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이 (1819~1840)
權珍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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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옥중 서간을 쓰고 있는 권진이 아가다(탁희성 작).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가다. 성인 한영 이(韓榮伊, 막달레나)의 딸. 서울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 났으며, 부친 권 진사(進士)가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가족 전체가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 후 부친이 임종하면서 천주교를 잘 봉행하라고 당부하자 모친은 딸을 데리고 어떤 교우 집에 들어가 극빈의 생활을 하였다. 13세 무렵 권진이는 교우 청년과 혼인하였는데, 남편 또한 매우 가난하여 그를 데려갈 수 없었으므로 남편의 친척인 정하상(丁夏祥,바오로)의 집에서 기거하였다. 그러던 중 수정(守貞)할 결심을 하고 1833년 말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그에게 결혼을 파기하여 줄 것을 청하여 허락을 받았고, 그 뒤부터 신부의 처소를 돌보았으나 유 신부에 의해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로 인해 1836년 유방제 신 부가 조선을 떠나게 되자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 의 권면에 따라 모친에게로 돌아가 본분을 지키는 데 전 심하고, 추문을 보속하고자 노력하면서 이를 다하기 위 해 순교할 결심을 나타냈다. 그들 모녀는 이후 자신들을 찾아온 이경이(李璟伊, 아 가다)와 함께 수계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1839년 기 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면서 7월 17일(음 6월 7일) 배교자 김순성(金順性)의 밀고로 이경이, 여종 1명과 함 께 체포되었다. 김순성은 이때 권진이의 아름다움에 반 하여 모친만을 옥에 가두게 하고는 나머지 세 명을 사관 청(仕官廳)에 가두고 유혹하였지만, 권진이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포졸들의 도움으로 여종과 함께 탈출할 수 있 었다. 그러나 이 일이 탄로나면서 좌포장(左捕將) 이완 식(李完植)이 파직당하고 포졸들이 엄형을 받게 되었으 며, 권진이는 다시 체포되었다. 그리고 모친, 이경이와 함께 모진 형벌을 받은 후 모친은 12월 29일(음 11월 24 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고, 권진이와 이경이는 1840년 1월 17일(음 12월 13일) 참수형을 받 아 1월 31일 당고개(堂峴)에서 다른 5명의 교우들과 함 께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이경이 ; 한영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中/ 《기해일기》/ 《日省錄》.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