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동 본당
花水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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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동구 화수1동 140-4 소 재. 1962년 3월에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6일 정식으로 답동 본당과 송림동 본당으로부터 관할 구역을 이관받았다. 주보는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관할 구역은 만석동, 화수동, 화평동, 전동, 송월동 일부. 〔교 세〕 1965년 3,419명, 1971년 3,498명, 1976년 3,110명, 1980년 3,224명, 1985년 2,202명, 1990년 2,484명, 1995년 3,583명, 2000년 3,512명, 2003년 3,516명. 〔역대 신부〕 초대 기본스(J. Gibbons, 노봉) 요 셉(1962. 9~1966. 12) , 2대 파퀘트(J. Paquet, 朴) 요셉 (1966. 12~1969. 7), 3대 홍종학(洪鍾學) 요사팟(1969. 7~1970. 7), 4대 김상용(金相涌) 힐라리오(1970. 7~1974. 11) , 5대 오코너(G. O'Connor, 권) 제라르도(1974. 11~1980. 2) 6대 김용환(金龍煥) 요한(1980. 2~1982. 2) 7대 이찬우(李讚雨) 요셉(1982. 2~1984. 3), 8대 장희영 (張喜榮) 시몬(1984. 3~1986. 2) 9대 서병섭(徐丙燮) 베 드로(1986. 2~1991. 1), 10대 심재형(沈載瀅) 세례자 요 한(1991. 1~1995. 2), 11대 강영식(康永植) 바오로(1995. 2~1998. 2), 12대 정연섭(鄭然燮) 베드로(1998. 2~7), 13 대 이봉영(李奉榮) 세례자 요한(1998. 7~2002. 1), 14대 박희중(朴熙中) 안드레아(2002. 1~2004. 1), 15대 강근신 (姜根信) 미카엘(2004. 1~현재). 〔설립과 발전] 1960년대 초 답동과 송림동 본당의 신 자수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본당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62년 3월 화수동 본당이 신설되어 메리놀회의 기본스 신부가 파견되었고, 그해 4월 메리놀회의 도움으로 사제관(현 교육관 위치)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62년 9월 16일 정식으로 답동과 송림동 본당으로 부터 관할 구역을 이관받았으며, 18일에는 임시 성당으 로 사용할 영화중고등학교(현 대건고등학교) 교실 3개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루르드의 성모 쁘레시디움과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고, 1963년 2월에는 관할 구역을 5개로 편제하였으며, 3월에는 초등부 주일학교 명도회를 발족하였다. 한편 이 무렵 한국 교회 내에는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순교자 현양 성당 건립 계획이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이에 맥노튼(W. McNaughton, 나길모) 주교는 화수 동 본당에 순교 기념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1964년 8월 교구 내 전 본당에 화수동 성당 건립 기성회를 발족 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마련된 건축 기금으로 1965년 4월 영화중고등학교 내(현 성당 위치)에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으며, 1966년 12월에 마침내 성당을 완공하고 맥노 =튼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앞서 1964년 11월에는 화수동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고 가톨릭 노동 청년회를 발족하였으며, 1966년 9월에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교회 내 소비 조합을 창설하고, 12월에는 '성모회' 를 발족하였다. 이듬해 1월부 터는 본당 주보 <로고스>를 발간하기 시작하였으나 1968년에 교구 주보에 통합되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본당 행사의 봉사를 담당할 '복자회' 를 설립하였다. 또 1969년 9월에는 '가톨릭 대학생회' 를 발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당 앞에 수녀원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수녀원은 그해 11월에 완공되었고, 인보 성체 수도회에서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1971년 7월에는 사제관을 증축하여 사무실과 소회의실을 만들었고, 10월에는 해안 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송 월동 2 · 3가와 북성동을 분할하였다. 그리고 1972년 12월에는 평신도의 본당 운영 참여를 위하여 사목회를 구성하였으며, 1976년 10월에는 송현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이어 1980년 11월에는 사목회를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로 개편하였고, 이듬해부터는 반 기도회를 시작하 여 반 단위의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84년 10월에는 60세 이상의 여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 모임 '성체회' 를, 이듬해 5월에는 60세 이상의 남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노회' 를 발족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본당 내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우선 성당 설립 이래 단 한 차례의 보수 공사도 하지 않아 성당 시설이 매우 낙후된 상태였고, 주일학교 교리실이 부족하여 대건고등학교의 교실을 빌려 운영하고 있었으며, 또 대건고등학교에서 성당 아래층을 도서실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사제관과 수녀원 근처에서 밤늦게까지 학생들의 소음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1986년 2월 서병섭 주임 신부를 중심으로 전 신자가 참여하여 '성전 보수 운영 위원회' 를 구성하고, 약 5천만 원의 공사비를 모아 5월부터 6월까지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아울러 성당 아래층의 도서실을 개조하여 대강당과 소강당, 그리고 5개의 교리실을 만들어 교리실 부족 문제와 도서실 사용으로 인한 소음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어 1987년 9월에는 설립 25주년을 맞아 기념 미사와 기념 체육대회(대건고등학교 운동장)를 거행하였으며, 1989년 5월에는 제대 모자이크 공사를 하였다. 또한 1992년 11월에는 본당 설립 30주년 기념 운동 회를 대건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였고, 1998년 7월 대건고등학교가 연수구 동춘동으로 이전한 후에는 학교에서 사용하던 본당 소속 대지를 팔아 그 기금으로 오래 된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99년 초, 사제관과 수녀원 자리에는 교육관을 짓고 성당 뒤편에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1년 2월 마침내 사제관과 수녀원 및 교육관 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본당 설립 40주년이었던 2002년 8월부터는 '구역별 40일 금식 고리 기도' 를 실시하였고, 9월에는 전 신자 성지 순례 및 외짝 교우들을 위한 특별 교리를 실시하였 으며, 역대 신부님 초청 미사 및 바자회도 개최하였다. 그리고 2003년 4월부터는 매년 부활절맞이 행사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와 함께 '가상칠언' (테네브래) 전례를 개최하기 시작하였고, 2005년 5월에는 본당 신자 일치를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바자회를 마련하였다. 화수동 본 당에는 본당의 설립 취지에 걸맞게 베르뇌(S. Berneux, 張敬一) 주교와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 인천교구 ; 송현동 본당 ①)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자료로 본 천주교 인천교구사 제3집 - 인천교구 25년》,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천주교 답동교회 편, 《답동 성당 100년사》, 천주교 답동 교회, 1989/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 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천주교 인천교구 송림동 교회 편, 《송림동 천주교회 40년사》, 천주교 인천교구 송림동 교회, 1995/ 인천교구 화수동 본당, <화수동 본당 사목 지침>, 2005. [金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