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鬼神

글자 크기
2
귀신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가시가 있는 엄나무를 심은 민가.
1 / 3

귀신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가시가 있는 엄나무를 심은 민가.


초인간적이고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 대상을 지칭하는 말. 좁은 뜻으로 쓰일 때는 죽은 이의 넋, 곧 사령(死靈) 또는 사령귀를 지칭하기도 한다. 서양 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신관(神觀)에 따라 귀신을 'ghost' 또는 ‘spirit' 로 이해했다. 이것은 귀신을 부정적인 존재 로 바라보는 입장이었지만, 점차 동아시아 종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귀(鬼)를 spirit' 로, 신(神)을 'god' 으 로 구분하여 표현하게 되었다. 동양에서의 귀신 개념은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영혼 또는 죽음과 관련하여 처 음으로 형성되었고 무(巫) · 유(儒) · 도교(道敎) 등 종교 사상의 전개에 따라 나라별로 조금씩 개념 차이를 보이 면서 두루 사용되었다. 귀신은 귀(鬼)와 신(神)의 복합 개념이다. 선진 유가 에서는 '귀' 를 사람이 죽어서 되는 특수한 영적 존재로, '신' 은 천신(天神)의 경우처럼 현묘한 능력을 가진 보편 적 존재로 보았다. 신은 상제(上帝)를 최고신으로 삼고 그 아래로 오제(五帝)를 포함하는 제신(諸神)의 총칭으 로서, 신 관념의 발전과 함께 신계(神界)를 점차 인간 세 상의 사회 및 국가 조직과 같은 것으로 믿게 되었다. 한 편 귀를,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사람이 돌아간 바 귀가 된다" 하여 죽음 이후에 돌아가는 막연한 상태 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귀신에 대한 개념은 《주역》(周易)에 와서 일단 정리되 었다. 주역의 계사상(繫辭上)에서 "응취하는 정기(精氣) 는 사물이 되고, 흩어지는 혼백은 변화가 되니 귀와 신의 정상(情狀)을 안다" 고 한 설명이 그것이다. 이러한 해석 은 우주 만물의 변화 생성을 기(氣)와 음양(陰陽)의 원 리 작용으로 보는 동양의 전통적 사고 방식에 바탕을 두 고 있다. 주자(朱子)에 이르러 귀신의 개념은 비로소 체 계화되었다. 주자의 《성리대전》(性理大全) 권 28에는 일 기(一氣)의 운행에 따라 이기(理氣)가 나누어진다고 하 고, 사람도 분석적으로 보면 정(精)은 음이고 기(氣)는 양인데, 백(魄)은 '귀' 가 되고 혼(魂)은 '신' 이 된다. 기 능적으로 보면 스러져가는 것이 음이고 펴 나오는 것이 양이다. 그러므로 후자는 신이 되고 전자는 귀가 된다 하 였다. 이와 같이 유가는 귀신을 주로 철학적으로 이해하 였다. 공자가 "사람을 섬기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데서도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계로(季路)가 사후 세계나 신적 실재로서의 귀 신을 섬기는 문제에 관하여 질문했을 때, 공자는 "귀신 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하면 가히 지혜롭다 하겠다" 고 하였다. 이것은 귀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귀신 개념 을 인본주의적 철학으로 파악하려는 자세이다. 귀신의 존재론적 의미는 유가에서 그만큼 약화되어 있는 것이 다. 공자는 귀와 신에게 제사드려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 기했는데,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제사 의례를 통하여 사 람들의 도덕 심성을 가꾸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중국 의 민간에서는 유가적 인식과 도교 신앙의 혼합된 영향 아래 귀신에 대한 종교적 관념과 의례가 발달하였다. 중 국 민간 신앙에서는 귀는 가묘(家廟)나 사묘(祠廟)에서 제사를 받아먹지 못하는 조상의 존재, 신은 제사를 받는 존재로 구분한다. 그리하여 귀의 상태에 있는 조상을 신 의 상태로 전환하는 여러 의례가 고안 · 거행되고 있다.

한국 귀신관의 바탕은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사회의 '무' (巫)이다. 중국의 경우 무가 도교에 흡수된 데 비하 여, 한국에서는 무가 유 · 불 · 도의 종교적 요소를 수 용 소화하여 오늘에 이른다. 따라서 한국 고대 사회에 서는 귀신을 동북아시아 지역의 보편적인 샤머니즘 신앙 과 원초적인 음양 사상에 입각하여 이해하였고, 그 후 중 국 종교들의 영향으로 귀신 개념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 로 보인다. 무에서는 본디 귀와 신을 개념적으로 명확히 파악하지 않았던 듯하다. 고대 무(巫)에 관한 제한된 문 헌 자료에는 신에 관한 언급이 주를 이룬다. 신으로는 천 신(天神) · 수신(樹神) · 호신(虎神) · 산신(山神) 등을 숭앙하였다. 시조(始祖)도 신으로 여겨, 고조선을 세운 단군과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등을 시조신으 로 모셨다. 한편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유리왕 19년(기원전 1)의 기사는 귀에 대한 관념을 보여 준다. 왕이 제천(祭 天) 의례에 사용할 돼지의 다리를 상하게 한 탁리(託利) 와 사비(斯卑) 두 사람을 구덩이에 던져 죽게 하였다. 그 후 왕이 병들자 무당은 발병의 원인이 그 두 사람 때문이 라고 말하였다. 이에 왕이 그들에게 사죄하자 병이 나았 다. 이는 인귀(人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말해 주는 것 이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의 기록을 보면 부여 · 고 구려 · 예(濊) 등에서는 신에게 제사 올린 것만 나와 있 고 귀신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진한(辰韓)의 의례 에 대하여는, 귀신에게 제사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귀신을 믿기에 국읍(國邑)마다 한 사람씩 뽑아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으며, 소도(蘇塗)에 큰 나무를 세 워 방울과 북을 걸고는 귀신을 섬겼다고 전한다. 진한에 도 천신의 제사가 있었지만 그것을 천하게 여겨 귀신을 섬긴다고 표현한 것 같다. 여기서 유가의 전형적인 입장 을 볼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 성리학(性理學)이 정치 이념으로 대두되면서 무는 천대와 억압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가는 무의 신령을 모두 귀신이라 매도하였다. 귀신은 이제 귀와 신의 복합 개념이 아니라 무 신앙의 신령 가운데 하위(下位)에 속하는 영적 존재의 개념이 되었다. 이런 인식은 신령을 정신(正神), 조상신 (祖上神), 잡귀 잡신(雜鬼雜神)으로 나누어 각기 다르게 모시고 있는 현상에서 잘 드러난다.

굿은 처음에는 귀신을 굿판 밖으로 잠시 떼어놓지만 막판 뒷전(풀이)에서는 각종 잡귀 잡신을 차례로 모셔 대접한다. 그 종류는 걸립(乞粒) · 터주 · 지신(地神) 할 머니 · 수광대(首廣大) · 서낭〔城隍〕 · 사신(使臣) · 맹인 (盲人) · 하탈(下頌) · 말명 · 객귀(客鬼) · 영산 · 상문(喪 門) · 수비〔隨倍〕 · 잡귀(雜鬼) · 동법 등이다. 걸립은 무 당의 성무(成巫)를 도와주는 일종의 수호신이다. 지신 대감이라고도 불리는 터주는 터의 신령이다. 지신 할머 니는 터의 여신(女神)이다. 제가집 조상 가운데 중이나 무당이나 광대였던 이들의 영을 수광대라 한다. 서낭은 마을의 수호신이고, 사신은 조선이나 중국의 사신으로서 공무 수행 도중 죽은 이들, 또는 사신들 앞에서 놀던 말 뚝이를 가리킨다. 맹인은 점복신(占卜神)과 제가집 조상 가운데의 맹인이다. 하탈은 해산하다가 또는 해산 후에 죽은 부녀를 말한다. 말명은 제가집의 하인이나 종으로 서 죽은 귀신이고, 객지에서 죽은 귀신이나 집안의 다른 귀신은 객귀라 한다. 참혹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의 넋은 영산이 된다. 상문은 상가(喪家)에서 묻어 오고 따라온 귀신이고, 수비는 주신(主神)을 따라다니는 잡귀 잡신이 다. 잡귀도 귀신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 집안의 나무 · 흙 · 돌 등의 재료를 잘못 다루어 탈난 것을 동법이라 한 다. 무에서 귀신은 결코 부정적이거나 원한에 차 있는 존 재가 아니다. 억울하게 죽어서 된 귀신이 있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이들의 혼도 포함되고, 터 주 · 서낭 등의 하위 신령도 거기에 들어 있다. 무의 신령 계에서 귀신은 하위의 신령 집단일 뿐이다. 그래서 굿에 서 정신이나 조상과 함께 자리하지 못하고 물려져 있다 가 마지막의 뒷전에서 모셔 술과 음식을 대접받고 춤과 노래 및 연희로 놀려지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에게 함부로 해를 끼치지 않지만 인간이 무지와 장난 또는 고의로 귀신을 마구 다룰 때 비로소 인간에게 해를 준다.

조선조 말 한국에 온 서양의 선교사들은 민간에서 두 루 신앙되던 무의 신령들을 모두 마귀로 보았다. 그리고 서양 그리스도교 문화를 확장한다는 선교의 목적에서 무 속을 포함한 민간 신앙 일체를 매도하고, 그러한 귀신 신 앙이 극복되어야 할 미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일제(日帝) 도 무를 귀신 신앙으로 몰아 핍박하였다. 이에 따라 귀신 은 두려운 존재로 이해되었고, 서양화와 산업화의 급속 한 진행 속에서 귀신 신앙은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교 육 · 취급되었다. 이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적 세 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성해 주었고, 영적 세계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의 단절도 여기에서 초래되었다. 조 선 시대 유가의 무에 대한 태도와 함께 이러한 일련의 안 목은 한국인에게 귀신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형성시켰 다. 그러나 그 동안의 학문적 연구 덕분에 무의 정신(正 神)과 조상은 이제 더 이상 귀신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귀신에 관한 연구는 종래 민속학에 의해서 주도되었는데 구비 전승이나 문헌 자료에 전하는 귀신의 종류를 평 면적으로 분류 · 나열하고 설명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 다. 최근 무의 신령 체계 속에서 잡귀 잡신의 종류와 성 격을 인류학 내지 비교 종교학적 관점에서 다루려는 경 향이 나타났다. 아울러 죽음과 관련하여 한국의 각 종교 의 죽음관 내지 귀신관을 살펴보는 학술적 움직임이 주 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무와 귀신에 관한 종래의 편견 · 선입견이 충분히 제거되지 못한 결과, 아직 그 정확한 이 해에 이르지는 못한 셈이다. (→ 구마 ; 넋 ; 사탄 ; 악마) ※ 참고문헌  李能和, <朝鮮巫俗考>, 《啓明》 19호, 1927/ 孫晋泰, 《朝鮮民族文化의 研究》, 乙酉文化社, 1948/ 柳東植 《韓國巫敎의 歷 史와 構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5/ 조흥윤, 《한국의 巫>, 정음사, 1983/ L. Kendall, Shamans, Housewives, and Other Restless Spirits,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5/ 趙興胤, 〈雜鬼雜神研究〉, 《宗教神學研究》 제1집, 1988, pp. 79~98/ 柳仁熙, <인간적 문화에서의 영생>, 《죽음이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窓, 1990, pp. 140~161/ 조흥 윤, 《巫와 민족 문화》, 민족문화사, 1990. 〔趙興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