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還生
〔라〕reincarnatio · 〔영〕reincarnation · 〔산〕saṃsā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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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생명체, 특히 인간이 사후에 신체의 소멸과 더불어 영 =원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남아서 새로이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 '재생' (再生, punar-janma) 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형태의 환생, 혹은 재생에 대한 믿음은 전세계 원시 부족의 문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믿음이며, 특히 중부 오스트레일리아와 서부 아프리카의 토속 사회에 서는 조상 숭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나 고 있다. 이집트에서 사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보존하던 풍습도 언젠가 영혼이 돌아와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으며, <사자(死者)의 서>는 사자에게 쥐 어 주는 명부(冥府)로의 여행 안내서이다. 유사한 성격을 가진 티베트의 <사자의 서>는 사후 49일간 중음(中 陰)의 상태에 있는 혼(魂, 불교적 표현으로는 識)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환생 혹은 재생의 믿음을 가장 정교 하게 발전시킨 것은 고대 인도와 그리스이다. 인도에서 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15 세기에 구루나낙〔Guru Nanak〕에 의해 창시된 힌두교와 이슬람의 종합) 그리고 수피즘(Sūfism)의 교설이나 실천과 연관되 어 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 환생은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2?~497?),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 원전 490?~430?),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 347),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의 철학 사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상 생활이 끝난 다음' 에 인간은 또 다른 지상 생활을 위해 돌아오지 못한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 이다. 죽음 뒤에 환생이란 없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13항). 〔원시 문화〕 환생에 대한 믿음이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것임은, 그 믿음이 세계 각지의 수많은 원시적 토속 집단의 믿음 체계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석기 시대 중부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 지에 살았던 아란다족(Aranda, Arunta)과 같은 원시적인 문화에서 환생을 믿었다는 것은, 이 믿음이 인류 문화의 기원과 더불어 생겨났음을 시사한다. 그 밖에도 환생을 믿는 원시 부족으로는 서부 아프리카(Ewe, Edo, Igbo, Yoruba), 남아프리카(Zulu), 인도네시아, 오세아니아, 뉴 기니아, 그리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토착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환생을 믿을 뿐 아니라, 후손이 없는 것은 환생하여 삶을 개선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 죄악시한다. 그러므로 풍요를 위한 의식과 후손의 생산, 즉 조상 혼의 환생을 돕는 샤 먼(Shaman)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아프리카의 요루바족 (Yoruba)과 에도족(Edo Bini)들은 돌아가신 선조의 환생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어, 어린 아 들을 '아버지가 돌아왔다' 고, 어린 딸을 '어머니가 돌아 왔다' 고 부르는 관습을 갖고 있다. 줄루족(Zulu)은 개개 의 영혼이 작은 벌레로부터 거대한 코끼리에 이르는 다 양한 동물의 몸으로 재생하다가 마침내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며, 인간이라는 정점에 이른 후에 영혼은 최초에 생성되었던 최고의 영혼과 결합된다고 믿는다. 오스트레 일리아 원주민의 종교적 믿음에 따르면, 돌아가신 조상들은 사자의 땅에서 얼마간 머문 후 수태의 순간에 모태 로 들어옴으로써 삶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어머 니가 임신하는 것은 아버지의 직접적인 역할 때문이 아니라,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alcheringa)이 환생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토템 센터(oknanikila)에 근접함으로써 새 생명이 잉태된다고 믿는다. 이처럼 한 부족에게서 신성 시되는 부지(敷地)에서 아이를 잉태하였을 때 그 아이는 부모의 소유라기보다 임신의 장소와 동일시되는 그 씨족에 속하는 것이 되며, 이러한 사상에 바탕하여 씨족 공동 체의 유대감은 더욱 공고해졌다. 〔고대 그리스〕 윤회(輪廻) · 전생(轉生)의 관념이 동방 (특히 인도)에서 고대 그리스로 전해졌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줄 만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어쨌든 환생의 개념은 피타고라스의 스승인 시로스의 페레치데 스(Pherecydes ofSyros, 기원전 6세기) 시대부터 그리스 사 상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고, 이는 플라톤과 플로티노스 의 저술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 (Herodotos, 기원전 484?~430/420?)는 환생을 믿은 최초의 민족은 이집트인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영혼이 불멸하며, 다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전에 지상과 바 다와 공중의 다양한 생명체를 통과하면서 3천년 주기로 순환한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신비적 교파인 오르페우스 (Orpheus)의 창시자인 피타고라스는 인간에 대한 이원적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인간은 본래 선하고 순수하였으나, 죄악에 의해 영혼이 오염되어 결국 부정하고 약한 육신이라는 감옥에 속박되었다는 것이다. 이 교파의 궁극적 목표는 신자들의 영혼을 점진적으로 정화시킴으로써 마침내 미래의 재생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불사(不死)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비밀스럽고도 성스러운 의례에 참여하며, 명상과 기도, 채식주의를 지켜야 하였다. 그리고 물질적 세계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까지는 전생의 공덕으로 결정되는 다양한 형태의 육신으로 오랫동안 재생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엠페도클레스는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우주의 어 떤 것도 창조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땅〔地〕 · 물〔水〕 · 불〔火〕 · 바람〔風〕 등 4대 원소 사이의 관계에 따라 변이하며, 부정한 영혼 은 3,000년 동안 수많은 유형의 환생을 통해 윤회하도 록 저주받는다. 기나긴 정화 과정을 거쳐야 이 어두운 운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으며, 그 일차적 조건은 육식을 금하는 것이다. 그 동물의 영혼도 한때는 인간의 몸에 머물렀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오르페우스 교파 의 성인들 등의 영향 아래에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 한 이론을 형성하였다. 인도의 베단타(Vedanta) 학파처럼 그는 영혼(靈魂, ψυχή)이 불멸하며, 모든 의식적 존 재의 지배자이자 내적인 거주자라고 믿었다. 영혼은 형 이상학적 무지와 정욕에 의한 속박의 결과로 인해 정기 적으로 물리적 생존의 영역으로 하강한다. 영혼이 어떠 한 몸으로 환생하는가는 전생의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영혼은 지상이나 공중, 그리고 수중의 다양한 생 명체 속에 일시적으로 거처를 찾으며 긴 환생의 여행을 하다가 일단 인간으로 환생하면 철인(哲人, 지혜를 사랑하 는 자)을 정점으로 하는 다양한 도덕적 수준의 직업을 거쳐간다고 하였다. 플라톤의 유명한 신화(《국가》 10)에 따 르면, 마음이 저열한 쾌락에 지배당한 영혼들은 먼저 망 각의 들을 지나 무관심의 강둑에 거처를 잡고 그곳에서 물을 마실 때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며 그 다음에 수많 은 유성과 같이 재생을 거듭한다고 한다. 모든 욕구와 갈망을 이성의 지배하에 두고 최고선(절대자)에 대한 순일 무잡한 명상에 의해 참다운 존재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 여 육체와 물질적 세계의 쾌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후에야 비로소 영혼은 영원하고 기쁨으로 충만한 완전한 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그와 같이 해방된 영혼은 '천계 를 넘어선 곳에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며, 그곳에서 색깔도 형상도 없고 만져질 수도 없으며 오직 이성(νοῦς) 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참된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고대 인도의 윤회설〕 환생에 대한 인도적 표현은 '상 사라' (samisara, 윤회)로서 '카르마' (karma, 業)와 함께 모든 인도의 종교적 · 철학적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힌두교이건 불교나 자이나교이건 인간은 무지와 탐욕, 집착에 바탕한 각자의 행위(카르마)의 결과로 생사를 반복하며 고(苦)를 겪어야 하는 유한하고 제약된 시간의 세계, 즉 윤회의 세계에 속박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도의 모든 종교의 목표는 죽음과 속 박과 시간의 세계인 윤회로부터 불사와 완전한 자유와 초시간적인 해탈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윤회로부터의 해탈, 생사의 반복으로부터 불사에 이르는 길을 '요가 (yoga)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각 교파와 학파의 기본 적인 골격이나 구조는 유사할지라도, 실재를 해석하는 구조나 관점에는 차이점이 있다. 힌두교의 윤회설 : 힌두교에서는 《베다》(Veda)를 절대 적 권위를 지닌 천계서(天啓書, śruti)로 받들며, 그 가운 데서도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우파니샤드》(Upanisad)와 그에 대한 철학적 · 신학적 해석인 베단타 학파가 힌두교의 등뼈를 이룬다. 윤회와 카르마의 개념은 불교와 자이 나교가 발생하기 이전인 기원전 8세기경에 성립된 고 (古)《우파니샤드》에서 이미 확립되었지만, 그 이전에 성립된 《리그 베다》(RigVeda)와 <브라흐마나>(Brahmana, 祭儀書)에서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현실적이고 낙천적인 《리그 베다》 시기의 인도인들은 사후의 문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윤회의 개념도 없었다. 하지만 사후에 영혼(manas, asu, ātman)이 사라지지 않고 신들의 세계로 가거나 혹은 최초의 사자(死者)로서 하늘나라에서 후손을 위해 거주지를 마련한 야마(Yama, 후에 불교에 흡수되어 염라)의 세계로 가서 지상의 축제와 같은 환락 가운데 영생을 누린다는 생각은 있었다. 이 신들의 세계는 생존 시에 선행을 하고 신들을 찬양, 위무한 자를 위한 것이고, 악행자는 어둠의 심연으로 떨어진다고 하였다(《리그 베다》 X. 132. 4 ; IV. 5. 5 등). 또 육신을 떠나 하늘이나 땅, 바다와 강, 초목에 혼입된 혼령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기 원하는 내용도 있으며(《리그 베다》 X. 58. 1-12). '커다란 수수께끼' 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리그 베다》의 한 부분 (I. 164. 1-52)에서는 후대의 윤회설을 암시해 주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은 "누가 뼈 없는 것(영 혼)이 뼈를 가진 자(몸)에게 와서 머무는 것을 본 적이 있 는가?"라고 묻고서 "이 숨쉬며 급속히 움직이는 생명의 원리가 안주처에 굳게 머문다" 라고 답하였다. 더욱이 "영혼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멀리 갔다가 돌아오며, 육 신과 영혼은 끊임없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서 사람들은 한편을 지각할 때 다른 한편을 지각할 수 없다"라고 노래하였다. 제사의 규칙과 의미를 기록한 《브라흐마나》에도 윤회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으나 '거듭 죽음' (punar-mryu) , '환생' (punar-asu), '재생' (punar-ājāti) 등의 단어가 나타 난다. 《리그 베다》에서는 악인은 무의 심연으로 사라지고 선인은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반면, 《브라흐마나》에 서는 악인이나 선인 모두가 사후에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제식(制式)을 잘 수행하고 선행을 많이 한 자는 하늘(svarga)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악인은 악업의 댓가로 거듭 죽음을 치른다는 것이다. 선악의 저울대에서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나 상과 벌의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윤회 사상에 근접한 것이다. 《브라흐마나》는 제사 행위(karma)에 의해 쌓인 공덕 (dharma)으로 사후에 하늘에 태어나 영생(이것은 시간 속에서 생명의 연장이다)을 얻음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으나, 《우파니샤드》 시기에 와서는 업이 아니라 지(智, jñāna)에 의해 업의 결과인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궁극적 가치로 여겼다. 또한 욕망과 업, 윤회에 관한 사상들이 발전되었다. 《카타 우파니샤드》(I. 6)는 "생명 이란 곡식처럼 익고, 곡식처럼 다시 태어난다"라고 하며,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행위가 바른 자는 상층 카스 트로 태어나고 악행자는 짐승이나 천민으로 태어난다" (《브르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Ⅲ. 2. 13)라고 하였다. 윤회설이 가장 잘 나타난 초기 문헌은 《브르하드아란 야카 우파니샤드》와 《찬도가 우파니샤드》이다. 《브르하 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철인 야갸왈카 (Yājñavalkya)와 비데하국의 왕 자나카(Janaka)의 대화 장면에서 야갸왈캬는 왕에게 "신체로부터 벗어난 당신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라고 묻는다(Ⅳ. 2. 2). 이어서 육신과 다른, 심장 가운데에 있으면서 깨어 있을 때 육신을 활동하게 하는 미세한 기능(Jiva, 영혼)이 있으며(Ⅳ. 2. 2-3), 또한 이들과 동일시될 수 없고 경험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아트만(Ātman)이 있다고 말하였다(Ⅳ. 2. 4). 아트만은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빛나는 순수의 식이며, 감관, 마나스(意), 지성(buddhi) 등 미세신(微細 身)이 이 빛을 반조하여 개체 의식(jiva)을 일으킨다. 즉 아트만의 반사 매체인 미세신이 육신과 갖는 관계 양태 에 따라 개체는 깨어 있는 상태(覺醒位, jagrat), 꿈꾸는 수면 상태(夢面位, svapna), 꿈 없는 수면 상태(熟眠位, susupti), 죽음의 상태(死位)의 네 가지 경험 상태를 갖는다. 야갸왈캬는 이 세계의 상태와 저 세계의 상태를 구분 하여 다시 그 둘을 매개하는 중간의 황혼 지대로서 수면 상태를 설정하였다(IV. 3. 9). 이 세계의 상태란 곧 각성 위이며, 저 세계란 영혼(purusa)이 육신을 떠난 사후의 세계를 뜻한다. 태어난다는 것은 영혼이 육신을 가지고 이 세계에 돌아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그것이 육신 을 떠나 저 세계의 상태로 가는 것이다(Ⅳ. 3. 8). 다시 말 하면 죽음이란 노년이나 질병, 사고 등으로 육신이 더 이 상 미세신의 활동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마치 망고 나무나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줄기로부터 떨어지듯이 미세신 이 육신으로부터 벗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였다(IV. 3. 36). 임종 시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은 마치 짐을 가득 실 은 수레가 힘겹게 삐걱거리듯이 육신 속의 미세신이 육 신을 떠나고자 움직이기 때문이다(Ⅳ. 3. 35). 미세신은 눈이나 머리 끝, 혹은 신체의 다른 구멍을 통해 신체로부 터 벗어나는데, 이때 과거의 경험과 카르마도 그것을 따 라간다(Ⅳ. 4. 42). 신체를 떠난 영혼(jiva)은 마치 송충이 가 풀잎의 끝에 오면 다른 풀잎으로 접근한 후에 그것을 향해 자신을 당기듯이 이 몸을 버린 후 다른 몸으로 접근 하는데(IV. 4. 3), 이때 미세신에 수반된 전생의 선악의 업과 욕망에 따라 새로운 몸이 결정된다(Ⅳ. 4. 5). 이와는 달리 사후에 곧바로 환생하지 않고 전생의 선 악의 행위에 따라 다른 세계에서 과보를 받은 후 다시 이 세상으로 재생한다는 설도 있다. 이것이 바로 신화적 사고방식이 짙은 5화 2도설(五火二道說)로, 하늘도 욕망하지 않고 지옥에 떨어질 악행도 저지르지 않은 영혼은 5화의 길을 거쳐 곧바로 환생한다는 것이다. 5화설에 따 르면 제사로 여겨지는 화장(火葬)에서 윤회하는 영혼을 상징하는 신앙(śraddha)이 신에게 올라가 하늘, 대기, 땅, 남자, 여자라는 제화(祭火)에 차례로 봉헌된다. 그리고 소마(soma, 일종의 환각제)→비→음식→정액→아로 바뀌어 마침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였다(IV. 2. 9-14). 2도설에 따르면 하늘의 즐거움을 성취하려는 목적으로 제사를 수행하는 영혼은 연기의 길(Dhūmayāna)을 따라 선조의 세계(Pitrloka)에 이른다. 먼저 화장 때의 연기로 가서 그로부터 밤으로, 달이 기우는 15일로, 해가 남쪽으로 지나가는 6개월로, 다시 그로부터 선조의 세계로, 그리고 달로 간다. 그곳에서 음식이 되어 신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다가 과보가 다하면 허공과 대기를 지나 5 화의 길을 따르는 자들과 같이 재생한다(Ⅵ. 2. 16). 지상 에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고 또 하늘에서 선조들과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지 도 않는 영혼들은 신들의 길 (Devayāna)을 따라 범계(梵界, Brāhmaloka)에 이른다고 한다(Ⅵ. 2. 15). 윤회의 원인에 대해서 야갸왈캬는 애욕 (kāma)을 강조하고 웃달라카(Uddaalaka)는 무지(avidyā) 를 강조하나, 베단타 학파에서는 무지로 통일되었다. 자이나교의 윤회설 : 자이나교는 영혼(jiva) · 비영혼 (ajiva)에 포함되는 물질(pudgala) · 운동의 조건(dharma) · 정지의 조건(adharma) · 허공(ākāśa) · 시간(kāla) 등 여섯 가지 존재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이 중 보통 영 혼으로 번역되는 '지와' (jiva)는 의식을 본질로 하는 생명적 원리로서, 본래 무한한 믿음, 무한한 인식, 무한한 희열, 무한한 힘을 가졌으나 윤회와 속박의 상태에서는 카르마에 의해 제한되어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다고 한다. 자이나교의 윤회 개념도 다른 학파에서와 마찬가지 로 카르마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자이나교에서 카르마는 매우 특이한 개념으로, 물질(pudgala) 가운데서 매우 미세한 형태의 입자이다. 실재에 대한 무지 와 '카샤야' (kaśāya, 끈끈이, 불교의 번뇌에 대응하는 개념)라 고 불리는 네 가지 즉 분노, 탐욕, 자만, 미혹으로 인해 카르마 입자가 영혼에 유입(asrava)되어 영혼을 속박함으 로써 갖가지 신체에 한정된 유한하고 불완전한 생존의 굴레 속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따라서 영혼에서 카르마 입자를 제거하고 본래의 무한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카르마 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막고(samvara), 이 미 유입된 카르마 물질은 소멸시켜야(nijara) 한다. 최후의 카르마 입자마저 소멸되면 영혼은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무한성을 회복한다. 카르마를 소멸시키고 영혼의 청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이나교는 불살생, 무소유 등 엄격한 도덕률과 고행(tapas)을 요구한다. 불교의 윤회설 : 초기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Śākyamuni, 기원전 624~544?)는 깨달음을 얻은 직후, 오랜 세월에 걸친 무수한 전생들을 기억해 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나 타인의 전생에 대한 기억은 부처가 갖는 초자연적 능력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불교에 따르면 윤회와 세계의 주기는 시작을 알 수 없으며, 무명(無 明)과 갈애(渴愛)에 속박되어 있는 한 이 과정은 미래에도 한없이 지속된다. 그리고 윤회, 즉 생사의 반복적 순환은 우연히 혹은 신의 의지나 숙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은 업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선인선과(善因善果), ,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중생들이 과거에 지은 업력에 따라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영역은 보통 지옥(naraka) 아귀(preta), , 축생(tiryagyonika) , 인(人, manusya), 천(天, deva)의 5취(五趣, 五 道)로 구분되며, 축생 다음에 아수라(asura)를 보태어 6 취(六趣, 六道)라 부르기도 한다. 지옥은 괴로움이 충만 한 곳으로서 미움, 분노의 업을 지은 자가 태어나며, 아귀는 탐욕의 업이 강한 자가 받는 과보이고, 축생은 어리 석음〔痴心〕의 과보로, 이 셋을 합하여 3악취(三惡趣)라 고 부른다. 천은 선업의 과보로서 오직 즐거움만이 있는 세계이다. 이곳에서는 현실에 만족하여 안이하게 되어 해탈의 의지를 상실하기 쉽고, 선업의 과보를 다 받고 나 면 다시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된다. 반면 인간 세계는 괴로움〔苦〕과 기쁨〔樂〕이 함께하는 곳으로, 괴로움의 현 실을 자각하고 불법(佛法)을 만나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만큼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희귀한 기회라고 한다.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이 세계의 중앙에는 수미 (sumeru, 須彌)산이 있고 그 둘레를 여덟 겹의 바다와 아흡 겹의 산(九山八海)이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그 땅속 깊은 곳에 지옥 중생들이 살고 있으며, 남쪽에 있는 남섬 부주(南贍部洲, Jambudvipa)가 바로 인간이 살고 있는 세 계이다. 지상에는 미세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아귀들이 출몰하고 곤충을 포함한 축생들도 살고 있으며, 수미산 중턱과 정상 그리고 그 위쪽으로 천(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세계(loka)는 식욕과 성욕 등 욕망이 지배하는 욕계 (kāma-dhātu)와 욕망은 없으나 물질적 형상이 있는 색계 (rūpa-dhātu), 그리고 물질마저 사라지고 정신만이 있는 무색계(arūpa-dhātu)의 3계로 구분되며, 천은 욕계에 속 하는 6욕천, 색계에 속하는 16천, 무색계에 속하는 4천 의 26천으로 구분된다. 욕계 6천이란 4천왕중, 33천,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樂變化天), 타화자재천(他/L 自在天) 등 여섯이며, 색계는 선정(禪定)의 순수함 정도에 따라 초선부터 제4선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천신들 이 머무르고 있다. 무색계는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 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4천으로 구분되며 마지막은 유정천(有頂天)으로, 그 단계까지 벗어나면 윤회적인 세간을 벗어난 출세간(lokottara) 즉 해탈의 경지이다. 이와 같이 불교적 우주론은 소우주인 인간의 심리적 상태와의 대응 관계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중생들은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 인간이나 짐승들처럼 태로 태어나는 것〔胎生〕, 새나 파충류처럼 알로 태어나는 것[卵生], 오늘의 과학적 지식과는 어긋나지만 곤충 처럼 습기로부터 태어나는 것〔濕生〕, 천신처럼 마술과 같은 변화로 태어나는 것〔化生〕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또 한 개체의 생사 과정을 태어나는 순간[生有〕, 태어나 서 죽기 직전까지의 기간〔本有〕, 죽는 순간〔死有〕, 죽은 후 새로운 생명을 받기 전까지의 기간〔中有 혹은 中陰〕의 넷〔四有〕으로 구분짓기도 한다. 상좌부(上座部)를 포함 한 일부 부파에서는 죽음 후 곧바로 다음 생을 받는다고 하여 중유를 부인하지민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sarvastivadins)를 포함한 일부 부파(部派)와 대승 불교(大 乘佛敎)에서는 이를 인정한다. 중유를 인정하는 부파 간에도 그 기간이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우리 나라의 장례 예식에서 칠칠재(七七齋, 49재)를 지 내는 것은 중유의 기간이 49일이라는 설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5온(蘊) · 12처(處) · 18 계(界)의 다르마(dharma, 法, 존재의 궁극적 요소)로 분석하여 그 모든 것〔一切法〕이 무상(無常)하며, 무상하므로 고(苦)이고, 그 어디에도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無我〕고 보는 불교는, 윤회와 전생의 주체로서 불변하는 영혼을 부정하므로, 자기 동일성을 가진 어떤 불변 의 영혼이 육신이 소멸된 후에도 여전히 남아서 다른 육 신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재생' (再生, reincarnation)이 라는 표현은 불교에 부적합한 단어일 수 있다. 불교는 제 법무아(諸法無我) 5온무아(五蘊無我)를 표방하면서 금 생과 내생의 관계를 업력과 연기(緣起)라는 두 원리로 설명한다. 마치 당구 게임에서 공 A에 주어진 힘이 공 B 에 부딪치면 공 A는 멈추어도 그 힘으로 공 B가 운동을 시작하듯이, 또 다른 예로 기름과 심지, 산소의 결합으로 타오르는 불꽃이 순간마다 서로 다른 것이면서도 지속성 을 유지하듯이, 한 인간도 자기 동일적인 실체적 영혼이 없이도 전생의 업력에 의존하여 5온의 미세한 형태가 내 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전생의 A와 내생의 A 는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존재인 것도 아니며, 양자 사이에는 연기와 업의 인과 관계에 의한 지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기의 일반적 공식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는 조건성(此緣性)이다. 이것을 인간의 고(苦) 생성과 소멸 과정에 적용한 것이 연기설의 최종적 형태 인 12연기설인데, 상좌부와 설일체유부에서는 이것을 과거 · 현재 · 미래의 재생과 윤회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이용한다. 설일체유부는 미세한 형태의 5온이 연기법에 따라 전생에서 다음 생으로 연결된다고 보는 반면, 상좌부는 유 분식(有分識, bhavanga-viññāna)이라는 잠재적이고 비활 동적인 식(識)을 상정하여 이것이 사후에 모태에 들어와 다음 생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독자부(犢子部)는 업력 을 담지하는 윤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5온만으로는 불 충분하다고 여겨 5온과 같거나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不可說〕 비즉비리온(非即非蘊)의 푸드갈라(pudgala, 人)를 상정함으로써 무아설을 고수 · 주장한 세친(世親, Vasubandhu, 320?~400?)으로부터 비판받기도 하였다. 또 대중부(大衆部)에서는 감각과 사고의 기능인 6식 외에 근본식을 상정하여 전생을 설명하였고, 경량부(經量部) 에서는 업의 결과가 마음 속에 씨앗(bja)을 남기며 뒤따 르는 마음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는 훈습설(薰習, vasana) 과 더불어 표층인 식(識) 외에 그러한 업의 종자를 담지 하는 미세한 식〔一味蘊〕을 인정함으로써 후대에 대승교학의 일파인 유식학파의 알라야식(Ālaya-vijñāna, 阿賴耶 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유식학파는 전통적인 6 식 외에 자의식의 근거로서 제7 염오의(染汚意, 혹은 末 那識)와 표층적인 7식의 심층에 제8 알라야식을 상정하였다. 이 알라야식은 과거의 업력의 씨앗을 저장하여 현 세에서의 표층식(pravṛtti-vijñāna)을 일으키고 동시에 미래세의 알라야식에 저장된 업종자에 따라서 그에 맞는 몸〔衆同分〕과 결합되어 새로운 삶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 차이〕 대부분의 학자들은, 힌 두교에서는 아트만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윤회의 주체가 간단히 설명되는 반면 불교는 무아설이고 따라서 윤회의 주체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힌두 철학의 정수인 베단타 학파의 문헌을 주의깊게 읽어 보면, 힌두교에서도 아트만을 윤회의 주체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트만이나 브라흐만은 불생 · 불멸하고 불로 · 불사하며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힌두 철학에서 아트만은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가운데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동일시되는 아트만은 단순히 한 개인의 자아나 영혼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모든 것에 편재하며 시공간에 한정되거나 일상적 인식으로 파악될 수도 또 언설로 규정될 수도 없는 순수 의식(cit)이다. 《우파니샤드》에서도 전생의 업의 결과를 담지하여 신체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미세신, 혹은 의식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유분식, 근본 식, 일미온, 알라야식에 대응하는 힌두적 개념이다. (→ 불교 ; <사자의 서> ; 연기설 ; 요가 ; 《우파니샤드》 ; 윤회 ; 플라톤) ※ 참고문헌 Wendy Doniger O'Flaherty ed., Karma and Rebirth in Classical Indian Traditions, London, Univ. fCalifornia Press, 1980/ 石 上玄一郎, 《輪廻と轉生》, 弟三文明社, 1985(박희준 역, 《윤회와 전생》, 고려원, 1989)/ Francis Story, Rebirth, Sri Lanka, Buddhist Publications Society, 1985/ 이지수, <윤회와 불사의 길>, 한국종교학회 편, 《죽음이란 무엇인가》, 2001, pp. 103~131. [李芝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