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윤리학

環境倫理學

〔영〕Environmental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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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된 세상은 하느님의 성사이다(시편 19.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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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된 세상은 하느님의 성사이다(시편 19. 1) .


인간 존재와 인간이 속한 자연 환경 사이의 도덕적 규범을 설정하고, 그 가능성과 타당성을 탐구하는 학문. 〔의 미〕 무분별한 경제 개발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어져 자연 환경의 파괴를 가속화하였다. 그래서 생태계 의 자연스러운 순환은 단절되고, 생태권(生態圈)의 재생 능력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 (ecological crisis)가 닥쳐온 것이다. 환경 위기, 즉 생태학 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윤리학을 초기에는 '환경 윤리학' (environmental ethics, Umweltethik)이라고 불렀지만, 최근 에는 '생태학적 윤리학' 또는 '생태 윤리학' (ecological ethics, Ökologische ethik)이라고 부른다. 생태 윤리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디쉬(R. Disch)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생태학적 양식' (ecological conscience)에 따라 선과 악으로 판별된다. 칸(R. Cahn)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과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종(生物 種)을 아끼고 사랑하며 다른 생물을 직 · 간 접으로 해치는 사리사욕을 버리며, 환경에 가능한 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선 (善)"이라고 해석하였다. 리오폴드(A. Leopold, 1887~1948)는 "생물 군집을 보호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며 심미감(審美感)을 보전 해주는 행위는 선이며, 그렇지 않은 행위 는 악"이라고 환경 윤리의 실천 지침을 제공하였다. 뒤보스(R. Dubos, 1901~1982)와 파크레(Fackre)는 인간이 지혜와 창의를 가지고 자연을 이용하고 관리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물을 배양하고 동물을 사육하여야만 생태권(ecosehhre)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보고, 생태권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선한 것이며 생태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악한 행 위라고 규정하였다. 자연 환경에 대한 윤리적 가치 판단은 생태학에 관한 지식에 근거해서 내려진다. 예컨대 생태계의 보전 및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고 자연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 모든 생물종은 생존할 권리가 있기에 인간이 함부로 생태권을 위험에 빠뜨려서 는 안 된다는 것, 지구 자원의 낭비는 환경의 오염과 파괴에 직결된다는 등의 생태학적 지식이 요청된다. 올바른 생태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은 생태 윤리학의 과 제이며 동시에 생태 윤리 교육의 선결 요건이다. 따라서 생태학적 양식이 결여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또는 이기적인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는 피상적인 환경 윤리학은 논외로 한다. 〔자연 보전의 의의〕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서 양에서도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다른 것이며, 인간을 구 성하고 있는 인간 존재의 부분이고 인간 자신의 실존적 완전성의 한 요소이다"( Jonas)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인간이 요구하는 것을 자연이 제공해 주는 한, 자연에 대한 인위적 침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자연 재화들인 공기, 물, 토양, 빛, 지하 자원들의 이용이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 자원의 부족과 또한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한 자연 재화 보존의 중요성은 정의(正義)를 요구한다. 그러나 자연 재화들은 개별적으로 공평하게 분배되고 배당되거나 원 래 쪼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의 요구에 일일이 부응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연을 보편적인 선(善)으로 보호하고, 재생 가능할 수 있도록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학에서는 자연 재화를 공공 재화(公共財貨)라고 부른다. 공공 재화는 그 누구도 그것의 사용에서 제외되 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처리와 사용은 잠시 위임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이해 관계에만 얽매여 자연을 배타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신탁자(信託者)의 위치에 있다. 이러한 신탁 관계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사유권과 신탁 관계 :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 이 신탁자라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사유 제도 인정과 밀 접한 관련이 있다. 하느님만이 사물의 창조자이자 최고 지배자로서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며, 인간에게는 단지 사물을 사용할 권리만을 위임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인간에 대한 인간 존중과 자연 존중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느님이 원하는 사용 목적에 따라서 만 자연을 이용할 의무가 있다. 케텔러(W.E. von Ketteler, 1811~1877) 주교에 의하면 "인간의 사유권(私有權)은 모 든 인간이 지상의 재화로부터 그들의 필연적 생활 욕구를 획득한다는 의도에서 하느님에 의해 처방된 질서 안에서 지상의 재화들을 이용하는,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에서 는 사유권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아래에서만 행사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자연 재화를 완전히 임의로 처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그릇된 절대적인 소유 개념이 로마법에 등장하였고, 이것은 후에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와 이기적인 개인주의에 큰 영향을 미쳐 종내에는 생태학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우연히 자연 재화를 소유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의 이익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 재화가 단순히 재료로서만 이용되거나 또 다른 사람들을, 특히 미래에 살 사람들을 함부로 제외시키는 것은 불의(不義)한 것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거절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내 줄 수 없는 생명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생존 권은 가령, '숨을 쉬다' , '마신다' 등 근본적인 생명의 능력을 적극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공기를 호흡하고 좋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 아야 한다. 따라서 자연 재화의 이용은 생존권의 수단으로 위임된 것이므로, 자연을 파괴하거나 인간의 생존권 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자연 보존과 신탁 관계 :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신탁자라는 것은, 자연 보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 보존을 실현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인간의 윤리적 의무 범위를 시간과 공간적으로 확대해서 자연을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향은 최근 그리스도교적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① 첫 번째 방향 : 자연은 단순히 인간을 위해서 봉사 하는 것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동물과 식물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며, 생물의 생존권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날 많은 저술가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로운 용어, 즉 '동반자 관계' , '협력 관계' , '연대성' , 심지어 '형제 관계'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 코(Franciscus Assisii, 1181/1182~12226)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형제 관계로 비유하였다. 이 첫 번째 방향은 편의 상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윤리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슈바이처 (A. Schweitzer, 1875~1965)의 '생명에 대한 외경' 사상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 주고 또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갈 것을 간청하고 또 여기에 그 자 신이 순응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 미에서 윤리적이다. 윤리적인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만큼의 값이 나가는지를 묻지 않으며, 또 그 것을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있는지 를 묻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삶 그 자체가 거룩하다. 그는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 따지 않으며, 어떤 꽃도 망가뜨 리지 않으며, 또 어떤 곤충도 밟아 죽 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라고 말 하였다. 슈바이처의 이 글은 생태학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로크(Rock)는 슈바이 처로부터 자극을 받아 자연 외경 사상 을 환경 윤리의 최초의 요청이라고 말 하였다. 둘째,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연과 공속(共屬) 관계에 있다. 이것이 환경 윤리학의 출발점이다. 환경 윤리학은 자연이 고유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서양 근세 사상에서 주관과 객관의 대립적인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인간과 자연이 마치 적대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평등 원칙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츠제커(C.F. Weizsäcker)는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들 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학자들은 그들도 인정하고 있는 기원설에서 나온 결과인 우리와 동류인 피조물에 대한 형제애를 이제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동물 보호뿐만 아니 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이나 무생물계까지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 비인간적 존재와 사물은 주체적 권리의 소유자가 될 수 없으며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생존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규범에서도 이미 죽은 자, 아 직 태어나지 않은 자, 의식을 상실한 자 등의 권리를 인정해 오고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책임 확장의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셋째,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은 자연의 부분이나 자연을 신적(神的)인 것이 나타나는 양태의 전체로 간주 할 때 생길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아시아의 종교에서, 또 그리스도교 이전의 신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② 두 번째 방향 :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규명 하려는 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이외의 것은 인간이 정해 놓은 목적에 따라 함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 방향은 편의상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상호 간의 질적 차이 에 대한 폭넓은 비교 타당성이다. 생물을 학대하면 인간도 쉽게 멸시하게 되며, 동식물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성 을 교육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둘째, 자연과 인간의 교제에 대한 표준에 관한 것인데, 자연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표준이 달라진다. 따라서 자연 안에서 나타 나는 고통이 삶의 원칙에 가장 깊이 저항하는 것으로서 파악되거나, 자연과 인간이 다 함께 보존되기를 목표로 지향할 때 자연은 도덕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셋째, 자 연이 자기 목적을 수행한다고 할 때 과연 일관성을 가지 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인간성이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와 갈등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자기 주장의 필연성과 갈등에 빠질 수 있다. 가령 영양 섭취가 한정되면 생물 간에 갈등을 가져온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이 한계를 시인하면서도, 어떤 상태에서도 삶을 멸절 시키거나 손상을 주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한계를 기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기술의 순기능과 역기능 중에서 역기능만을 문제삼아 과소평 가할 수는 없다. 환경 위기를 해결하고자 기술 발전을 억 압하여서는 안 되며, 그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자연과 신화 및 아시아 종교 :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아시아의 종교에서 찾아보거나 고대 신화를 부활 시키자는 요청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이 현대 산업 사회에서 소생되고 통용될 수 있겠느냐, 또한 부활된다면 그러한 생각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연을 신성시하는 일부 사회에서도 실제로 사람들 이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위기 극복과 중요한 환경 윤리학〕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생태 윤리학자들의 시도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인간 중심적인 측면과 자연 중심적인 측면, 생명 중심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정초하고 이를 토대로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현대의 중요한 환경 윤리학으로는 리오폴드와 네스(A. Naess, 1912~ ) 북친(M. Bookchin, 1921~ ) 등이 주장하는 생태주의 환경 윤리학이 있다. 공생적(共生的) · 인간 중심적 생태 윤리학 : 아우어 (A. Auer)는 하느님이 부여한 인간의 특수한 지위에 의하여,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연을 다스리는 임무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이나 그 안의 생명체와 동일시될 수 없다. 물론 그는 이기적인 인간 중심적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 및 이분법적(二分法 的) 사고를 거부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공생(共生) 관계로 본다. 또한 자연은 인간의 안식처이므로 자연을 적대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연이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와 고유권을 가 졌다고 보지는 않았으며, 인간 중심이라는 말은 오늘날 자연을 오직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평가하고 이용하는 데서 발생한 오해라고 하였다. 인간을 제외하고 는 아무것도 생태적 위기를 적극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책임을 질 줄 아는 존재' 이기 때문 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도 자연의 지체(肢體)이 고 자연과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나,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다. 따라서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해석하는 것 은지나친 발상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과 다른 생명체의 중보자(仲保者)의 역할, 또 신과 자연의 중보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을 자연의 주인이라고까 지 말하였다. 즉 그는 고식적이고 폐쇄적이며 이기적인 인간 중심(humanchauvinism)이 아니라 열려진 상태에서 인간 중심적(anthoppocentic)인 공생적 자연관을 주장하였으며,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적 윤리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맥락에 동조하고 있다. 자연 중심적 생태 윤리학 : 자연 중심적 생태 윤리학에서는 무생물까지도 생명의 근거와 환경이 된다. 따라서 물질도 언젠가는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자연은 그 자체의 존재 이유와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모든 생명은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동식물은 물론, 자연을 단순히 도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자연 중심적 생태 윤리학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자연 보존에 대하여서도 인간에게 상응하는 의무 를 부여한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동반자 관계, 협력 관계, 공속 관계, 형제 관계, 연대성 등이다. 편의상 자연 중심적 생태 윤리학의 자연관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슈바이처가 주장하는 '생명에 대한 외경' (Ehrfurcht vor dem Leben)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생명 외경 사상은 생태 윤리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둘째, 인간과 자연은 공속 (共屬) 관계에 있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연의 개별적 구성 부분이 고유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자연과 인간이 하나이며, 자연을 거룩한 것으로 본다. 이는 특히 아시아의 전통적 자연관과 고대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이어아비치(K.M. Meyer-Abich)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주장하면서, 자연은 고유한 가치와 고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자연을 '자연적 공동 세계' 라고 부르면서, 자연에는 내재적 가치가 있으며 법적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생명 중심적 생태 윤리학 : 테일러(P. Taylor), 알트너 (G. Altner) 등이 주장하는 생명 중심적 생태 윤리학은, 자연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고 이 살아 있는 자연의 모든 형태들에 대해 인간이 책임을 질 것을 요청하는 포괄적 인 행동 양식이다. 그들은 자연의 역동성과 인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생명 윤리의 근거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들은 단순한 자연 보호를 넘어서 모든 종의 보존은 물론, 모든 유기체 발전까지도 환경 윤리(생명 윤리)의 연구 과제로 보았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관찰자인 인간과 관찰 대상자인 자연은 일방적인 주관과 객관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생태적 위기와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과학적 인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알트너는 자연 인식의 전환을 근거로 생명 윤리를 전개시키며 세 사람의 자연관을 비교 · 검토하면서, 생명 중심적 생명 윤리학을 전개시켰다. ① 얀치(E. Jantsch)의 자연의 자기 구성화론(自己構成 化論) : 생명의 역사는 끊임없이 자기 갱신을 하면서 새 로운 발전을 내포하고 있는 비결정적인 와해 과정이다. 여기서 발전은 끊임없이 새롭게 개방하는 것이며, 기존의 것이 자기 극복을 하는 것이다. 자기 구성의 이와 같은 과정은 처음부터 단순하게 유도되거나 예상될 수 없다. 발전이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창조적이 되며, 소위 진화의 일반 법칙을 정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화론자의 환상을 깨부순다. 쉼없이 자기를 넘어서는 자연의 역 동적인 '자기' (自己, Selbst)는 물질 자체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자기' 는 어떤 경우에도 대상화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자연사적으로 해석하는 전체에 대한 의식이다. 얀치의 발전에 대한 주장은 과학적인 해석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의 창조력을 자연의 자기 구성설로 환원시키는 다분히 범신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② 크래머(F. Cramer)의 창조 가능성으로 발전 : 크래 머는 얀치가 주장한 자연의 자기 구성화론을 더욱 발전 시켜, 자기 구성화를 물질 전체의 창조 능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물질의 창조 가능성이 모든 경우에서 입증될 수 있느냐는 의문과, 또 그가 사용하는 창조라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얀치나 크래머의 자연관에서 자연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점이며, 따라서 윤리적으로 보살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③ 로렌츠(K. Lorenz, 1903~1989)의 자연 총체설 : 로 렌츠는 앞에서 논한 자연의 자기 구성을 해명하기 위해서 '섬광' (閃光, fulguration)이라는 개념과 '형태 인지' (形態認知)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가 말하는 섬광은 발전이며 동시에 창조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는 진화 발생에서 새로운 특징과 질의 변용이 실현된다고 주장하였다. 진화는 낡은 체계의 특징 변화를 가져오는 열려 있는 과정이다. 이것은 특히 생명의 발생에서, 또 동물과 인간의 교제의 마당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진화 과정을 개방적이고 자기 초월적 형성 과정으로 보며, 생명 현상의 다양성에 주목하고 자연에 관한 인간의 가치관이 생명 현상의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하였다. 삶의 모든 형상은 각각 유일한 것이므로 인간을 위한 일시적인 이용 가치라는 관점에서 무분별하게 조절되는 것으로 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 배경에는 자연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있다. 인간이 그 중요성을 인지할 수 없고 진화의 다양한 복합 정도가 있기 때문에 자연의 존재는 항상 보호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생태 위기는 한마디로 인간이 자연의 총체성을 무시하고 그 이용 가치만을 인정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로렌츠는 형태 인지와 동물 형태학을 근거로 생명의 유일성에 근거한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서 자연의 가치를 중시하였다. ④ 평가 : 생명 중심적 생태 윤리학의 논거로 알트너가 소개한 얀치의 자기 구성설과 크래머의 물질의 창조 가능성과 로렌츠의 자연 총체설은 자연의 역동성과 창조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종래의 전통 적 이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는 개념상의 혼란도 있고 내용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종래의 이분법적 사고와 정태적(靜態的) 기계론을 거부하고 자연의 고유권과 자연 전체에 대한 존중을 일깨웠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생태주의적 환경 윤리학 : 하그로브(E . Hargrove), 패스모어(J. Passmore) 등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는 이기적인 인간 중심주의적 환경 윤리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생태 윤리학의 범위에 들 수 없기에 논의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공생적인 인간 중심적 생태 윤리학과 자연 중심적 생태 윤리학, 생명 중심적 생태 윤리학에서도 인간의 이익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되고 있으며, 인간이 우주 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우월성을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있어 '인간 중심주의'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환경 윤리학은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태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리오폴드와 네스 등이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전체론적(全體論的, holistic) 관점에서 '탈인간 중심주의적' 인 생태주의적 환경 윤리학을 제창하였다. 그들은 환경 윤리학이 기존의 윤리 이론에 따라 응용하는 응용 윤리학의 일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론에 의거한 새로운 윤리학으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리오폴드는 "아직까지 인간과 대지 및 그 대지 위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동식물과의 관계를 다룬 윤리는 없다" 라고 전제하고, 새로운 윤리관으로 '대지 윤리' (land ethic)를 제창하였다. 또한 네스는 "모든 생명체는 평등 하며 자기를 실현할, 즉 생존하고 번성하며 자기 나름의 형태에 도달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라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심층 생태주의' (deep ecology)적 환경 윤리학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심층 생태주의는 확고한 철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사고 방식과 자연관을 비판적으로 논하고 자연에 대한 직관을 중시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방법론과 특히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층 생태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생태주의적 환경 윤리학은 생태학에서 윤리적 가치를 도출하려고 함으로써 논리적으로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 생명권 ; 생명 윤리학 ; 윤리학 ; 환경 신학) ※ 참고문헌  《교회와 사회. 사회 교리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주교회의 신앙 교리위원회 편, 《환경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생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 진교훈, 《환경 윤리, 동서양의 자연 보전과 생명 존중》, 민음사, 1998/ -, 《현대 사회 윤리 연구》, 도서출판 울력, 2003/ G. Altner, Umweltethik-Grundsätze und Perspektiven, Scheidewege 14, 1984/ A. Auer, Umweltethik, Duesseldorf, 1989/ A. Brennan ed., The Ethics of the Environment, London, 1995/ R. Elliot ed., Enviromental Ethics, Oxford, 1995/ H. Jonas, Das Prinzip Verantwortung, Versuch einer Ethik fuer die techmologische Zivilisation, Frankfurt am M., 1979/ A. Schweitzer, Kultur und Ethik, Miinchen, 1923. 〔秦教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