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 본당

黃池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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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태백시 황지3동 251-2 소재. 1966년 10월 5일 장성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태백시 황지동, 황연동, 삼수동, 소도동, 문곡동, 통동, 삼척시 하장면, 영월군 상동읍이며, 공소는 상동 1개소. 〔교 세〕 1966년 400명, 1970년 474명, 1975년 354명, 1980 년 1,190명, 1985년 941명, 1990년 1,251명, 1995년 1,288명, 2000년 1,185명, 2005년 1,355명. 〔역대 신 부〕 초대 맥스위니(J. McSweeney, 민) 요셉(1966. 10~ 1968. 7), 2대 댈리(N. Daly, 노) 노엘(1968. 7~1970. 1), 3 대 케네디(O. Kennedy, 桂) 올리버(1970. 1~9), 4대 최동 오(崔東五) 아타나시오(1970. 9~1972. 3), 임시 오키프(L. O'Keefe, 奇) 굴리엘모(1972. 3~5), 5대 쉐퍼(W. Schaeffer, 기영수) 굴리엘모(1972. 5~1976. 4), 6대 조규남(曹 奎男) 구니베르토(1976. 4~1979. 3), 7대 안승길(安承吉) 로베르토(1979. 3~1983. 5), 8대 이영섭(李永燮) 프란치 스코(1983. 5~1987. 9), 9대 김지석(金智錫) 야고보(1987. 9~1990. 11), 임시 표신천(表新天) 임마누엘(1991. 1~4), 10대 한상용(韓相龍) 디도(1991. 4~1994. 4), 11대 손용 환(孫容煥) 요셉(1994. 4~1995. 2), 12대 박용식(朴容植) 시몬(1995. 2~2001. 2), 13대 이흥근(李興根) 마르코 (2001. 2~2003. 9), 14대 박영수(朴英洙) 루가(2003. 9~현재). 광산 지역인 태백 지역에 본격적인 전교가 시작된 것은 1947년 11월경 강릉(현 임당동) 본당의 헤이워드(H. Hayward, 吳) 신부가 천선약(아우구스티노) 회장을 대동하고 가을 판공 성사를 집행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산간 지역이라는 지리적 제약 때문에 전교가 활발하지는 못하였으며, 공소 신자들이 봄 · 가을 의무 성사를 보는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1959년 2월, 태백에 인접해 있 는 영월군 상동면 구래리에 상동 본당(현재 폐쇄)이 설립 되면서 전교 활동이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상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영섭(李永燮, 프란치스 코) 신부는 태백 준령을 수차례나 걸어서 넘으며 태백 지역에 활발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며, 1959년 5월 10일에는 현 태백시 화전동에 있던 김 베드로의 집에서 황지 공소의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후 황지 공소는 1961년 8월 장성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장성 본당의 관할이 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춘천 대목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주교의 도움으로 마련한 부지(현 본당 자리)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 다. 1965년 3월 원주교구가 설정되자 원주교구의 관할 이 되었고,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는 1866년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황지에 기념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성당은 1966년 5월에 착공되어 10월에 준공되었고, 이와 동시에 황지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맥스위니 신부가 부임하였다. 맥스위니 신부는 부임 직후인 11월 17일 성당의 봉헌 식을 거행하였고, 1967년에는 수녀원(20평)과 유치원 (33평, 1968년 3월에 '복자유치원' 으로 개원)을 준공하였다. 수녀원이 설립되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수녀 2명이 부임하여 유치원 운영 등 본당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유치원 사업은 교육을 통한 사회 선교에 기여하였다. 이어 2대 주임 댈리 신부는 1968년 9월 효율적인 본당 운영을 위해 '본당 운영회' 를 발족하는 등 본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재정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4대 주임 최동오 신부 재임기인 1971년에는 수녀원이 폐쇄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5대 주임 쉐퍼 신부는 1972년 5월에 교구 에서 밀가루 1,000포를 지원받아 절골 양돈 단지를 조 성하였고, 광업소에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하였다. 6대 주임 조규남 신부 재임기인 1977년 2월에는 운영을 담당할 수녀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복자유치원을 폐쇄하였고, 같은달에 청년회를 발족시켰다. 이어 3월에는 관할 구역 조정으로 장성 본당 소속인 풍곡 공소를 인계 받았고, 6월에는 본당 신부와 사도회 임원들이 모여 탄 광촌에 만연해 있는 고리채를 추방하기 위해 한마음 신 협을 발기하였으며, 11월에는 성모상을 제작하여 축성 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안승길 신부 재임기인 1980 년 3월에는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폐쇄하였던 유치원을 어린이집으로 다시 개원하여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에서 운영을 맡았다. 1981년에는 본당 내 부지에 신협 회관을 신축하여 1층은 신협 사무실, 2층은 독서실로 운영하였고, 1983년 4월에 어린이집이 유아원 으로 개편하면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운영을 맡았다. 8대 주임 이영섭 신부 재임기인 1986년 8 월에는 태백 지구 사회 복지 센터를 개설하였다가 12월에 사북 본당으로 이관하였고, 1987년 6월에 광업소의 노사 분규로 광산이 폐쇄됨에 따라 풍곡 공소가 폐쇄되었다. 이어 9대 주임 김지석 신부 재임기인 1987년 11 월에는 신축 교육관의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989년 10 월에는 결손 가정 어린이들과 불우 청소년들을 보살피기 위해 어린이 고아원인 '대건의 집' 을 개원하였다. 10대 주임 한상용 신부 재임기인 1991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미사를 가졌고, 1992년 8월에는 25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수녀원을 신축하고 축복 식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3월에는 폐광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폐쇄된 상동 본당의 관할 지역이 황지 본당 관할 공소로 편입되었다. 11대 주임 손용환 신부 재임기인 1994년 6월에는 태백지구 제2회 성가 경연 대회와 태백 · 영평정(영월, 평창, 정선) 지구 여름 신앙 학교 연수회를 주관하였고, 12월에는 레지오 마리애 총 친목회를 열 었다. 이어 12대 주임 박용식 신부 재임기인 1995년 10 월에는 조경 사업을 실시하여 본당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였으며, 1997년에는 폐광으로 인해 침체되어 있는 지역 사회와 본당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지역 주민들의 천주교에 대한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양 찾기 운동' 을 전개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00년 11월에 는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가 창립되었고, 12월에는 빈천시오회 회보가 발간되었다. 13대 주임 이흥근 신부 재임기인 2002년 2월에는 유치원을 신축하고 교리실을 보수하였으며, 14대 주임 박영수 신부 재임기인 2004년 2월에는 교육관의 오래된 기자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5월에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림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2005년 현재 황지 본당은 다양한 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침체된 지역 사회에 희망과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원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시보> 1966년 11월 13일자/ 《경 향잡지》 1092호(1959. 3) · 1184호(1966. 1)/<가톨릭신문> 1992년 8월 23일 자 . 1997년 4월 13일자/ <평화신문> 2002년 4월 21일자/ 《原州敎 區 三十年史》, 天主教 原州教區, 1996.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