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본동 본당

禾谷本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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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서구 화곡본동 105244 소재. 1969년 4월 14일 양화진(현 서교동)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평화의 모후. 관할 구역은 화곡본동, 화곡7동, 신월1 · 3동 전 지역과 화곡1 · 6 · 8 동, 신월5동 일부 지역. [교 세] 1970년 1,031명, 1975 년 3,596명, 1980년 5,380명, 1985년 7,077명, 1990년 9,151명, 1995년 10,644명, 2000년 10,151명, 2003년 11,703명. [역대 신부] 초대 김형식(金亨植) 베 드로(1969. 4~1974. 3), 2대 김정진(金正鎮) 바오로(1974. 3~1979. 5), 3대 최용록(崔鏞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979. 5~1983. 8) , 4대 양흥(楊弘) 에우세비오(1983. 8~1988. 8), 5대 김택구(金澤龜) 루도비코(1988. 8~1994. 8), 6대 이찬일(李瓚一) 안드레아(1994. 8~2001. 9), 7대 차원석(車元錫) 토마스(2001. 9~현재) 1963년에 경기 김포군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된 후, 1966년 화곡동 지역에는 10만 주택 단지 조성 및 입주가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신자들의 유입도 자연스럽게 증가되자 당시 양화진 본당에 다니던 화곡동 신자들 사이에 본당 설립 문제가 논의되었다. 그들은 1968년 6월 9일에 본당 설립 기성회를 결성하여 우선 공소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9 월 22일에 화곡동 공소(화곡동 105-34 소재)를 설립하였고, 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주일 미사는 양화진 본당 주임 인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 신부가 집전하였다. 이후 서울대교구가 화곡동에 본당 설립을 인가함에 따라 1969년 4월 14일에 화곡동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김형식 신부가 부임하였다. 성당과 사제관이 없었기 때문에 김 신부는 신자 집에 기거하면서 기존 공소 강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였다. 이후 그리스도 신학대학 부근(화곡동 46-17)의 주택을 매입하여 사제관으로 이용하였으며, 주택 앞 뜰에 군용 천막을 치고 바닥에는 가마니를 깔아 놓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 6월, 현 위치에 성당 대지 420평을 마련하여 성당 신축 공사에 들어갔다. 신자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우선 성당 1층과 사제관을(1971.3), 그리고 이어 성당 2층 을 완공하여(1972. 9), 1972년 10월 15일에 노기남(盧 基南,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 및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앞서 그해 2월 10일 본당에 영원한 도 움의 성모 수녀회 소속 수녀가 파견되었으며, 9월 12일에 수녀원이 마련되었고, 이듬해 3월 13일에는 선미유치원이 개원하였다. 2대 주임 김정진 신부는 1975년 10월에 교통이 불편한 신월동 지역의 신자들을 위해 조그만 건물을 매입하여 신월동 공소를 설치하였는데, 1976년 12월 신정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신월동 공소는 새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그해 4월에는 성당 건너편(화곡동 105-240 소재)의 주택을 구입하여 수녀원으로 사용하였고 1977년 9월에는 교육관을 완공하였으며, 다음해 8월에는 발산 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3대 주임 최용록 신부는 1979년 8월 20일에 증거자들의 모후 꾸리아를 창단시켰고, 이듬해 9월 20일에는 화곡2동 본당을 분리시키면서 본당명을 화곡동에서 화곡본동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1983년에는 김대건 신부 유해 순회가 있었는데, 본당에 유해가 안치되던 5월 20일에는 철야 기도회를 마련하여 신자들의 신심을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4대 주임 양홍 신부는 1984년 1월 4일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신앙 생활로 인도할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매주 수요일 밤 9시를 '마주보는 날' 로 설정한 후, 마주보는 날' 과 연계시켜 성서 읽기를 권장하였다. 또한 성령 세미나와 기도회를 수차례에 걸쳐 실시하여 신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데에도 공헌하였다. 5대 주임 김택구 신부는 발산동 본당과 화곡2동 본당을 분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신자를 수용하기가 어려워지자, 성당 주변 대지 400여 평을 매입한 후 1991년 3월 11일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11월 17일에 마련한 청소년 강당(지하 1, 2층)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며, 지상층의 골격이 완성되면서 1994년 8월 15일에 성당 신축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김 신부의 재임기에는 단체 활동도 활성화되 어, 1989년 2월 4일에 성 빈천시오아 바오로회가 창설 되었고, 평화의 모후(1989. 4), 로사리오의 모후, 환희의 어머니(1991. 11) 꾸리아가 계속 확대 설립되었으며, 1993년 9월 5일에는 강서 지구 본부 역할을 하는 '평화의 모후' 꼬미시움이 발족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6월에는 우리 농산물 직거래 판매장 운영을 목적으로 '하늘 · 땅 · 물 · 벗회' 가 창설되었다. 6대 주임 이찬일 신부는 '본당 공동체의 복음화, 가정 공동체의 성화' 를 목표로 가정 주일 제정, 가족 복사 제도 실시, 가정 기도의 날 설정 등을 통해 신자의 친교와 가족화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고, 몇 차례의 설계 변경과 증축, 설계 자체에 대한 신자들의 이견, 엄청나게 늘어난 공사비 등의 이유로 중단되었던 성당 공사를 1999년 7월부터 재개하여 2001년 7월 15일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차원석 신부는 2005년 본당 사목 목표를 '우리 자신이 주님의 작은 교회' 라는 슬로건 아래 '배움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는 해' 로 정하였고, 본당의 단체와 분과에서는 이러한 본당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문화 영성 대학 개설, 영적 독서 30권 읽기 운동 전개, 시내 도보 성지 순례 등을 실천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화곡본동 성당 30년 편찬위원회, 《화곡본동 본당 30년》, 천주교 화곡본동 성당, 1999/ 《본단형황》, 천주교 화곡본동 성당, 2003. 10.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