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和解 〔라〕reconciliatio 〔영〕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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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소원하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는 것. ① 성서에서의 화해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 화해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가리킨다. 창세기의 타 락 설화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에게 등을 돌리는 죄를 저지르고 낙원에서 쫓겨났다. 따라서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은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여 하느님과 다시 마주보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철저한 의존, 용서를 구하는 행위로 이 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행위로는 제사를 들 수 있다. 즉 감사와 속죄와 청원의 뜻 을 담아 드리는 제사는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에서도 가 장중요한 요소이다. 제물은 신에게 예물을 드리며, 신과 통교를 이루고, 신에게 속죄하고 용서를 얻으려는 세 가지 지향으로 바쳐졌으나, 점점 갖가지 재앙과 저주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과 죄악 때문에 닥치는 것으로 생각 하고 속죄와 용서의 목적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화해란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의존이며, 하느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용서가 되기에, 일방적이 아닌 상호 관계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그러나 구약성서 에서는 그 화해의 주도권을 하느님이 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화해' 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는 '죄의 용서' 이다. '용서하다' (סָלַח), '몸값을 치르 다' (פָּדָה), '구원하다'(כְּפֶר בָּאָל) 등의 히브리어 동사는 그런 의미를 잘 담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방법으로 계약을 택하였다. 구약성서에서 '계약' 이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쌍방의 의무를 규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쌍무 계약'이라는 표현이 보다 적절한 번역일 것이다. "너희는 내가 이집 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 이다" (출애 19, 4-6). 〔신약성서〕 '화해' 를 뜻하는 그리스어 동사 '카탈라 소' (καταλλάσσω)는 원래 '~와 친구 관계를 맺다' 는 뜻을 갖고 있는데, 신약성서에서 이 동사는 바오로의 편 지에만 6회 사용되었다(로마 5, 10〔2회〕 ; 1고린 7, 11 ; 2 고린 5, 18. 19. 20). 또한 명사 형태로도 4회나(로마 5, 11 ; 11, 5 ; 2고린 5, 18. 19) 사용되었다. 화해는 바오로가 제시하는 신학적인 개념이다. 바오로는 하느님과 인간의 복원된 관계를 표현할 때 '화해' 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의 사상이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로마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 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5, 8-11). 이처럼 하느님과의 화해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구약성서의 화해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특히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 해하게 되었다면"이라는 구절에서 사용된 '화해하다' 의 동사 형태는 수동형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가 어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이루어지 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바오로의 신학에서 중심을 이루는 사상은 이른바 '의 화' (義化, justificatio)이다. 이는 아담 이후 죄의 세력 아래에서 고통받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세력으로 옮겨가 그분의 의로움에 힘입어 마찬가지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느님의 세력권으로 넘어가게 만들어 주는 유일무이한 통 로이며, 이는 전적으로 그 십자가 죽음으로 효력이 발생 하게 된 것이다. 바오로는 여러 곳에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갖는 의미를 밝히지만, 특히 고린토 전서 11장 2326절은 주목할 만하다. 바오로는 자신이 복음을 전한 고린토 교회에 문제들이 발생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지 들을 썼는데, 이 문제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성찬례와 관련 된 관행이었다. 성찬례에 참가하여 각자 자신의 허기만을 허겁지겁 채우느라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취한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로 질서를 잃었다는 소 식에(1고린 11, 20-22), 바오로는 성찬례를 어떻게 거행 해야 옳은지 예수가 세운 성찬례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즉 예수가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며 〔代贖〕 그로써 새로운 계약을 맺었음을 무시한 성찬례의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광야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지만 죄를 지어 그 계약이 유명무실해졌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지 못하였기에(예레 31, 32), 이제 '새 계약' 을 맺으리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달한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예레 31, 31). 그리고 장차 맺어질 새 계약은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 질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마음에 새겨져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하였다(예레 31, 33-34). 바오로는 예레미아가 예언한 '새 계약' 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립되었다는 사실에 한치의 의심 도 품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새로운 기회였던 것이다. 이처럼 '화해' 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 중 의 하나이며, 그 뒤에는 마치 고리처럼 '의화' , '대속 죄' , '계약' , '새 계약' 등의 개념들이 연결된 논리 체계가 서 있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 신학적으로 볼 때 '화해' 는 언제나 하 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가리킨다. 믿는 이는 하느님을 마주하러 나옴으로써 하느님과 화해하여 새 창조물이 될 수 있다. 과거부터 인간은 하느님의 실재와 인간의 타락을 인식하였다. "그런 전제하에서만 화해의 말씀이 새 창조물임을 감지할 만큼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새 창조물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는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실재를 체험하고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하나인 믿 음》, p. 304). 창조론의 관점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는 바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이루 어졌음을 뜻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 5, 1). 이렇게 얻어진 평화는 하늘과 땅의 만물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평화이다(골로 1, 20-21 ; 참조 : 2고린 5, 19). 오늘날에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 하느님이 창조한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는 결국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로 확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오로의 다음 구 절은 되새겨 볼 만하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 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항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 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 → 계약 ; 대속 ; 의화론 ; 재창조 ; 평화)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정 태현, 《성서입문》 상, 일과 놀이, 2001/ J.A. 피츠마이어, 김수복 역, 《바울로의 신학》, 분도출판사, 1984/ 서강대 신학연구소 · 한국신학연구소 편, 《하나인 믿음》, 분 도출판사, 1979/ E. Käsemann, An die Römer, Tübingen, 1980/ H. Schlier, Der Römerbrief, 《HThNT》 VI, Freiburg, 1979/ U. Wilkens, Der Brief an die Römer VI-1, 《EKK》, Neukirchner. 1978. [朴泰植] ② 윤리 신학에서의 화해 〔개 념〕 화해를 뜻하는 라틴어 '레콘칠리아시오' (reconciliatio)는 '회복(回復), 갱신(更新), 복구(復舊), 화 합(和合), 중재(仲裁), 조정(調整), 독성(瀆聖)된 성당이 나 묘지 등의 복성(復聖), 배교자 등 특정 범죄자와 교회의 화해 혹은 교회로의 복귀 허용, 법적 절차에 의한 파 문 처분 따위의 사면'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 로 화해는 다툼을 그만두고 푸는 일, 부부가 화합하는 일, 분쟁을 그치기로 약속한 계약을 일컫는다. 세상과 인 간들이 겪고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존 재하는 분열상인데, 이것이 바로 화해를 저해하고 있다. 이런 분열로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국가와 국가가 반목하고 싸움 ·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적 · 경제 적 · 문화적 · 종교적 이유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차별 대 우, 기본권 침해, 폭력과 테러, 고문, 무기 경쟁,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 등이 문제가 되며 그 원인은 인간과 집단 이나 단체 · 국가가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상처에 있는 데, 이를 신학적으로 죄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분열을 교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본래적인 일치를 되살리기 위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즉 화해를 위한 원의(願意)를 실현해야 한다. 화해는 세상 을 변화시킬 열쇠이며, 이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치 부해서는 안 된다. 화해는 평화의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인류 전체의 간절한 염원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모적 (慈母的)인 태도와 이해심으로 세상에 있는 분열의 표지와 화해의 의지를 간파해야 한다. 실상 교회는 죄라는 원 초적 상처를 진단하고 근원적 치유를 통해서 완전한 화 해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런 원초적 화해는 참된 화 해를 위한 첫걸음이며 원리이다. 하느님이 역사(役事)한 구원의 역사(歷史)는 놀랄 만한 화해의 과정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된 성자의 피와 십자가를 통해 세상과 화해 하고, 이렇게 화해에 이르게 된 인간들과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이 죄가 근원적으로 근절되 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회개와 화해는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회가 화해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예언직을 참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부패한 인간의 악을 몰아내고 분열의 원인을 제거하며, 사람들의 갈등과 고뇌를 해소하고 형 제애 · 합심 ·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 바로 예언직 수행이다. 이렇게 교회는 폭력과 증오로 얼룩진 세상을 사랑의 정신과 문화를 통해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화해를 위한 교회의 사명〕 화해의 의미는 탕자의 비 유(루가 15, 11-32)에서 잘 나타난다. 축제를 벌여 돌아 온 작은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용서할 준 비를 갖추고 있는 하느님의 자비를 의미한다. 이렇게 화 해는 하느님 아버지가 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선한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큰아들이 회개하여 아버지, 형제와 함께 진심으로 화해하지 않는 한, 그 잔치는 기쁨의 축제가 될 수 없다. 즉 큰아들을 중심으로 이 비 유를 해석해 보면 여러 형태로 분열된 인간 가족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화해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 주도권은 하느님이 갖 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한 인간은 현재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성체 성사를 통해 성사적으로 재현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전례 안에서 정당하게 '화해의 제사' 라고 불린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파스카 신비는 죄 로부터의 해방과 은총에 의한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인간 의 이중적 화해를 실현시켜 준다. 그리스도인은 골고타의 신비를 마음에 새겨, 분열과 화해가 지니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수직적 차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자(使者)인 사도들의 손과 입을 빌 어 당신이 의도하는 화해의 직무를 수행하고,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자격으로 행동할 능력을 받았기에 이 의무를 수행하였다. 동시에 화해의 메시지는 전 신앙인 공동체,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맡겨진 것이기도 하다. 하느 님 · 자기 자신 · 이웃 · 창조계 전체와 화해를 조성하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며,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한에 서만 화해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다중의 화해에 이르기 위한 길은 마음의 회개와 죄에 대한 승리인데, 이때 죄는 이기심, 불의, 이웃을 함부로 대하고 착취하는 일, 물질적 재화에 대한 집착과 절제 없는 쾌락의 추구 등이다. 화해에 이르기 위한 수단에는 하느님 말씀에 주의를 기 울이는 일, 개인 및 공동체적 기도, 화해의 표지이며 도구인 각종 성사들이 있다. 교회가 참 화해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회 개를 동반한 화해에 도달해야 한다. 즉 세상을 향해 화해 를 외치는 일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끊임 없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화해의 정신과 실천을 통해 새 로운 백성이 이루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지녀야 한 다. 사회와 교회의 전 구성원이 마음에 평화를 얻고 긴장을 완화하며 분열을 극복하고 형제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의심스런 일에 는 자유를, 필연적인 일에는 일치를, 모든 일에는 사랑을 앞세워야 한다. 교회 일치 문제에 관해서도 각자의 진정 한 회개와 상호 용서, 신학적 대화와 형제적 친교 관계, 기도, 화해의 영(靈)인 성령의 이끄심에 순응하는 태도 등이 있어야 한다. 교회를 박해하지는 않지만 냉담한 무관심주의로 맞서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구원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화해를 위한 봉사 직무〕 교회는 화해의 선물과 사명 의 근원에 하느님의 주도권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자비에 넘치는 손길이 먼저 미쳤기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를 남용하고 순종하기를 거부할 때에도 하느님은 당신의 영원한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며, 배신당하고 모욕당해도 사랑에 충실한다. 에덴 동산의 참담한 결과를 통해 인간의 내적 무질서와 남녀 관계 · 형제 관계의 조화가 파괴된 상태에 서도 하느님의 자부적(慈父的) 사랑과 애정은 사그라들 지 않았다. 그분은 항상 자녀들을 기다리고 지켜보며, 온 갖 소외와 분열의 현장에까지 가서 그들을 만난다. 이런 하느님의 자비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통해 구체적이 고도 확실한 방식으로 드러났으며, 교회의 봉사 직무를 통해 온 세상에 파급되고 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육 화(肉化)는 하느님이 사랑임을 인간에게 계시해 주었고, 사랑의 새 계명을 주었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알려 주었다. 예수는 십자가상 죽음 을 통해 악과 죄의 세력을 이겼고, 사랑의 순종으로 인간 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어 만민의 화해를 이루었다. 하느 님은 예수 안에서 인간을 당신과 화해시켰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외치던 그 화해를 계속 선포하고, 모든 인간이 회개하여 복음을 믿도록 권하는 일을 하고 있다. 회개하 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차별이나 제약도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하느님이 원한 이 화해의 열매를 누리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교회는 화해의 성사(聖事)가 되기 위한 사명을 받고 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역사를 증거하고 이를 재현 하는 화해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 스도 안에서 보편적인 화해를 이루는 길을 보여 주는 기쁜 소식인 성서를 관리하고 해석하는 일을 통해서, 또 고유한 방식으로 '교회를 이루는 칠성사를 통해서 성사가 된다. 모든 성사는 교회 생명의 원천이고, 사람들이 교회 의 손을 통해 회개하고 서로 화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다. 하늘의 교회 · 지상의 교회 · 연옥의 교회는 신비스럽 게 협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도와 세상이 하느님과 화해 하는 일에 참여한다. '모든 성인(聖人)들의 통공(通功)' 이라는 신비 안에서 심오한 모습의 보편적 화해가 이루 어진다. 설교도 화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교회는 죄 악을 단죄하고 화해의 필요성을 가르치는 예언적 사명을 수행한다. 또한 화해를 이루기 위해 먼저 교회 스스로 결 함 없이 거룩해야 하며, 그리스도가 교회를 티 없이 영광 스런 당신 교회로 삼을 때까지 더욱 깨끗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화해를 위한 죄의 인식〕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해 인간은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가 죄인임을 승복하며, 자기가 저지른 죄를 의식적이고 결연한 태도로 끊어 버려야 한다. 곧 참된 의미의 회개를 해야 한다. 죄는 인간의 자 유 의지와 관련되어 있는데, 인간의 실재 깊숙이 있으면 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에덴 동산에서의 첫 범죄 와 바벨탑 사건에서는 그분 명령에 불순종 · 경쟁적 행위 · 하느님처럼 되려는 빗나간 허세 등을 볼 수 있다. 하 느님을 제외시키는 일,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 등이 인간의 죄이다. 창세기는 인간 가족이 우정의 유대(紐帶)를 끊으며, 남녀가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모습을 보여 주고, 형제가 형제를 증오하고 죽이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렇게 죄로 인해 인간 가족의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죄는 하느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하느님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살 행위이고, 이로 인해 내적 조화가 깨어진다. 죄의 신비는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에 이중적 상처를 입히므로 곧 개인적인 죄와 사회적 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죄라 해도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모든 죄는 사회적이다. 가장 내밀하고 비밀스런 죄, 철저하게 개인적인 죄라고 해도 전 인류 가족과 교회 공동체에 반드시 해악을 미치기 마련이다. 하느님을 믿고 공경할 수 있는 지고의 자유를 침해하 는 죄, 이웃의 존엄성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죄, 공동선과 시민들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유린하는 죄, 국가들 사이의 고질적 충돌 관계, 동일 국가 내 여러 단체들 사이의 갈등 등은 당연히 모두 사회적 죄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죄와 개인적 죄를 대립시켜 바라보면서, 사회적 잘못과 책임만을 일방적으로 인정하여 개인적 죄는 부지불 식간에 폐기시키는 경향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용례(用 例)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윤리적 양심보다는 주 변 상황 · 조직 · 사회 구조 · 제도 등 추상적이고 익명성 을 갖고 있는 사회 전체에 전가한다. 교회가 국가 사회나 여러 단체의 행동 양식을 사회적 죄라고 표현하지만, 사회적 죄는 많은 개인적 죄가 쌓이고 응집된 결과임을 알고 공표하는 것이다. 사회를 주도하는 여러 계층의 지도 자나 책임자들의 나태 · 비겁 · 방조 · 공모(共謀) · 무관 심 등을 방치할 때, 그것은 개인의 죄에 해당한다. 책임 을 져야 하는 자들이 의식과 자각 없이 지위와 신분에 안 주하면서 의당한 노력과 희생을 거부한다면 이는 개인적 죄이다. 이렇게 참된 책임성은 인간 개인에게 해당된다. 모든 죄의 한가운데에는 늘 죄 많은 인간들이 있다. 개인 이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건 실한 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할 때 하느님과 자신, 피조 세계와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화해와 참회〕 화해는 참회(懺悔, poenitentia)를 전제 하여 완성된다. 그런데 참회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다. 회 개와 연관하여 생각할 때 참회는 하느님 말씀에 감동된 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내심으로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며 동시에 외적인 생활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행위와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날 때만이 참되고 효과적인 참회라 할 수 있다. 또한 참회는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생명 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버터 나 갈 목적하에 수행하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이렇게 참회는 마음에서 행위로, 다시 그리스도인 의전 삶으로 건너가는 회두(回頭)이며 회전(回轉)이다. 참회는 화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하느 님 · 자신 · 이웃 등과의 화해가 근본적인 분열인 죄를 극 복하는 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참된 회개가 불가능하기에 참회를 위해 교회의 화해 직무가 개입한다. 이러한 참회의 메시 지와 직무는 교회와 신자 공동체의 경계선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까지 전해져야 한다. 모든 인간이 회개와 화해 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회의 직무를 적절히 수행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시각(視覺)으로 죄의 결과들을 바 로 평가해야 한다. 죄의 결과는 각 개인의 내심과 한 인 간과 관계를 맺는 여러 단체 안에서도 분리와 분열의 원 인이 된다. 가정 · 직장 · 사회적 환경 안에는 이런 분열 의 원인과 이유가 항존한다. 〔화해와 참회를 위한 죄의 감각〕 교회는 역사 안에서 죄 안에 존재하는 '죽음의 씨' 에 대해 예민한 감식력을 갖추게 되었다. 죄를 정확하게 식별해 낼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을 죄에 대한 감각이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윤 리적 양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하느님과 맺는 의식 적인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인만큼 하느님에 대한 감각과 도 긴밀히 연결된다. 그렇기에 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현대인들은 대체적으로 양심의 둔화 혹은 사멸의 위험에 놓여 있다. 양심이 둔화되면 하느님 에 대한 감각도 흐려지고, 이때 결정적인 내적 기준이 상 실되고 더불어 죄에 대한 감각도 소멸된다. 죄의 감각 상실과 양심의 위기는 어디서 오는가? 세속주의는 죄의 감각을 파괴시키고 있다. 세속주의는 그 본질상 하느님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인간의 행위와 물 질적 생산만을 중심적 가치로 추켜세우는 인본주의이다. 소비와 쾌락에 온 정신이 팔려 제 영혼을 잃는 위험에 대 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인간의 뜻에 따라 하느님 없는 세상을 건설할 수 있겠지만, 그런 세상은 결국 인간을 향해 달려들고 해악을 끼치게 된다. 이런 세속주의적 사회 안 에서는 죄라는 것이 하느님을 거슬러 저질러지는 잘못이 라는 감각을 상실한 채, 인간과 인간적 가치를 거슬러 행 해지는 잘못이라는 정도로 격하시키거나 둔화시키게 된 다. 현대 인문 과학적 사고 방식도 죄에 대한 감각을 박 탈하고 있다. 일부 심리학에서는 죄의식을 무조건 피하려 하고, 자유의 제약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과오 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부 사회학에 서는 모든 개인적 · 사회적 잘못의 책임을 사회에 전가시 키고 개인은 무고한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 문화 인류학에서는 환경적 · 역사적 조건과 영향을 확대 해석 하여 인간은 인간다운 행동을 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주 장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책임성을 부인하고 죄를 범할 능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죄에 대한 감각은 역사적 상대주의 사상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곧 기존의 윤리적 규범을 상대화하고 그 절대적 · 무조건적 가치를 부인하고 주변 상황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법적인 행위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윤리 체계에서는 윤리적 가치가 붕괴되고 일체 의 윤리적 규범이 전도(顛倒)된다. 그 결과 죄에 대한 관 념이 약해져 죄는 존재하지만 누가 그 죄를 저지르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무책임한 궤변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청소년 교육 · 홍보 수단 · 가정 교육 등 을 통해서도 죄의 감각이 사라질 수 있다. 이는 죄를 병적인 죄의식이나 또는 단순히 법적인 명령을 위반한 것으로 보는 데에서 기인한다. 죄의 감각 상실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형태의 하나이자 그 결과이다. 죄는 하느님에 대한 순종 관계가 떠난 자리에 인간이 자기 삶을 구축하기 위해 하느님과 자녀적 연결고리를 단절하는 태도이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일상사에서 하느님을 제거하는 태도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내세워 일체의 초자연적 실체를 거부하는 태도, 개인의 양심을 거스르는 사안임에도 다수의 의견과 사고 방식을 내세워 윤리적 당위로 수용하는 일, 인권을 유린하는 사회 · 경제적 조건을 용납하는 일, 오류와 잘 못을 사회적 상황에 전가하는 행위, 하느님의 섭리와 통 제를 거부하는 행위 등은 죄의 감각을 둔화시키고 약화시킨다. 교회의 사상과 생활에서도 죄의 감각이 소멸되고 있 다. 지난날에는 모든 곳에서 죄를 발견하는 태도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데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 지난 날 영원한 벌에 대한 공포를 지나치게 강조하던 태도에서 오늘날 죄벌에 대한 관념이 사라지는 경향, 지난날 양심을 교정하는 엄격한 태도에서 오늘날 진실을 고백해야 할 의무를 제거하려는 경향, 신학 · 설교 · 교리 · 영성 지 도 등에서 제시하는 견해나 가르침이 일관성이 없어 신 자들의 양심에 혼란을 일으키는 일 등이 문제가 된다. 그 리고 성사적 참회의 실천에서는 죄와 회개의 교회적 의 미를 소홀히 하고 이를 순전히 개인적으로 보려는 경향 이 나타난다. 반대로 선악의 개인적 가치를 무시하고 공 동체적 가치만을 인정하는 태도도 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합당한 감각을 회복하는 일은 현대인을 위협하는 심각한 정신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며, 이를 위해 교회는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 이성과 신앙의 불변하는 원칙들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의 조명을 받는 건전한 교리 교육은 죄에 대한 감 각의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양심을 밝혀 줄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참회의 성사를 신중하 게 실천하는 일은 죄의 감각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해와 참회를 위한 성사〕 고해성사는 현대에 이르러 위기에 놓였기에 화해와 참회를 드러내는 표지로 들 수 없다. 여러 부정적 요인으로 인해 이 성사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고, 그 중요한 부분이 상실되어 그늘과 침묵 속에 묻혀 버릴 위험마저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신앙을 새롭게 하고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윤리적 양심의 둔화와 죄에 대한 감각의 약화, 참회 개념의 곡해, 신앙심의 부족, 또한 화해의 성사를 거칠 필요 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관념, 별다른 의욕과 열성 없이 습관적으로 고해성사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인해 그 기초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해성사는 여전히 중요하고 위대한 것인가? 예수는 자기 스스로 죄의 올가미에 걸려 있는 자들을 위해,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해 죄를 용서하는 권능을 부여하였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 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 마태 18, 18). 이는 복음 내용 중 인류를 두렵게 하는 혁신적 발언이다. 사제(司 祭)는 여러 성사를 집전할 때에 그렇듯이 참회의 성사를 집전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행동하는 것이 다. 교회법은 "개별적인 온전한 고백과 사죄(赦罪)가 자 기의 중죄를 자각하는 신자가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정상적 방식을 이룬다" (960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제를 통해 현존하여 죄의 용서라는 신비를 실현시키는 그리스도는 인간의 형제로 나타나는 바로 그 그리 스도이다. 고해성사 집전은 사제의 직무 중 가장 어렵고도 긴장을 요하며 피곤하고 힘든 것이지만, 다른 한편 가장 아름답고 보람 있는 직무이다. 고해 사제는 두려움과 신뢰가 교차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양심을 열어 보이는 신자들에게 참회와 인간 화해를 위한 자기의 승고한 책무를 완수해야 한다. 사제는 백성들이 얼마나 약하며 쉽게 죄악에 떨어지는지를 배워야 하고, 바로서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과 노력을 잘 간파하여서 그들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을 잘 식별해야 한다. 또한 하느님만이 줄 수 있는 용서를 그들에게 전해 주고, 그들이 아버지와 화해한 것을 혼쾌히 경축하며, 죄인들을 교회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데려오고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 11)라 고 강하면서도 우정 어린 태도로 훈계해야 한다. 사제가 이 성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중 하고 사려깊은 태도, 분별력, 친절하고 다정하면서도 강 건한 자세 등 인간적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 스스로 참되고 깊이 있는 신심 생활을 하는 일이다. 형제들을 완덕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사제는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도의 체험을 보여 주고, 복음이 전하는 대신덕(對 神德)과 윤리덕(倫理德)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뜻에 충실히 순종하고, 교회에 대한 사랑과 교도권에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태만이나 여러 구실로 고백소에서 만나기로 한 신자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사제의 도움으로 많은 이들이 회개하였고, 죄와 유혹을 물리쳐 승리하였으며, 영적 진보를 달성하여 구원을 받았다. 고해소는 수많은 보배 같은 성인들을 배출 하였고, 교회의 영적 재산과 교회 정신으로 물든 문명을 꽃피게 하였다. 고해성사의 본질은 불변이다. 교회의 의식 속에는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참회의 봉사자를 매개로 내려지는 성사적 사죄를 통해 죄의 용서가 각 개인에게 전달된다는 굳은 신념이 변치 않고 지속되어 왔다.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은 하느님께 끼친 모욕에 대하여 그분의 자 비로 용서를 받으며, 또한 동시에 범죄로 상처를 입혔던 교회, 사랑과 모범과 기도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와 화해를 한다" (교회 11항). 예수 그리스 도는 세례 후 죄에 떨어진 신자들이 은총을 받고 하느님 과 화해하도록 당신 교회 안에 참회의 성사를 제정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교회법은 "고해성사 중에 합법적인 집전자에게 죄를 고백하면서 그 죄를 통회하고 자기를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하는 신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그 집전자가 베푸는 사죄를 통하여 세례 후 범한 죄의 용서를 받고 동시에 범죄로 손상을 입힌 교회와 화해한다" (959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 고해성사 ; 죄 ; 책임 ; 타락 ; <화해와 참회> ; 회개) ※ 참고문헌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한국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역, 《교회법전》, 라틴어-한국어 대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0/ 요한 바오로 2세, 이병호 역, <화해와 참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 회, 1995/ 윤형중, 《상해천주교요리》 하, 가톨릭출판사, 1990/ A. Di Marino, Penitenza : Sacramento della riconciliazione, Dizionario enciclopedico di Teologia Morale, Edizioni Paoline, 1981, pp. 766~7751 B. Haering, La legge di Cristo I, Morcelliana, Brescia, 1972, pp. 505~529. 567~578. 〔李容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