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심
黃沁(1757~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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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황사영으로부터 백서를 건네받는 황심.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 자는 신거(信巨). 호는 인보(仁甫). 본명은 인철(寅喆)이었으나 1800년에 심(沁)으로 개명. 1800년의 순교자 이보현(李步玄, 프란치스코)의 매부. 충청도 덕산 용머리(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출신으로, 이존창(李存昌, 루도 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한때 충청도 연산으로 이주해 살았다. 1795년 교회 밀사로 임명 된 후로 북경 교회를 왕래하면서 서양 선박 청원 운동에 동참하였고,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에는 강원도 춘천으로 피신하였다가 제천 배론에 은거해 있던 황사영 ( 黃嗣永, 알렉시오)을 찾아가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의 순교 사실을 알리고, 그와 함께 조선 교회의 사정을 북경 주교에게 알릴 방안을 의논하였다. 이후 황사영은 황심의 이름으로 〈백서〉(帛書)를 작성하였으며, 이 편지를 황심이 옥천희(玉千禧, 요한)에게 전하여 북경으로 전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북경에서 돌아오던 옥천희가 체포되고, 문초 과정에서 황심의 이름이 나오면서 그도 10월 22일(음력 9월 15일) 포도청에 체포되었다. 이후 의금부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11월 28 일(음력 10월 23일) 옥천희와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사학징의》/ 이기경 편, 《벽위편》/ 《추안급국안》/ 《가톨릭 사전》/ 《순조실록》/ 《교회사연구》 13,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