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등 본당

黃登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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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759 소재. 1960년 3월 19일 이리(현 창인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익산 시 황등면, 삼기면과 함라면 · 월성동 · 임상동 · 군산시 서수면 일부이고, 공소는 삼기 · 신등 · 월성 3개소. 〔교 세〕 1961년 713명, 1964년 729명, 1971년 638명, 1975년 778명, 1980년 1,261명, 1985년 1,327명, 1990년 1,568명, 1995년 1,692명, 2000년 1,738명, 2003년 1,760명. 〔역대 신부〕 초대 김동언(金東彥) 베 드로(1960. 3~1961. 4) , 2대 김반석(金盤石) 베네딕도 (1961. 4~7), 3대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1962. 3~6), 4 대 김후상(金厚相) 바오로(1962. 7~1967. 6), 5대 서정수 (徐廷壽) 알렉시오(1967. 6~1975. 12), 6대 김기수(金基 洙) 요한(1975. 12~1977.6), 7대 강덕창(姜德昌) 아우구 스티노(1977. 6~1982. 9), 8대 이대권(李大權) 바오로 (1982. 9~1986. 1), 9대 김순태(金順泰) 요셉(1986. 1~1989. 1), 10대 성민호(成珉浩) 야고보(1989. 1~1992. 1), 11대 양석현(楊錫顯) 세례자 요한(1992. 1~1995. 8), 12대 고경훈(高暻勳) 프란치스코(1995. 8~1999. 1), 13대 서용복(徐龍福) 토마스(1999. 1~2003. 1), 14대 박진량 (朴鎮亮) 라우렌시오(2003. 1~현재). 황등 지역은 옛 함열군과 임피군의 일부 지역이 합해져 오늘날 익산시의 1개 면이 된 곳이다. 1896~ 1897 년경에 전주(현 전동) 본당의 보두네(F.X. Baudounet, 尹沙 勿) 신부와 나바위 본당의 베르모렐(J.Vemmorel, 張若瑟) 신부가 피뫼, 검뭇, 하피뫼 공소 등을 사목 방문한 것으 로 보아, 1896년 이전에 이미 이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925년경 나바위 본당의 카다스(J. F. Cadars, 姜達淳) 신부가 한 신자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라면 신등리 신자 몇 사람에게 판공 성사를 줌으로써 황등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1931년 군산(현 둔율동) 본당을 거쳐 1935년에 이리 본당 관할이 되었다. 그리고 이 즈음에 현재 황등 본당에서 관할하는 월성(1937) · 삼기 · 신등 공소(1941) 등도 설립되었다. 본당의 설립 기반이 마련된 것은 1959년 1월 이리 본 당의 정재석(鄭在石, 요셉) 신부가 한 프로테스탄트 장로 소유의 정미소와 주택(40여 평) 등이 포함된 2,000여 평의 대지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개수하면서부터이다. 성당이 마련되자 이듬해인 1960년 2월에 황등 공소는 준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메어베르겐(G. Meerbergen, 고현택) 신부가 임시 담당으로 임명되어 주일과 축일에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한 달 후인 3월 19일 황등 준본당은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김동언 신부가 임명되었다. 설립 당시 교세는 본당 지역 100여 명, 월성 공소 90여 명, 오룡 공소 80여 명, 신등 공소 130여 명이었다. 김 신부는 신자들과 합심하여 5월부터 임시 성당의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고, 7월에는 성모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11월에는 55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한 뒤 12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김동언 신부에 이어 1961년 4월 에 김반석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몇 개월만에 전임되었고, 신부가 공석이 되자 이리 본당의 정재석 신부가 임시로 황등 본당의 사목을 담당하였다. 다음해 3월에 3대 주임으로 김이환 신부가 부임하였으나 또 3 개월만에 전임되면서 다시 이리 본당의 관할이 되었고, 7월에 4대 주임 김후상 신부가 부임한 후에야 본당 운영 이 정상화되었다. 김 신부는 1962년 10월에 본당 사목회를 발족하였고, 이듬해 9월에는 3년 전에 완공한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5대 주임 서정수 신부는 1968년 3월에 청년회를 발족하였으며, 12월에는 성당을 증축하고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이어 1970년 10월에는 사도회와 샛별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창단되는 등 평신도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1972년 10월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을 지원하고 신자들 상호 간의 협력을 목적 으로 창조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다. 7대 주임 강덕창 신부는 1978년 3월 신자들이 미사를 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성당 내부에 장궤를 을 설치하였고, 이듬해 1월에는 구역별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구역장회를 발족시켰다. 또한 같은 해에 본당 부속 건물을 수녀원으로 개축한 뒤 거룩한 말씀의회 수녀들을 초청하였고, 1980년 8월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 으며, 1981년 6월에는 신등 공소를 개축하였다. 8대 주임 이대권 신부는 1982년 10월에 사제관을 개 축하고, 1983년 9월에는 공원 묘지용 임야 1,230평을 구입하였으며, 이듬해에는 교육관(20평)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9대 주임 김순태 신부는 1986년 11월에 교회의 외적 상징인 종탑을 새로 세우는 등 성당을 개축하였고, 1988년 7월에는 교육관을 고쳐 수녀원으로 사용하였다. 이어 10대 주임 성민호 신부는 1989년 6월 사제관(35 평)을 신축하였고, 이듬해 7월에는 담장 설치 및 후문 공사를 실시하는 등 본당 주위 환경을 정돈하였다. 본당을 일신하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져, 11대 주임 양석현 신부는 1993년 6월 새 종을 구입하여 교체하였고, 이듬해 7월에는 부속 건물을 신축하여 교육관 및 수녀원으로 활용하였으며, 1995년 4월에는 성모 동산에 조경 사업을 시행하였다. 그리고 13대 주임 서용복 신부는 1999년 3월에 성당 지붕을 보수하는 등 본당의 시설을 개선하였다. 14대 주임 박진량 신부 재임기인 2003년 3 월에는 성가대석과 유아방을 증축하였고, 11월에는 공원 묘지에 제대 및 십자가를 건립하였다. 또 2004년 10 월에는 삼기 공소에 성모상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거행하고 12월에는 월성 공소의 지붕을 개선하는 등 공소 발전에도 전력하였다. 2005년 현재 황등 본당은 선교와 친교를 실천하고 나눔의 정신을 실현하며, 가정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金九鼎 · 金榮九 공저, 《天主教 湖南發展史》, 全州 敎區, 1964/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천주교 전주교구, 1998.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