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본당 華僑本堂
글자 크기
12권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중구 종로 2가 35 소 재. 1961년 5월 1일 설정되었고, 주보는 노동자 성 요셉. [교 세] 1961년 1명, 1971년 143명, 1987년 143 명, 2003년 147명. 〔역대 신부] 초대 위희신(魏希信) 토마스(1961. 5~1971), 2대 이판석(李判石) 요셉(1984. 12~현재). 1961년 5월 중국인 위희신 신부가 대구대교구 내에 거주하는 화교 신자 1명을 위한 사목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성당 건립이 구체화되었다. 대구 주교관에서 화교 사목 활동을 펼치던 위 신부는 1964년 6월 교황청이 원조해 준 3백만 원으로 당시 화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종로의 성가병원 자리(종로 2가 33번지)에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공사는 3개월 만에 완료되어 9월 28일 주한 교황 공사 비서 불라이티스(G. Bulaitis) 몬시놀의 주례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이처럼 성당이 마련되자 위 신부는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펼치게 되었고, 이에 신자수도 조금씩 늘어 1971년에는 143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위 신부가 홍콩 주교의 초청으로 본국으로 떠나면서 본당 활동이 중단되었고, 화교 성당은 증축을 거쳐 대구대교구 근로자 회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84년 10월 31일부터 11월 8일까지 대만에서 개최된 제1회 평신도 사도직 주교 연수회에 참석한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주교가 중국인 신부에게 받은 요청이 계기가 되어, 화교 본당은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이문희 주교는 귀국 후 12월부터 이판석 신부에게 화교 사목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이 신부는 1985년 2월 17일 화교 성당이 위치해 있던 근로자 회관에서 첫 미사를 봉 헌하고, 평신도 조직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화교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6일에는 근로자 회관 내 구 소비자 센터를 성당으로 개축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1986년 4월 9일에는 홍콩에서 사목하던 위희신 신부가 돌아와 14년간 헤어져 있 었던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 였다. 하지만 2005년 현재 대부분의 화교 신자들이 타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7~8년 전부터는 거의 미사가 봉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사 편찬위원회, 《교구사 연대표》,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4. [白秉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