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지
黃石之(?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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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사윤. 경기도 수원 샘 골 태생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홍주 당산리 태생이라는 기록도 있다. 40세 때 온가족과 함께 입교하였으며, 1821년에 처자를 모두 잃고 10여 년 동안 홀로 살면서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1832년에 상경하여 아현동 에 사는 조카 황 안드레아의 집에 얹혀 살던 중 그해 9월 에 조카의 가족과 인근에 사는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는 동안 함께 체포된 교우들은 모두 석방되었으나, 황석지는 어떠한 형벌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였다. 마침내 형조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년여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833년 11월에 옥사로 순교하였다. (⇦ 황사윤)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승정원 일기》(도광 13년 10월 27일)《일성록》(순조 33년 11 월 8일).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