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도리. 곧 자녀가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사랑하는 감정에 토대를 두고 공경과 예의를 다해 부모를 섬기고 부양하는 일.
① 성서에서의 효
유교의 도덕 규범 가운데 하나인 효가 자식된 도리로 부모를 섬기는 것이라면, 그러한 예는 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효' 라는 낱말이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부모 공경에 대한 내용으로 효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성서에서 효와 관련하여 살펴볼 내용은 십계명의 넷째 계명이다. 이것은 출애굽기(20, 12)와 신명기(5, 16)에 언급되는데, 두 본문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함으로써 하느님이 준 땅에서 오래 살게 되리라는 내용을 주된 골자로 한다. 이 계명의 편집 역사에 대한 검토는 차치하고, 그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구약성서가 말하는 효 사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정은 대체로 부모와 자녀를 비롯한 여러 세대가 대가족을 이루며 조상들의 땅에서 함께 살았다. 따라서 모든 권위는 족장에게 있었고, 부모는 하느님을 대신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부모는 하느님이 주는 생명을 대신 전해 주는 이들이므로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녀로부터 공경과 존중을 받아야 하였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배경은 계명에 쓰인 '공경하다' 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벳' (כָּבֵר)으로 설명될 수 있다. '카벳' 은 본래 '무게를 싣다' , '존경하다' 라는 뜻인데, 하느님에게 적용할 때는 그의 귀함과 영광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경외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이사 29, 13 : 말라 1, 6 ; 시편 22, 24). 이를 사람에게 적용할 때에는, 그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의 권위에 종속된다는 뜻도 지닌다(1사무15, 30 ; 시편 86, 9). 따라서 부모에게 이 단어를 적용할 때는 부모가 신성한 가치를 갖는 이들임을 알려 준다. 부모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하느님의 법, 곧 율법을 자녀에게 전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며(신명 4, 9-10 ; 11, 19-21 ; 32, 46), 하느님이 준 또 다른 선물인 땅 역시 물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뜻에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느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준 땅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약속해 주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성서 시대 때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출애 21, 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출애 21, 17 ; 참조 : 레위 20, 9). "아버지를 구박하고 어머니를 내쫓는 자는 수치스럽고 파렴치한 자식이다" (잠언 19, 26).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강탈하고도 '죄 없다!' 하는 자, 그는 살인자와 한통속이다" (잠언 28, 24).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형이라는 무거 운 벌을 내리는 까닭은, 그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스라엘의 유산과 하느님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는 나이 든 부모를 돌보아야 할 책임도 계명 안에 속함을 밝혔다. "너를 낳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어머니가 늙었다고 업신여기지 마라" (잠언 23, 2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혀지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집회 3, 12-14). "아버지를 버리는 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와 같고 자기 어머니를 화나게 하는 자는 주님께 저주를 받는다"(집회 3, 16). 이처럼 계명은 부모의 권위를 무조건 보호하기보다는 자녀가 늙고 약한 부모에게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예수는 부모 공경과 관련해 효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효도를 강조하였다. 마태오 복음 15장 3-6절에 따르면, 예수는 '코르반' 이라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예로 들어 그들이 인간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하느님의 계명은 십계명 가운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넷째 계명이며, 코르반은 하느님께 바칠 예물을 일반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서약문을 가리킨다. 부모와 사이가 나쁜 몇몇 유대인들은 코르반 서약을 빌미로 계명을 지키지 않았는데, 예수는 사람이 만든 계명인 코르반 법보다는 하느님의 계명인 효도를 앞세워야 한다고 말하였다(마태 15, 4).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면,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15, 5-6). 둘째, 혈연 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겼다. 군중 가운데 어떤 여자가 성모 마리아를 칭송하자, 예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라고 말하였다(루가 11, 27-28). 이러한 대답에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아 길렀기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신앙인들 가운데 한 분이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가정 규범(Haustafeln)과 관련하여 에페소서(5, 22-6, 9)와 골로사이서(3, 18-4, 1)에도 자녀와 부모에 관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게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에페 6, 1-4). 에페소서의 저자는 가정을 위한 전통적 규범들을 그리스도교 부부와, 자녀와 부모, 그리고 종과 주인의 관계에 적용시켜 설명하였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뜻이다. 골로사이서의 저자 또한 자녀와 부모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였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골로 3, 20-21). 자녀는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부모는 자녀를 배려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주님께 맞갖은 일이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신학적 반성〕 효는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 중심 사회나 씨족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었다. 효가 한국 전통 문화에서 중요한 윤리적 유산임은 분명하지만, 가족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해 준 만큼 그 도를 지나쳐 가족 이기주의라는 폐단도 함께 낳았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내 가족만,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사고로 다른 이들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입신양명을 위해 교육열이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고, 그로 인해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부당한 방법으로 남을
누르고 출세하려는 부작용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가장에게 권위가 주어지던 시대에는 효를 규범으로 하여 모든 윤리 문제를 풀어 갔지만,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화 · 세계화 시대에 효는 그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효가 부자(父子) 관계라는 수직적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하나의 근본 윤리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수평적 관계 속에서는 사회 정의(正義)가 하나의 윤리로 자리잡아야 한다. 효 사상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면, 정의는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도덕적 기능으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십계명)
※ 참고문헌 K.T. Aitken, שׁמע, 《NIDOTTE》4, 1997, pp. 175~181/ C.J. Collins, כבד, 《NIDOTTE》 2, 1997, pp. 577~5871 P. Fiedler, eujsebeia, 《EDNT》 2, 1991, pp. 84~85/ Foerster, eujsebh", eujsebeia, eujsebew, 《TDNT》 VII, 1971, pp. 175~185/ T.O. Martin, Piety, Familial, 11, 1967, pp. 356~358/ M.V. Van Pelt · W.C. Kaiser, Jr., ירא, 《NIDOTTE》 2, 1997, pp. 527~533/ K.-K. Yeo, The Rhetorical Hermeneutic of 1Corinthians 8 and Chinese Ancestor Worship, Biblical Interpretation 2.3, 1994, pp. 294~311/ 박요한 영식, <넷째 계명의 기본 의미에 대하여 — 출애 20, 12 ; 신명 5, 16>,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34호(2000. 겨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pp. 7~26/ 손봉호, <효 사상과 정의 문제>, 《효 사상과 미래 사회》, 효사상 국제학술 회의, 1995, pp. 423~4371 요하네스 그륜델, 김윤주 편역, 《십계명 : 어제와 오늘》, 분도출판사, 1978/ 원종철, <교육학적 입장에서의 효 사상>,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34호(2000. 겨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pp. 46~70/ 윤성범, 《효 : 서양 윤리 · 기독교 윤리 · 유교윤리의 비교 연구》, 서울문화사, 1973/ 최기섭, 〈유교(儒敎)의 효사상(孝思想)과 그리스도교 신앙>,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34호(2000. 겨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pp. 27~45. [李妍受]
② 유교에서의 효
〔의 미〕 '효' 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감정에 토대를 두고 하는 행위를 뜻한다.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행위는 인간의 보편적 문화이고 규범이지만, 유교 전통에서는 '효' 를 모든 도덕 규범의 근본으로 여기고 국가 · 사회의 모든 규범 역시 '효' 에 뿌리를 두어야 함을 강조한다. 곧 부모를 섬기는 '효' 의 확장으로 임금을 섬기는 '층' (忠)도 실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유교 전통에서 '효' 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행해야 할 자녀의 도리일 뿐만 아니라, 사후의 부모와 조상에게도 조상 제사를 통해 효 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살아 있는 자손과 죽은 조상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효' 는 자녀의 부모에 대한 공경이라는 가족 질서 규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는 '어진 덕을 실현하는 근본' (爲仁之本)이고 '모든 행위의 근원' (百行之源), 즉 인간의 도덕적 근원이며, 밖으로는 '정치와 교화의 근원' (敎化之所由生)으로 국가 · 사회의 질서인 것이다. 즉 인간의 개인적 도덕성을 뿌리로 하고, 가족적 결합 원리로 줄기를 이루며, 사회적 질서로 가지를 이루어 뻗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효' 를 내포한 규범 체계는 《서경》(書經)의 '오전' (五典)에 가장 먼저 제시되어 있는데, 《춘추좌전》(春秋左傳)에서 말하는 '오교' (五敎)와 동일한 것이다. 즉 "아비는 친하고, 어미는 자애로우며, 형은 우애 있고, 아우는 공경하며, 자식은 효도해야 한다" (父義 · 母慈· 兄友 · 弟共 · 子孝)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오교' 는 가족관계의 규범이라는 점에서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효 · 제 · 자' (孝 · 弟 · 慈)의 3조목과도 통한다.
〔형 태〕 공자(孔子, 기원전 552/551~479)를 비롯한 성현의 가르침을 통해 유교 경전에서 제시되는 '효' 의 기본적 양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효' 는 인간의 마음에 근원을 둔다. 공자는 '효'의 근원적 조건으로 '공경하는 마음' [敬]을 강조하고, 부모에 대한 물질적 봉양에 앞서 마음으로부터 공경하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부모를 받들 때 "안색을 항상 온화하게 하기란 어렵다"라는 가르침도 공경하는 마음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효' 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여 부모와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미리 알고 자신을 돌보아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효경》(孝經)에 "머리털에서 발끝까지의 모든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開宗明義章> 3)이라고 언급하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효' 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부모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중시한다. 《효경》에 "출세하여 도(道)를 행하고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부모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말한 것은, 공적을 이룸으로써 부모를 명예롭게 해 주고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효' 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효' 는 죽은 조상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공자는 "살아 계실 때에도 예로써 섬기고, 장례도 예로써 치르고, 제사도 예로써 모시라"라고 하여, '효' 가 부모가 살아 있을 때만이 아닌 죽은 뒤에도 행해야 할 도리임을 보여 준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일관하여 부모를 받드는 '효' 의 실천은 부모-자식 또는 조상-후손 사이에 생명의 연속성을 인식하여, 자기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 시원으로 향하는〔報本反始〕 조상 숭배 의식이 '효' 의 근거임을 말해 준다. 죽은 부모와 조상을 섬기는 '효' 의 실천인 '제사' 란, 자손은 부모와 조상을 받들고 부모와 조상은 후손을 보살펴 주는 것으로, '효 · 자' (孝慈)의 규범적 관계이면서 조상신(祖上神)과 후손이 만나는 종교적 의례인 것이다.
셋째, '효' 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적 규범이 된다.《효경》에서 '효' 를 "하늘의 불변하는 기준이요 땅의 떴떳함" (天之經, 地之義)이라며 우주적 원리로 제시하는 것은, '효' 가 가족적 규범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보편적 규범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효 의 대상을 부모에게만 한정시키지 않고 임금에게까지 확대시켜 효도를 천지간에 으뜸인 보편적 덕목으로 삼음으로써, '효' 를 통한 정치적 교화를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효' 는 또 하나의 중심 규범인 '층' (忠)과 결합한다. 본래 '효' 는 가족 공동체의 규범이지만, '층' 은 국가나 군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사회 공동체의 규범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할 수 있다. 하지만 유교 전통에서는 "충신(忠臣)은 효자(孝子) 가문에서 나온다" 라고하며 '효' 를 근본으로 '충' 이 실현되는 질서를 제시하여 두 규범을 조화시키고 있다.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는 '효' 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보며, "요 · 순의 도리도 효 · 제(孝悌)일 따름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효' 가 제왕이 백성을 교화시키는 도(道)임을 확인하였다.
〔역사적 전개〕 '효' 사상은 우리 사회에서 기본 도덕 규범으로 문화와 사회 질서의 저변에 깊이 자리잡아 왔다. 삼국 시대에 고구려 유리왕(琉璃王, 기원전 19~서기 18)이 태자의 과오를 꾸짖고 칼을 주어 자결을 명하자,태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며 "어찌 아비의 명을 버리고 달아날 수 있겠는가?" 하고 자결하였다. 여기서 아버지의 명은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따라야 할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이던 당시의 효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신라 화랑이었던 김흠춘(金欽春)은 전장터에서 아들에게 "신하가 되어서는 '층' 이 가장 중요하고, 자식이 되어서 '효' 가 가장 중요하다. 나라가 위기를 처함에 목숨을 바치는 것은 '층' 과 '효' 를 모두 온전히 하는 것이다"라고 언명하였는데, 이는 '효' 가 '충' 에 내포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한편 부모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명령이 의롭지 않을 때에는 거부할 줄 아는 태도가 효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평강(平岡) 공주나 신라의 강수(强首)는 아버지의 혼인 명령이 의리와 인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거부함으로써 의리를 근본 전제로 하는 '효'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서는 '효' 에 앞서 '충' 이나 '의리' 가 강조되는 삼국 시대 때의 태도와는 달리 오직 부모를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조선 사회는 백성을 교화하기 위하여 '충 · 효' 를 근본으로 하는 도덕 체계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강조하였으며, '층 · 효' 의 규범을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해 중국과 우리 나라의 효자 · 충신 · 열녀들의 행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 《이륜행실도》(二倫行 實圖) ·《오른행실도》(五倫行實圖) 등을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이들 문헌은 모두 효자 · 충신 · 열녀의 순서로 제시되어 '효' 가 가장 선행하는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황(李滉, 1501~1570)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자' (慈)와 자녀가 부모를 잘 받드는 '효' 의 도리는 천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모든 선의 으뜸이라 하며 중시하였다. 그리고 하늘을 받드는 것도 부모를 섬기는 효 에 기초하는 것임을 강조하여, '효' 가 모든 도덕 규범의 근원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익(李濞, 1681~1763)은 '충 · 효' 에서는 '효' 가 '층' 에 선행하는 기초이지만, '효 · 제' (孝悌)에서는 '제' (悌)가 '효' 에 선행하는 기초라고 지적하여, '효' 의 근거로서의 '제' 즉 공경을 강조하였다. 또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효' 는 최고의 규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효 · 제 · 자' 이 세 가지가 인륜의 기본 형식이라고 하며, 가정에서 출발하여 국가와 천하로 확장되는 규범 체계를 설명하였다.
〔기능과 폐단〕 유교 전통 사회에서 '효'의 규범은 가족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사회 풍속을 순화하여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긍정적 기능과 부정적 기능을 모두 드러내었다.
가족 공동체 : '효' 는 가족 공동체의 연속적이고 안정된 결속을 확보해 주었다. '효' 는 부모를 봉양하고 섬기는 과거를 향한 상향적 형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의 뜻과 가업을 자손이 이어서 발전시켜 가는〔繼志述事〕 미래를 향한 하향적 전개의 모습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가업' (家業)은 부모가 경영하던 사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가르치던 삶의 지혜와 교훈, 부모의 언행 등을 '가법' (家法)으로 삼아 따르는 것이다. 즉 부모가 이룩한 제도를 지키고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부모의 가법이 자식들에게 삶의 모범이 되어 계승되면서 '가풍' (家風)을 형성하기도 한다. 전통 사회에서 존중되었던 '가문' (家門)은 선조들이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부유하여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법' 이 엄중하고 '가풍' 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가법과 가풍의 유지는 자손들이 '효' 의 마음으로 선조들의 가르침을 이어갈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유교 전통에서 '효' 는 부모의 권위를 중심으로 가정의 질서와 안정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부모의 권위를 강조하는 효 의 규범으로 "아비는 자식의 벼리가 된다”(父爲子綱)라는 삼강(三綱)의 수직적 권위 질서가 확립되었다. 이에 따라 권위적 질서 속에서 '효' 는 부모에 대한 맹목적 순종을 요구하게 되고, 부모의 잘못을 간언하는 '쟁자' (爭子)의 개념이 사실상 사라졌다. 그로 인해 자녀들의 독자적 판단과 행동이 지나치게 억제되어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문제점을 낳았다. 이와 더불 어 가부장적 유교 전통 사회에서는 제사를 받들고 가문을 계승할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는데, 맹자도 '후사(後嗣)가 없는 것' 을 가장 큰 불효라고 하였을 정도이다. 이에 따라 딸보다 아들이 중시되었으며, 이것은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 강한 '남아(男兒) 선호' 의식으로 남아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제사를 받들기 위해 같은 혈통의 가까운 친족을 입양시켜 혈연적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어, '이성양자' (異姓養子)가 인정되지 않았다. 그 결과 국내 입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고아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회 질서와 가족주의 : '효' 는 사회 질서를 인격화하고 풍속을 순화시킨다. 효 규범의 사회적 기능으로 가족은, '효' 의 성숙한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혈연적 공동체라는 자연 질서를 넘어서 도덕적 인격성에 기반한 사회적 기본 단위로 정립되었으며, 국가 사회도 '효' 의 확대를 통하여 법률적 지배 질서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적 인간애와 품격 있는 예법에 기반한 공동체로 확립될 수 있었다. 곧 '효' 는 부모에 대한 친애를 타인에 대한 공경심으로 성숙시킴으로써 국가 사회도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적 집단이 아니라 가족적 친애가 바탕이 되는 인간화된 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맹자가 말하는 '부모 에 대한 사랑' (親親)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 (仁民), 더 나아가 '만물에 대한 사랑' (愛物)으로까지 확장되는, 즉 '효' 를 뿌리로 하여 구현되는 사회 질서인 것이다.
그러나 '효' 의 실천이 그 범위를 넘어 확장되지 못하고 가족 속에 갇혀 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실제로 폐쇄적 가족주의는 정실(情實)에 얽혀 가족적 사사로움[私]과 사회적 공공 질서[公]를 혼동하는 폐단을 일으켰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규범이 사회적 법질서와 충돌할 때 법질서를 뒤로 하고 부모에 대한 친애를 앞세우며 '효' 의 정당성마저 손상시켰던 예나, 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채 부모나 친족의 부탁을 받고서 사회 비리를 행하는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효' 의 규범을 사회로 확장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실적으로 가족주의적 폐단을 극복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의례와 관습 : '효' 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치밀한 형식이 제시되어 왔다.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녁에 잠들 때는 부모님의 자리가 따뜻한지 서늘한지를 살피고 문안하는 예절이나, 부모 앞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예절들이 '효' 의 실천 방법으로 섬세하게 규정되었으며, 상례와 제사에서의 예절 또한 복잡하게 제시되었다. 이러한 '효' 의 예절은 전통적 생활 문화적 특성이 되었으며, 사회 질서의 기초로서 가정과 사회의 안정된 체제 유지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효' 의 행동 절차가 지나치게 관습화되면서, 사랑과 공경의 마음은 은폐되고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형식으로 변질되는 문제점을 낳기도 하였다. (→ 조상 숭배 ; 조상 제사 문제)
※ 참고문헌 《논어》/ 《효경》/ 금장태, 《한국 사상과 유교 문화》, 전통문화연구회, 1995. [琴章泰]
③ 불교에서의 효
전통적으로 중국 · 한국 · 일본 등 동아시아의 도덕 규범으로서 특히 유교의 가치 질서 가운데 중요한 덕목인 '효' 는, 《시경》(詩經) · 《서경》(書經) 등에 상세한 언급이 있으며, 이후 《논어》(論語) · 《맹자》(孟子) 등을 거쳐한(漢)나라 때 《효경》(孝經)으로 집약되었다. 효 사상은 역대 중국 왕실의 가장 기초적인 교육 과목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보다 보편적인 훈육 과정으로 정착되었다. 《효경》 이후의 효 사상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효행담(孝行譚)이 널리 유포되어 자리잡게 된 사실이다. 이것은 효의 규범을 폭넓게 교육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불교의 효 사상은, 유교의 효 사상과는 별개의 사상적 맥락에서 싹트고 성행하였다.
〔역사적 발전과 변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성립 : 원래 불교는 세속과 진여(眞如)의 불이(不二)를 강조하였다.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은 엄연히 구분되지만, 이 둘은 조화와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다. 즉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연기(緣起)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따라서 진(眞)과 속(俗)은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이다. 이것을 '진속원융' (眞俗圓融)이라고 한다. 인도 불교의 경우에는 출세간적인 경향이 농후하여, 세속적인 가치 기준으로서의 충효 의식 대신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도(修道) 정신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따라서 명상적이고 은둔적인 기풍을 진작시켰다. 이를테면 승려들이 노동이나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금할 정도로 탈속적(脫俗的)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자, 이와 같은 출세간적 경향은 중국적 기질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즉 불교를 믿으려면 출가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고, 국가에 대해서도 충성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미풍양속을 해칠 뿐 아니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라는 반발이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대중적 저항에 대하여 불교 역시 충효 의식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득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불교적 충효 의식을 강조하고 선양해 나갔
으며, 그 결과 《인왕호국반아마라밀경》(仁王護國般若婆羅密經) · 《부모은중경》과 같은 중국 찬술(撰述)의 위경(僞經)이 생겨났다. 대장경(大藏經)은 그 특성상 경(經) · 율(律) · 론(論)의 삼장(三藏)을 포괄한다. 즉 부처의 말씀뿐 아니라, 그 해설서까지도 모두 불경의 범주에 넣는 독특한 전통을 가진다. 더구나 인도 찬술의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그 문헌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장경이 방대하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위경들이 생겨난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위경이라 함은 중국 땅에서 중국인에 의해 찬술되었다는 의미이다. 물론 위경이라고 해서 그 사상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본경보다 의미심장한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나, 다만 불교 문헌학적인 입장에서는 인도 찬술의 원본이 없는 경우를 대체적으로 위경으로 간주한다. 《부모은중경》은 그와 같은 중국적 상황에서 빚어진 산물이다. 그 내용은 우선 유교의 세속적인 효행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의 효행은 완전한 것이 아니고 불교적 신행 생활을 통해 부모의 사후추복(死後追福)을 기원하는 일이 더욱 바람직한 것이며, 유교적 효행은 형식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불교적 효행은 보다 가치 지향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부모님께 철따라 옷을 해 드린다거나 진귀한 음식을 공양하는 일보다 더욱 값진 것은 부모가 정업(淨業)을 닦도록 유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부모은중경》은 우리 나라에서 판화로 재구성되어 유포되었다. 이것을 <변상도>(變相圖)라고 하는데, 조선 세조(世祖, 1455~1468) 때 간경도감(刑經都監)에서 간행한 용주사(龍珠寺)본 《부모은중경》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이 책에서는 부모의 낳아서 기를 때의 공덕,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죽어서도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씨 등을 묘사하였으며, 일종의 시청각 교재로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다. 사후추선(死後追善)에 관한 불교적 입장은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천도 행위가 가장 보편적으로 꼽힌다. 목련은 부처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데, 그 어머니는 살생 등 악업의 결과로 사후에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목련이 신통력으로 그 광경을 목도하고 지극한 효심으로 그 어머니를 구해낸다는 줄거리이다. 이와 같은 설화는 민중적 호응을 얻었고, 불교적 효행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편찬 : 송나라에 이르러 유교는 크게 변화하였다. 원시 유교는 생활 실천의 원리, 인간 관계의 정립 등을 도모하였으나, 주자학(朱子學)이 성립된 이후 인간 심성의 논구를 통한 형이상학으로 발전하여, 생활 윤리만이 아니라 종교적 기능까지 갖춘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송대의 성리학은 이전의 유교와는 달리 불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효행 사상의 정립이다. 그 결과 불교적 효를 거부하고 유교적 가례(家禮)의 정비와 실천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인 결과가 《주자가례》의 편찬이었다. 《주자가례》에서 조상의 위패가 모셔진 가묘(家廟)를 중심으로 관혼상제가 이루어지게 한 의도는 바로 불교적 효를 유교적 효로 바꾸려는 뜻이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우리 나라에서도 드러난다. 이미 삼국 시대 때 태학(太學)이 세워지고 유학 교육이 폭넓게 시행되었으며, 통일 신라 시대의 국학에서는 《논어》와 함께 《효경》을 기초 교과목으로 설정함으로써 유교적 효 사상은 지식인들의 기본 교양으로 자리잡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유교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 국가에서는 효행자를 표창하였고, 유교적 효의 윤리는 사회 중심적 가치로 자리잡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조상 숭배 신앙이 강하였고, 그로부터 가족 윤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미 고려 성종(成宗, 981~997) 무렵에는 유교의 정치 사상이 사회의 지배적 경향으로 발돋움하였고, 고려 말엽에는 유교적 효 사상을 닮은 효행담이 편찬되었으며, 《주자가례》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효행록(孝行錄)이 몇 차례나 간행되었다. 세종(世宗, 1418~1450)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는 <효자도>(孝子圖)가 수록되었다. 즉 역사적인 효행의 사례를 집대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귀감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효자도>에는 중국인, 한국인 등 모두 110명에 달하는 효자들의 사례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효행과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행이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효행에는 물질적 · 정신적으로 부모를 극진히 봉양한 사례, 부모가 몹쓸 병에 걸렸을 때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한 사례, 부모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구한 사례 등이 열거되었다. 한편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행담으로는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는 사례, 부모의 유해를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정성스럽게 모신 사례,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애틋하게 사모하거나 근신하는 경우 등이다. 이처럼 효행담의 편찬과 《주자가례》의 보급을 통해 불교적 상제례(喪祭禮)는 서서히 유교적 제사 의례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불교적 효와 유교적 효는 혼융(混融)되어 발전하면서 한국적 가치관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 불교의 효〕 신라의 승려인 원광(圓光, 542~640)은 세속오계(世俗五戒)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귀산(貴山, ?~602)과 추항(箒項, ?~602)이라는 두 화랑(花郞)에게 지시한 이 다섯 가지 실천 덕목은 단순히 화랑의 행동 강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흩어진 국민 정신을 모으고 국가의 기반을 다지려는 국민적 행동 목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세속오계의 두 번째 덕목인 '사친이효' (事親以孝)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도덕적 의무로 제시한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이 세속오계와 함께 신라인들의 효행담을 사례별로 기술하고 있다. 대체로 유교적 효행담과 비슷하지만, 그 내용의 연원은 모두 불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병든 어버이를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서 공양한 예는 《본생담》(本生譚) 등에 나타나는 사신공양(捨身供養)을 의미한다. 즉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수행할 때 온갖 환난과 역경을 인용했다는 고사를 소재로 삼고 있다.
손순(孫順)의 효행담은 불교적 인과응보를 미화시킨 예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손순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늘 노모의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이 안타까웠던 손순은 마침내 아이를 없애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아이를 생매장하려고 땅을 팠는데 동종(銅鐘)이 나오자, 이 이적(異蹟)에 놀란 손순 내외는 아이를 차마 없애지 못하였다. 이 미담은 널리 알려졌으며, 후에 손순은 자신의 집을 홍효사(弘孝寺)라는 절로 희사하였다. 또 진정(眞定)이라는 스님이 자신의 어머니를 봉양하는 이야기 또한 목련존자의 고사를 연상시킨다. 출가 전의 진정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늘 출가에 뜻이 있었지만 어머니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어머니가 아들에게 서둘러 출가를 권하였고, 진정은 의상(義湘, 625~702) 문하에 투신하였다. 나중에 진정은 입정(入定) 상태에서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목격하였다.
석굴암(石窟庵)을 창건한 김대성(金大城, 700~774)은 전생과 현생의 두 부모를 봉양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원래 모량리(牟梁里)의 빈농이었던 그는 홀어머니를 남겨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가 곧 재상인 김문량(金文亮, ?~711)의 집에 환생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전생을 알게 된다. 곧 모량리를 찾아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전생의 어머니를 위해 석불사(石佛寺) 곧 석굴암을 지었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불교적 효행이 삼세(三世)를 관통하기 때문에 유교적 효보다 우월하다는 점이 은연중에 과시되고 있다. 따라서 민중적 호응 면에서는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신라와 고려 시대의 효 사상은 불교적 경향이 짙다. 즉 유교는 사회적 실천 강령이었지만, 불교는 가족 윤리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억불승유 정책의 강화로 유교적 가치관이 보다 우대받는 상황이 되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 1206~1289)은 지극한 효행의 실천자였다. 그는 만년에 운문사(雲門寺)에 머물렀는데, 그때 구순의 노모를 절에서 봉양했다고 한다. 출가와 속가(俗家)를 엄격히 구분하는 불교적 전통에서 보면 매우 파격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당시 고려 사회의 풍조로는 오히려 예찬받는 행위였을 정도로, 고려의 효 사상은 불교적으로 윤색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삼국유사》의 효 사상이 유교 윤리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서서히 불어 닥치기 시작한 유교적 윤리의 도전에 맞서기 위하여 불교 또한 효 윤리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적 효는 불교와 유교의 상반된 가치 기준을 모두 융섭(融攝)하고 있다.
효 윤리의 근본은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보는 바로 자신에게 돌아오는데 왜냐하면 자신 또한 부모로서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또 부모에게는 절대적인 순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내면으로까지 부모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 것이 진실한 효행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또 부모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이와 같은 효행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뿐만 아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점에서 다소간의 형식적 제례관이 싹틀 수 있으나, 전통적인 조상 숭배와 맞물리면서 이 효 사상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적 가치관으로 전승되고 있다. (→ 불교)
※ 참고문헌 《朱子家禮》/ 《孝經》/ 《書經》/ 《父母恩重經》/ 《三國遺事》. 〔鄭柄朝〕
효
孝
〔라〕pietas · 〔영〕filial p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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