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참회> 和解 - 懺悔 [라]Reconciliatio et paenite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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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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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광주를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는 화해를 강조하였다(광주 무등 경기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가 1984년 12월 2 일에 발표한 교황 권고. 통상적으로 첫 두 단어를 제목으로 삼는 교회 문헌의 관례에 따라 <화해와 참회>라고 불리지만 본래 제목은 '오늘날 교회 사명에 있어서의 화해와 참회에 관하여 주교들에게,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보내는 교황 요한 바오 로 2세 성하의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후속 사도적 권고, 화해와 참회' 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에 '교회 사명 안에서의 화해와 참회' 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6차 주교 대의원회의의 성찰을 이 문헌에 담고 있다. 〔내 용 〕 서론-문헌의 반포 동기 및 의의 : 이 문헌의 반포 동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화해와 참회의 선포가 교회의 근본 사명이라는 것이다. 구세주이며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가 첫 설교에서 선언한 말씀이 다름 아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였으며(1항), 구원의 역사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이 된 당신 아들의 피와 십자가를 통해 세상과 이루는 경탄할 만한 화해 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러하다(4항).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세계가 이러한 주제에 대한 응답을 교회로 하여금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론 1~3 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사목 헌 장>(Gaudium et spes, 1965. 12. 7)이 중요하게 식별하고 있는 시대의 징표를 빌어 온다. 그것은 현대 세계와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불행한 특성 중 하나인 여러 가지 깊고도 뼈아픈 분열상 곧 '분쇄된 세계' 에 대한 지적이며, 동시에 이러한 분열의 요인 못지 않게 일치와 평화에 대한 바람, 진지하고 견실한 화해에의 열망이 하나의 추진력으 로서 현대 우리 사회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현대의 분열상은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또는 국가군들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대화로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심한 충돌과 반목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아가 이러한 인간 사회의 분열 상은 교회 안에까지 영향을 미쳐 교파 간의 분열 외에도 교리나 사목 분야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내분을 낳고 있다. 그 분열의 원인은 "인간이 자기의 가장 깊은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상처", 곧 우리가 신앙 안에서 죄라고 일컫는 것이다(2항). 따라서 화해에의 열망이 실제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모든 다른 상처들의 뿌리인 원초적 상처, 즉 죄에까지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3항). 1983년의 주교 대의원회의는 분쇄된 세계의 속깊은 뿌리요 그 원초적 상처인 죄를 적발하고 이에 상응하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원초적 화해를 제시하였고, 그것이 바로 교황 권고 <화해와 참회>로 열매맺게 되었다. 요컨대 화해는 참회의 결과로 얻어지며, 여기서 참회란 각 개인이 인격체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느님께 돌아서는 내면적 변화, 즉 회개와 아울러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기 위한(에페 4, 23 이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노력 곧 마음에서 행위로 건너가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참회를 통해서만 개인들 간 의 조화, 나아가 전 인류 가족을 화해와 사랑으로 이끄는 문명의 건설도 가능하다는 것이 주교 대의원회의의 해법 이다(4항). 제1부-교회의 책무이며 사명인 회개와 화해 : 여기서는 교회의 사명인 사중(四重)의 화해, 즉 하느님과의 화해, 자신과의 화해, 이웃과의 화해, 피조계 전체와의 화해의 윤곽을 제시하면서, 그 근본이 되는 마음의 회개 와 관련하여 유념해야 할 것들을 적고 있다. 우선 제1장 에서는 화해의 가장 근본적인 단초로 '탕자의 비유' (루가 15, 11-32)를 다룬다. 여기서 탕자인 작은아들은 하느님 을 떠나 나름대로의 독자적 생활을 영위하려고 하지만 실패하여 홀로 남게 되는 모든 인간의 전형이다. 곤궁한 처지에 버려진 그의 내면에는 아버지에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이 솟아난다. 돌아오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의 한없는 자비의 선물이 베풀어지고 화해가 이루어진다(5항). 그러나 남겨진 과제는 집에 남아 있던 형과의 화해이다. 각각의 인간은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형이기도 하다. 그 역시 "아버지의 자비를 재발견하고 오해를 처이기며" 이를 통해 형제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 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변화의 길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비유를 통해 교회가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아 마음의 회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화해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6항). 제2장은 화해의 그리스도론적 차원을 통해, 다시 한 번 화해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 주도권 역시 하느님에 게 있음을 부각시킨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과 화 해하고 그분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덕택이다(2고린 5, 18-20). 그리스도를 본 받아 교회가 "먼저 하느님과 화해하고 다음으로 자기 자신, 이웃, 창조계 전체와 화해"(8항)하는 자신의 사명(4 중의 화해)을 잘 수행하려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주의깊은 청종(聽從), 개인 및 공동체적인 기도, 그리고 각종 성사들의 도움을 받아 마음의 회개와 죄에 대한 승리의 길을 통해, 먼저 교회 자신부터 화해에 이른 공동체로서 보편적 사랑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이때 비로소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와 화해를 증거하는 화해의 성사가 될 수 있다(7~9항). 제2부-죄보다 더 큰 사랑 : 제2부는 죄의 신비와 이를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 죄보다 더 큰 사랑의 신비를 대조적으로 논한다. 오늘날 인간의 비극은 바벨 의 체험(창세 11, 1-9)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인류가 일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 수평적 차원에 몰두하여 하 느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상실한 결과 분쇄된 세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13항). 그런 이유에서 제2부의 전반부는 죄의 어두운 힘, 죄의 신비에 대해 다룬다. 에덴에서 의 타락(창세 3, 1-24)과 바벨의 이야기 모두 직간접적으로 하느님을 제외시켰고 그 결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이것이 바로 그분에 대한 불순종이며 인간의 죄의 핵심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에게 생명을 주고 계 속된 섭리로 돌보아 주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이러한 죄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결국 내적 분열이 생 기고 또 형제들 간의 분열로 확대되었다(창세기 4장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 참조). 결국 죄는 자기 자신 안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안에 이중의 상처를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죄는 개인적인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 이웃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14~15항). 이러한 까닭에 '사회적 죄' , '죄의 상황' , '죄의 통교를 언급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의 오용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 죄와 개인적 죄를 대립시 켜서 바라보고, 그중에서도 사회적 잘못과 책임만을 일 방적으로 인정하여 개인적 죄는 무의식 중에 아주 싱겁 게 만들어 버리거나 거의 폐기"시키는 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헌은 사회적 죄 역시 수많은 개인적 죄가 결집된 것임을, 따라서 참다운 책임성과 회개에의 노력이 인간 각자에게 요청된다는 점을 강조한다(16항) . 이 부분에서는 소죄, 죽을 죄와 연관된 죄의 경중의 문 제도 취급하였다. 비록 소죄이더라도 하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근본적 선택' 과 죽을 죄의 차이점 등을 밝혔다(17항). "금세기의 대표적인 죄는 죄에 대한 감각의 상실에 있습니다" 라는 교황 비오 12세 (1939~1958)의 말씀이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렇기에 죄에 대한 양심의 둔화를 경고하면서 죄에 대한 합당한 감각을 회복하려고 해야 한다(18항). 제2부의 후반부인 제2장에서는 우리 종교의 신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신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죄악의 역사 속으로 육화한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 안에서 죄는 결코 주인공도 승리자도 아니다. 하느님의 계시자인 그리스도의 신비는 죄를 쳐이기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신비이다. 그렇기에 "죄보다 힘 있고 죽 음보다 강한 사랑" 을 맛보았으니 자녀다운 효심으로 이에 응답하며 화해의 사절이 되라고 초대한다(19~22항). 제3부-화해를 위한 수단들 : 제3부에서는 참회와 화해를 위해 교회가 활용 가능한 몇 가지 사목 수단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참회와 화해를 위한 교회의 사목 활동이란 사람의 마음 속에 회개와 참회의 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교회 사목 활동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인간이 죄로 인해 크게 상처받은 존재라는 신념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회개를 통해서만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지속적인 화해를 성취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23항). 먼저, 화해와 참회를 촉진시키기 위해 교회가 사용할 세 가지 수단 즉 대화, 교리 교육, 성사가 언급된다. 진정한 대화는 무엇보다 내적 회개와 참회를 통한 개인의 재생을 목표로 삼는 '구원의 대화' 여야 하며, 가톨릭 교회 자체가 사랑의 보편적 성사이기에 원만한 대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하여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 타종교와의 대화도 가능할 것이다. 다 만 안이한 화평주의는 경계하여야 한다. 화해를 위한 대 화는 회개와 참회를 통한 마음의 재생이라는 복음의 진 리를 기본 전제로 하는 진리 안에서의 대화여야 한다는 것이다(24~25항). 아울러 참회와 화해를 구분하면서도 서로 보완하는 교리 교육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26항). 모든 성사들이 참회와 화해의 표지이지만, 특히 고해 성사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오늘날 고해성사가 위기 에 놓여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는 양심의 둔화와 죄에 대한 감각의 약화, 화해의 성사 없이 직접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관념의 확산, 습관적인 고 해성사 등의 요인이 있다(28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가 흘린 거룩한 피의 구속적 능력을 통해서 죄의 용서를 얻는 이 성사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면서, 고해성사가 하느님 자비의 성사이며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자비로운 대사제, 충실하고 연민 지극한 목자, 치유와 위로의 의사, 진리의 길을 안내하는 스승, 진리를 좇는 판관으로서 고해성사를 집전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 였다. 따라서 사제는 참되고 깊이 있는 신심 생활을 통해 자신이 먼저 그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29 항). 끝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명백히 한다. 첫 째, 그리스도인이 죄를 용서받는 정상적인 길은 고해성 사이다. 둘째, 고해성사는 자비의 법정인 동시에 영적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다. 셋째, 용서와 화해의 성사에서 무엇보다 우선되는 조건은 참회자의 양심이 바르고 깨끗해 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고해성사는 하느님 앞에 홀로 행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교회 공동체의 품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회적 · 교회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다섯째, 고해성사를 통해 참회자는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고, 이는 나아 가 자기 자신, 형제들과 교회, 전 창조계와의 화해로 발전하게 된다(31항). 〔평 가〕 <화해와 참회>는 현대 세계의 불행한 표징인 '분쇄된 세계' 를 바라보면서도 화해를 갈망하는 희망의 징후를 동시에 발견하면서, 이에 따른 복음적 · 교회적 · 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인류 사회의 분열상을 목도하면서도 그 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초적 상처인 죄를 이야기하고 각 개인의 마음으로부터의 회개를 통한 근원적인 치유, 원초적 화해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신앙의 약화와 죄에 대한 감각의 상실, 고해성사의 위기 등이 문헌을 발표하 기까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짐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진리 편에 선 교회의 위대함을 여기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고해성사 ; 참회 ; 화해) ※ 참고문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병호 역, 《화해와 참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5. [金東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