스트에 나오는 갈대 바다와 같은 신화적 바다인지를 의미하는지도 모호하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에 칠십인역 성서가 이 바다를 홍해로 옮겨 동일시한 후, 요세푸스(F. Josephus, 37/38?~100?)나 그리스도교에서는 홍해를 그 바다로 여겼다. 그래서 바다를 가르고 건넌 출애급 기적이 벌어진 지역을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현재 후보 지로 수에즈 만, 아카바 만, 특히 유력한 곳으로 꼽히는 수에즈 만 북단의 비터 호(Bitter Lakes)와 발라 호(Ballah Lakes), 지중해에 인접한 멘잘라 호(Lake Menzalah)와 시 르보니스 호(Lake Sirbonis)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어느 곳 이든 동풍이 바닷물을 밀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와 믹돌, 피 하히롯, 바알 츠본(출애 14, 2) 등의 출애급 경로와의 연관성이 고려된다. 하지만 확정적인 견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작 문제는 이 성서 기사의 역사성을 인정할 수 있는 가 하는 점과, 오늘날 그 사건의 지리적 위치를 확인할 길이 있는가의 여부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출애급 사건을 전하는 전승의 고대성을 존중하여, 이 사건이 신화적 바다가 아닌 나일 삼각주의 동쪽에 있는 바다나 호수에서 일어났다고 그 역사성을 인정하려고 한다. 다만 그 바다의 지리적 위치를 주장하는 다양한 견해에서 드 러나듯,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할 길은 없다. 일부에서는 성서에 기록된 지리적 명칭은 후대의 편집자들이 당대의 독자들에게 지리적 경로를 제시하기 위하여 그 시대의 지리적 지식에서 가져온 것일 수 있다는 견해를 제기한다. 가령 이집트 학자인 레드포드(D.B. Redford)는 출애 굽기 14장에 이집트 제26 왕조(기원전 664~525)나 초기 페르시아 시대의 이집트 지리에 관한 전승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중요성] 비록 해안에 좋은 천연 항구도 없고 닻을 내릴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이집트의 홍해 연안과 아라비아 반도의 연안에서 발견된 숱한 석기와 매장 풍습, 와디 암마라트의 암각화 등을 미루어볼 때, 홍해는 선사 시대부터 양식과 수산물의 수송로로 널리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시대에 들어와, 연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적었지만 상업적 교역은 활발하였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기원 전 2686~2181)의 문헌이나 중왕국 시대(기원전 2055~ 1650)의 방연석(方鉛石) 광산에 대한 고고학 발굴 등에서 이 점이 입증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비터 호를 통해 홍해와 나일 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일부 건설하였는데, 이 운하는 이집트의 네코 1세(Necho I, 기원전 672~664) 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I, 기원전 522~486) 등이 계속 보수하여 9세기까지 사용되었다. 이집트의 신 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에도 교역은 활발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우는 제18 왕조의 여왕인 하트셉수트 (Hatshepsut, 기원전 1503?~1482?)가 푸트에 교역대를 파견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솔로몬(기원전 972~933) 왕 때 아라비아 반도의 오피르와 스바 등과 교역하려고 노력하였다(1열왕 9, 26-28 ; 이사 60, 6). 이집트에서는 후기 왕조(기원전 747~656, 664~525)는 물론 페르시아 통치 시대(기원전 525~332)에도 홍해를 통해 인도양 너머의 여러 국가들과 교역을 하였으며, 나아가 군대에 필요한 금과 코끼리를 수입하였다. 헬레니즘 시기(기원전 332~30)에는 몬순 계절풍을 발견하여 인 도까지 직항 교역로를 열었다. 그리고 로마 시대(기원전 30~395)에도 상업적 ·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홍해를 사용하였다. 로마 시대부터 초기 비잔틴 시대까지 이집트의 홍해 연안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항구는 베레니케 (Berenice)였다. 그러나 3세기 들어 정치적 혼란이 일면 서 홍해를 통한 교역은 사실상 쇠퇴하였다. 4세기부터 6 세기 또는 7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홍해를 통한 외교적 · 상업적 노력이 재개되었으나, 가장 왕성했던 기원전 1세기 말에서 서기 2세기까지의 교역 활동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십자군 시대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국제 교역로의 역할을 못하던 홍해가 다시 일어선 것은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이후이다. (→ 모세 ; 이집트 ; 출애굽기) ※ 참고문헌 J.R. Huddlestun . S.E. Sidebotham, 《ABD》 5, pp. 633~644/ M. Avi-Yonah, 《EJ》 14, PP. 14~17/ A. Rainey ed., Egypt, Israel, Sinai,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Relationships in the Biblical Period, Tel Aviv, 1987/ D.B. Redford, Exodus, I~II, 《VT》 13, pp. 401~418/ P. Montet, Egypt and the Bible, trans., L.R. Keylock, Philadelphia, 1968/ B.F. Batto, The Red Sea : Requiescat in Pace, 《JBL》 102, 1983, pp. 27~351 B. Child, A Traditio-Historical Study of the Red Sea Tradition, 《VT》 20, 1970, PP. 406~418. [李鎔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