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悔改
〔히〕 שׁ וּב · 〔그〕 μετάνοια · 〔라〕 conversio · 〔영〕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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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께 향하도록 회개의 길을 준비하였다.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 살던 사람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에게 돌아가는 행위. 회개는 내적 ·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전 인격적 · 전 존재적 행위이다. "일상 생활에서 회개는 화해의 행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정의의 실천과 타인의 권리 옹호, 형제들에게 잘못을 고백함, 형제적인 충고, 생활에 대한 반성, 양심 성찰, 영적 지도, 고통을 받아들임, 정의를 위해 박해를 견딤 등으로 실현된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회개의 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35항).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하느님을 떠난 사람이 어떻게 다시 그분께 돌아가는지 계시한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각 개인이 저지른 죄와 받은 벌과 통회, 그리고 받은 복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계시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고, 당신을 계시하고, 그들과 계약을 맺고 많은 복을 약속한 것이 바로 회개에로의 부르심인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큰 사건은 이집트에서의 노예살이와 바빌론에서의 포로 생활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죄의 노예와 불행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사랑과 복을 누리는 것은 곧 회개를 의미하며, 참 하느님을 깨닫고 죄를 자각하는 것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여행하는 과정에서 심화된다. 모세는 물론 모든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호소하였다.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이사 55, 7). 행실을 고치고 마음을 돌리는 사람에게는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에제 36, 26 : 참조 : 18, 31)라고 약속하였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 아무리 계약을 어기고 하느님을 배반했다 하더라도 그분의 충실한 마음은 변함이 없으며,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그들을 부른다. 요나의 이야기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것을 알리는 이야기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죄를 범하고 죽는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이 그 길을 떠나 회개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한다(에제 33, 11).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마르코 복음서는 먼저 세례자 요한이 말라기의 예언(3, 1)을 성취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예수께 향하도록 하여 회개의 길을 준비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예수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 15)라는 말로 공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루가 5, 32) 온 것이었다. 회개하고 참회하라는 예수의 호소는 외적 행위, 곧 단식과 고행이 아니라 마음의 회개, 내적 참회를 우선적인 목표로 하는 것이다. 마음의 회개 없는 참회 행위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짓된 행위에 불과하나, 내적 회개는 이러한 태도를 가시적 표지와 속죄의 행동으로 표현하게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처럼 모두 멸망한다(루가 13, 1-9).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한 후 그의 제자가 되었다(루가 5, 8-11). 예수의 전생애의 사명은 하느님의 참 모습을 계시하고 그분의 자비를 전하며 사람들을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것, 즉 사람들의 회개에 있었다. 루가 복음사가는 회개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잃었던 양' (루가 15, 4-7)과 '잃었던 아들' (루가 15, 11-32)의 비유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람의 응답, 즉 회개를 아름답고 감격스럽게 묘사한 것이다. 특히 잃었던 아들의 비유는 회개와 참회의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거짓 자유의 미혹, 아버지의 집을 떠남, 재산을 탕진한 다음 극도의 비참한 상태에 빠짐, 돼지를 칠 수밖에 없게 된 수치, 돼지 먹이인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주림, 재산을 탕진해 버린 데 대한 반성, 뉘우침, 아버지 앞에 가서 잘못을 고백하겠다는 결심, 집으로 돌아옴, 아버지의 너그러운 환영, 아버지의 기쁨 등은 회개하는 과정의 특징적인 모습들이다. 아름다운 옷과 가락지와 즐거운 잔치는 하느님과 교회라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의 깨끗하고 품위 있고 기쁨 가득한 새 생활의 상징들이다. 그로 인해 회개와 참회라고 불리는 하느님께 돌아오는 이 전향은 지은 죄에 대한 고통과 후회,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과거와 미래에 관계되며, 자비로운 하 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힘을 얻는다. 실제로 예수를 만나 회개한 자캐오(루가 19, 1-10), 니고데모(요한 3, 1-15), 사마리아 여인(요한 4, 7-42), 용서받은 죄많은 여자(루가7, 36-50), 십자가에 함께 달린 죄수(루가 23, 40-41)는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 안에 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증인들이었다. 또한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루가 24, 47)라고 당부하였다.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에 베드로의 강론을 듣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은 3,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교회의 역사적인 출발에 참가하였다. 에티오피아의 내시(사도 8, 26-40)와 바오로(사도 9, 1-22)와 고르넬리오(사도 10, 1-48)의 회개는 교회가 발전해 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나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기 위해 회개하고 본심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사도 3, 19 ; 20, 21 ; 26, 20)에 응답하면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되고(사도 18, 25 ; 24, 22), '사랑의 길' (에페 5, 2), '진리의 길' (야고 5, 19-20)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왔으며 하느님의 본래 계획이 변경되어 모든 인간이 영원한 죽음에 놓이게 되었으나, 예수의 순종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하느님의 본래 계획이 수복되었고, 이는 세상 말에 완성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 20). 결국 그리스도인은 "새 인간을 입고" (골로 3, 10-11),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로마 10, 12-13 ; 갈라 3, 27-28 : 1고린 12, 12-13) 새 생명을 사는 사람인 것이다. 바오로는 회개를 신앙과 세례와 새 삶의 세 가지 관점에서 제시하였다. 신앙은 회개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회개의 원천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는 것이다. 신앙과 세례로 시작하는 새 삶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으로 관철된 삶이 되어야 하며, 육을 따라 사는 생활에서 영을 따라 사는 생활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길인 복음을 어둠에서 빛으로, 거짓에서 진리로의 회개로 묘사하였으며, 묵시록에서는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남아있음을 언급하였다(묵시 2, 21 ; 9, 20). 〔교회의 가르침〕 초기 교회와 선교 : 교회는 초기부터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왔다. 성서와 교부들은 내적 참회에서 특히 단식, 기도, 자선 등의 세 가지를 강조하였다. 이 셋은 각각 자신에 대한 회개, 하느님에 대한 회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회개를 나타낸다. 성서와 교부들은 죄의 용서를 얻는 방법으로, 세례와 순교를 통한 근본적인 정화 외에 이웃과 화해하려는 노력, 참회의 눈물, 이웃의 구원에 대한 관심, 성인들의 전구, 그리고 "허다한 죄를 용서해 주는"(1베드 4, 8) 사랑의 실천 등을 들었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의 《고백록》(Confessiones, 397~401)으로 대표될 수 있는 회개의 드라마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되었다. 실제로 수많은 순교자와 성인 성녀와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눈을 떠서 회개하여 드높은 완덕에 이르렀다. 교회의 역사는 회개와 성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최고의 사명은 선교이며, 이 선교로 전세계를 회개로 인도하는 것이었다(마르 16, 15-16 : 마태 28, 16-20). 회개는 선교를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다(로마 10, 14-17). 복음의 씨앗은 많은 선교사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지고, 하느님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개에로 인도한다(선교 5항). 전인격적 행위인 회개 : 회개는 하느님의 큰 은총이자 인간의 근본적인 결단이다. 회개의 내적 구조는 사람이 하느님의 빛으로 비추어지고, 죄를 자각하고 통회하며, 죄를 용서받는 근본적 체험을 포함한다. 그것은 단지 심정적 변화나 윤리적 행동의 전환 또는 지성적 사고의 변경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전 인격적이고 전 존재적으로 하느님과의 근본적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유로이 스스로 '예' 라고 응답하고, 인격적으로 결단해 가는 신앙 행위이다(계시 5항). 이 결단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느님의 전적인 자기 계시와 자기 증여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 응답이며, 그 응답은 각 개인의 일상적 생활 안에서 구체적 행위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칠성사와 회개 : 실천적이고 계속적인 회개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사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세례, 고해, 성체 등 세 가지 성사를 회개와의 내적 관련성 안에서 해설하였다(DS 1667 ~ 1693). 세례는 회개의 공식적 표명으로, 삼위 일체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포함하고 죄의 용서를 가져다 준다(DS 1672).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출발점에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을 보다 의식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여기서 회개는 '재생' (再生, regeneratio christiana)과 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결단이 둘 사이의 일치의 결과로 해설된다. 세례를 받은 후 중대한 죄를 범할 경우 죄를 인식하고 통회하여(DS 1676~1678)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성사가 '화해의 성사', 즉 고해성사이다. 회개는 고해성사를 구성하는 첫 번째 중요한 요소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교회와 화해를 이루게 한다. 고해성사는 이를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 성사로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와 화해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의 친교(communio)인 성체성사에 초대받는다. 성체성사는 일상적인 회개와 참회의 원천이자 양식이다. 우리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킨 그리스도의 희생제사가 그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은 성체로 양육되고 굳세어진다. 성체는 "날마다 짓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고 죽을 죄에서 보호해 주는 해독제이다" (DS 1638). 전례와 회개 : 교회의 전례 생활에서 끊임없는 회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전례력의 적절한 시기, 즉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공동으로 회개하는 것은 대단히 유익하고 필요한 행위이다. 성서 읽기, 시간 전례와 주님의 기도, 모든 참된 예배와 신심 행위는 우리 마음에 회개와 참회의 정신을 되살려 주고 죄를 용서받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전례 기도와 비전례 기도의 전반에 걸쳐 회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사 시작 때의 참회 예식과 다른 성사 예식과 일반 예식을 시작할 때의 참회 예식, 그리고 일반적인 고백의 기도 등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 내용은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용서를 비는 것이다. 기도를 바치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치는 동작은 죄를 인정하고 통회하고 용서를 비는 겸손한 마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시간 전례도 오래 전부터, 잠자기 전에 '저녁 기도'를 시작할 때 하루의 생활을 반성한 후 고백의 기도를 바치는 것을 채택하였다. 고해성사 때도 오래 전부터 이 고백의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형식을 채택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공동 고백' 및 '공동 참회' , '공동 회개' 예식이며, 사제는 교회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고백을 듣고 하느님이 죄를 용서하신 것을 선언한다. 새로 개정된 참회 예식은 성사의 공동성을 중시하여 공동 참회 예식을 거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식 후 성사로서 죄의 용서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개별적으로 죄를 고백하도록 되어 있다. 영성 생활과 회개 :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끊임없이 회개의 길을 걸어가야 하며, 한 번 획기적이고 결정적으로 회개하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죄와 욕심과 옛 인간에 끌리고 기울어지고 거기로 되돌아가려는 근본적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생 동안 매일 매순간 그 경향과 다투고 죄와 욕심과 옛 인간에서 해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과 본성은 하느님을 떠나고 배반하려는 본능과 하느님께 돌아가려는 본성이다. 어느 한쪽이 강해져 겉으로 드러나고 다른 한쪽이 약해져 감추어지거나 억제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한 개인의 인생 과정에 있어서도 차이와 변동이 있다. 따라서 누구나 회개 과정을 통해 회개 자체를 더욱 심화시키고 완성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끊임없는 회개는 '끊임없는 쇄신' , '끊임없는 성화'와 같은 것이고, 그것은 또한 '끊임없이 구원을 완성하는 과정' 이다. '회개' 와 '구원' 이라는 단어는 죄와 욕심에서의 해방에 강조점을 주고 '쇄신' 과 '성화' 라는 단어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성덕에 강조점을 주는 느낌이 있지만, '회개' 와 '구원' 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성덕없이 있을 수 없고 '쇄신' 과 '성화' 또한 죄와 욕심에서의 해방 없이 있을 수 없다. 회개로써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곧 구원의 시작이며, 그 회개는 이미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성덕의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쇄신과 성화를 점차 심화시키고 완성시킬 때 회개와 구원이 완성된다. '회개' 는 죄에서의 해방과 하느님에게로 돌아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성덕의 실천을 강조해야 한다. 결국 회개나 쇄신, 성화, 구원은 이 세상에서 온전히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회개와 쇄신과 성화와 구원을 심화시키고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예수를 통해서 베푼 사랑과 은총의 은혜는 사람이 아무리 갚으려고 해도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과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늘 회개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은혜를 갚는 것이 항상 부족하며, 그분에게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심정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심정을 항상 진지하게 유지한다면 결코 영적 나태함과 미지근함에 빠지지 않고, 영적 교만에도 빠지지 않으며, 겸허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회개와 쇄신과 성화와 구원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 메타노이아 ; 참회, 윤리 신학에서의 ; → 개종 ; 고백의 기도 ; 고해성사 ; 화해) ※ 참고문헌 倉田清他 譯, 《聖書のテーマ》, 南窓社, 1965/ F.J. Moloney · R.T. Lawrence,《NCE 》4, 2003, pp. 231~238/ 學校法人 上智學院 新カトリック 大事典 編纂委員會 編, 《新 カトリック大事典》 1, pp. 1015~1017/ 김보록, 《영성의 시냇물 ①》, 생활성서사, 2000, pp. 111~115. [金保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