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

歡喜

〔히〕שִׂמְחָה · 〔그〕ἀγαλλίασις, χαρά · 〔라〕gaudium · 〔영〕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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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 기뻐함. 다른 말로 '기쁨' 이라고도 한다. 성서에 나오는 기쁨에 관한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근원은 언제나 하느님과 그분의 선물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곤경에서 구해지거나 구원에 대한 기대에 차 있을 때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신약성서에서는 구세주가 와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에 그분의 오심이 기뻐할 근거가 된다. 기쁨, 즐거움 또는 행복의 반응은 단지 내면적인 느낌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함께 모여 경배를 드릴 때 외적으로도 드러난다. 기쁨은 신앙 체험에서 중심을 차지하며, 전례에서 가장 자주 재현되 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심하' (שִׂמְחָה)이다. 칠십인 역 성서는 이 단어를 '에우프라이노' (εὐφραίνω)로 옮겼지만, 실제로는 '아갈리아시스' (ἀγαλλίασις)를 더 즐겨 사용하였다. 구약성서에서 기쁨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하느님이 베풀어 준 좋은 것을 깨닫고 누릴 때 솟아난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할 때(잠언 5, 18-23 ; 집회 26, 2. 13 ; 아가 1, 4), 자녀가 태어날 때(1사무 2, 1 ; 시편 113, 9 ; 욥기 3, 7) 기뻐하며, 때로는 좋은 포도주가 기쁨을 주기도 한다(시편 104, 15 ; 판관 9, 13 : 전도 8, 15). 비탄 속에 있을 때 하느님이 가까이 있고 보호해 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 기쁨이 솟아나고(시편 16, 9), 언제 어디서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체험할 때 또한 기쁨을 느낀다(시편 16, 11 ; 21, 6). 시편은 이와 유사한 여러 처지에서 겪는 기쁨을 자주 노래하였다(시편 9, 2 ; 13, 5 ; 21, 1 ; 109, 28).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큰 일을 겪을 때에도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을 때(1사무 18, 6 ; 2역대 20, 27 ; 1마카 7, 45), 계약의 궤를 옮길 때(2사무 6, 14-15), 임금의 즉위식 때(1열왕 1, 40), 성전 예배를 재개하였을 때(2역대 29, 30), 유배에서 돌아왔을 때(이사 51, 11 ; 스바 3, 14),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였을 때(느헤 12, 43) 노래(시편 100, 2)와 춤, 악기 연주가 어우러지는 커다란 경축 행사 모임으로 기쁨을 표현하였다(1사무 18, 6). 기쁨은 하느님에게 제사와 축제를 지내면서 재현되고 표현되었다. 성전에서 제사드릴 때(신명 12, 7 : 2역대 23, 18 ; 29, 30)와 추수(신명 26, 11), 새달을 맞을 때(시편 81, 2-4)가 그러하다. 기쁨을 드러내기 위하여 다윗은 레위인들에게 악기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하였다(1역대 15, 16). 사실 축제는 "모여 즐기는 날" (민수 10, 10)로 불렸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구원한 위업을 기리는 과월절과 무교절은 가장 큰 기쁨의 때였으며(2역대 30, 21-25 : 에즈 6, 22 : 참조 : 시편 95장 : 98장), 마찬가지로 함께 즐기며 기뻐하는 추수절과 초막절(신명 16, 9-15 ; 레위 23, 40 ; 느헤 8, 10), 민족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된 사건을 경축하는 부림절(에스 9, 17. 22), 성전 재봉헌 축제(1마카 4, 52-59) 역시 기뻐 뛰는 축제이다. 시편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 백성이 부르는 기쁨의 노래를 많이 담고 있다. 하느님이 준 특별한 선물들, 곧 율법(시편 1, 2 ; 19, 9 ; 참조 : 예레 15, 16), 성전(시편 100장 : 122장), 용서(시편 51, 8. 12) 등이 기뻐할 근거가 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이 직접 "만드신 것"과 자신들이 드리는 찬미의 노래와 감사가 그분께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시편 104, 31. 34). 하느님도 "당신 백성을 잘되게 해 주시는 일"을 마냥 기뻐한다 (신명 30, 9 ; 참조 : 시편 147, 11 : 149, 4 ; 즈가 3, 17). 과거에 구원받았던 체험은 미래에의 희망을 낳는다. 특히 예언자들은 아직 겪어 보지 못한 기쁨, 곧 종말론적 기쁨을 일러 주었다. 특히 이사야서 40-66장에는 앞으로 도래할 각종 기쁨과 즐거움이 잘 드러나 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이사 44, 23 ; 65, 14-19 ; 참조 : 즈가 2, 14)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구원의 선물을(이사 56, 7)마련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쁜 소식을 주는 '주님 안에서 나는 크게 기뻐한다' 고 외친다(이사 61, 10). 이 기쁨을 지속시키려면 지혜를 가져야 한다. "지혜와 같이 사는 데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기쁨과 즐거움만 있기 때문이다" (지혜 8, 16). 〔신약성서〕신약성서에서는 기쁨을 표현할 때 '카라' (χαρά)와 '카이로' (χαίρω)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카라' 동사는 결혼식에서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신약 시대는 주님의 천사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가 2, 10)을 전함으로써 열렸다. 모든 인류, 특히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을(루가 1, 47-48) 구원하는 구세주의 출현은 마지막 때에 약속되었던 기쁨을 온 세상에 펼쳐 놓았기에, 신약성서 전반에 기쁨이 바탕하게 된 것이다. 공관 복음서 중에서 특히 루가 복음서는 기쁨의 구원론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탕자의 비유 등은 죄인들이 회개하여 구원받았을 때 아버지(와천사들)가 기뻐한다고 알려 준다(루가 15, 5-7. 9-10. 32). 구원받는 이들은 누구나,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같은 기쁨으로 충만해진다(루가 19, 6 ; 사도 2, 46 ; 8, 8. 39 ; 11, 23 ; 13, 48 ; 15, 3 ; 16, 34).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 머무르는 이에게, 그리스도의 기쁨이 넘쳐 흐를 것이다(요한 3, 29 ; 15, 11 ; 17, 13). 심지어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가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라고 전한다. 성령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4, 28). 사도 바오로 역시 믿는 이의 기쁨은 희망을 통하여 지속되며(로마 12, 12), 믿음에서 흘러나온다(로마 15, 13 : 필립 1, 25)고 일러 준다. 기쁨의 궁극적인 원천은 "주님"(필립 3, 1 ; 4, 4)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그는 신자들에게 일상 생활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격려하였다(1데살 5, 16). 그리스도인의 삶은 커져가는 기쁨의 삶이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필립 1, 18), 신자들이 회개하고 성장하며 (골로 2, 5 ; 2고린 7, 4. 7. 9. 13. 16), 공동체가 진리를 좇아 사는 것(2요한 1, 4 ; 3요한 1, 4) 모두가 기쁨의 근거이다. 기쁨은 믿음이 성장할 때뿐 아니라(필립 1, 25) 믿음 안에서 다른 이의 성장을 도울 때에도 커진다(필레 1, 7 ; 1데살 3, 9 ; 로마 16, 19). 성령은 우리 안에 머물면서 기쁨을 주고 있으며(1데살 1, 6 ; 로마 14, 17), 사실상 기쁨은 성령의 현존이 주는 '열매' 이다(갈라 5, 22). 이토록 깊이 뿌리박혀 있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일상의 처지가 어려워질 때에도 줄어들지 않는다. 신앙 때문에 고난과 박해을 당할 때에도 기쁨을 가질 수 있다(필립2, 17-18). 이것이 산상 설교의 가르침이며(마태 5, 12), 초기 교회의 체험이었다(사도 5, 41 ; 2고린 7, 4 : 1데살 1, 6). 자기 재산을 빼앗기고(히브 10, 34) 박해를 당할 때에도(1베드 4, 13) 기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마지막 때에 오실 주님이다. 초기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쁨의 시기로 기대하였다(마태 25, 21. 23). 하느님의 어린양의 혼인으로 드러날 궁극적인 승리는 "알렐루야" 로 찬양하는(묵시 19, 1. 3-4. 6) 그분 백성의 기쁨에서 절정에 이른다(묵시 19, 7).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보다는 기쁨을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표현한다. 기쁨은 깊숙한 내적 체험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 내적 자세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가시적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하느님에게 기쁨에 넘치는 노래와 찬양을 드렸던 구약성서의 예에 따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기쁨을 기리는 주일 전례 때에는 분명히 한껏 기쁨을 표현하였을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i, 1181/1182?~1226)를 비롯한 성인들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가장 잘 체험하고 드러낸 이들이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cus Salesius, 1567~1622)는 거룩한 자비 이후에 기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충고하였다.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와 일치하는 기쁨을 강조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원한 주일을 기쁨의 날로 보내도록 강조하였다(전례 106항). (→ 기쁨 ; 축제) ※ 참고문헌  Mark C. Kiley, 《CPDBT》, pp. 497~499/ E.G. Gulin, Die Freude im Neuen Testament, 2 vols., AASF 24, 37, Helsinki, 1932~1936/ W. Morrice, Joy in the NT., Grand Rapids, 1984/ E. Otto · T. Schramm, Festival and Joy, Nashville, 1980/ C.E. Arnold, 《ABD》3, pp. 1022~1023. [李鎔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